경북 포항시 포스텍 내 방사광가속기연구소에서 직원이 4세대 방사광가속기를 점검하고 있다. ⓒphoto 조선일보
경북 포항시 포스텍 내 방사광가속기연구소에서 직원이 4세대 방사광가속기를 점검하고 있다. ⓒphoto 조선일보

우리나라가 미국·일본에 이어 세계 3번째로 4세대 방사광가속기 보유국이 되었다. 고난도의 첨단 장비를 우리 손으로 만들어낸 것. 뿐만 아니다. 포항공대(POSTECH)는 4세대 방사광가속기를 시운전한 지 2개월 만에 ‘꿈의 빛’인 0.5㎚(나노미터·10억분의 1m) 파장의 X선 자유전자레이저 발생에도 성공했다. 자유전자레이저라는 빛은 과연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포항가속기연구소는 1995년부터 3세대 방사광가속기를 사용해왔다. 그동안 물질의 특성을 밝혀내고 암세포 구조를 밝히는 등 많은 성과를 냈다. 하지만 3세대 방사광가속기는 크기가 큰 단백질만 촬영이 가능하다. 세포 내부를 보기 위해서는 얼린 뒤 죽은 냉동세포를 절단해서 봐야 하는 까닭에 살아 있을 때의 특성을 정확히 알아내기 어렵다.

분자생물학 분야에서는 단백질 시료를 결정체 형태로 만드는 힘든 과정을 거치지 않고 하나의 분자만으로 구조를 알아낼 수 있는 실험장치가 절실했다. 그것이 바로 제4세대 방사광가속기이다. 미래창조과학부는 2011년부터 지난해 12월까지 4298억원을 투입해 빛의 효율이 더 좋은 4세대로의 ‘세대교체’를 이루었다. 그리고 지난 4월 14일 첫 빔을 쏘며 시운전에도 성공했다. 우리의 뒤를 이어 4세대 방사광가속기를 구축하고 있는 나라는 독일과 스위스이고, 영국과 중국도 구축 계획을 밝힌 상태이다.

세계 각국이 앞다퉈 4세대 방사광가속기를 개발하는 이유는 밝기 때문이다. 4세대 방사광가속기에서 나오는 빛의 밝기는 태양보다 100경배, 3세대보다 100억배나 밝아 물질의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다. 빛의 진폭도 0.1㎚ 정도로 짧아 1000조분의 1초(펨토초·fs)로 움직이는 물질의 현상까지 분석할 수 있다. 실제로 화학반응은 너무 빠르게 진행되어 분자의 움직임을 따라갈 수 없다. 펨토초의 시간 분해능을 가진 가속기가 아니면 분해되는 순간의 과정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이야기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물체를 보기 위해 과학자들이 처음 개발한 것은 현미경이다. 그러나 보통 우리 눈에 들어오는 빛은 파장이 400~700㎚인 가시광선이기 때문에 이보다 작은 물체는 볼 수 없다. 마치 눈금 간격이 1㎝인 자로 0.001㎜ 크기의 진드기 생김새를 알려고 하면 불가능한 것과 같은 상황이다. 파장이 짧은 빛을 이용할수록 작은 물체 내부까지 속속 들여다볼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작은 원자들의 화학결합 구조를 정확히 알아내려면 파장이 0.1㎚ 정도로 짧은 X선을 이용해야 한다. 지금은 잘 알려진 DNA나 단백질 결정의 3차원 구조도 물질을 딱딱한 결정으로 만든 뒤 X선을 쪼여 알아낸 것이다.

가속기는 입자 종류에 따라 방사광(전자)·양성자·중이온 가속기 등으로 나뉜다. 방사광가속기는 이 중 전자를 빛과 같은 속도로 가속시켜 그때 생기는 에너지를 빛에너지로 바꾸는 장치이다. 영화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광선총처럼 X선 레이저를 내보내는 장치인 셈이다. 방사광가속기는 또 가속 방식에 따라 3세대, 4세대 등으로 분류된다. 3세대까지는 전부 원형 가속기이다. 전자를 둥근 관 안에서 접선 방향으로 돌려 가속시키는데, 많은 이용자가 동시에 쓰기 좋다.

반면 4세대 방사광가속기는 직선형으로, 활시위를 당기듯 전자를 쏴 가속시킨다. 직선으로 가속되는 선형가속기의 마지막 부분에 남극과 북극이 아주 짧은 거리에서 교차되는 일명 언듈레이터(undulator)라는 영구자석이 설치되어 있는데, 전자가 이 영구자석을 통과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가속기가 강력한 빛을 낼 수 있는 것은 전자의 특성과 바로 이 영구자석 덕분이다.

가속기 한쪽 끝에 설치된 전자총에서 10억개의 전자를 쏘면 전자는 780m 길이의 선형가속기를 거치며 빛의 속도로 빨라진다. 광속으로 가속된 전자는 영구자석이 만든 자기장 속을 통과하면서 좌우로 급격하게 진행 방향을 틀어 경로가 구부러진다. 이때 강력한 방사광(X선)이 방출되는데, 방사광은 이미 진행한 전자와 적당히 간섭을 일으켜 결국 하나의 파장만으로 방출된다. 이 빛을 자유전자레이저 또는 제4세대 방사광이라고 부른다. 파장은 선형가속기의 에너지(수십억 전자볼트 이상)와 영구자석의 길이(약 100m)를 적당히 선택하면 원자의 크기에 비견되는 0.1㎚까지 얻을 수 있다.

신약 개발·신물질·신소재 기술 등에 활용

4세대 방사광가속기는 3세대에 비해 훨씬 좁은 면적을 선명하게 쪼여 분자들이 어떻게 결합하고 분해되는지 정확히 볼 수 있다. 그래서 ‘나노 세계를 보는 현미경’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진폭이 0.1㎚로 짧은 강력한 빛을 물체 한곳에 집중적으로 쪼이면 물질의 구조가 변할 수 있지 않을까. 기우일 뿐이다. X선을 받는 시간의 단위가 1펨토초로 극히 짧다 보니 오히려 그런 변화를 줄일 수 있다. 그 결과 분자의 구조와 특성을 효율적으로 분석할 수 있고, 바이러스의 침투 과정이나 약이 전달되는 과정을 영화처럼 찍을 수 있다.

예를 들어 4세대 방사광가속기는 단분자 단백질은 물론 얼리거나 멈추지 않고도 살아 있는 세포를 실시간에 3차원 이미지로 분석할 수 있다.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은 우리 몸속의 단백질이나 살아 있는 세포 하나하나를 정밀하게 관측하는 일이 가능하고, 식물의 광합성 반응에서 빠르게 생기는 물질도 밝힐 수 있어, 이를 통해 신약 개발이나 유전공학을 연구할 수 있다.

또 측정 시간은 짧은 반면 빛의 세기가 강한 덕분에 이전보다 정확하게 혈액이나 물의 흐름을 관찰할 수 있다. 가령 산소와 수소가 만나면 물이 된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지만 결합 과정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는데 4세대 방사광가속기를 활용하면 물이 만들어지는 순간을 볼 수 있다. 물을 이루는 원소인 수소와 산소가 어떻게 붙고 떨어지는지 그 과정을 실시간으로 분석하면 수소연료 등 대체에너지의 원천기술 개발에 활용할 수 있다. 4세대 방사광가속기가 만드는 레이저를 ‘꿈의 빛’이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4세대 방사광가속기로부터 만들어진 방사광은 물리, 화학, 생명과학, 재료과학, 기계, 반도체, 의학 등에 다양하게 활용된다. 번개가 번쩍하는 순간보다도 수십억분의 1초보다 빠른 빛으로 화학촉매 반응, 분자결합 반응, 생체 반응 같은 초고속 자연현상을 관측해 낼 우리의 4세대 방사광가속기가 앞으로 펼칠 활약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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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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