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쇼핑몰 상층부에 숙박시설이 들어선 밀리오레호텔, 스카이파크킹스타운호텔, 에이피엠레지던스(왼쪽부터).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대형쇼핑몰 상층부에 숙박시설이 들어선 밀리오레호텔, 스카이파크킹스타운호텔, 에이피엠레지던스(왼쪽부터).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 중구 장충단로의 밀리오레는 동대문을 대표하는 쇼핑몰이었다. 1998년 개관 후 바로 옆 두산타워와 함께 동대문 의류쇼핑몰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동대문상가의 원조인 평화시장, 현대식 쇼핑몰의 시초인 동대문종합시장을 제치고 동대문의 대명사로 떠올랐다. 2000년에는 서울 명동은 물론 대만 타이베이에까지 밀리오레란 이름의 쇼핑몰을 열었다.

과거 쇼핑몰로 이름을 날린 밀리오레는 요즘 호텔로 더욱 주목받는다. 2015년 11월 밀리오레 고층부인 19~20층에 밀리오레호텔이 들어선 이후부터다. 현재 62개 객실을 운영 중인 이 호텔은 지난 1년간 운영을 통해 수익성을 검증한 뒤, 추가 투자를 단행하기 위해 수익형 호텔로 객실 일반분양에 나섰다. 밀리오레호텔의 한 분양 관계자는 “1년간 운영한 결과 객실가동률이 90% 이상”이라며 “투자금을 모아서 15~18층까지도 호텔로 추가 조성할 예정”이라고 했다. 앞서 서울 중구 명동에 있던 밀리오레 명동점이 2015년 1월, 619개 객실을 갖춘 일본계 르와지르호텔로 바뀐 것과 유사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서울 동대문 일대가 사대문 내 최대 숙박타운으로 변신 중이다. 과거 동대문 앞에 허름한 동대문호텔 한 곳밖에 없던 것에 비하면 상전벽해(桑田碧海)다. 보물 1호인 동대문 바로 앞에 5성급 ‘JW메리어트동대문호텔’을 비롯해 반경 1㎞ 안에만 KY-헤리티지호텔·써미트호텔·라마다동대문호텔·이비스앰배서더동대문호텔 등 국내외 브랜드의 4성급 호텔 4곳이 자리 잡았다. 더디자이너스호텔과 같은 부티크호텔을 비롯해 이비스버젯 앰배서더동대문호텔·토요코인동대문호텔·스카이파크킹스타운동대문호텔·K-POP동대문호텔과 같은 저가형 이코노미 호텔까지 선택의 폭도 다양하다. 정식 호텔은 아니지만 장기 투숙 외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을지로 코업레지던스·웨스턴코업레지던스·에이피엠레지던스 등 식탁과 주방까지 갖춘 레지던스형 호텔도 여러 곳이다.

동대문 일대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부터 쇼핑에서 숙박으로 전환을 모색해왔다. 2009년 케레스타(현 현대시티아울렛) 쇼핑몰 18~20층에 162개 객실을 갖춘 이스트게이트타워호텔이 시초였다. 하지만 케레스타는 대로변이 아닌 이면도로 안에 자리한 쇼핑몰이었다. 상가 활성화가 잘 안 됐고, 케레스타 쇼핑몰이 문을 닫으면서 이스트게이트타워호텔 역시 개관한 지 얼마 안 돼 문을 닫았다. 하지만 지난 수년간 서울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 급증으로 호텔 수요가 늘어나면서 숨통이 트였다.

동대문은 탁월한 입지조건을 자랑한다. 동대문은 서울 시내 주요 관광명소들이 몰려 있는 사대문 안 구도심과 가깝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의 경우 2·4·5호선이 한데 모이는 트리플 역세권이다. 개별 여행을 선호하는 젊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강남이나 잠실과도 쉽게 이동이 가능하다. KY-헤리티지호텔이나 써미트호텔 같은 4성급 호텔까지는 인천공항과 연결되는 공항버스 노선까지 갖추고 있어 외국인 관광객 이용이 편리하다.

의류쇼핑의 패턴 자체가 온라인으로 급속히 넘어간 것도 동대문의 변신에 불을 댕겼다. 의류쇼핑몰은 성장 정체에 시달리면서 동대문 상가들은 야간 도매에 주력하고 있다. 동대문에 자리한 약 30여개 상가 가운데 야간 도매상가만 15개에 달한다. 이 중 24시간 운영하는 상가도 13개다. 야간 수요를 겨냥해 동대문 일대에 들어서는 호텔은 쇼핑몰과 호텔이 결합하는 형태도 선보이고 있다. 낮에는 놀려야 하는 건물 가동률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안이다. 건물주 입장에서는 건물 활용을 극대화할 수 있고, 투숙객 입장에서는 한곳에서 쇼핑과 숙박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실제 밀리오레호텔 역시 건물 14층에 로비를 두고 19·20층 두 개층을 객실로 사용하고 있다. 이 호텔은 분양대금으로 투자금을 조성해 15~18층까지도 객실로 조성할 계획이다. 지난해 6월 개관한 스카이파크동대문킹스타운호텔 역시 현대시티아울렛의 14층에 호텔 로비를 두고 14층부터 23층까지 10개층을 호텔로 사용 중이다. 스카이파크호텔은 서울 명동, 동대문, 제주 등지에 모두 7개 체인을 갖춘 토종 비즈니스호텔이다. 에이피엠레지던스 역시 에이피엠 플레이스 쇼핑몰의 11·12층을 장기 투숙자용 레지던스로 운영 중이다. 저가형 체인호텔인 K-POP동대문호텔 역시 11층 기승빌딩의 상층부 7~9층을 객실로 사용하고 있다.

노후 오피스빌딩 리모델링 바람

저금리 시대 수익형 모델로 각광받는 분양형 호텔 열풍도 동대문의 숙박타운화를 앞당겼다. 관광진흥법상의 ‘관광호텔’과 다른 개념인 일반숙박 시설은 주차장 확보나 부대시설 의무 설치 등의 조건이 비교적 관대한 편이다. 관광호텔에 비해 설립 자체가 까다롭지 않다. 법 적용 역시 관광진흥법이 아닌 ‘공중위생법’ 적용을 받는다. 개별 분양을 통해 호텔 설립과 운영에 필요한 투자금을 조달하기도 쉽다. 밀리오레호텔 역시 관광호텔이 아닌 분양형 호텔이다.

이런 조건들이 맞아떨어지면서 신축 호텔들뿐만 아니라 기존의 업무용 빌딩들 역시 앞다퉈 호텔로 리모델링을 단행했다. 동대문 건양빌딩을 리모델링한 KY-헤리티지호텔, 봉우빌딩을 리모델링한 써미트호텔이 대표적이다. 허름한 노후 건물에 불과했던 이들 빌딩은 호텔로 리모델링을 단행한 후 건물 가치가 대폭 올랐다는 평가다.

이런 트렌드를 먼저 포착한 것도 동대문에서 성공한 상인들이다. 동대문 일대에서 가장 고급호텔인 ‘JW메리어트동대문호텔’은 동대문종합시장을 운영하는 동승그룹 소유다. 동승그룹 정승소 회장은 2014년 동대문종합시장 주차장 터에 호텔을 건립했다. 정승소 회장은 한국전쟁 직후 동대문구 신설동에서 재봉틀(미싱) 장사로 큰돈을 번 정시봉 전 의원의 아들이다. 2015년 6월 개관한 KY-헤리티지호텔 역시 1970년 섬유산업 태동기 때 의류 부자재 회사를 창업해 세계 최대 YKK지퍼를 국내에 공급한 건양통상 소유 호텔이다.

다만 동대문 일대 호텔이 급증하면서 일시적인 공급과잉은 우려되는 부분이다. 특히 브랜드 경쟁력이 약한 신규 호텔들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서울 최초 국제기준 4성급으로 공인받은 KY-헤리티지호텔의 최근 가동률은 58%에 머물렀다. KY-헤리티지호텔 관계자는 “겨울철 비수기인 탓도 있고 비교적 고가정책을 하고 있는 까닭”이라고 했다. 몇몇 호텔들은 객실가동률 공개 자체를 꺼렸다. 동대문이 또 한 번 변신에 성공할지 주목된다.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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