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서울 종로구 북촌을 대표하는 파란 인력거가 있다. 인력거는 손님을 태우고 북촌의 좁은 골목길을 이리저리 누빈다. 손님은 인력거를 타고 북촌의 숨은 명소들을 둘러본다. 이 인력거를 타면 오래된 한옥에 얽힌 이야기부터 최근 생겨난 명소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파란색 후드티를 입은 라이더는 인력거를 끌며 북촌의 이야기를 전한다. 인력거는 이야기가 숨어 있는 북촌 곳곳에 멈춰 서느라 속도는 느린 편이다. 현재 이 파란 인력거는 북촌의 명물로 자리매김했다. 심지어 관광객들의 발길을 북촌으로 이끄는 문화상품이 됐다. 이 파란 인력거는 바로 ‘아띠인력거’로 국내 최초 인력거 투어 회사다. 아띠란 ‘오랜 친구’라는 뜻의 순우리말이다. 지난 11월 11일 서울 종로구 북촌로 5길의 사무실에서 아띠인력거 백시영(30) 대표를 만났다.

165㎡(50평)의 사무실은 원목 책상과 의자가 가지런히 놓여 있는 아늑한 카페 같았다. 사무실 한 구석에는 파란 인력거 6대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만화캐릭터 ‘라바’로 디자인된 인력거도 눈에 띄었다. 그 옆에는 각종 수리도구와 자전거 부품들이 놓여 있었다. ‘아띠’라고 적힌 파란색 후드티를 입은 백 대표는 기자를 보자마자 도리어 첫 질문을 던졌다.

“인력거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시나요?”

순간, 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백 대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로 ‘운수 좋은 날’의 가난한 김첨지가 끌던 인력거를 떠올린다”며 “아직은 사람들에게 인력거가 주는 이미지는 가난하고 허드렛일이라는 인식이 강하다”고 말했다. 백 대표가 지금까지 인력거를 끌며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역시 “힘드시죠?”라고 한다. 그렇지만 백씨의 생각은 달랐다. 인력거를 가치를 담는 하나의 그릇으로 바라봤다. 백씨는 인력거에 문화코드를 첨가했다. 느리게 이동하는 만큼 더 많은 풍경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2012년 첫 페달을 밟기 시작한 아띠인력거는 지금까지 태운 손님만 6만5000명을 훌쩍 넘겼다. 많은 사업 아이템 가운데 인력거를 선택한 건 백씨와 이전의 창업자였던 이인재(31)씨의 생각이었다. 이인재씨가 미국 보스턴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아르바이트로 인력거를 몰아 봤던 경험이 계기가 됐다. 다양한 직업을 지닌 사람들이 파트타임으로 일할 정도로 인력거는 미국에서 인기가 좋은 일이었다. 이씨는 북촌이나 서촌처럼 골목길이 많은 곳에서는 인력거가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아띠인력거는 한옥마을을 중심으로 탄생하게 됐다. 하지만 인력거를 처음 본 사람들의 반응은 생각만큼 뜨겁지가 않았다. “뭐하러 사서 고생하지, 굳이 느린 인력거를 돈 주고 탈 필요가 있느냐”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사람들은 점점 인력거의 매력에 빠지기 시작했다. 올해 이씨는 결혼 후 미국으로 건너갔고, 백씨가 현재 대표를 맡고 있다.

현재 아띠인력거에서 일하는 직원은 모두 45명이다. 연령대도 20살부터 50대 초반까지 다양하다. 모든 직원들이 친구처럼 지내며 서로 존댓말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이름 대신 각자가 붙인 별명으로 서로를 부르고 있다는 점도 독특했다. 경직된 사고를 막고 다양한 목소리를 자유롭게 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그래서일까. 아띠인력거 구성원 모두가 회사를 함께 꾸려 나간다는 인식이 강했다. 직원들이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근무해야 손님들에게 긍정적 에너지를 줄 수 있다는 게 백 대표의 생각이다. 백씨는 북촌에서 20년을 넘게 산 토박이지만 오히려 인력거를 끌며 북촌의 매력을 제대로 알게 됐다. 그의 말이다. “북촌에 오래 살았지만 정작 동네 사람들이 누구인지, 북촌의 역사는 무엇인지 제대로 알 기회가 없었다. 인력거의 페달을 밟기 전에는 바쁜 삶에 쫓기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인력거를 타며 동네 주민들에게 자연스레 인사를 하고, 북촌에 대해 공부하고 많은 변화가 생겨났다.”

늘 보던 풍경도 새롭게 만든다

땀 흘리며 동네 구석구석을 다니는 백 대표를 본 동네 주민들도 마음의 문을 열었다. 심지어 동네 주민들이 아띠인력거를 타려 줄을 서서 예약을 할 정도다. 백씨는 북촌에서 30년간 목욕탕을 운영하고 있는 한 손님의 얘기를 들려줬다. 그 손님은 인력거를 타고 “북촌에 이런 곳이 있었구나!”라고 말하며 끊임없이 감탄사를 내뱉었다고 한다. 결국 그 손님은 아띠인력거의 단골 고객이 됐다. 인력거의 매력에 대해 백씨는 “인력거는 늘 보았던 풍경도 새롭게 만드는 놀라운 힘이 있다”고 설명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인력거의 속도가 풍경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준다는 것이다. 이 매력에 빠진 손님들은 갈수록 늘고 있다. 특히 아이와 함께 나들이를 나온 부모가 가장 많이 찾고 있다. 유모차를 인력거에 싣고 북촌에서 서촌을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젊은 연인부터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까지 고객층의 연령대도 폭넓은 편이다. 한옥마을을 둘러보려는 외국인 관광객들도 끊임없이 아띠인력거를 찾고 있다. 20대 자녀를 둔 부모가 백씨가 끄는 인력거를 예약한 경우도 있었다. 백씨가 갖고 있는 사업철학에 대해서 자신의 자녀가 듣고 깨닫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 때문이었다.

이렇게 다양한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라이더들은 끊임없이 공부를 하고 있었다. 신입직원들은 정식으로 인력거를 끌기 전에 아띠인력거가 실시하는 시험에 통과해야 한다. 시험 내용은 북촌에 관련된 지식들이다. 실제 백씨는 신입직원들에게 서울의 역사를 담은 책을 읽을 것을 주문하고 있다. 아띠인력거의 라이더는 손님들에게 스토리텔러가 되는 셈이다. 반대로 손님들의 많은 이야기를 들어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 인력거가 하나의 소통창구가 되고 있었다. 백씨는 현재 결손가정 아이들을 초대해 무료로 인력거를 태우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돈을 버는 것보다 중요한 게 바로 사업을 꾸려 나가는 청년들의 도전정신과 사회에 기여하려는 이타적인 마음”이라고 말했다. 현재 아띠인력거 직원들 가운데 몇몇은 아예 청년 창업을 해서 회사를 그만둔 경우도 있다. 아띠인력거가 청년 창업을 이끄는 창구 역할도 하는 셈이었다.

백씨가 처음부터 사업에 관심을 보인 것은 아니었다. 대학생 시절에는 관심 분야가 다양했던 학생이었다. 전공은 국사학이었지만 전공수업보다 건축학이나 경영학에 더 관심이 많았다. 심지어 건축학과 교수가 건축학과 학생들도 듣기 어려운 과목을 듣고 있는 백씨를 기특해 할 정도였다. 그는 졸업한 후에는 환경단체에서 일하다가 아띠인력거의 대표가 됐다. 인력거를 가치 있게 만드는 게 현재 그의 목표다. 그는 자신이 페달을 밟을수록 자신을 본 청년들의 도전정신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믿는다. 취업과 창업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청년들에게 백씨가 한 말이다. “직업이 꿈이 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나만의 가치관을 세우고,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그리고 그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충분히 고민해 보면 길의 방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키워드

#청년 창업
김태형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