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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행]  중국 시안 下 - 실크로드와 양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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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442호] 2017.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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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중국 시안 下 - 실크로드와 양귀비

투쟁의 길 끝에서 사랑에 눈먼 한 남자를 만나다

▲ 실크로드 기념탑. 대상(隊商)의 전형적인 모습을 묘사했다.
시안 성벽을 나와 서쪽 개원문(開遠門)으로 길을 잡는다. 개원문 부근에 세워진 기념탑을 보기 위해서다. 자동차로 20분이면 넉넉하다.
   
   개원문 부근 공원에 거대한 조형물이 서 있다. 실크로드 기념탑이다. 알려진 대로, 시안은 실크로드의 기점(起點)이다. 한자로는 사주지로(絲綢之路), 즉 비단길이다. 고대 동서 무역로인 실크로드는 시안을 출발해 중앙아시아를 거쳐 콘스탄티노플에 이르는 길이다.
   
   실크로드는 흉노(匈奴)의 침입에 골머리를 앓던 한(漢) 제국이 흉노와 견원지간이던 월지와 외교관계를 맺으려 장건을 사절로 보낸 게 발단이다. 장건은 광대한 서역 땅을 헤매며 갖은 고생을 했지만 결국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한 채 10여년 만에 귀국했다. 장건이 개척한 길은 타클라마칸사막을 위와 아래로 지나 중앙아시아 지역을 돌아오는 길이었다. 이 길을 따라 서역과 한 나라의 상인들이 오가면서 훗날 실크로드가 된다. 실크로드의 최초 목적은 군사·외교상의 루트였다.
   
   공원으로 들어섰다. “쫙~” “쫙~”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한 중년 남성이 공원에서 거대한 팽이를 역시 거대한 팽이채로 쳐 돌리고 있었다. “쫙~” “쫙~” 중국인들과 관광객들이 이 장면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실크로드 기념탑은 비단길을 오가는 대상(隊商) 조형물이다. 대상은 먼저 윤곽을 보고 나서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대상의 길이는 15m. 대상을 이끄는 상인은 모두 6명. 이동수단은 낙타 여섯 마리와 말 한 필. 맨 앞에서 낙타의 목줄을 잡고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 다섯 명은 낙타에 올라타 있다.
   
   이제 자세히 들여다보자. 대상의 맨 앞에 선 사람 옆에 먼저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 모습의 개가 눈에 띈다. 어, 웬일로 개가 대상에 끼어 있지? 대상은 말이나 낙타로 구성돼 있다고 들었는데. 개는 야생동물 중 3만4000년 전부터 인간에 길들여진 짐승이다. 모든 개는 주인에 충성스럽고 외부인 침입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개가 한 마리가 아니다. 몇 마리는 사람처럼 낙타 위에 올라타 있다.
   
   대상들은 왜 개를 데리고 다녔을까. 대상이 하루 일정을 끝내고 야영(野營)을 할 때 개들에게 불침번을 서게 하지 않았을까. 초능력적인 후각과 청각을 가진 개에게 외침에 대한 척후(斥候)를 맡겼으리라.
   
   19세기 말 독일인이 비단 무역이 행해졌다고 해서 실크로드라고 명명했을 뿐 이 교역로는 지구상에서 가장 험하고 위험한 길이었다. 톈산산맥과 타클라마칸사막 사잇길을 지나 파미르고원을 넘어가는 게 비단길이다. 결코 비단처럼 매끄럽고 부드러운 길이 아니다.
   

   맨 앞에서 길잡이를 하고 있는 사람의 얼굴을 보자. 한눈에도 이목구비가 중국인의 그것과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골상학(骨相學)을 모르는 사람도 금방 알 수 있다. 두 번째 사람도 맨 앞사람과 인상이 비슷하다. 3~6번째 사람은 전형적인 중국인의 얼굴이다. 다시 첫 번째 사람을 들여다본다. 광대가 돌출하고 코가 크고 눈이 움푹 들어간 모습이다. 휘어진 콧수염도 인상적이다. 유럽인도 아니고 중국인도 아닌 얼굴. 이들은 누구일까. 얼핏 총을 든 탈레반 전사(戰士)의 이미지가 겹쳐 지나간다.
   
   실크로드는 중국을 벗어나면 서역(西域)을 통과해야 한다. 서역은 중국과 유럽 사이의 중앙아시아 일대로, 지구상의 육로 네트워크 중 가장 험한 지역이었다. 실크로드는 험준한 산맥과 사막이라는 지형적인 장애물과 함께 언어가 다른 여러 독자적인 민족 집단의 영역을 통과해야 하는 장애물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언제 어디서 누가 나타나 흉기를 휘두를지 모르는 거칠고 난폭한 투쟁의 역사가 실크로드에서 이뤄졌다.
   
   이런 위험천만하고 기나긴 여정에 결정적 역할을 한 민족이 소그드(Sogd)인이다. 이들은 중앙아시아가 이슬람 세계로 흡수 통합되기 이전 중앙아시아 최고의 중개무역 상인으로 활약했다. 이들이 주로 활동하던 지역은 오늘날 부하라, 타슈켄트, 사마르칸트 등이다. 소그드인들은 중앙아시아의 지리에 밝을 뿐 아니라 여러 부족의 언어를 구사할 줄 알았다. 이런 점이 중국 상인들의 이해와 맞아떨어졌다. 중국인이 소그드인을 앞세워 비단길을 안전하게 오갈 수 있었다. 소그드인의 역할은 여기에 그친 것이 아니다. 중국이 투르크족을 몰아내고 중앙아시아에 지배력을 행사하던 당나라 시기에도 소그드인의 역할이 중요했다. 중국은 이 지역에 파견된 관리들에게 월급으로 비단을 주었는데, 소그드인은 보급품을 중개하는 역할을 맡았다.
   
   소그드 상인들의 몰락은 안녹산의 난(755) 때문이었다. 안녹산은 바로 소그드-투르크 출신으로 당제국의 군대에서 고위직에 오른 인물이다. 안녹산의 난은 결국 당제국의 쇠락으로 이어졌다. 중앙아시아 지역에 파견된 당제국의 군대와 관리들이 철수하면서 공생관계에 있던 소그드인의 생존 기반이 무너져버린 것이다. 중국 산시성역사박물관에 가보면 소그드 상인들을 묘사한 조각상들이 판매된다.
   
   
▲ 화청궁 입구 광장에 조성된 양귀비와 현종의 조형물.

   현종, 아들의 연인을 탐하다
   
   당 현종(685~762)은 재위 기간(712~756) 동안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자녀를 두었다. 그중에 역사에 기록된 자녀는 셋째 아들과 열여덟 번째 아들이다. 셋째 아들은 현종의 뒤를 이어 황제에 즉위한 숙종이다. 열여덟 번째 아들 수왕은 순번에서 짐작할 수 있듯 존재감이 거의 없었다. 수왕은 현종과 무혜비 사이에 태어나 일찌감치 황위 계승권에서 벗어난, 여러 왕자 중의 한 명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열여덟 번째 아들이 화제에 오르내리는 것은 ‘치명적인 사랑’ 때문이다.
   
   양옥환(719~756)이 그 주인공이다. 빼어난 미모와 함께 춤과 노래 실력을 겸비했던 양옥환은 열일곱 살에 수왕을 만나 왕자의 비(妃)가 된다. 양옥환이 왕자의 부인으로 6년째 살던 해, 현종은 애첩을 잃고 외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현종의 환관 채홍사는 중국 전역에서 황제의 밤을 위로할 만한 미인을 수소문한다. 그러던 중 수왕의 아내가 절세미인이라는 이야기를 전해듣는다. 채홍사는 교묘한 구실을 붙여 양옥환을 현종의 주연에 데뷔시킨다. 양옥환은 현종이 연주하는 현악기에 맞춰 멋진 춤사위를 선보였다. 50대 후반인 현종은 첫눈에 스물셋 양옥환에게 반하고 만다. 뭐든 할 수 있는 가공할 권력을 지닌 황제였지만 양옥환은 아들의 부인이었다. 사랑에 눈이 먼 현종은 우회적인 방법을 선택한다. 양옥환을 화산으로 보내 도교의 도사로 입문시킨다. 도사가 되면 속세의 삶은 다 지워지는 것으로 여겨진 사회적 통념을 이용했다. 대신 아들에게는 다른 여자를 소개해주었다. 현종은 도사를 모셔와 가르침을 받겠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붙여 양옥환을 궁으로 끌어들였다. 4년 뒤 스물일곱 양옥환은 귀비로 책봉된다. 이렇게 하여 양귀비가 세상에 등장했다. 그때부터 현종의 총기가 흐려지고 당제국은 기울기 시작한다.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는 말은 여기서 유래됐다.
   
▲ 화청궁 경내의 양귀비 입상에서 바라본 해당탕(왼쪽)과 연화탕 전경.

   시안에는 현종과 양귀비의 러브스토리를 보여주는 장소가 있다. 화청궁(華淸宮)이다. 3800년 전부터 양질의 온천이 나와 화청지(華淸池)로 불렸다. 고대부터 역대 왕조의 왕실은 화청지에 행궁을 지어 겨울을 보내곤 했다. 당 현종은 행궁을 대대적으로 확장해 화청궁으로 명명했다. 건물 하나씩 온천탕을 하나씩 만들었다. 해당탕, 연화탕….
   
   시안 중심가에서 화청궁까지는 자동차로 40여분 걸린다. 지금으로부터 1260여년 전, 당나라 수도 장안에서 화청궁까지는 마차로 자그마치 이틀이 걸렸다. 현종은 겨울이 올 때마다 양귀비와 함께 화청궁에 들러 시간을 보내곤 했다.
   
   화청궁 입구에 내리면 무엇보다 먼저 군상(群像)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중앙에 육감적인 몸매의 여인이 관능적인 춤사위를 하는 모습을 금속으로 조각했다. 왼쪽에 한 남자가 그 여인에게 사랑스러운 눈길을 던지고 있다. 당 현종이다. 현종은 황제가 아닌 사랑에 빠진 한 남성에 불과했다. 천하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언제든지 품을 수 있는 사랑하는 여인을 눈앞에서 바라보며 행복해하고 있는 남자!
   
   
▲ 해당탕 내부의 양귀비 전용 욕조.

   양귀비의 목욕탕에서 ‘상상’하다
   
   화청궁 안으로 들어섰다. 수려한 풍광을 배경으로 궁전 누각들이 요소요소에 배치되었다. 지금 화청궁의 건물은 모두 당나라 때의 오리지널 건물이 아니다. 안녹산은 반란을 일으킨 뒤 화청궁에 쳐들어와 불을 질러 궁전이 전소됐다. 현재는 당시 규모의 7분의 1 정도만 복원한 상태라고 한다. 그럼에도 당제국의 광휘(光輝)를 엿보는 데는 전혀 부족함이 없다. 당 현종의 전용 목욕탕인 연화탕, 양귀비 전용 목욕탕인 해당탕은 바로 이웃해 있다.
   
   온천탕으로 둘러싸인 마당에 있는 한 여인의 입상(立像)에 여행객이 스마트폰 카메라를 들이대는 모습이 보인다. 가운을 벗고 온천탕에 들어가려는 양귀비의 나신(裸身)이다. 현종은 해당화를 좋아하는 양귀비를 위해 전용 목욕탕을 해당탕으로 명명했다. 해당탕으로 들어가 본다. 중국 4대 미녀 중 제일 앞에 서는 양귀비와 관련된 일화가 많다. ‘매일 우유 목욕을 세 번씩 했다’ ‘목욕을 자주 한 것은 암내가 심했기 때문이다’…. 해당탕의 욕조는 의외로 작았다. 바로 옆 연화탕의 욕조는 마치 대중목욕탕의 그것과 비슷했다. 여행객들은 양귀비의 욕조를 보면서 방금 전 마당에서 보았던 나신의 양귀비를 상상한다.
   
   화청궁을 한가롭게 유유자적하며 몇 걸음 거닐다 보니 문득 현종의 눈에 골치 아픈 정사(政事)가 들어올 턱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오로지 양귀비와의 정사(情事)만이 관심이었으리라. 당시(唐詩)에 화청지를 소재로 한 시가 많은 것이 이곳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화청궁은 현종과 양귀비의 러브스토리 말고도 여러 가지 스토리를 갖고 있다. 그중 하나가 시안사변의 현장이다. 국민당의 지도자 장제스는 중국을 침략한 일본과 싸우는 것보다 반란군인 마오쩌둥의 공산당을 섬멸하는 게 급선무라고 보았다. 이에 동북지방 군벌 장쭤린의 아들인 장쉐량이 화청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장제스를 체포해 제2차 국공합작을 이끌어낸다. 제2국공합작으로 공산당은 간신히 명줄을 지켜 대역전을 도모할 수 있었다. 장제스가 휴식을 취하고 있다가 장쉐량 군대의 기습을 받은 오간청 건물은 언덕 위에 있다. 당시의 총탄 자국이 건물 외벽에 선연하다. 중국 공산당에 시안은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곳이다.
   
▲ 시안사변 당시 장제스가 체포된 오간청(좌). 후이족거리에서 전통음식을 파는 위구르 상인들(우).

   다음으로 가볼 곳은 후이족(回族·회족)거리. 후이민제(回民街). 이슬람교는 한자어로 회교(回敎)라고 쓴다. 서역 지방에 사는 소수민족인 위구르족(回紇族·회흘족)이 믿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후이족거리는 200여m 정도. 양쪽에 다양한 위구르족 식문화가 펼쳐진다.
   
   회교도 소수민족의 문화를 즐기려는 인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거리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식재료와 음식을 요리하는 사람들의 복장이다. 특히 대부분 흰색 빵떡모자를 쓰고 있다. 호두 같은 견과류도 많이 파는데 사겠다고 결심하지 않았으면 절대 손을 대서는 안 된다. 길가 나뭇가지에 죽은 양을 걸어놓은 채 날카로운 칼로 정형을 뜨는 진귀한 모습도 볼 수 있다. 양꼬치 구이가 후이족거리의 대표 별미다. 갓난아이 손가락 굵기만 한 향나무에 양꼬치를 끼워주는 게 이채롭다. 향나무 향이 양꼬치의 풍미를 더하게 한다는 뜻이다.
   
   후이족거리는 업소마다 현판 위에 청진(淸眞)이라는 한자어가 새겨져 있으며 그 옆에 아랍어가 병기(竝記)되어 있다. 청진은 할랄(HALAL)의 한자어 표기. 즉 이슬람 율법에 따라 모든 음식과 식재료를 조리했다는 뜻이다. 후이족거리 안쪽에는 모스크도 있다.
   
   시안 여행은 최소 사흘은 잡아야 한다. 병마용, 진시황릉, 화청궁에서 여유 있게 이틀을 보내면 두고두고 후회하지 않는다. 절대 권력, 절대 모험, 절대 사랑이 공존하는 곳이 시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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