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 특별전: 균열’을 통해 공개한 ‘미인도’를 관람객이 지켜보고 있다. ⓒphoto 이태경 조선일보 기자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 특별전: 균열’을 통해 공개한 ‘미인도’를 관람객이 지켜보고 있다. ⓒphoto 이태경 조선일보 기자

진위 논란으로 얼룩진 ‘미인도’가 처음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전에 출품되었다. 미술관 측이 그동안 언론과 전문가에게도 공개하지 않았던 작품을 갑자기 일반에 공개하는 의도가 무엇일까.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은 “진위를 가리거나 특정 결론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미인도’가 논란의 대상이 아닌 감상의 대상이 되길 바란다”며 전시 의도를 설명했지만 이 사건의 내막을 잘 아는 나로서는 뭔가 개운치가 않다. 이번 전시는 검찰의 진품 판정에 힘입은 바 크지만 문제는 검찰의 판결을 존중하는 국민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나는 리움미술관 큐레이터로 있던 1995년 천경자 회고전을 치르면서 천경자 화백과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지난해에 천경자 평전을 내면서 ‘미인도’에 대해 60여쪽을 다루었더니 검찰에서 연락이 왔다. 유족 측이 국립현대미술관을 상대로 사자 명예훼손, 저작권법 위반, 허위공문서 작성 혐의로 고소한 사건 조사 때문이었다. 이후 여러 차례 검찰과 만나고 통화하며 천 화백에 대한 자료와 정보를 제공하고 검찰의 미인도 감정에도 참여했다. 그때 나는 수사관이 지키는 방에서 혼자 2시간 동안 ‘미인도’의 실물을 보고 또 봤다. 사진으로 봤을 때보다 물감이 두껍게 칠해져 있었지만, 동시에 완성된 작품을 이렇게 허술하게 그렸다는 점에서 더욱 이해가 안 되었다. 나는 미학적으로 천 화백의 혼이 느껴지지 않는 점과 기법적으로 천 화백과 다른 부분을 10여가지 적어내며 위작으로 판정했다.

그런데 얼마 후 담당 검사에게서 “이거 그냥 진품이라고 보면 어때요”라는 전화를 받았다. 그날 이후 나는 검찰이 이미 진품으로 결론 내렸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프랑스 감정팀 뤼미에르의 감정 결과도 나오기 전이었다. 검찰은 나에게 빌려온 작품들을 돌려주기 전에 작품을 보며 끝장토론을 하자고 제안했다. 내가 흔쾌히 허락하고 감정장소에 나가 보니 검사 3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진품 주장자의 근거를 전하며 그에 대한 나의 의견을 물었다. 나는 그 내용들이 진품의 확실한 근거가 될 수 없으며 필법(筆法)이 다르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약간 불쾌하고 불안한 마음에 담당 검사에게 “검찰이 확실하지 않은 것을 무리하게 판결하려 하지 말고, 전문가들의 논의를 위한 장을 마련해준다면 검찰의 역할은 충분하다”는 논조로 메일을 보냈다. 담당 검사는 “가슴에 새겨듣고 팀원들과 공유하겠다”는 답장을 보내왔다. 그러나 얼마 후 결국 검찰은 나에게 말했던 허술한 근거로 진품 판정을 내려버렸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검찰이 답을 갖고 그쪽으로 무리하게 몰고 가려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뤼미에르의 감정 결과를 애써 무시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검찰의 진품 판결이 국립현대미술관에 힘을 실어주어 결국 이번 전시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그러나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인 ‘미인도’가 전시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일까?

미술관은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는 곳이지만, 작가가 원하지 않는 작품을 전시하는 것은 작가에게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미술관 입장에서는 우리 소장품이니 전시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천 화백의 입장에서 “목에 칼이 들어와도 내 작품이 아니다”라고 한 작품이 전시되기를 원했을까.

천 화백은 이 사건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절필(絶筆)까지 선언하고, 유언처럼 “‘미인도’는 내 작품이 아니다”라는 공증서까지 남겼다. 그런 천 화백에게 이번 전시는 “당신은 자식도 몰라보는 정신 나간 작가로 검찰에서 판명되었다”는 조롱처럼 느껴진다. 물론 연구와 논의를 위한 공개는 필요하지만, 이렇게 정식 전시에 태연하게 출품하는 것은 법을 떠나서 작가를 모독하는 행위이다. 설사 ‘미인도’가 진품이라 하더라도 작가가 원치 않으면 전시하지 않는 것이 작가에 대한 미술관의 예의가 아닐까.

작품의 최고 권위자는 누구인가

마리 관장은 “작품의 가장 정통성 있는 권위자가 작가인지, 미술관인지, 전문가 혹은 감정기관인지, 아니면 대중의 믿음인지 생각의 기회를 주겠다”고 했지만, 과연 누가 작가의 권위를 대신할 수 있을까. 국립현대미술관만 해도 1991년 진위 논란이 불거진 이후 26년 동안 학술세미나나 논문 한 편 없었고 누가 연구자이고 담당자인지조차 파악이 안 된다. 또 신뢰할 만한 감정기관과 전문가가 없는 우리의 현실에서 작가보다 나은 권위자를 기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전문적인 감정 시스템을 갖춘 외국에서도 생존작가의 경우는 작가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 상식이다.

한국 화랑협회의 감정 규정에도 ‘작가가 생존해 있고, 작가의 정신 상태가 정상이라면 작가의 의견에 감정의 우선 순위를 둔다’는 규정이 있다. 그런데 천 화백이 문제를 제기한 1991년, 화랑협회는 국립현대미술관의 황송한 부탁에 이 규정을 어기고 ‘미인도’를 진품으로 판정했다. 이 규정을 깨려면 작가의 정신 상태가 비정상이거나 진품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다. 천 화백은 자신을 무시하고 감정을 진행한 자체에 모독감을 느꼈다. 작가가 감정 결과를 수용하지 않자 미술관 측은 천 화백이 나이가 들어 치매에 걸렸다는 식으로 몰고 갔고 가짜 뉴스들을 유포했다. 시간이 지나자 가짜 뉴스들이 사실처럼 보도되고 심지어 국립현대미술관이 국회의원실에 제출한 보고서에까지 문서화되었다.

사실 국립현대미술관의 이러한 무리수는 1990년 ‘미인도’를 ‘움직이는 미술관’에 전시하고 900장의 인쇄물로 찍어 판매한 사건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때 작가에게 상의했다면 이러한 진흙탕 싸움은 피할 수 있었다. 문화부의 지시로 시작된 전시회에 작품이 출품되고 인쇄물까지 판매된 시점에서 위작을 시인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당시 이경성 관장은 미술관의 신뢰를 위해서 자신의 모든 명예를 걸겠다고 했고, 미술관 측은 유족 측과 만나 자신들은 여러 명의 생명줄이 걸려 있기 때문에 결코 양보할 수 없다는 뜻을 전했다.

‘미인도’(1977년경 위쪽)는 그림 1 ‘발리섬의 처녀’(1975)의 꽃을 가로로 옮겨 그린 후 몇 개의 꽃을 임의로 추가한 모양이다. 머리의 이파리는 그림 2 ‘바리의 처녀’(1974)와 흡사하다. 그리고 어깨의 나비는 그림 3 ‘고’(1974)의 나비와 똑같다. 이렇게 여러 작품에서 부분을 가져와 짜깁기하는 것은 위작의 전형적인 방식이다.
‘미인도’(1977년경 위쪽)는 그림 1 ‘발리섬의 처녀’(1975)의 꽃을 가로로 옮겨 그린 후 몇 개의 꽃을 임의로 추가한 모양이다. 머리의 이파리는 그림 2 ‘바리의 처녀’(1974)와 흡사하다. 그리고 어깨의 나비는 그림 3 ‘고’(1974)의 나비와 똑같다. 이렇게 여러 작품에서 부분을 가져와 짜깁기하는 것은 위작의 전형적인 방식이다.

검찰 수사로 확인된 가짜 뉴스들

미술관의 입장에서는 ‘미인도’가 진품이어야 했고, 진실을 밝히려는 의지보다 진품임을 증명하는 데 권력을 동원했다. 그러나 미술관 측의 진품 주장은 대부분 가짜 뉴스에 의존했고, 그 소문들이 진실처럼 둔갑하자 천 화백의 유족이 검찰에 진상파악을 요구한 것이다. 검찰은 ‘미인도’를 진품으로 판결하면서도 미술관 측이 유포한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허위사실임을 확인해주었다.

(1) 천경자는 ‘미인도’를 보지도 않고 포스터만 보고 위작으로 판단했다.

(2) 1990년에 발간한 ‘한국근대회화선집’(금성출판사)에 천경자가 ‘미인도’를 중요하다고 판단해 직접 수록했다.

(3)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KIST에서 과학 감정을 거쳐 진품으로 확정했다.

(4) 천경자에게 액자를 바꿔서 보여주니 “왜 이걸 이제 가져왔느냐”며 진품임을 시인했다.

(5) 국내의 유명 미술보존연구소에 안료검사와 필적검사를 의뢰하여 진품으로 확인하였다.

이러한 내용들은 미술관 측이 그동안 진품의 결정적 근거로 제시한 것이지만 모두 허위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진품 주장을 위해 중앙정보부에 재직했던 오모씨가 천경자로부터 ‘미인도’를 받아 김재규에게 선물했다는 소장 경로에 대해서는 미술관 측의 소문에 동조했다. 그러나 이것은 결론적으로 사실이 아니다. 천 화백은 오모씨에게 준 작품이 ‘미인도’가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고 오모씨도 생전에 ‘미인도’를 받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당시 오모씨와 함께 천경자 집을 방문했던 오모씨의 딸은 이번 검찰 조사에서 아버지가 받은 작품이 6호짜리 ‘길례언니’와 비슷한 작품이라고 진술했다. ‘미인도’를 가져왔다면 동양화를 전공한 그녀가 모를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검찰은 단지 “오모씨가 단독으로 혹은 다른 제3자와 공모하여 ‘미인도’를 위작했다는 어떤 정황도 발견되지 않는다”는 근거로 천 화백이 ‘미인도’를 오모씨에게 건넨 것으로 간주했다. 그럼 천 화백이 거짓말한 정황도 발견했는가. 추정을 사실로 판정하려면 증거가 있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진위보다 양심의 문제가 선행되어야

아직 논란이 계속되는 시점에서 이번 전시는 미술관의 권력이 작가 위에 군림한다는 선전포고같이 느껴져 씁쓸하다. 그리고 미술관 측 피의자들이 불기소된 것은 그들이 결백해서가 아니다. 검찰의 불기소 이유서를 보면, 피의자들은 가짜 뉴스에 대해 “나도 다른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이미 나온 문서에 근거한 것이다”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잘못되어서 그랬다”는 식으로 빠져나갔다. 검찰은 그들이 허위에 대한 인식이 없다고 판단하여 불기소하고 1명만 벌금형을 내렸다. 그러나 미술관 측의 허위사실 유포가 확인된 이상 도의적인 책임까지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미술계 문제를 법적으로 끌고 간 유족 측의 태도는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진지한 반성 대신 성급하게 전시를 통해 진품으로 굳히려는 듯한 국립현대미술관의 태도는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있다. 가짜 뉴스가 진위와 무관하더라도 자신의 잘못된 정보로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었다면 먼저 미안해하고 사과하는 것이 도리 아닐까. 이것은 진위의 문제가 아니라 양심의 문제이다.

미술관은 전시 제목을 ‘균열’로 정하면서 “‘미인도’ 위작 논란 자체가 우리 사회의 균열상을 드러내는 사례이다”라고 했지만, 거짓 뉴스야말로 진실에 균열이 생기게 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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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진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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