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말 한국으로 망명한 태영호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 ⓒphoto 연합
지난 7월 말 한국으로 망명한 태영호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 ⓒphoto 연합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로 재직하다가 지난 7월 말 한국으로 망명한 태영호(55)씨 부부를 두고 ‘빨치산 혈통’이라는 주장이 일부 언론에서 제기됐으나 주간조선 확인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빨치산 혈통은 김일성과 항일 무장투쟁을 함께한 혁명 1세대 가문을 말하며, 북한에서 이들은 소위 ‘진골(眞骨)’로 분류된다.

2011년 10월 주간조선이 단독 입수한 평양시민 전체 신상자료에 따르면 태씨와 오씨는 모두 빨치산 혈통과 가까운 친족으로 보기 어려웠다. 평양시민 전체 신상자료는 평양에 거주하는 만 17세 이상의 시민 210만명의 이름, 성별, 생년월일, 고향, 거주지, 혈액형, 직장직위, 배우자 및 결혼 날짜, 시민증번호 등이 기재된 한국의 주민등록에 해당하는 자료다.

이 평양시민 전체 신상자료에 따르면 태영호 공사는 항일 빨치산 1세대이자 김일성의 전령병으로 활동한 태병렬 인민군 대장과는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만약 태영호 공사가 태병렬의 아들이 맞다면 태병렬의 또 다른 아들인 현 김일성대학 태형철(63) 총장과 인적사항이 일치해야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어떤 연관성도 갖고 있지 않았다.

태영호 공사는 1962년 7월 25일생으로, 태형철과는 9살의 나이 차가 있다. 또 태 공사의 고향은 평양시 중구역 종로동인 반면, 태형철 고향은 평양시 룡성구역 명호동으로 나와 있다. 2005년 당시 북한 내 거주지 또한 달랐다. 태 공사가 평양시 모란봉구역 개선동 12에 거주지를 둔 반면, 태형철은 평양시 서성구역 장산동 67에 살고 있었다. 또 태형철의 혈액형은 A형이고, 태 공사는 O형으로 다르다. 두 사람이 만약 형제 또는 동일 주소지에서 태어났다면 시민증번호에서 연관성을 보여야 하지만 태영호(24503)와 태형철(172168)의 번호는 전혀 달랐다. 태병렬과 관련된 상세기록이 남아 있다면 두 사람의 관계를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겠지만 아쉽게도 태병렬은 이 자료가 만들어지기 전인 1997년경 사망했다.

태영호 남동생 추정 인물 평양 거주

평양시민 전체 신상자료에 따르면 태 공사의 남동생이 평양에 거주하고 있는 것은 확인할 수 있다. 태 공사의 다섯 살 아래 태영○(1967년생)라는 인물은 고향과 거주지가 모두 태 공사와 동일하고 시민증번호도 앞뒤로 나란하다. 태영○의 혈액형은 태 공사와 같은 O형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북한당국이 태 공사의 딸을 볼모로 잡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만약 태 공사가 북한에 딸이 있다면 그의 동생으로 보이는 태영○와 함께 거주하고 있을 개연성이 높다. 태영○ 또한 외국 관련 업무를 관장하는 대외경제공급관리소에 재직하고 있다. 평양시민 전체 신상자료에 따르면 태 공사는 외무성 12국 책임부원으로 있다가 2000년대 들어 유럽으로 파견을 나간 것으로 보인다.

1987년 10월 17일 태영호와 결혼한 부인 오혜선씨는 1966년생으로 무역성 지방무역지도국에서 일했다. 그러다 외교관이 된 남편의 임지(任地)를 따라 유럽으로 간 것으로 전해진다. 오혜선씨는 빨치산 항일투쟁을 했던 오백룡의 아들 오금철 북한군 총참모부 부총참모장의 친척이라고 일부 언론이 보도했다. 오금철은 공군 장교로 성장한 인물이다. 하지만 오혜선씨가 태어난 곳과 거주해 온 곳을 놓고 볼 때 오금철의 일가로 단정짓기 어려워 보인다. 우선, 오혜선씨의 고향은 함경북도 라진시 라진읍으로 되어 있다. 오백룡이 나고 자란 곳은 함경북도 회령으로 차이가 있다. 오금철의 경우 평양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라진은 동해안에 면해 있고, 회령은 압록강변에 위치해 있다.

오씨는 1989년 태영호와 결혼한 뒤 평양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오씨는 2000년부터 무역성에 배치돼 일했다. 평양시민 명단에 그의 가족으로 의심할 만한 인물이 없는 것으로 미뤄 오씨 가족은 여전히 라진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태영호·오혜선 부부는 출신성분이 아니라 개인적 역량에 의해 발탁된 인재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에 대해 한 대북 소식통은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만약 오씨가 오금철의 일가라면 좋은 성분으로 분류돼 진즉 평양으로 거주지를 옮겨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오씨 성을 가진 지방의 괜찮은 집안 딸 정도이지, 오금철 일가로 단정하기 어렵다. 태 공사 부부는 모두 통역 관련 양성과정을 거친 걸로 볼 때 우수한 인재였던 건 분명해 보인다.”

주간조선이 입수한 평양시민 자료에는 오금철과 동명의 인사가 80여명 존재하지만 1947년생 오금철은 없었다. 아마도 이 자료가 작성될 당시 오금철은 평양에 거주하지 않고 공군부대가 위치한 지방에 있었을 가능성이 점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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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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