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1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태극기집회’.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2월 11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태극기집회’.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2월 1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을 두고 둘로 나뉘었다. 3개월 넘게 광화문교차로 기준으로 북쪽에는 ‘탄핵 인용’을, 남쪽에는 ‘탄핵 기각’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기자는 두 광장에 모인 연령층을 살펴봤다. 광화문광장에 모인 연령층은 다양했다. 20~30대 참가자들이 많았다. 5명 이상 단체를 이뤄 참가한 20대들도 곳곳에서 목격됐다.

광화문광장에서 세종로를 따라 서울광장을 찾았다. 태극기집회 참여자 대다수는 40~60대 중장년층으로 보였다. 태극기를 든 20대 청년들도 소수 보였다. 그들은 혼자 집회에 참여했거나 2~4명 정도의 소수 인원으로 집회에 참여했다. 기자와 같은 20대로서 촛불이 아닌 태극기를 든 이유가 궁금해졌다.

최순실 사건이 터진 지난 4개월간 20대 촛불집회 참여자들의 목소리는 TV·신문·인터넷·SNS 등으로 차고 넘칠 만큼 잘 알려졌다. 하지만 태극기집회에 참가하는 20대들의 목소리는 제대로 전달된 적이 없었다. 기자는 2월 18일 오후 2시부터 8시까지 진행된 태극기집회에서 22명의 20대 ‘태극기집회’ 참여자들을 인터뷰했다. 그중 12명은 인터뷰 요청을 ‘언론을 믿지 못한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인터뷰에 응한 10명의 태극기집회 참여자들은 20대 중후반의 대학생, 취업준비생과 사회초년생들이였다. 하지만 10명 모두 사진을 찍는 것은 완곡히 거절했다.

서울 강서구에 사는 직장인 이선우(29)씨는 남자친구와 같이 ‘태극기집회’에 참여했다. 이날 태극기집회는 오후 3시50분부터 5시까지 서울시청에서 남대문, 한국은행, 명동 을지로입구를 잇는 행진으로 진행됐다. 이씨를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 부근에서 만났다. 태극기집회에 참여한 까닭을 묻는 질문에 이씨는 “박근혜 대통령의 잘못은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하지만 지금과 같은 시점에서 나라의 안정을 위해 탄핵이 인용되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사실 이씨는 지난해 11월 촛불집회에 3차례나 참여했다. 그는 “처음에는 언론의 보도만 보고 주변에서 다 참여하니까 촛불집회에 먼저 나가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참가횟수가 늘수록 점차 촛불집회 분위기가 변질됐다고 한다. 이씨는 “촛불집회가 어느 순간부터 ‘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느낌을 받았다”며 “‘이석기 석방’ ‘통진당 해산 취소’ ‘한상균 위원장 구속 취소’ ‘사법시험 존치’ 등 여러 단체의 이익과 관련된 주제가 같이 묶여 시위가 진행됐다”고 했다. “참여 목적에서 벗어나 정권에 대한 ‘반대’만을 외치는 집회였다”는 것이 이선우씨의 설명이다.

인천 계양구에 사는 취업준비생 김주훈(28)씨는 태극기집회에 나온 것이 지난 2월 11일에 이어 두 번째다. 이날은 친구와 함께 서울광장을 찾았다. 김씨는 이날 보라색 등산복 차림에 검정색 가방을 메고 시청 앞 서울광장 맨 뒤편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있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의 잘못은 있다”면서도 “박 대통령이 모든 것에 개입할 수 없고 언론에서 사건을 부풀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까지 왔다”고 주장했다.

그도 지난해 11월에는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한 차례 참여했다. 그는 “‘최순실 게이트’ 언론 보도가 나올 때만 해도 언론 말만 믿고 촛불집회로 나갔다”며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언론 보도가 ‘사실’보다는 ‘추측성 기사’들이 많아졌다”고 비판했다. “언론보도가 진실을 보려 하지 않고, 진실과 벗어난 이야기들을 짜깁기한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김씨는 “대통령의 잘못에 대한 옳고 그름을 분명히 따지되 보도에 있어 근거 없는 비약과 낭설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언론 선동에 휩쓸리는 대한민국이 안타까워 태극기집회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경기도 안산에 사는 양우람(29)씨는 태극기집회가 열린 서울광장 중앙에서 친구 두 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의 잘못이 탄핵심판까지 가야 할 사례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헌법재판소는 사건에 대한 위헌 여부를 따지는 곳으로 위헌 사례를 확인한다”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잘못은 그 위헌 사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양씨는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심판은 편향된 언론의 보도가 조작해서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주장했다. 그 이유를 묻는 질문에 양씨는 “사건에 대해 언론은 심증만 있지 물증이 없다”며 “JTBC에서 물증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태블릿PC를 조작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JTBC가 말한 최순실의 태블릿PC 입수 경위나 날짜가 앞뒤가 안 맞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그는 언론기관과 시민단체의 공정성을 강조했다. 그의 말이다. “어느 나라에는 보수와 진보는 항상 나뉘고 서로를 견제하는데 우리나라 언론과 노조, 시민단체는 모두 ‘좌’ 쪽이다. 이번 사태에서 보수언론 매체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균형을 잃었다.”

인천 연수구에 사는 IT업계 직장인 최모(29)씨는 회사동료와 함께 태극기집회를 찾았다. 검정색 야구모자와 검정색 마스크를 쓴 그는 커다란 태극기를 오른손에 쥐고 남대문시장으로 향하는 행진을 따라가고 있었다.

최씨는 ‘정규재 TV’에서 공개된 고영태의 녹취파일을 듣고 태극기집회에 직접 참여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는 “언론이 박근혜 대통령이 사건에 모든 걸 개입했다고 보도해서 나도 믿었다”며 “하지만 정규재 TV에서 공개된 고영태의 녹취파일을 들어 보니 언론 보도에 거짓 정보가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도 지난해 10월과 11월 1·2차 촛불집회에 참여했다. “순수한 국민의 마음에서 참여한 촛불집회가 좌편향으로 변질되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최씨는 “헌법재판소의 올바른 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스스로의 이념을 보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박근혜 대통령의 잘못을 일방적으로 옹호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세월호 사건 등을 이번 사건과 묶어 마녀사냥식으로 몰고 간다. 나는 언론과 언론에 쉽게 선동되는 사람들이 사회갈등을 유발시킨다고 생각한다.”

경기도 수원에 사는 대학생 김모(25)씨는 대학교에 다니는 24살 남동생과 함께 태극기집회를 찾았다. 남대문시장 부근에서 만난 남매 모두 검정색 바람막이를 입고 검정색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김씨 남매는 지난해 12월 촛불집회에 한 차례 참여했었다. 김씨는 “원래 정치 성향이 보수인데 사태의 심각성을 보고 정치적 성향을 떠나서 촛불집회에 나가야겠다고 생각해서 나갔다”고 했다. 하지만 촛불집회의 변질에 실망해 돌아선 경우다. 그는 “촛불집회에서는 진보적 성향 단체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만을 호소하기 위해 나오더라”며 “촛불집회가 점점 균형을 잃고 좌(左)로 치닫고 있다고 느껴졌다”고 했다. 대학생인 김씨의 동생도 “촛불집회에서는 국가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과 단체의 이익만을 호소하고 있었다”며 “촛불집회는 국민을 대표하는 집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경기도 수원에서 온 취업준비생 이모(28)씨는 가족들과 함께 태극기집회를 찾았다. 이씨는 작은 태극기를 들고 있었다. 이씨 역시 지난해 1·2차 촛불집회에 참석했다가 올 초부터 발길을 끊었다. 이씨는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20대가 여론에 쉽게 휩쓸리고 있다”며 “사건 자체에 대한 진실을 찾고 살펴보려고 하기보다는 현 사회에 대한 개인적 울분을 촛불집회를 통해 해소하는 것 같다”고 했다. “20대들이 취업 준비하느라 이 사태를 자세하게 바라볼 여유가 없고 언론 보도만 보고 믿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정치인과 언론에 휘둘리는 대한민국의 현실에 대해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이씨는 “언론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진실에서 벗어난 보도를 하고, 정치인들은 표심을 얻기 위해 촛불집회를 찾을 뿐 모두 이 사건의 진실을 보려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묻는 질문에 이씨는 “국가가 좌우 양쪽으로 분열되는 시국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국가의 안정화”라고 말하면서 “대통령의 임기가 1년도 안 남은 상황에서 대통령의 잘못은 묻되 탄핵은 인용되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지난 2월 4일 태극기집회에 참가한 20대들.
지난 2월 4일 태극기집회에 참가한 20대들.

나홀로 태극기, 친구는 촛불

경기도 남양주에서 온 취업준비생 김모(27)씨는 태극기집회에 나홀로 참여했다. 이날 김씨와 함께 남양주에 올라온 친구들은 같은 날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16차 촛불집회에 참여했다. 김씨는 이날 덕수궁 대한문 앞에 설치된 무대 아래 앞에서 대형 태극기를 흔들고 있었다.

김씨는 “박근혜 대통령의 잘못이 탄핵까지 가야 할 사유가 아니다”라며 “고영태와 언론이 모든 것을 꾸민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대한민국의 상황을 베트남의 패망 과정”에 비유했다. 김씨는 “지금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정부인 베트남이 패망했던 상황으로 가고 있다”며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친구들과 같이 여론에 휩쓸려서 촛불집회에 가고 싶지 않았다”며 “탄핵이 기각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시민들과 함께하고 싶어서 태극기집회를 찾았다”고 했다. 또한 김씨는 “촛불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은 생각이 다를 뿐이라고 본다”며 “우리 20대들이 어느 순간부터 소신 없이 ‘20대는 촛불에 가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도 부천에서 온 대학생 양모(25)씨는 같이 온 친구와 함께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태극기를 망토처럼 몸에 휘감고 ‘탄핵 기각’을 외치고 있었다. 탄핵이 기각되어야 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양씨는 “과거 정권의 대통령들도 잘못이 많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잘못은 과거 대통령과 비교할 때 큰 잘못은 아니다”며 “탄핵할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또한 양씨는 “20대의 생각이 촛불로만 비쳐지는 것이 안타깝다”며 “나는 내 소신대로 탄핵 인용이 부당하다고 생각해서 이곳에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20대마다 각자 이 사건을 바라보는 생각이 다를 수 있다. 내가 태극기집회에 나간다고 하면 주변에서 왜 나가냐는 분위기가 있다. 나는 내 소신대로 탄핵 인용이 부당하다고 생각해서 이곳에 나왔다.”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직장인 박모(29)씨는 탄핵 반대를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태극기집회의 분위기가 궁금해서 찾아온 경우였다. 그의 손에는 태극기가 없었다. 박씨는 “탄핵을 찬성하는 것도,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라며 “한쪽의 생각이 아닌 양쪽의 생각을 다 들어봐야 한다고 생각해서 살펴보고자 왔다”고 말했다. 그는 무엇이 진실인지 잘 모르겠다며 답답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박씨는 “국가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찾아야 한다. 양쪽으로 더 이상 나뉘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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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섭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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