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 사는 A(31)씨는 지난 5월 말 한 달여 만났던 B(37)씨 때문에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A씨가 ‘그만 만나고 싶다’는 문자를 B씨에게 보낸 후 전화를 안 받자 B씨는 매일 새벽 2~3시까지 카톡을 통해 협박성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전화를 받는 것이 좋을 것이다. 계속 안 받으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며칠 시간을 주겠다. 그 안에 전화를 하지 않으면 책임지지 못할 일이 생길 것이다.’

‘다음 주 회사로 찾아가 사과를 받아야겠다. 기다려라.’

A씨가 아무런 답을 보내지 않자 B씨의 문자는 점점 강도를 더해갔다. A씨가 남자를 만난 건 4월쯤이었다. 친구를 통해 만난 B씨는 명문대를 졸업하고 전문직에 근무한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B씨는 일에 대해 자신감이 넘쳤고 A씨에게 모든 것을 맞춰주며 잘해줬다. A씨도 B씨에게 호감을 느꼈지만 결혼 상대는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B씨 입장에서는 멀쩡히 만나다 느닷없이 문자로 이별 통보를 받은 데다 A씨가 전화까지 안 받으니 화가 나는 것도 이해는 됐다. 그렇지만 보통의 경우 몇 번 연락하다 안 되면 포기하는 반면 B씨는 집요했다.

A씨는 전화벨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뛰었고 새벽까지 이어지는 문자 폭력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회사로 찾아온다는 문자를 받은 이후에 두려움은 더해졌다. 주변에서는 “상대가 대화를 원하니 차라리 전화를 해라”라고 조언을 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B씨가 포기를 할지 알 수 없었다. 전화를 차단할까 생각했지만 오히려 화를 돋우는 것 같아 걱정됐다. 고민 끝에 A씨는 상담기관인 ‘한국여성의전화’에 전화를 걸었다. 상담원은 이런 문제로 상담을 요청해온 경우가 굉장히 많다고 했다.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알려준 대응 요령은 주변의 충고나 자신의 생각과는 달랐다.

‘전화 통화는 하지 마라. 그것이 상대가 원하는 것이다.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문자로 자신의 뜻을 분명히 밝히고 전화와 문자를 차단해라.’

‘경찰에 신고하고 상대에게도 그 사실을 알려라.’

A씨는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알려준 대응 요령에 따라 전화를 차단하고 경찰에도 신고했다. 이후에도 한동안 A씨는 ‘회사로 찾아오면 어쩌나’ 두려움에 떨었지만 다행히 현재까지 아무 일도 없었다.

‘안전이별’이 화두가 된 시대

최근 ‘안전이별’이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화두로 떠올랐다. 안전이별이란 스토킹당하지 않고, 감금당하지 않고, 얻어맞지 않고, 사진이나 동영상 유출 협박에 시달리지 않는 이별로, 자신의 안위와 자존감을 보전하면서 이별하는 것을 말한다. 최근 여성혐오 담론이 등장하며 인터넷으로 급속하게 퍼지는 양상이다. 지난해 12월 tvN 예능 프로그램 ‘SNL 코리아’에서는 ‘안전이별 서비스’를 소재로 다루기도 했다. ‘안전이별’이란 신조어가 등장하면서 ‘이별범죄’ ‘이별살인’이라는 말도 덩달아 생겼다.

‘만나면 언젠가 헤어지게 돼 있다’는 회자정리(會者定離)의 순리가 통용되지 않는 시대가 왔는지 모른다. ‘안전이별’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인터넷에는 민간요법이 많이 떠돈다. 안전이별 유경험자들이 내놓는 ‘믿거나 말거나’ 식 처방전이다. 불치병에 걸렸다고 해라, 큰돈을 빌려달라고 해라, 집안이 망했다고 해라, 긴 유학을 가게 됐다고 해라, 트림이나 방귀 등 정떨어질 만한 짓을 해라, 살을 갑자기 찌워라, 목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정신 나간 것처럼 행동해라 등이 그 예다. 그야말로 ‘웃픈(웃기지만 슬픈)’ 현실이다.

이별범죄도 늘고 있다. ‘헤어지자’는 통보를 받아들이지 못해 여자친구나 지인 등을 찾아가 해코지를 하는 경우다. 해코지의 유형도 다양하다. 앞서 소개한 협박 사례는 그래도 양반 수준이다. SNS를 통해 험담을 하거나 사진이나 동영상을 유출하는 정신적 폭력이 공공연하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20~30대 젊은 여성들은 대부분 안전이별을 못해 괴로운 사례를 알고 있었다. 본인이 직접 크고 작은 괴롭힘을 당한 경우도 꽤 있었고 친구, 선배, 친구의 지인 중에는 이런 사례가 꼭 있었다.

헤어지자는 통보 후 평소 동선을 알고 있던 전 남자친구가 갑자기 나타나 차로 납치해 고속도로로 내달린 경우, 집 앞에서 기다리다가 때린 경우, 형제와 가족들에게 ‘○○의 마음을 돌리게 해 달라’는 내용의 문자를 1년이 넘도록 끈질기게 해온 남성도 있었다. SNS를 통한 괴롭힘도 흔했다. 지인들에게 전 여자친구를 험담하는 글을 써서 유포하기도 했고, 전 여자친구에게 ‘꽃뱀 같은 X’ ‘네 가족이 안전할 줄 아냐’ ‘밤길 조심해라’ 등의 협박 메시지를 끊임없이 보낸 경우도 있었다. 수신인 차단을 해도 소용없었다. 새로운 계정을 만들어 또 협박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 여성은 SNS에 메시지가 도착하면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고 했다.

언론이나 방송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이별범죄가 보도된다. 7월 한 달간만 7건이 넘는 이별범죄가 보도됐다. 헤어지자는 전 여자친구를 때리고, 감금하고, 라이터로 지지고, 인분을 투척하는 등 양상도 다양하다. 잔혹한 범죄도 많다. 목졸라 살해 후 시멘트로 암매장하거나, 자신의 차량을 이용해 길가에 서 있는 전 여자친구에게 고의로 부상을 입히거나, 여성을 차에 태워 바다로 돌진한 남자도 있었다. 지난 7월 11일에는 이별을 통보한 여자친구의 직장을 찾아가 빙초산을 투척한 사건이 발생했다.

수치로도 확인된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언론에 보도된 살인사건을 분석한 결과 친밀한 관계에 있는 남성에게 살해당한 여성이 부쩍 늘고 있다. 2009년에는 애인이나 남편에게 살해당한 여성은 70명, 살인미수에 그친 경우는 7명, 피해여성의 부모나 친구 등 무고한 지인이 살해당한 경우가 16명이었지만, 2015년에는 각각 91명, 95명, 50명(사망 23명, 중상 27명)으로 늘었다. 남편이나 애인에게 살해당한 여성이 70명에서 91명으로 40% 정도 증가한 것이다. 2015년에 살해된 여성 중 37명은 이별이 부른 참극이었다. 지난해 이별살인으로 여성과 여성의 가족 등 60명이 희생당했다. 6일에 한 명 꼴로 이별살인이 벌어진 것이다.

이 수치는 언론에 보도된 사건만 헤아린 것이다. 보도되지 않은 범죄도 많고, 아예 경찰서에조차 알리지 않은 사건도 많다는 것을 감안하면 얼마나 많은 여성이 이별 통보 후 불안과 공포에 떠는지 짐작이 간다.

지난 7월 11일 이별을 통보한 여자친구의 직장을 찾아가 빙초산을 투척한 사건이 발생했다. ⓒphoto 연합뉴스tv 화면
지난 7월 11일 이별을 통보한 여자친구의 직장을 찾아가 빙초산을 투척한 사건이 발생했다. ⓒphoto 연합뉴스tv 화면

여권신장 vs 가부장제 잔재

왜 이별범죄가 증가할까. 이나미 서울대 의대 겸임교수(이나미심리분석연구원 원장)는 여권신장과 가부장적 잔재가 부딪치는 현시대의 한국적 특수성에서 원인을 찾는다. 이 원장은 “과거에는 남녀 간에 발생하는 일을 모두 여성의 책임으로 여겼으나 점점 달라지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예전에는 여성들이 남성과 교제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들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창피해하며 쉬쉬했다. 하지만 여권 신장으로 부당하게 당한 부분을 당당하게 어필하면서 소위 이별범죄가 더 부각되는 경향도 있을 것이다. 과거 강간사건이 얼마나 많았나. 하지만 그때는 당하는 여자는 어쩔 수 없이 결혼해야 하는 걸로 알았고 가해자인 남성은 자랑스럽게 여겼다. 나이 드신 분들 중에는 ‘방에 가둬놓고 마누라 만들었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도 있지 않나.”

그는 또 “과거에는 ‘보쌈’이라는 말로 여성의 납치를 정당화했다”며 “보쌈이 납치라는 범죄로 간주됐다는 자체가 큰 진보”라고 말했다. 후진국에서는 여자가 강간을 당하면 명예살인을 했고, 우리나라도 과거에는 “여자가 처신을 어떻게 했길래…” 하면서 당한 여성을 비난했다. 가해자인 남성을 범죄자로 보는 시각은 드물었다.

요즘 젊은 남성들은 소위 ‘낀 세대’다. 가부장적 질서가 자연스러운 부모 세대와 이 질서가 몹시 불편하고 부당하다고 여기는 젊은 여성들 사이에 있다. 과거 아버지가 누렸던 권위를 보고 자란 남성들은 그 권위가 자신들 세대에는 주어지지 않는 현실이 못마땅하다. 어머니 세대는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대접을 해주고 대단한 존재로 여겼지만 젊은 여성은 그렇지 않다. 고학력 여성이 많아지고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면서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추구한다. 과거에는 교제 중인 남녀 사이에서 남자가 여자를 버리는 경우가 더 흔했다. 남자가 여자를 마음에 안 들어하면 쉽게 버렸지만 여자는 그렇지 않았다. 남자가 마음에 안 들어도 참고 버텼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자신과 맞지 않다고 생각하면 여성이 먼저 당당히 이별을 고하는 시대가 됐다. 이런 여권신장과 가부장제의 잔재가 뒤섞인 현실이 이별범죄의 기저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여권신장 과정을 관심 있게 지켜봐온 50대 작가는 “한국에 유독 이별범죄가 많은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한국 남성의 심리를 깊숙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 남성들은 어려서부터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자빠뜨려”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듣고 자랐다. 강제로라도 성관계를 갖게 되면 그때부터 그 여성은 내 것이 된다고 여전히 믿고 있는 남자가 적지 않다고 한다. 개그맨 서세원의 아내 서정희는 성폭행을 당해서 결혼하게 됐다고 방송에서 털어놓은 적이 있다. 이 외에도 50대 이상 부모 세대에는 ‘당해서’ 결혼한 경우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2016년 현재 ‘하룻밤 같이 자면 내 것’이라는 후진적 사고는 어느 정도 희석됐지만 그 잔재는 여전하다. 아버지 세대의 가부장적 가치관을 듣고 자란 아들 세대에는 ‘성평등적 사고’는 아직 요원하다. ‘내 것’이라고 여기고 밥도 사주고, 선물도 사주면서 마음을 쏟았는데 나중에 헤어지자고 하면 남자 입장에서는 소위 ‘멘붕’이 된다는 것이 남성들의 속내다. 여성 입장에서는 이런 한국 남성의 심리를 알고, 관계를 발전시키거나 선물 등을 받을 때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나홀로족이 늘어나는 사회현상 또한 이별범죄를 부추긴다. 이별은 누구에게나 아프고 슬프다. 이 슬픔을 나눌 대상이 있으면 범죄까지 이어지지 않을 확률이 크다. 하지만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버리면 객관적 시각을 잃게 되면서 증오를 점점 키운다. 실제로 이별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 중에는 나홀로족이 많았다. 이나미 원장은 “완충 네트워크가 사라지는 것도 이별범죄의 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과거에는 부모, 형제, 할아버지, 할머니, 이모, 고모, 삼촌 등 가족들이 완충 네트워크가 됐다. 이별 등 슬픈 일을 겪었을 때 함께 사는 가족 혹은 동거인 자체가 큰 도움이 된다. 꼭 직접적인 조언을 해주어서가 아니다. 한솥밥을 먹으며 부대끼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힘든 과정을 버틸 수 있는 힘이 길러진다.

이런 남자 피해라

이별통보 후 괴롭힘에 시달리는 여성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사귈 땐 그런 사람인지 몰랐어요.” 하지만 전문가들은 사귀는 과정에서 ‘이별범죄’를 저지를 사람들의 단초가 보인다고 한다. 한국여성의전화, 가정폭력상담소, 이나미 박사, 심리학연구소 이드페이퍼 등에서는 이런 남자들을 가정폭력과 데이트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상대방을 자신의 마음대로 휘두르려고 하고 타협을 모르는 사람 △자존감이 낮아서 자신을 비난하는 말을 못 참는 사람 △내 차, 내 집, 내 가족 등 특별한 것에 대한 소유욕이 지나치게 강한 사람 △충동적이고 자제력이 낮은 사람 △‘내 여자를 위해 목숨까지 바칠 수 있다’며 집착이 과도한 사람.

혹 이런 사람과 사귀다가 이별을 해야 한다면? 단둘이 있는 공간에서 이별 통보를 피하라고 한다. 사람들이 많은 공공장소를 택해야 한다. 또 이별 통보 후 상대방이 흉악한 태도로 돌변하면 일절 연락을 하지 말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조언이다.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해 화를 내다가도 “너밖에 없다”며 울며불며 매달리는 상대를 보면 마음이 흔들릴 수 있지만 냉정하게 대하는 것이 상대를 위한 것이라고 한다. 불필요한 동정은 금지다. 이별 후 ‘애도기간’에는 상대방이 슬퍼하면서 마음을 정리할 시간을 주는 것이 핵심이다. 애도와 슬픔은 상대방의 몫이지 내 몫은 아니다.

이별 후에는 누구나 애도과정을 겪는다. 애착과 상실이론의 대가인 존 볼비에 따르면 애도과정은 네 단계를 거친다. ‘마비’ ‘그리움과 추구’ ‘혼란과 절망’ ‘재조직’. 이 과정이 순차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난다는 심리학자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이 네 가지의 감정이 한바탕 휘몰아치는 것을 스스로 감당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끈질기게 스토킹당할 경우 거절의사를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모호한 메시지는 사태를 더 악화시킨다. 안쓰럽고 불쌍한 마음에 모호한 메시지를 주면 상대방은 희망을 품고 계속 매달리게 되고 더 집착한다. 이별 통보 후 협박의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보낸다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강하게 나갈 필요도 있다고 한다. 이때 증거 확보는 필수. 협박 메시지를 지우지 말고 남겨둬야 한다. 꼭 만나야 할 일이 있다면 지인을 대동하고 만날 것을 권한다.

한때 사랑했던 사람과 이별하면서 ‘이렇게까지 냉정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 수 있다. 하지만 ‘아름다운 이별’은 이상(理想)이다. 현실은 다르다. 전문가의 조언을 따라야 안전하다고 한다. 실제로 한국여성의전화, 경찰서, 가정폭력상담소 등에서 알려준 매뉴얼대로 하면 피해자의 예상이나 우려와는 달리 상대방이 포기하고 이별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18년째 잠자는 스토킹방지법

스토킹방지법 발의한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
스토킹방지법 발의한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

양상도 다양하고, 극단적인 잔혹함으로 발전할 수도 있는 이별범죄. 법적 보호장치는 없을까. 미국과 영국, 호주 등에서는 데이트범죄와 이별범죄를 막기 위해 피해자를 가해자로부터 격리하는 법적 장치가 있다. 영국은 2009년 전(前) 남자친구에게 무참하게 살해당한 여성의 이름을 딴 ‘클레어법’을 제정했다. 데이트 상대의 가정폭력과 전과 등을 조회할 수 있는 법률이다. 미국은 여성폭력방지법에 데이트폭력을 포함시켰고, 가해자를 의무적으로 체포한 뒤 피해자와 격리하도록 한 조항도 있다. 또 매년 2월을 데이트폭력 근절의 달로 지정해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별범죄를 다스릴 수 있는 법적 보호장치가 없다. 그나마 2013년에 제정된 ‘경범죄처벌법’이 전부다. 상대방의 명확한 거부의사가 있는데도 면회나 교제 등을 요구하고 지켜보거나 따라다니는 행위 등을 하면 스토커로 간주해 10만원 이하의 벌금 또는 구류로 처벌하는 법률이다. 경범죄에 해당하기 때문에 벌금은 고작 8만원에 불과하다. 이 정도로는 피해자를 보호할 수도, 범죄를 예방할 수도 없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실제로 지난 4월 대구에서 발생한 살인은 스토커 범죄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여줬다. 당시 피해 여성은 경찰에 수차례 신변보호를 요청하고 가해자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검찰이 기각하면서 피해 여성이 살해되고 말았다.

다행히도 20대 국회에서 스토킹범죄 특별법을 제정하려는 적극적인 움직임이 보인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스토킹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자신의 20대 국회 1호 법안으로 발의한 것. 6월 23일에는 이 법안 제정을 위한 전문가 간담회가 열렸다. 법안의 골자는 △스토킹범죄 신고 시 경찰은 스토킹 중단 등 응급조치를 취할 것 △고용주는 피고용자가 스토킹범죄 신고 혹은 피해회복 절차 등을 이유로 해고 등 불합리한 처우 금지 △스토킹범죄 피해자에 대한 전담조사제 및 전담재판부 지정 등이다.

남인순 의원은 이 법안을 발의하면서 “스토킹은 개인 간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처벌받아야 할 사회적 범죄”라며 “초동 단계에서부터 가해자의 행위를 제재하면 재발 방지와 피해자 보호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스토킹방지법 발의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9년 발의 이후 18년째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늘 임기만료로 폐기돼왔다. 20대 국회에서는 이 법안을 꼭 통과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거세지고 있다. 한국여성의전화에서 23년간 근무한 경력이 있는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국여성의전화에서 근무하며 가장 필요하다고 여긴 법률은 스토킹방지법”이라며 “스토킹방지법이 데이트폭력을 비롯 스토킹범죄를 처벌할 수 있는 법안이니만큼 통과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슬픔은 이별 후 애도과정의 핵심

미국이나 유럽의 영화를 보면 연인으로 지내다가 헤어진 후에도 친구로 편하게 지내는 경우를 종종 본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런 풍경은 낯설고 신기하다. 소설가이자 심리에세이스트 김형경은 자신의 책 ‘좋은 이별’에서 “우리에게 잘 이별하는 문화가 정착되면 좋겠다”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에게 사랑의 담론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넘치는 데 비해 이별의 언어는 기이할 정도로 빈약하다. 심지어 이별을 나쁜 것, 숨겨야 하는 것, 피하고 싶은 추악한 것처럼 인식한다. 우리 마음의 모든 문제는 잘 이별하지 못하는 데에서 생기고 치유와 성장도 잘 이별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슬픔은 나약함이나 병이 아니라 애도과정의 핵심이다. 애도기간에는 슬픔을 극복하려 애쓸 게 아니라 슬픔과 함께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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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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