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7일 탈당 결심을 밝힌 김종인 전 대표가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초청 강연에 참석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photo 연합
지난 3월 7일 탈당 결심을 밝힌 김종인 전 대표가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초청 강연에 참석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photo 연합

끊임없이 설(說)만 제기되던 ‘김종인 탈당’이 드디어 현실화됐다. 더불어민주당 내 비(非)문재인계 중심 역할을 해온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 대표가 지난 3월 8일 민주당을 탈당했다. 지난해 1월 영입돼 4월 총선을 승리로 이끈 그가 13개월 만에 민주당을 떠난 것이다. 그의 탈당은 여론조사상 ‘어대문(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이 굳어지고 있는 조기 대선구도를 흔들 수 있는 마지막 변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김종인 전 대표의 탈당 결행을 의외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가 그동안 언론을 통해 탈당 가능성을 끊임없이 흘려왔지만 실제 거사까지 갈 것으로 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무엇보다 현실주의자·실용주의자를 자처해온 그가 금배지까지 던져버리며 당 밖에 나가 도모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그가 개헌과 패권주의 반대를 매개로 ‘빅텐트론’의 중심에 설 것이라는 관측이 계속 제기됐지만 다양한 정파의 이해관계를 묶어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노(老) 정객이 모를 리가 없다는 현실론 또한 적지 않았다. 지지율 1~3위의 차기주자들과 40%를 웃도는 당 지지율이 떠받치는 민주당을 뛰쳐나가는 일이 얼마나 무모한지를 그가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차라리 민주당에 남아 문재인 전 대표와 맞서고 있는 안희정 충남지사를 돕지 않겠느냐는 게 대체적 전망이었다.

하지만 그는 비례의원직을 과감하게 던져버리고 탈당을 결행했다. 민주당의 한 비문(非文)계 의원은 그의 탈당 결심을 이렇게 설명했다. “문재인 세상에서 그가 무슨 할 일이 있겠냐. 쉽진 않겠지만 당 밖으로 나가 뭔가 변화를 추구하는 게 당 안에서 시간만 죽이는 것보다는 낫다는 판단을 하지 않았겠느냐.” 이미 비례의원만 다섯 번째인 그로서는 금배지를 지키는 것보다는 대선 국면에서 자신만의 역할을 찾는 게 더 중요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실제 그도 자신의 탈당 이유를 기자들에게 설명하면서 “의원직 자체가 아무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 “내가 (이 당에서)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 떠날 때가 돼서 떠나는 것” 등의 말을 했다.

상법개정안 계류에 대한 분노

그가 ‘의원직 자체가 의미가 없다’는 식의 무력감을 토로한 배경에는 자신의 신조인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이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현실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지난해 7월 대표발의한 상법개정안은 민주당이 원내 1당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하고 있다. 현재 법사위에는 20개가 넘는 상법개정안이 계류 중에 있지만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김종인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이다. 다중대표소송 도입, 집중투표제 의무화, 사외이사 선출개선, 감사위원회 독립, 전자투표제 의무화 등을 골자로 하는 이 상법개정안을 둘러싸고는 재계에서 “경영권 방어장치가 없는 현실에서 집중투표제 등이 도입될 경우 외국 투기자본에 국내 기업들이 휘둘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김종인 전 대표는 대기업 지배구조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이런 구체적인 상법 조항들이 경제민주화의 핵심이라는 입장을 보여왔다. 한 측근은 “지난 7월 상법개정안을 만들 때 김 대표가 자신이 평소 주장해온 핵심 조항들을 담느라 심혈을 기울였다”며 “2월 국회에서는 상법개정안이 통과되기를 기대했는데 그것도 어려워지자 실망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지난 1월 국회에서 상법개정안 처리가 무산된 직후 측근들에게 당 주류인 친문계의 ‘미온적 태도’에 분노를 표했다고 한다. 지난 총선 기간 비대위에서 김종인 대표의 참모로 활동했던 한 인사는 그의 경제민주화 신념과 관련해 이런 말도 했다. “김종인 대표는 평생 대기업 사외이사를 맡은 적이 없는 걸로 알고 있다. 스스로 이걸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한다. 그가 강조해온 경제민주화가 그냥 빈말이 아니라 신념과 실천의 문제인 것 같다.”

민주당 손혜원 의원이 김종인 전 대표를 향해 “떠나셔서 기관총이라도 난사하실 생각이신데 진짜 뜻대로 되지 않으실 거다”라고 독설을 날렸지만 그도 탈당 후 친문 패권주의와 맞서고 결국 문재인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되는 걸 앞장서 저지하겠다는 의사를 굳이 감추지 않고 있다. 그는 이번에 탈당을 만류하는 의원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내가 입당하지 않았다면 친문 세력은 사라졌을 텐데, 내가 친문 세력을 부활시키는 역할을 했으니 (탈당으로) 그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느냐.” 친문 세력이 당을 장악했음을 인정하고, 친문 패권주의가 맞서 싸워야 할 대상임을 분명히 한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을 포함한 이른바 개헌파 의원들에게 당내 문재인 열성 지지자들이 ‘문자폭탄’을 보내며 괴롭혔을 때 “이 당은 진짜 안 되겠다”고 화를 냈다고 한다. 그에게는 ‘관 짜놓고 죽을 날 받아두라’는 내용의 문자까지 날아든 것으로 알려졌다.

한때 ‘문재인 킹메이커’로 비쳐지던 그가 어쩌다가 ‘문재인 저격수’가 되기로 결심하게 된 걸까. 그는 문재인 전 대표와 13개월간 애증(愛憎)의 시간을 보냈다. 작년 1월 문재인 전 대표가 삼고초려 끝에 ‘선대위 원톱’으로 영입했을 때만 해도 김종인은 문재인에게는 구세주나 다름없었다. 안철수 전 대표의 분당 사태로 당이 좌초 위기에 몰렸을 때 도박에 가까운 결정이 김종인 영입이었다. 문 전 대표는 그에게 전권을 넘기며 자신은 2선 후퇴를 하고 백의종군을 선언했다. 하지만 김종인과 친문계와의 밀월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가 우클릭을 통해 외연 확장을 꾀하고 친노(親盧) 좌장 격인 이해찬 의원을 공천 배제하는 등 공천을 주도하자 반발이 일기 시작했다. 특히 김종인 대표가 스스로를 비례대표 2번에 셀프공천하자 반발이 크게 일었다. 당시 그가 대표직 사퇴라는 초강수를 두자 경남 양산 자택에 머물던 문 전 대표가 부랴부랴 상경해 “김 대표는 이번 총선을 경제민주화라는 화두로 치르는데 간판 역할을 하고, 총선 이후에도 다음 대선 때까지 그 역할을 해줘야 하기 때문에 국회에 들어갈 필요가 있다”며 수습하는 등 홍역을 치렀다. 당시 홍보위원장을 맡고 있던 손혜원 의원은 “이 당이 희망이 있는지 지켜보겠다” “김종인 대표가 결단하면 나도 함께한다”고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두 사람이 결정적으로 충돌한 것은 총선 이후다. 두 사람은 총선 직후 가진 만찬회동에서 ‘김종인 당권’을 용인했느냐 아니냐를 두고 이른바 ‘진실게임’을 벌였다. 내심 합의추대를 기대한 그에게 문 전 대표가 “합의추대가 가능하지 않고 김 대표가 경선에 불출마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히자 그는 “문 전 대표가 나에게 ‘경선에 나가라’고 해서 나는 전혀 관심이 없다고 답했다” “더 이상 개인적으로는 문 전 대표를 안 만날 것이다. 믿을 수가 없다”고 반발했다. 당시 그는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려는 것을 구해놨더니 문 전 대표와 친문이라는 사람들이 이제 와서 엉뚱한 생각들을 한다”며 강하게 비판했고, 이러한 비판은 자신이 “속았다”는 반응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1월 27일 더불어민주당 중앙위원회에서 사퇴하는 문재인 대표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악수를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해 1월 27일 더불어민주당 중앙위원회에서 사퇴하는 문재인 대표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악수를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두 사람은 태생적으로 맞지 않다”

이후 그는 ‘문재인은 대통령감이 아니다’는 입장을 내보이며 문 전 대표를 견제하는 입장을 줄곧 유지해왔다. “문재인은 노무현 말기, 안희정은 노무현 초기 모습”이라는 등 문재인 대세론은 견제하면서 문재인 대항마로 부각된 주자들에게는 힘을 실어줬다. 또 탈당 등 자신의 거취 문제에 대해서는 계속 모호한 입장을 취해왔다. 이런 그의 태도에 대해서는 최근 친문계 사이에서 ‘이제 지겹다’는 반응이 나온 것도 사실이다. 한 친문계 의원은 이런 말을 했다. “김종인 의원이 문재인 전 대표를 향해 던진 ‘말기 노무현’이라는 표현은 듣기에 따라 굉장히 아픈 표현이다. 정권교체를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계속 1등 주자 흠집 내기를 하면서 자신의 몸값만 올리려고 하는데 진짜 자기 도취에 빠진 노회한 정객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들을 한다.”

그가 3월 7일 의원회관 3층 자신의 방에서 기자들에게 탈당 의사를 밝히고 있을 때 문재인 전 대표가 의원회관 2층에서 노무현 정부 출신 관료들과 ‘경제현안 점검회의’를 열고 있는 장면은 두 사람이 서로 루비콘강을 건넜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친문계가 공식적으로는 ‘김종인 전 대표가 경제민주화라는 화두로 대선 때까지 도와주면 좋겠다’고 말은 해왔지만 ‘더 이상 김종인이 필요 없다’는 속내를 그대로 내보인 게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 김종인 전 대표는 3월 8일 탈당계를 제출하면서 탈당설이 불거진 이후 문재인 전 대표로부터 어떤 전화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 문재인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영입된 또 다른 경제전문가인 전윤철 전 감사원장과 경제민주화를 둘러싸고 감정싸움까지 벌인 바 있다. 전윤철 위원장이 한 언론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정치권에 제기된 경제민주화는 실체가 없고 포퓰리즘에서 나온 것”이라고 경제민주화를 비판하자 “경제민주화의 뜻도 모르고 포퓰리즘의 뜻도 모르는 사람들 같다. 그 사람은 그 정도의 수준이니 그렇게 얘기할 수밖에 없다”고 맞받아쳤다.

사실 김종인·문재인 두 사람의 관계를 지켜봐온 사람들 중 상당수가 “두 사람은 태생적으로 맞지 않다”는 말을 하고 있다. 지난 총선 기간 비대위에 몸담았던 한 전직 의원의 말이다. “두 사람은 물과 기름같이 섞이기 힘들다고 본다. 한 사람이 다양한 정파를 넘나든 현실주의자, 실용주의자라면 또 한 사람은 한 정파에 충실한 원칙주의자, 이념주의자다. 또 어법도 상당히 다르다. 한 사람은 필요하다 싶으면 똑 부러지게 자기 요구사항을 말하는 스타일이고 또 한 사람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모호한 뉘앙스의 말을 하는 스타일이다. 두 사람이 만나고 헤어진 후 자주 ‘진실게임’이 벌어지는 것도 이런 어법의 차이가 크다고 본다.”

그는 친노와는 이미 오래전 악연을 쌓기도 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당시 야당의 탄핵 소추 의결에 나름 영향을 미친 게 그였기 때문이다. 추미애 대표가 한 언론을 통해 밝힌 회고에 따르면, 당시 추미애 대표가 속해 있던 새천년민주당 지도부는 국회 탄핵 결정을 앞두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이 실제 가능할지 반신반의하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그때 당 최고위원 회의에 ‘외부 명망가’로 참석한 김종인 전 대표가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현직 대통령의 선거 개입 발언이 탄핵 사유가 된다는 유권해석을 내리고 있다”고 말한 게 당을 탄핵 결정으로 몰고가는 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당시 헌법재판소를 이끌고 있던 윤영철 소장이 김종인 전 대표의 할아버지인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의 손자 사위여서 그의 이런 조언에 힘이 실렸다고 한다. 하지만 탄핵 이후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역풍이 불어닥치면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압승한 반면 새천년민주당은 불과 9석만 얻는 참패를 기록했다. 당시 그는 새천년민주당 비례대표로 이 9석 중 한 석을 차지했고, 스스로는 네 번째 비례대표 의원 기록을 세웠다.

지난 총선 때 민주당 승리를 일궈내면서 ‘망가진 당 회생 전문가’라는 별명까지 얻은 김종인 전 대표와 관련해 가장 큰 궁금증은 그가 조기 대선 국면에서 무슨 역할을 할 것이냐는 점이다. 일단 그는 당장 어느 당에 들어가지는 않겠다고 밝혀 자유로운 상황에서 반문(反文) 연대를 엮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그 역시 “솔직히 정당을 떠나는 이유는 탄핵 이후 여러 상황에 대해 자유롭게 말할 수 있고,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라고 말했다. 당분간 그는 제3지대에 머물면서 민주당 개헌파와 국민의당, 바른정당, 그리고 자유한국당의 비박(非朴)계를 모두 묶어내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동반 탈당 과연 몇 명이나

그의 탈당이 어느 정도 파괴력을 가질 수 있느냐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은 민주당 의원들의 동반 탈당 여부다. 현재 진영·최명길 의원 등 그와 가까운 의원들이 후속 탈당을 고려하고 있고 비문계 및 손학규계 3~4명도 탈당 대상으로 거명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다들 그냥 남아 있으면 정권교체 주역이 되고 여당 의원이 될 가능성이 높은데 도박과 같은 탈당을 결행할 사람이 현실적으로 있겠느냐”고 했다.

김종인 전 대표가 주시하는 것은 ‘탄핵 이후’의 정치 상황과 여론의 변화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문재인 대세론이 불변인 것처럼 보이지만 대통령 탄핵이 인용돼 정치 상황이 요동칠 경우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여론이 일면서 안정감 있는 지도자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고 한다. 탄핵 이후에는 ‘불안하지 않은 야당 후보’에 대한 요구가 커질 것이며, 그때 ‘빅텐트’를 본격적으로 치고 문재인 후보와의 일대일 구도를 만들면 승산이 있다고 본다는 관측이다. 탄핵 이후를 주시하는 것은 그가 탈당 의사를 밝힌 직후 만난 손학규 전 대표도 비슷한 생각이다. 그 역시 탄핵 이후 정치권 빅뱅설을 줄기차게 강조해오고 있다. 최근 김종인 전 대표를 만난 문병호 국민의당 최고위원도 “김종인 전 대표와 제3세력이 힘을 합치면 개헌·개혁 연대가 생겨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민주당 비문 최대 40여명과 자유한국당 30여명이 탈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가 반문 세력을 묶는 작업을 하더라도 과거와 같은 합당 방식이 아니라 개헌을 고리로 연정 형식을 취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가 킹메이커가 아닌 킹으로 뛸 것이라는 전망도 계속 나오고 있다. ‘분권형 개헌을 위한 임기 3년 대통령’을 공약하면서 직접 대선에 뛰어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3월 7일 중견기업 연합회 강연에서 “남이 써준 무슨 공약 내용 가져다 줄줄 읽어가는 대선 주자들은 결국 대통령 역할을 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총선 당시 김종인 비대위에서 일했던 한 인사는 “김 전 대표가 계속 탈당설을 흘려온 것은 자신이 스스로 킹이 될 가능성을 탐색한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며 “그 가능성에 어느 정도 확신이 생겨서 탈당한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정장열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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