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이른 봄, 함재봉 아산정책연구원장이 인터뷰를 마친 후 제게 “해외에 대단한 박정희 연구자가 있다”고 귀띔을 해줬습니다. 함재봉 원장은 농업국가에서 단숨에 산업국가로 뛰어오른 대한민국 성장사를 곧잘 미국의 서부개척 시대와 비교하곤 합니다. 그 프런티어 시대를 1세대 산업전사들의 삶을 추적하면서 실증적으로 연구하는 학자가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그해 겨울, 학술대회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김형아 호주국립대 교수를 만났습니다. 함 원장의 소개대로 김 교수는 흥미진진한 자신의 연구를 들려줬습니다. 대한민국이 농업국가에서 산업국가로 일거에 변모한 밑바닥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밀어붙인 공업고등학교 육성책이 있었고, 그로 인해 탄생한 77만명의 1세대 ‘공돌이’들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일군 주역들이라는 겁니다.

당시 김 교수는 인터뷰를 마치고 호주로 돌아가면서 뜻밖의 얘기를 꺼냈습니다. 자신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하기 5개월 전 봉하마을을 찾아가 인터뷰를 했다는 겁니다. 그 당시 박정희 연구자의 시선이 한국의 민주주의와 노무현에게 가 있음을 알아챘지만 김 교수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터뷰 내용을 공개하기를 꺼렸습니다. 돌아가신 분이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기를 원치 않는다는 이유였습니다.

그 이후 김 교수와 간간이 연락을 주고받으며 ‘노무현과의 마지막 인터뷰’에 대해 몇 번 얘기를 나눴습니다. 김 교수는 세상을 뜬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후에 본격적인 평가를 받는 현상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인터뷰를 공개할 때가 아니라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던 김 교수가 지난해 말 이메일을 보내와 인터뷰를 공개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를 움직인 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와 전환이었습니다. 촛불시위를 지켜보면서 그는 노무현의 민주주의관과 정치철학이 담긴 인터뷰를 이제 공개할 때가 됐다고 판단했다고 합니다. 김 교수는 작년 크리스마스날 두툼한 영문 논문과 함께 자신이 정리한 노 전 대통령과의 일문일답을 보내왔습니다.

지난주 이를 바탕으로 커버스토리를 쓰면서 A4 용지 40장 가까운 일문일답을 수차례 읽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의 말에서는 자신의 임기에 대한 솔직한 평가와 함께 회한, 아쉬움, 자부심, 고집 같은 게 모두 묻어납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상황과 관련해 주목할 부분은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특히 “권력의 절제가 민주주의”라는 그의 말은 울림이 컸습니다. 박정희 연구에 평생을 바친 학자가 비극적으로 숨진 또 다른 전직 대통령을 만나 3시간 반가량 나눈 문답(問答)을 읽으면서 논문의 지적대로 ‘노무현을 지금 우리 앞에 불러낸 것은 박근혜’라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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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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