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빠지면 절대 헤어날 수 없는 무적의 게임, 스치듯 들어도 평생 기억할 수밖에 없는 디지털 3류 음악, 전 세계 그 어떤 게임의 주인공보다도 열심히 뛰고 날면서 승부를 내는 캐릭터….

1985년 출시 이래 전 세계 디지털 게임의 대부(代父)로 자리 잡은 ‘수퍼마리오’에 따라붙는 수식어들이다. 무려 31년 전에 등장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미 엄청나게 변해 버린 강산 저 어딘가에서나 볼 수 있는 캐릭터가 수퍼마리오다. 디지털은커녕 아날로그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석기시대’ 게임의 주인공이다. 그러나 예단은 금물이다. 4050세대조차 기억하는 ‘꼰대’ 게임이지만, 올 들어 두 번이나 전 세계 미디어의 조명을 받으며 재등장한 것이 장애물넘기 달인인 수퍼마리오다.

지난 8월 21일, 리우올림픽 폐막식장이 첫 번째 등장무대였다. 이벤트 마지막 부분에 펼쳐진, 2020 도쿄올림픽 개최 관련 홍보물이다. 리우올림픽장으로 향하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교통체증에 직면한다. 급해서 밖으로 뛰어나가자 도라에몽이 날아와 요술도구를 꺼내 도와준다. 지구 반대편 리우로 통하는 길을 뚫는다. 수퍼마리오로 변신한 아베는 지구 터널을 통해 리우올림픽 현장으로 직행한다. 운동장 한가운데 중앙무대가 솟아오르면서 수퍼마리오 가면을 쓴 아베가 떠올랐다. 손에는 붉은 색깔의 공이 들려 있다. 필자의 판단이지만, 닌자는 세계가 인정하는 20세기 일본의 제1 캐릭터다. 수퍼마리오는 2020 도쿄올림픽 홍보물을 통해 21세기 일본의 상징물로 자리 잡았다.

“아이폰 7의 주인공은 수퍼마리오”

수퍼마리오의 두 번째 등장은 9월 7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이뤄진다. 아이폰 7 신모델 발표장이다. 팀 쿡이 애플 신모델을 설명하던 중 새로운 콘텐츠 도입과 관련된 뉴스를 알렸다. 바로 애플용 게임으로 채택된 수퍼마리오다. 다분히 구글을 의식한 반격이라 볼 수 있다. 모바일 게임의 새로운 시대를 연 포켓몬고가 경쟁 대상이다. 흥미롭게도 포켓몬고는 수퍼마리오를 창조해낸 닌텐도(任天堂)사의 제품이다. 애플-구글-닌텐도로 이어지는 삼각관계가 물고 물리는 식으로 연결돼 있다. 팀 쿡은 이날 발표에서 업그레이된 애플워치를 통해 즐길 수 있는 게임 하나를 ‘특별히’ 소개했는데, 여기서는 포켓몬고가 등장했다.

천하의 애플이 수퍼마리오를 받아준 것 자체를 감지덕지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법하지만 IT 전문가들은 아이폰 7 모델의 핵심은 애플 제품 자체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애플 6, 아니 애플 5와 비교해도 ‘그 나물에 그 밥’처럼 크게 개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꾸로 닌텐도의 수퍼마리오가 아이폰 7의 주인공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증거는 애플 신모델 발표 다음날 곧바로 확인해 볼 수 있다. 애플 주가가 3%포인트 하락한 데 비해, 닌텐도 주가는 무려 28%나 뛰어올랐다. 애플을 위한 수퍼마리오가 아니라 닌텐도를 위한 애플이 아이폰 7 신모델의 가치이자 의미다.

애플이 아이폰 7을 전 세계 시장에 내놓은 것은 지난 9월 16일이다. 그때만 해도 수퍼마리오는 등장하지 않은 상태다. 목을 길게 빼고 기다리는 전 세계 게임 팬들을 향해 닌텐도는 아이폰 장착 수퍼마리오 출시 예정일을 12월 중순이라고 발표했다. 그러자 애플숍에서 난리가 났다. 출시 직후 자동 다운로드를 원하는 숫자가 무려 2500만명에 달했기 때문이다.(11월 말 기준)

수퍼마리오는 애플의 관심사인 동시에 닌텐도 스스로도 총력을 기울이는 게임이다. 이유는 포켓몬고에서의 ‘실패’에 있다. 가상증강현실을 지도와 연결한 포켓몬고는 게임의 발상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꾼 게 사실이다. 곧바로 모바일 시대의 ‘대박’으로 떴다. 출시된 날부터 지금까지 전 세계로 확산 중이다. 그러나 닌텐도 입장에서 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간단히 말해 세계적 광풍이란 대박 분위기를 정작 닌텐도는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식가가 50% 이상 오르긴 했지만, 진짜 돈을 번 곳은 닌텐도가 아니다. 가상현실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미국 회사 나이앤틱(Niantic Labs)과, GPS에 기초한 지도를 통해 게임에 필요한 수익금의 절반 이상을 끌어간 구글이 수혜주였다. 포켓몬 캐릭터를 전부 제공한 닌텐도는 저작권과 관련된 수익금만 겨우 챙겼을 뿐이다.

닌텐도 입장에서는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되놈이 챙긴다’는 식으로, 소문만 무성할 뿐 실제 수입은 너무도 빈약했다. 따라서 아이폰 7의 수퍼마리오는 포켓몬고에서의 실패를 두 번 다시 보여주지 않으려는 절치부심 작품이라 볼 수 있다. 모바일 게임으로 만드는 소프트웨어 개발 초기 단계부터 닌텐도가 적극적으로 관여한 사실이 이를 보여준다. 푼돈 수준의 저작권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비즈니스의 전권을 잡으려는 의도하에서 창출된 게임인 셈이다. 더불어 닌텐도는 애플과 독점계약을 하지도 않았다. 구글을 위한 안드로이드 수퍼마리오도 내년 중 출시할 방침이다. 팀 쿡이 들으면 화를 낼 듯하지만, 디지털 세계는 냉정하다. 포켓몬고가 그러하듯, 돈이 되는 일이라면 적이든 동지든 상관없다.

닌텐도는 모바일용 수퍼마리오의 가장 큰 장점으로 ‘한 손가락 플레이’를 내세운다. 수퍼마리오는 함정, 벽, 장애물을 넘어가면서 최종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가는 지극히 단세포적인 게임이다. 묘한 흥분을 자아내는 음악은 게임 유저를 위한 기쁨조에 해당한다. 모바일 최초의 대박 게임인 앵그리버드가 그러했듯이, 손가락 하나만으로 진행되는 ‘무뇌 게임’이다. 모바일 통화를 하면서도 한 손가락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너무도 1차원적인 게임 요령이 아이폰 7 수퍼마리오의 가장 큰 매력이 될 전망이다.

흥미로운 것은 전 세계 게임업계의 반응이다. 모바일용 수퍼마리오가 몰고 올 수도 있을 엄청난 지각변동에 주목하고 있다. 먼저 가격이다. 닌텐도는 모바일 수퍼마리오의 가격을 일본 1200엔, 미국 9.99달러, 유럽 9.99유로로 잡고 있다. 하나당 2~3달러 정도 하는 다른 모바일 게임에 비하면 비싸다. 그러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겸비한 패미콘 수퍼마리오 게임기 하나가 50달러 수준임을 감안하면 엄청 싸다고 볼 수 있다. 게임의 내용은 크게 4가지로 나눠진다. 맛보기로 보여주는 무료판과 유료 범주에 들어가는 3가지 단계의 게임이다. 뿔이 솟은 거북 모습의 악당(쿠파)을 막아내면서 공주(피치)를 무사히 구출해 피신하는 ‘월드 투어(World Tour)’가 1단계, 터번을 둘러쓴 버섯나라 시민의 응원이 돋보이는 ‘키노피오 랠리(Rally)’가 2단계, 악당의 위협을 물리치면서 모두의 도움으로 함께 성(城)을 쌓아가는 ‘킹덤(Kingdom)’이 3단계다. 3개로 이어진 게임들은 수퍼마리오 콘텐츠의 핵심에 해당한다. 각자의 게임 실력에 따라 다르겠지만, 3단계를 전부 통과하려면 적어도 하루 정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게임업계 흔들 ‘패키지 판매’ 방식

전 세계 게임업계가 닌텐도의 9.99달러 게임에 주목하는 이유는 간판급 콘텐츠나 저렴한 가격 때문만이 아니다. 그동안 게임업계가 꺼려온 ‘1회 단발징수’가 더 큰 배경에 있다. 전 세계 게임업계가 수익을 확보하는 방안은 크게 5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패키지 판매, 월액징수, 아이템징수, 종량(從量)징수, 4가지 전부를 뒤섞은 혼합형 징수가 그것이다. 패키지 판매는 9.99달러에 판매되는 수퍼마리오와 같은 형식의 징수 방식이다. 한번 판매하면 그 이후 추가 징수가 전혀 없다. 월액징수는 말 그대로 한 달에 한 번씩 비용을 요구하는 식이다. 종량징수는 게임을 몇 번 하느냐에 따라 징수하는 방안이다. 많이 할수록 징수액도 늘어난다. 아이템 징수는 패키지 판매의 정반대편에 선 방식이다. 게임은 무료로 다운로드할 수 있지만, 게임에 필요한 도구나 정보를 원할 경우 돈을 지불해야 한다. 공주를 구출하려면 특수 무기가 필요한데 1달러를 지불할 경우 간단히 구할 수 있다. 공주가 위기에 빠질 때 사용할 만능무기를 원한다면 또 1달러를 지불해야만 한다. 당근을 눈앞에 둔 당나귀처럼, 고난도의 게임에 들어갈수록 추가비용 지출도 급증하게 된다. 전 세계 대부분의 게임업계들이 아이템 징수를 선호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닌텐도의 패키지 판매가 다른 게임업자들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 될지 상상해 볼 수 있을 듯하다.

수퍼마리오 게임 하나가 이미 다양화된 전체 게임업계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줄까라고 반문할지 모르겠지만 닌텐도는 수많은 캐릭터 게임을 앞세워 수차례 성공한 곳이다. 애플 모바일 기기를 통한 닌텐도의 패키지 판매는 다른 캐릭터 게임업계가 따라가야 할 상식으로 정착될 가능성이 높다. 디지털 세계, 특히 모바일에서 의존하는 게임의 미래만큼 변화무쌍한 것도 없다. 수퍼마리오의 패키지 판매에 전 세계 게임업계가 주목하는 이유다.

닌텐도의 창업연도는 1889년이다. 127년째 접어든 전 세계 캐릭터 게임업계의 맏형쯤에 해당한다. ‘하늘(天)’에 모든 것을 ‘맡긴다(任)’는 회사 이름(任天堂)에서 보듯, 순간이 아니라 순리에 맞춰 천천히, 그리고 열심히 나아가는 곳이 닌텐도다. 오랜 역사에 걸맞게, 닌텐도가 창조해낸 캐릭터의 수는 엄청나다. 아이폰 7의 수퍼마리오를 기점으로, 닌텐도 모든 캐릭터가 모바일을 통해 확산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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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호 퍼시픽21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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