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WTC 102층 전망대에서 바라본 맨해튼 전경.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등이 멀리 보인다.
1WTC 102층 전망대에서 바라본 맨해튼 전경.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등이 멀리 보인다.

테러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상징하는 1WTC는 건축비가 가장 비싸고, 가장 안전하고, 가장 친환경적인 건축물임을 자랑한다.
테러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상징하는 1WTC는 건축비가 가장 비싸고, 가장 안전하고, 가장 친환경적인 건축물임을 자랑한다.

뉴욕! 20세기에 가장 번영한 도시는 누가 뭐래도 미국의 뉴욕이다. 세계 경제를 지배하는 월스트리트, 수없이 많은 마천루들, 최첨단을 걷는 문화예술 사조…. 20세기 은하계 박물관에 지구의 수도를 전시한다면 단연 뉴욕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21세기가 시작된 2001년 9월 11일 뉴욕에서 초고층 건물이던 월드트레이트센터의 트윈타워가 테러공격을 받고 붕괴됐다. 이 사건으로 3000여명이 사망했다. 월스트리트에 인접한 뉴욕의 상업 중심지인 로어 맨해튼(Lower Manhattan)에 자리한 테러 현장은 그라운드 제로라고 불릴 정도로 완파됐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9·11테러 공격으로 뉴욕시는 400억달러에 달하는 피해를 입었다고 집계했다. 뉴욕은 이러한 전대미문의 엄청난 재앙을 이겨낼 수 있을까.

지난 9월 말의 뉴욕. 미드타운의 중심 타임스스퀘어는 밤낮 없이 인파의 홍수를 이룬다. 뮤지컬 공연이나 뉴스 등을 알리는 전광판들은 이전보다 더 많아졌고 더 화려해졌다. 거리에는 새벽부터 어둠을 가르며 샌드위치 하나 들고 바쁜 걸음으로 일터로 향하는 직장인들의 행렬. 세계에서 가장 부지런한 사람들이 뉴요커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테러에 대비해 배치된 경찰과 특수차량으로 곳곳이 막혀 가뜩이나 홍수를 이루는 차량들로 도로는 북새통이다. 하지만 거리의 사람들 표정은 밝아 보인다. 타임워너타워를 비롯 뉴욕시내에는 15년 동안 새로운 마천루가 더 많이 들어섰다. 도처에서 리모델링 공사와 신축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항상 바쁘게 변하는 도시…. 그곳이 바로 뉴욕이다.

테러 공격을 받고 15년이 지난 9월 말 찾은 뉴욕. 테러 위협은 여전히 가해지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테러의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 일상을 누리고 있었다. 공식적인 자료를 보더라도 뉴욕시의 인구는 테러 이전보다 더 많아져 역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으며, 최고가를 기록한 뉴욕시 부동산시장에는 전 세계에서 투자자들이 몰려들고 있다. 상점이나 식당마다 손님들이 가득하고 거리에는 중국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등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는 관광객이 넘쳐나 영어를 듣기 어려울 정도. 뉴욕은 테러의 충격과 공포를 이겨내고 힘차게 부활의 날개를 펴며 비상하고 있었다. 21세기에도 은하계 박물관에 내놓을 만한 지구의 수도는 역시 뉴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1세기 뉴욕시의 비상을 상징하는 건물은 바로 그라운드 제로에 세워진 월드트레이드센터와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기념물들. 아직 일부 건축 공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사라진 트윈타워를 대체할 제1월드트레이드센터(1WTC), 이전에 트윈타워가 있던 자리에 조성된 추모공원, 그리고 월드트레이트 전철역 등 주요 건축물들은 최근까지 모두 완공됐다.

그라운드 제로의 재개발 사업은 초기에는 매우 더디게 진행됐다. 가장 큰 이유는 유가족이나 개발업자, 시 당국 등의 이해나 주장이 달라 설계안을 확정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 까닭이다. 또한 공사장 주변 지하에 도로망이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초고층 건물 건설 공사를 조심스럽게 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공사 지연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3000명이 사망한 우울한 터를 다시 상업지역으로 재생시키는 데 대한 시민들의 부담감도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실제로 테러 공격 다음해인 2002년 6월 조지 파타키 뉴욕 주지사는 “트윈타워가 있던 터에는 절대로 건물을 올리지 않겠다. 그 자리는 희생자들의 추모 공간으로 영원히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건물들이 있었던 자리를 상업적으로 개발하지 않고 영원히 보존하겠다는 파타키 주지사의 약속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이전에 상업의 중심지였던 장소를 희생자 3000명을 위한 무덤으로 만들어 성역화하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로어 맨해튼이 무덤이 되면 그 북쪽에 위치한 미드타운도 분위기가 가라앉을 것이며, 타임스스퀘어의 네온사인들도 자칫하면 하나둘 꺼지기 십상이다.

이러한 무거운 분위기를 쇄신하고 개발을 이끈 사람은 바로 백만장자 출신의 뉴욕시장 마이클 블룸버그. 블룸버그는 테러 공격 직후인 2001년 11월에 제108대 뉴욕시장으로 선출됐다. 그는 테러 후유증으로 경제난에 빠진 뉴욕 경제의 재건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뉴요커들 역시 세계 10대 부호에 드는 비즈니스맨이던 그를 지지했다. 그는 테러 이후 뉴욕시를 짓누르던 우울한 분위기를 걷어내고 로어 맨해튼을 재개발해 세계적인 상업지구로 부활시키기 위해 민간인과 공직자들을 적극 지원했다. 희생자를 위한 사업 지원은 5억달러로 한정했다. 피해지역에는 과감한 세금 감면 조치를 취해 새로운 건물들과 업소들이 들어서게 했다. 이 같은 조치로 대형 금융회사들이 속속 이곳에 입주하는 등 현재 그라운드 제로의 부동산 경기는 매우 뜨겁다. 또한 인구유입도 뉴욕시에서는 가장 많다고 한다.

컬럼비아대학 경영학과의 린 새걸린 교수는 그라운드 제로의 재개발을 연구한 최근의 한 저서에서 “뉴욕시가 대재앙으로 맞은 비극에 결연하게 맞서 21세기의 글로벌한 대도시로 반등할 수 있도록 결정적 공헌을 한 사람은 정치인들 가운데에는 블룸버그 시장이 유일하다”고 극찬했다.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들은 역시 땅 주인들. 그라운드 제로의 소유권을 갖고 있는 뉴욕·뉴저지 항만공사 직원들과 99년간 임대권을 보유한 부동산 개발업자 래리 실버스틴의 적극적인 자세도 중요했다.

9·11테러 공격 당시 건물이 무너지는 바람에 숨진 뉴욕시 소방관 343명을 추모하는 부조.
9·11테러 공격 당시 건물이 무너지는 바람에 숨진 뉴욕시 소방관 343명을 추모하는 부조.

21세기 뉴욕의 상징, 그라운드 제로

내부에서 본 월드트레이드센터 역사. 천장이 개방된 오큘러스 구조이다.
내부에서 본 월드트레이드센터 역사. 천장이 개방된 오큘러스 구조이다.

21세기 뉴욕을 상징하게 될 로어 맨해튼의 그라운드 제로에는 어떤 건축물들이 들어섰을까. 먼저 가장 멀리서도 눈에 띄는 1WTC. 전면이 유리창으로 덮여 있어 맑은 날에는 주위의 풍경과 푸른 하늘을 반사한다. 2003년 설계를 공모했을 때 당선된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드는 ‘자유의 여신상’의 이미지를 차용한 초고층 건물을 구상했다. 이름하여 ‘프리덤 타워(Freedom Tower)’. 테러와의 전쟁에서 미국의 승리를 기리기 위한 디자인이었다.

그러나 이 설계안에 대해 99년간 토지 임대권을 보유한 래리 실버스틴이 반대했다. 그는 자신이 “건물이 무너지면 새로운 건물을 지어야 할 계약상의 책임과 권리를 가지고 있다”며 데이비드 차일즈라는 건축가에게 설계를 위촉했다. 차일즈는 센트럴파크 주변에 타임워너센터라는 초고층 명품 건물을 설계한 인물. 차일즈의 설계안에 뉴욕 경찰 당국이 제기한 안전 문제 등 각계의 의견을 받아들여 2014년 11월 완공된 것이 지금의 1WTC이다. 1WTC는 102층짜리 초고층 건물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기념물적인 성격을 가진다. 워싱턴DC에 위치한 오벨리스크(워싱턴 기념비)나 거대한 등대를 연상시킨다.

그런데 실제로 이 건물을 가까이 쳐다보면 긴 칼을 떠올리게 만든다. 땅으로 향한 거대하고 길쭉한 이등변삼각형은 적에 대한 복수와 섬멸을 다짐하는 듯하며, 하늘로 향한 이등변삼각형에는 국토를 수호하겠다는 결의가 담겨 있는 듯하다. 특히 어두운 밤에 보면 차갑고 서늘한 기분이 더욱 전해지는 듯하다.

이 건물의 바닥면적은 가로 세로 모두 61m, 20층까지는 정사각형 형태. 내부는 튼튼한 콘크리트 벙커. 뉴욕 경찰 당국이 차량을 이용한 테러 공격에 대비하라고 한 요구를 수용했다. 20층에서부터 정사각형이 서서히 8각형으로 변화하며 상승한다. 그러다 정팔각형이 되면 다시 정사각형으로 변화하며 상승해 맨 꼭대기에서는 정사각형을 이룬다. 꼭대기의 정사각형은 바닥의 정사각형에 비해 45도 회전한 형태. 이 설계는 건물을 남쪽에서 보면 직육면체를 이루어 무너진 트윈타워 중의 하나를 연상시킨다. 다른 면에서 보면 워싱턴DC에 있는 오벨리스크와 같은 모양. 건물만의 높이는 무너진 트윈타워와 같다. 안테나를 포함한 높이는 정확히 1776피트(541m). 이는 미국이 독립한 해와 같은 숫자. 설계를 하면서 여러 가지 애국적 상징과 기호들을 배치했다. 꼭대기의 안테나에서는 뉴욕을 상징하는 ‘N’ 자를 모스부호로 발신한다.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102층 전망대에 오르면 뉴욕 맨해튼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1WTC는 건축사적으로는 3가지 특징을 지닌다. 첫째 건축 비용이 가장 비싼 건물이다. 32억달러나 들었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약 4조원. 둘째 가장 안전한 건물이다. 테러나 화재, 지진 등에 철저하게 대비하였다. 아래층 내부에 설치된 콘크리트 벙커, 빌딩의 진동이나 붕괴를 막아주는 특수 지주, 특수 소방시설, 70대의 특수 안전 엘리베이터, VIP를 위한 별도의 특수 계단 등, 모두 최첨단 기술이 도입됐다.

셋째 가장 친환경적인 건물이다. 1WTC 건축자재는 상당 부분 재활용된 것들. 또 건설 중에 나온 폐자재의 70% 이상이 재활용됐다. 철이 합성된 유리창은 햇빛의 강도에 따라 투명도가 변하여 전기 사용을 줄인다. 또 빗물 재활용 기능을 설치하여 물 사용량을 30%나 줄였다.

다음으로 트윈타워가 있었던 자리에 조성된 두 개의 커다란 풀(pool). 테러 공격 10년 뒤인 2011년 9월 12일 완공됐다. 두 동의 타워가 무너진 자리에는 각 변의 길이가 60여m인 정사각형 모양 커다란 풀을 설치했다. 각 풀마다 땅 밑으로 약 9m(30피트) 깊이로 화강암벽을 설치하고 4개 면에서 모두 폭포수 같은 물줄기가 흘러내리게 했다. 그리고 지상의 테두리를 따라 설치된 동판에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 추모 구조물을 설계한 사람은 이스라엘 특공부대 출신의 건축가 마이클 아라드. 미국 시민이기도 한 그는 34세의 젊은 나이에 5200여 경쟁자를 물리치고 당선됐다. 뉴욕에 살며 직접 테러를 목격했던 그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미래를 생각하며 테러의 충격을 어떻게 소화해야 하나를 고민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원래 설계에는 폭포수 뒤로 추모객들이 다닐 수 있는 회랑이 있었지만 예산 절약을 위해 폐기했다. 실제로 다가가 보면 단순하다. 그런데 이 구조물은 눈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폭포처럼 떨어지는 물소리를 들으면서 보아야 한다. ‘쏴아’ 하며 지하로 떨어지는 물소리가 도시의 각종 소음을 막아내는 역할을 한다. 이 구조물이 테러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의식하면서 바라보면 폭포수의 물줄기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빛들이 마치 희생자들의 영혼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혼잡한 길거리를 지나다 다가가 별 생각 없이 바라보면 영락없는 도심 속의 한 공원이다.

트윈타워가 있던 자리에 설치된 희생자를 추모하는 풀. 앞에는 건축가 칼라트라바가 설계한 WTC역사 건물로 박물관과도 통한다.
트윈타워가 있던 자리에 설치된 희생자를 추모하는 풀. 앞에는 건축가 칼라트라바가 설계한 WTC역사 건물로 박물관과도 통한다.

미래지향적 뉴요커들에 경의

그리고 오큘러스(Oculus)라고 불리는 월드트레이드센터 역사(驛舍) 건물. 허드슨강 아래로 뉴욕과 뉴저지 사이를 달리는 전철역이기도 한 교통 중심이다. 올해 3월 완공됐다. 오큘러스는 눈이라는 의미지만 건축학적으로는 천장이 개방된 구조를 뜻한다. 실제로 안에서 보면 천장이 개방되어 있다. 이 건물을 설계한 사람은 스페인 출신의 저명한 건축가인 산티아고 칼라트라바. 외관은 손바닥에 안긴 작은 새가 날아가는 이미지라고 한다. 그라운드 제로에 건축된 여러 기념물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이론의 여지없이 빼어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건물 내부에 세계 최고의 명품점들이 들어서 있다.

그라운드 제로에는 아직도 건설 중인 곳도 있지만 중요하고 상징적인 구조물들은 대부분 완공됐다. 테러에 대비한 경찰과 군 병력이 도처에 배치되어 있지만, 뉴욕은 슬픔과 공포를 이겨내고 21세기 세계 최고의 도시로 힘차게 날아오르고 있었다. 계산에 밝지만, 낙천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뉴요커들…. 누구라도 부활하는 뉴욕을 보면 뉴요커들에게 경의를 품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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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태영 조선뉴스프레스 인터넷뉴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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