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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6호] 2017.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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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태국에 가면 차오프라야강에서 배를 타자!

임진왜란 참전 아유타야 왕국에서 초현대 방콕까지

우태영  인터넷뉴스 부장 

▲ 태국의 고도(古都) 아유타야에서 배를 타고 초현대 도시 방콕으로 가다 보면 이 나라 역사가 차오프라야강에 온전히 담겨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태국은 한국인이 가장 즐겨 찾는 해외여행지 상위에 들어간다.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가 처음 시행됐을 때 많은 한국인들이 첫 해외여행지로 선택한 나라가 태국이었다. 한국인 해외여행객 숫자가 2000만명을 돌파한 2016년 한 해 동안에도 태국을 방문한 여행객 숫자는 150만명이 넘었다. 국가별로 보면 일본, 미국, 중국의 뒤를 잇는다.
   
   미국, 일본, 중국은 근대 이후 한국인의 운명을 좌우했던 나라들. 이런 나라들에 관한 정보는 지금도 미디어나 서적을 통해 시시각각으로 우리에게 전해진다. 또 직간접적으로 이 3개국과 어떻게든 연관을 맺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태국은 그 많은 여행객 숫자에 비하면 그리 가깝게 느껴지지는 않는 듯하다.
   
   사실 TV 예능프로그램들이 해외를 배경으로 제작되고, KBS2 TV의 ‘배틀 트립’ 같은 해외여행 소개 프로그램이 토요일 오후 10시40분에 방영되어 6~7% 수준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것도 놀라운 변화이다. 과거 사치스러운 여가 행위로 인식되던 해외여행이 이제는 분명 온 국민 누구나 누릴 수 있는 하나의 생활양식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그런데 프랑스 퐁피두 전 대통령이 중산층의 기준으로 ‘외국어를 하나 정도 구사하며 폭넓은 세계를 경험할 것’을 강조했듯이, 기왕 비싼 돈 들여 해외로 나갈 거면 먹거리나 액티비티에만 관심을 둘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역사나 문화를 체험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여행자유화 시절부터 30년간 태국여행 여행사를 운영해온 조모씨는 “한국인의 여행 행태나 여행 장소 등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거의 없다”고 말했다.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패키지도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변함이 없다는 얘기다. 큰 호텔을 좋아하고, 악어농장이나 트랜스젠더 쇼를 보고, 쇼핑센터에 들르는 것도 거의 그대로라는 것. 또 최근 겨울철에 많은 골프 관광객들은 공항에서 골프텔로 직행하거나 골프장들만 전전하다가 귀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 사람들의 관심 사항은 크게 변한 것이 없는 듯하다. 태국을 연구하는 일반인들의 모임인 ‘아이러브타이클럽’이 3000개에 이른다는 일본과는 여러모로 크게 대비된다.
   
   태국을 여행하는 사람들 가운데 열대 풍광 이외에 태국의 문화·역사적 체험을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관광코스가 바로 방콕에서 배 타기이다. 바쁘게 태국을 여행하는 사람들이라면 반나절만이라도 시간을 내서 방콕의 차오프라야강에서 배를 타라고 권하고 싶다.
   
   사실 태국은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한국과 매우 가까운 나라이다. 6·25전쟁 때 태국군이 1만2000명이나 참전했다. 터키 수준이다. 현재는 한국이 태국보다 잘살기 때문에 태국인들이 한국을 부러워하지만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사정은 많이 달랐다. 지금은 한국에서 중동 지역을 왕래할 때 두바이를 통해서 거의 직항이 운항되지만 1970년대에는 대부분 방콕에서 비행기를 갈아탔다. 중동 지역으로 일하러 나가거나 일을 마치고 귀국하는 한국인 근로자들이 반드시 들르는 곳이 방콕이었다. 당시에는 한국인 건설근로자들이 방콕에서 내려 태국의 부유함과 자유로움을 부러워하기도 하였다. 지금은 태국 사람들에게 한국제 공산품, 게임, K팝, 한국 화장품 등이 큰 인기다. 한국 아이돌 연예인들의 얼굴 모습을 넣은 봉지에 담긴 과자들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태국은 또 한국을 찾는 탈북민들이 자주 경유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태국 정부는 이런저런 사안에 대해 한국을 적극 지원한다. 최근에는 한국대사관의 노력으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잘 믿어지지 않겠지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태국인은 임진왜란 때도 조선을 지원하여 참전한 적이 있다. 당시의 국호는 태국이 아니라 아유타야. 방콕에서 북쪽으로 가면 지금은 폐허가 된 아유타야 왕국을 만날 수 있다. 아유타야를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버스를 타고 아유타야로 간 다음, 아유타야에서 배를 타고 차오프라야강을 내려와 방콕으로 귀환하는 코스를 권한다. 방콕은 관광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어 숙소에서 연락하면 어렵지 않게 이러한 패키지를 선택할 수 있다.
   
   타이족이 세운 아유타야 왕국은 역시 타이족이 세운 나라인 수코타이 왕국을 병합한 뒤 1350년에 건국되어 400년간 강력한 국가를 형성하였다. 1767년 미얀마의 침입으로 파괴되어 방콕으로 이주하였다. 아유타야 왕국의 수도인 아유타야는 폐허로 남아 있지만 1991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아유타야 유적 관광은 폐허(廢墟)를 둘러보는 일이다. 왕궁과 사원들은 모두 파괴된 상태 그대로이다. 지금도 적색 벽돌로 만들어진 많은 탑이나 건축물들은 기울어지고 무너져 내리는 중이다. 화려한 건축물과 부조, 아름다운 불상의 남은 부분은 한때의 영광을 드러내면서도 워낙 거대한 폐허를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인지 더 처연해 보였다. 폐허를 구성하는 이 많은 건축물과 불상들을 보면 부서지기 이전의 거대하고 화려하고 온전한 형체를 상상할 수 있기도 하다. 동시에 어쩌면 이리도 복구하기 불가능하게끔 완벽하게 파괴할 수 있었을까? 열대의 자연환경에서 높은 수준의 문명을 이룬 태국인들의 창의성에 찬탄하지만, 동시에 이를 파괴한 잔혹함에 몸서리가 쳐지지 않을 수 없었다. 드넓은 폐허를 보면 아유타야 왕국의 번영조차 무심하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는 물거품처럼 사라질 뿐인 허무한 인간사일 뿐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 아유타야 폐허는 지금도 무너져 내리는 중이다.

   아유타야 왕국 무사들은 어떻게 임진왜란에 참전했을까?
   
   부산대 조흥국 교수는 ‘한국과 동남아시아의 교류사’에서 중국 명나라 사료를 바탕으로 당시의 사정을 설명한다. 명신종실록(明神宗實錄)의 기록에 따르면 “1592년에 일본이 조선을 쳐부수자 시암(아유타야 왕국)은 몰래 군대를 출동하여 일본을 바로 쳐 그 후방을 견제하겠다고 청했다”. 조선의 선조실록(宣祖實錄)에도 명나라에서 돌아온 사신이 태국이 조선을 구하겠다는 청원을 명나라 조정에 냈다는 이야기를 전하는 대목이 있다. 또 일본의 침공 정보를 사전에 입수한 명나라 조정은 1591년에 이미 조선 왕조에 태국 및 류쿠 등의 나라들과 연합하여 일본을 토벌하라고 요구했다. 임진왜란 발발 이후에는 태국, 즉 아유타야 왕국에서 10만 병력을 일으켜 일본을 정벌하려는 논의가 구체적으로 진행되기도 했다는 것.
   
   그러나 이 같은 아유타야 왕국 제안의 진의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당시 아유타야 왕국의 나레수안 국왕은 미얀마의 침공에 대처하는 한편 캄보디아 정복 계획 등으로 멀리 떨어진 동아시아에 출병할 여력이 거의 없었다는 주장이다. 아유타야 왕국이 국가 차원에서 임진왜란에 참전하였다는 기록은 찾기 어렵다. 그러나 선조실록과 같은 기록을 근거로 아유타야 출신으로 중국에서 활동하던 병사들이 임진왜란에 참전한 것은 분명하다는 것. 아유타야 왕국이 멀리 떨어진 조선에서 일어난 전쟁에 참가하려 한 것은 부(富)의 근원인 동남아시아 무역과 명나라 시장이 일본에 장악되는 것을 우려한 때문인 것으로 학자들은 분석한다.
   
   아유타야에 끝없이 펼쳐진 듯한 폐허를 잠시나마 살펴보면 아유타야 왕국이 얼마나 부강했는지를 쉽게 짐작해볼 수 있다. 이 왕국은 풍부한 농산물 생산과 명나라와의 조공무역, 동남아에서의 해상무역 등으로 강력하게 성장하였다. 아유타야 왕국은 유럽의 사신들로부터 프랑스 파리에 비견될 만하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부강한 나라를 이루었다. 특히 차오프라야강과 그 지류들에 운하를 건설하여 치밀하게 연결하였다. 덕분에 아유타야 상인들은 차오프라야강 어디에서든지 배를 타고 방콕 앞바다 타이만(灣)으로 진출할 수 있었다. 아유타야 상인들은 일찍이 고려 공양왕 때에 고려에 진출하였다. 일본에 1년간 머물다 고려를 찾은 아유타야 상인들에게 공양왕이 그 먼 곳에서 어떻게 왔는가라고 묻자 “북풍을 받으면 40일이면 올 수 있다”고 말했을 정도로 항해에 뛰어났다.
   
   그러나 1767년 미얀마의 침입을 받아 아유타야는 페허가 되고 왕국은 남쪽으로 이주하여 현재의 방콕을 건설하게 된다. 현재의 아유타야 유적지가 지금처럼 철저하게 파괴된 것은 물론 미얀마 침략군의 파괴 때문이다. 하지만 왕국이 거처를 방콕으로 옮기면서 대부분의 건물 잔재를 운반해 신도시의 건축자재로 사용한 때문이기도 하다.
   
   아유타야에서 방콕까지 배를 타고 내려오다 보면 이 나라의 역사가 바로 이 차오프라야강에 온전히 담겨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방콕에서도 중요한 사원이나 시설들은 모두 배편으로 도착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런가 하면 근대 제국을 이루었던 포르투갈, 프랑스와 같은 외교 공관들도 모두 차오프라야 강변에 자리 잡고 있다. 포르투갈이 제국 시절에 확보했던 넓은 대사관 터에는 지금은 초고층 호텔들이 들어섰다. 한 나라의 흥망성쇠는 오직 경제력에 따른다는 사실을 초고층 호텔 사이에 끼어 있는 포르투갈대사관을 보면서 새삼 느끼게 된다.
   
▲ 차오프라야강 운하에서 물고기에게 먹이를 주는 시민들.

   20세기 중반까지는 차오프라야강에 수많은 배들이 떠 있었다. 태국인들은 이 배에서 생활하며 먹고 자고 상업에 종사했다. 20세기 중반부터 태국인들의 삶을 이루던 바지선들은 대부분 사라지고, 지금은 수상시장을 떠다니는 배들이나, 수상가옥에서 옛 자취를 겨우 찾아볼 수 있다.
   
   특별히 차오프라야강을 중심으로 한 태국인들의 일상을 체험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소형 쾌속선인 롱테일보트를 타라고 권하고 싶다. 차오프라야강에는 유람선은 물론이고 거대한 농산물 운송선 등 여러 가지 배들이 다닌다. 그중에서도 롱테일보트를 타면 강에 설치된 운하를 통해 지류를 운행하며 수상가옥의 모습도 살필 수 있다.
   
   롱테일보트는 여러 가지 코스를 운행하는데, 대부분 인공 운하를 통행한다. 배가 운하를 지나기 위해서는 밖에서 강 수위의 높낮이를 일정하게 조절한다. 운하를 지나다 보면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더욱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는 맛이 있다. 어디서나 사원은 눈에 띈다. 사원에서 기도를 마친 사람들이 수로에 먹이를 던지면 물고기들이 몰려들어 펄쩍거린다. 그런가 하면 이 강에 서식하는 거대한 도마뱀 이구아나가 오고가는 모습도 관찰된다. 운하 주변에 위치한 집들은 대부분 허접하고 초라하다. 쓰러져가는 집들도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한가하게 졸음을 쫓거나 한담을 나누는 모습이다. 그들이 사는 집들이 무너져 물속으로 잠기면 사람들은 다른 집을 지으면 되는 것일까.
   
   다시 운하에서 차오프라야강 본류로 나오면 방콕은 선진국 어느 대도시에 뒤지지 않는 초현대식 고층건물로 가득하다. 도시의 삶은 다급함을 강요하는 것일까. 배의 속력을 괜시리 높여야 할 것 같다. 큰 강을 운항하는 배는 속도를 높이고 뱃전에 튀기는 물보라 때문에 어느 정도의 속도감도 제법 느끼게 된다. 아유타야 왕국에서 초현대식 도시인 방콕에 이르기까지 차오프라야강 뱃길은 이 나라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오가는 시간여행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역사의 웜홀을 지나는 통로인 듯하다.


   
카오야이국립공원
   
   태국 중산층의 피서지
   
▲ 카오야이국립공원 입구에 위치한 사원.

   지구온난화로 기상이변이 일어난다고 세계가 고심 중이다. 우리나라도 여름과 겨울이 길어지고 봄, 가을은 짧아지고 있다고들 한다. 특히 한여름 열대야 현상은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몇날며칠을 이어지곤 한다. 열대야로 고심하는 것은 태국 사람들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방콕도 갈수록 여름이 더워진다는 것. 그래서 방콕의 중산층들이 최근 여름이면 자주 찾는 시원한 곳이 바로 방콕에서 차로 2시간30분 거리에 있는 카오야이국립공원이다.
   
   방콕에서 북동쪽으로 200㎞ 정도 떨어진 카오야이국립공원은 시원한 산악지방이다. 카오야이는 한국말로는 큰 산이라는 의미. 1962년 이 나라에서 처음으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면적은 300㎢가 넘는다. 가장 높은 봉우리는 해발 1351m의 카오롬. 이 지역은 강수량이 풍부하여 큰 폭포가 많다. 또 열대우림에는 3000여종의 각종 야생동물이 서식하고 있다. 열대우림 속으로 몇 시간가량 트레킹을 할 수 있다. 독충에 쏘이거나 길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안전스타킹을 신고 현지 안내자를 동반하는 것이 안전하다.
   
   카오야이의 숲은 아주 잘 보존되어 있기 때문에 두세 시간 걷다 보면 야생동물을 가까이에서 관찰하는 행운을 만날 수 있다. 원숭이나 사슴은 길가에서도 흔히 눈에 띈다. 밀림 속에 사람들이 지나는 길은 대개는 코끼리들이 지나는 길이라고 한다. 잘하면 숲속에서 놀고 있는 코끼리를 인접촬영할 수도 있다.
   
   이 지역 밀림 속에서 또 볼 수 있는 것이 ‘기본(gibbon)’. 원숭이처럼 생겼지만 기본은 꼬리가 없다. 유인원이다. ‘일부일처제’를 바탕으로 일가족을 이루어 나무 위에서 산다고 한다. 나무에서 나무로 가지를 잡고 날듯이 이동한다. 가까이에서 야생동물을 관찰할 수 있는 게 카오야이국립공원의 장점. 카오야이국립공원의 트레킹 코스는 폭포를 지나 정상의 절벽으로 이어진다. 절벽에서 공원 전체 열대우림을 내려다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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