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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416호] 2016.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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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율리시스의 도시 더블린 거리서 만난 문학

심아진  소설가·더블린 거주 

▲ ‘블룸스데이(Bloomsday)’의 더블린 거리 풍경. 블룸스데이는 소설 ‘율리시스’의 배경이 되는 날인 6월 16일을 의미한다.
유럽 여행을 꽤 다닌 사람들도 ‘아일랜드’나 ‘더블린’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많지 않은 모양이다.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의 끈질긴 저항, 그리스를 이은 IMF 구제금융, 음악이 아름다운 영화 ‘원스’, 흑맥주 기네스 정도? 어떤 이들은 2010년 유럽 상공을 덮은 검은 재를 아일랜드와 연관 짓기도 한다. “화산이 폭발한 곳은 아일랜드가 아니라 아이슬란드입니다”라고 말하면, 한술 더 떠서 “아일랜드나 아이슬란드나 같은 데 아닌가?”라거나 “아일랜드는 스코틀랜드나 웨일스처럼 영국 아니야?”라며 고개를 갸우뚱거리기도 한다.
   
   서유럽 끝의 작은 섬나라, 아일랜드. 몰라도 사는 데 크게 지장이 없는 나라지만 제임스 조이스, 오스카 와일드, 버나드 쇼, W.B. 예이츠, 사뮈엘 베케트 등 기라성 같은 문학의 대가를 들먹이면 누구나 비상한 관심을 보인다. 덧붙여 비록 영국인이긴 했으나 더블린에서 출생하였고 평생 영국의 아일랜드 수탈을 비판했던 조너선 스위프트와 그의 걸작 ‘걸리버 여행기’를 이야기하면 대번에 아일랜드의 험난한 역사를 이해하기도 한다.
   
   기원전 6세기경 켈트족의 침략을 비롯해 바이킹의 약탈, 영국의 수탈을 무수히 경험했으나 끝내 독립을 이루어낸 아일랜드의 역사는 중국과 일본 등에 시달리며 살아온 우리나라와 매우 유사하다. 한을 승화시켜 예와 시와 악으로 풀어낸 우리처럼 아일랜드 역시 지난한 삶을 문학과 음악으로 다스리며 살아왔다. 슬플 때 조용히 웃을 수 있는 방법을, 고통스러울 때 지혜롭게 관조할 수 있는 방법을 생래적으로 체득한 아일랜드, 그들이 들려줄 이야기가 참으로 많다.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은 인구 130만이 안 되는 작은 도시지만 연중 400만명에 이르는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다. 통행세로 반 페니를 받은 데서 이름이 유래되었다는 하페니다리와 하프 모양의 베케트다리가 있는 리피강,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켈스의 서’를 비롯해 20만권의 책을 보유한 롱룸도서관이 있는 트리니티칼리지, 각종 퍼포먼스가 벌어지는 그래프턴 거리와 세인트스티븐스 그린공원, 구수한 냄새 때문에 저절로 위치를 알게 된다는 기네스 공장, 400마리가 넘는 사슴들이 산책하는 사람들과 마구잡이로 뒤섞여 있는 피닉스파크 등 볼거리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해마다 6월이면 연중 최대의 관광객들이 더블린으로 모여든다. 바로 제임스 조이스를 사랑하는 전 세계의 팬들 때문이다. 비록 그의 소설을 모두 읽지 않았을지라도(혹은 읽었으나 읽었다고 자신할 수 없다 할지라도…!) 조이스를 흠모하는 많은 독자가 ‘율리시스’를 기념하기 위해 모여든다. 책의 주인공 레오폴드 블룸이 더블린 시내를 돌아다닌 것은 6월 16일 단 하루지만, 이야기에는 인류가 살아온 전 시간과 공간이 담겨 있다.
   
   6월 16일 전후 몇 주간 더블린은 소설의 배경이 된 1904년 당시의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이 거리 저 거리를 헤매는 모습들로 가득하다. 통 넓은 바지 차림에 조이스가 썼던 챙모자를 쓴 가이드가 가장자리가 너덜너덜한 ‘율리시스’를 펼쳐들고 읽는다. 샌디마운트 해변에서 불꽃놀이를 구경하는 소녀를, 또 그 소녀가 치마를 들어올려 속옷을 보여주는 장면을 낭독하며 그 유명한 에피파니(epiphany·문학에서 평범한 사건이나 경험을 통하여 직관적으로 진실의 전모를 파악하는 일, 혹은 그런 장면이나 작품)를 설명하면, 관광객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이스를 음미한다.
   
   더블린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리피강 북쪽 거리에 동그란 안경 뒤로 깊고 쓸쓸한 눈을 감춘 남자가 지팡이를 짚고 서 있다. 바로 제임스 조이스의 동상. 1914년 당시 더블린 사람들의 우울하면서도 냉소적인 모습을 날카롭게 그려낸 조이스가 오코넬 거리 중심에서 살짝 비켜난 낮은 자리에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1916년 영국에 항거해 치열한 싸움을 벌였던 파넬, 오코넬, 라킨 등 유수의 정치가들은 중심 거리 높은 단 위에 늘어서 있다.
   
   단편집 ‘더블린 사람들’에 수록된 대부분의 소설들은 발표와 동시에 아일랜드 사람들의 거센 항의와 비난을 받았고 심지어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다. 위대한 예술가가 흔히 그렇듯 조이스는 오랜 기간 고국 아일랜드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했는데, 오늘날 아일랜드가 소위 조이스 산업으로 상당한 관광수입을 올리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오코넬 거리에서 또 하나의 볼거리는 높이 120m에 이르는 뾰족탑, 스파이럴타워(공식 명칭은 Monument of Light)다. IRA에 의해 파괴된 넬슨기념탑 대신 새 천년을 기념하여 세워졌다는 첨탑은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에 이르기까지 켈틱 타이거로 불리며 눈부신 성장을 이룬 아일랜드의 자부심을 반영한다.
   
   2016년 현재 아일랜드는 인구 약 470만, 면적 7만㎦의 작은 나라지만 1인당 GDP가 5만4000달러를 넘고 브렉시트로 인한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 마텔로타워에서 내려다본 풍경.

   펍 PUP, 팝 POP, 풉 POOP!
   
   ‘율리시스’에는 바니 키어넌 주점에서 유대인인 주인공 블룸이 민족주의 광신자 ‘시민’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이밖에도 소설에는 아침 8시부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블룸의 자취를 따라 데이비 번스 펍, 올먼드 호텔 바, 밤새 영업을 하는 오두막 주점 등 많은 주점들이 소개된다.
   
   아일랜드의 문학이 수많은 펍에서 나누는 이야기들의 연장선상에서 이룩된 것이라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아름답지만 척박한 자연환경, 외세의 침략, 가난한 삶을 보듬어 안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어쩌면 술과 그 술자리에서 나누는 대화였을지 모른다.
   
   아일랜드 사람들의 술 사랑, 특히 제임슨(현지 사람들은 제머슨으로 발음한다) 위스키와 흑맥주 기네스에 대한 사랑은 특별하다. 애주가 아일랜드인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은데 한 가지를 소개한다.
   
   한 남자가 바에 들어와 위스키 세 잔과 기네스 세 잔을 주문했다.
   
   “한 번에 이렇게 주문하시다니, 오늘 좀 힘드셨나 보죠?” 바텐더가 말했다.
   
   “그런 건 아니오.” 남자가 말했다. “젊었을 때 형하고 동생하고 셋이서 항상 같이 마셨었거든. 그런데 이제 형은 런던에 살고 동생은 오스트레일리아에 있다오. 그러니 만나서 얼굴 한번 보기 힘들게 됐지만, 그래도 셋이 함께 지냈을 때를 기억하기 위해 꼭 이렇게 마시기로 했소.”
   
   남자는 매주 금요일 밤마다 바에 들러 항상 똑같은 주문을 했고, 바 한편에 앉은 남자가 위스키 세 잔과 기네스 세 잔을 비우는 모습은 어느새 바 단골들에게는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침통한 표정으로 바에 들어온 남자는 자리에 앉아 위스키 두 잔과 기네스 두 잔을 주문했다. 시끄럽던 바 안이 순식간에 쥐 죽은 듯 조용해지자, 바텐더가 안쓰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슬픔이 크시겠군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돌아가신 게 형님과 동생분 중 어느 쪽입니까?”
   
   “아, 아니오. 둘 다 아주 멀쩡하다오!” 남자가 대답했다. “마누라가 하도 바가지를 긁어서 내가 술을 끊었소.”
   
▲ 오코넬 스트리트

   더블린 시내의 밤은 화려하다. 가게들은 일찍 문을 닫지만 술을 파는 곳은 새벽까지 애주가들로 붐빈다. 라이브로 음악을 연주하는 펍에 앉을 자리가 없는 것은 다반사. 유명한 템플바는 선 채로 혹은 간신히 무언가(의자일 수도, 탁자일 수도, 여행용 가방이거나 라디에이터일 수도!)에 엉덩이를 걸친 채로 기네스를 마시고 몸을 흔드는 사람들로 터진다.(POP!) 우리나라 홍대 ‘클럽데이’처럼 더블린에도 모든 펍을 순례(?)할 수 있는 펍 투어(PUP CRAWL)가 있다. 펍에서 시작한 투어 마지막엔 기다시피해서 일행을 간신히 따라가다 결국 놓치고 마는 풉(POOP)들도 꽤 볼 수 있다.
   
   
▲ 제임스 조이스의 동상

   해변의 요새, 오지 않을 적을 기다리며
   
   블룸스데이에 참가한 관광객들이 더블린 시내를 거쳐 꼭 가게 되는 곳은 더블린 남부에 있는 샌디코브 해변이다. 다트(DART)라 불리는 교외선을 타면 날씨에 따라 옥빛으로도 보이고 잿빛으로도 보이는 바다를 한껏 볼 수 있다. 조이스박물관이 자리한 해변을 포함한 던리어리 지역은 부산의 해운대처럼 바닷가 마을 특유의 활기가 있는 곳이다.
   
   조이스박물관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1800년대 초반 나폴레옹 군대와 전쟁 중이던 영국은 적의 침입에 대비해 아일랜드 동쪽과 남쪽 해안을 따라 원형의 요새 마텔로타워들을 지었다. 하지만 정작 프랑스는 영국 너머의 또 다른 바다를 건너 아일랜드까지 올 생각이 없었던 모양이다. 원래 적을 감시하고 봉화를 올리는 목적으로 지어졌던 마텔로타워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율리시스’에서는 벅 멀리건이라는 부유한 의대생이 샌디코브의 마텔로타워를 숙소로 사용하는 것으로 나온다. 그러니까 첫장에서 또 다른 주인공 스티븐이 면도를 하는 곳은 바다가 바라다보이는 상당히 멋스러운 요새의 옥상인 셈이다.
   
   조이스는 실제로 이 마텔로타워를 소유하고 있던 고가티라는 친구를 모델 삼아 벅 멀리건이라는 인물을 창조했다. 그런데 조이스는 고가티의 마텔로타워에 머무는 동안 검은 표범에 관한 악몽을 꾸곤 했다고 한다. 신경이 날카로웠던 그는 어느 밤에는 실제로 범이 나타났다고 여겨 잠결에 표범을 향해 총을 쏘았다. 다행히 총알은 빗나갔지만, 그는 다음 날 서둘러 짐을 챙겨 타워를 떠나버렸다고 한다.
   
   매우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는 재미가 쏠쏠한 박물관에는 조이스가 누워 잤다는 그물침대와 꿈에 보았다는 표범, 그의 넥타이, 사냥 조끼, 편지, 사진, 데드마스크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인근의 킬라이니언덕은 영화 ‘원스’에서 두 주인공이 대화를 나눈 곳으로, 햇살에 반사되는 바다를 배경으로 노란 금작화가 흐드러지게 피는 아름다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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