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 있는 서울의 한 종합병원 신생아실. ⓒphoto 정경열 조선일보 기자
비어 있는 서울의 한 종합병원 신생아실. ⓒphoto 정경열 조선일보 기자

합계출산율이란 여성 한 명이 평생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자녀 수를 보여주는 통계다. 지난 2월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1.17명이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세계 224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출산율 통계에서 한국은 220위를 차지했다. 한국보다 출산율이 낮은 국가는 홍콩, 대만, 마카오, 싱가포르뿐이다. 이 중 세 곳은 도시국가다. 출산율로 따지자면 우리는 OECD 가입국 중 단연 최하위다.

저출산 문제는 사실 세계적 추세이기도 하다. 선진국들은 1990년대 중후반부터 거의 예외 없이 저출산 문제를 겪었다. 프랑스의 최저 출산율은 1994년 1.66명이었고 독일은 1995년에 출산율 1.25명을 기록했다.

한국이 최저 출산율을 기록한 것이 2005년의 1.08명. 10년의 차이를 두고 선진국의 출산율을 따라가고 있다. 바꿔 말하면, 저출산 문제는 선진국으로 가는 통과의례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큰 차이점이 하나 있다. 대다수 선진국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출산율을 회복했다. 하지만 한국은 그러지 못했다. 한국의 출산율 그래프는 여전히 밑바닥에서 회복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저출산 문제를 극복하는 데 든 국가 예산만 해도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는 동안 100조원이 넘는다. 2006년부터 2015년까지 진행된 ‘1·2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는 80조2000억원이 들었다. 2016년부터는 청년 고용과 신혼부부 주택마련 등 사회 구조적 개선책이 더해져 3차 기본계획이 시작됐다. 21조원의 예산이 더 들었다. 그러나 2015년 1.24명이었던 출산율은 지난해 1.17명으로 오히려 떨어졌다.

이런 현실을 감안할 때 무작정 예산을 퍼부을 것이 아니라 근본적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우리나라 저출산 문제의 근본 원인은 비혼(非婚) 비율이 높아지고 그나마 결혼하더라도 늦게 결혼하는 만혼(晩婚)이 늘어나는 것이다. 비혼율이 높아지니 당연히 아이를 낳지 않게 되고, 결혼을 늦게 하니 노산(老産)으로 인해 난임 문제에 부닥치거나 아이를 낳는 것도 포기하게 된다는 얘기다. 그래서 청년들이 좀 더 쉽게 결혼할 수 있게 장려해줘야 한다는 게 최근 자주 나오는 대책 중 하나다.

‘청년 결혼시키기’ 정책이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이 정책이 효과를 보려면 비혼과 만혼이 저출산의 원인이라는 점이 먼저 입증돼야 한다. 다른 나라의 사례를 살펴보자.

우선 결혼을 늦게 해서 출산율이 낮아지고 있다는 주장은 통계적으로 맞지 않다. 스웨덴의 평균 초혼 연령은 1995년 27.2세였다가 2012년 29.1세로 높아졌다. 그런데 출산율은 올랐다. 출산율은 같은 기간 1.74명에서 1.91명으로 높아졌다. 영국의 초혼 연령은 1995년 26.1세였다. 2012년에는 28.1세로 높아졌다. 출산율도 함께 올랐다. 1995년에 1.71명이었던 영국의 합계출산율은 2012년 1.92명이 됐다.

결혼을 하지 않아서 출산율이 떨어진다는 얘기는 얼핏 맞는 말 같지만 통계적으로 볼 때 이것도 사실과 다르다. 인구 1000명당 혼인 건수를 의미하는 조혼인율(crude marriage rate)을 기준으로 보자. 호주는 조혼인율이 1995년 6.1건에서 2012년 5.4건으로 떨어졌다. 사람들이 결혼을 더 적게 했다는 의미다. 그런데 출산율은 올랐다. 1995년 1.82명이었던 출산율은 2012년 1.93명이 됐다. 벨기에의 변화는 더욱 뚜렷하다. 1995년 조혼인율은 5.1건이었지만 2012년에는 3.6건이었다. 그런데 출산율은 확 올랐다. 1995년 1.55명이었는데 2012년에 1.79명이 됐다. 이와 관련해 이삼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저출산고령화대책 기획단장은 “첫 자녀 출산 연령이나 혼인율이 출산율에 직접적 상관 관계는 없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요 선진국의 경우에는 초혼 연령이 많아지고 혼인 건수가 적어지는데 출산율은 오르고 있다. 비혼·만혼이 저출산으로 이어지지 않는 데에는 숨겨진 ‘고리’가 있다는 이야기다.

비밀은 바로 비혼(非婚)출산율이다. 대개 ‘혼외출산’이라고 불리는 비혼출산은 혼인 관계가 아닌 상황에서 아이를 낳는 것을 말한다. 동거 커플이나 미혼모가 아이를 낳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비혼출산율이란 전체 출산 건수에서 비혼출산 건수가 차지하는 비율을 말한다. 위에서 얘기한 나라들의 비혼출산율을 살펴보자.

영국의 2012년 비혼출산율은 47.6%. 두 명 중 한 명의 아이는 법적 부부가 아닌 사람들에게서 탄생한다는 얘기다. 1995년에는 33.5%였다. 비혼출산율이 늘어나니 출산율도 늘어났다. 벨기에의 사례를 보면 이런 경향은 더 뚜렷해진다. 비혼출산율은 1995년 30.5%에서 2012년 52.3%로 늘어났다. 출산율도 가파르게 상승했다.

출산율과 비혼출산율의 상관관계는 관련 연구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다. 비혼출산율이 오르면 합계출산율도 오른다. 유럽 국가의 비혼출산율과 합계출산율을 그래프로 그려 보면 비례관계가 성립한다. 비혼출산율이 높은 프랑스, 스웨덴, 벨기에 등은 출산율도 높다.

출산율이 떨어지던 국가에서도 비혼출산이 늘어나면 출산율이 회복된다. 영국, 호주, 독일 등 출산율이 회복되고 있는 국가의 비혼출산율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들 선진국에서는 ‘아버지, 어머니, 동생, 그리고 나’라는 ‘정상가족’이 해체되고 있고 어떤 상황에서든 다양한 모습으로 아이를 낳아 기르는 비혼출산 방식이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출산과 양육을 지원하는 제도도 ‘정상가족’ 테두리를 벗어나 다양한 가족 형태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해답은 비혼출산율

우리는 지금까지 선진국들의 비혼출산율이 높은 것을 두고 ‘문란한 성(性)문화’에 따른 부수적 결과 정도로 치부해온 측면이 있다. 결혼을 하고 법적으로 공인된 부부관계에서 아이를 낳는 것만 정상적이라고 판단해왔다. 사회 전체에 ‘결혼 후 출산’의 관습이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현재 진행되는 사회 변화를 부인하는 일도 벌어졌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2월 내놓은 한 보고서가 논란이 된 일이 있었다. 이 보고서는 저출산의 원인이 혼인율 감소에 있는데 혼인율이 떨어지는 이유는 여성들의 학력이 높아지고 사회활동이 활발해지기 때문이라고 봤다. 그래서 여성들의 ‘불필요한 고스펙’에 불이익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출산을 위해서 여성의 사회 진출이 줄어들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려버린 것이다.

통계청의 사회조사에 따르면 최근 20~30대의 결혼, 출산에 대한 관점은 급격히 변하고 있다. 결혼하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하는 20~30대는 과반이 넘는다. 사회 전체로 봐도 해가 갈수록 결혼에 대한 생각이 부정적으로 변하고 있다. 2010년만 해도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거나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전체의 64.7%였는데 2016년에는 51.8%에 그쳤다. 특히 10~30대에서는 5~6%의 사람만이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상황에서 저출산 극복을 위해 결혼부터 시키자는 정책은 현실적으로 고단한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젊은층의 인식은 결혼제도를 부인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데 저출산 정책은 이런 흐름과 역행하는 상황이다. ‘아이를 낳으라’는 얘기가 ‘결혼하자’는 캠페인까지 이어지는 이상한 상황이 된 것이다.

아이를 낳으려면 꼭 결혼을 해야 하는 것일까. 9년 전 호주로 유학을 가 멜버른에 자리 잡은 정아름씨의 얘기를 들어 보자. 20세에 호주로 떠난 정씨는 원래 결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없던 사람이었다.

“아이는 무척 좋아했어요. 조카들을 보는 것도 좋아했고, 저 닮은 아이를 낳아서 잘 길러 보고 싶다는 생각은 계속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 저희 부모님 사이가 좋지 않아 그런지 결혼에는 부정적이었어요.”

그랬던 정씨에게 변화가 생긴 것은 남자친구를 만나고 난 뒤의 일이다. 정씨의 일본인 남자친구는 정씨처럼 아이를 갖고 키우는 일을 꿈꾸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결혼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았어요. 남자친구는 일본으로 돌아가야 하는 사람이었고, 저는 멜버른이 아니라 다른 도시에 가서 정착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거든요.”

두 사람의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호주에서는 동거 커플에게 아이가 생기면 낳아 기르는 것이 특별한 게 아니다. 호주의 비혼출산율은 34.4%, 3명 중 1명의 아이가 혼인 관계가 아닌 사람들에게서 태어난다. 정씨가 지난해 4월 낳은 아들도 마찬가지다.

호주에서 가족 개념의 범주는 한국보다 훨씬 넓다. 호주에서 가족은 법적 부부관계에 기반하는 것이 아니다. 동거 커플, 형제나 자매 등의 동거 형태, 한부모가정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모두 법으로 인정한다. 따라서 호주는 비혼 커플이 낳은 아이건 법적 부부관계에서 낳은 아이건 아무런 차별 없이 동등한 지원을 한다.

일본인 남자친구와 현재 떨어져 살고 있는 정씨는 한부모가정으로 분류돼 더 많은 지원을 받기도 한다. 매달 받는 돈을 합하면 30만원이 넘는다. 여기에 보육비도 지원되고 보육시설도 정씨의 근로시간인 주 52시간 내내 이용할 수 있어 아이를 기르는 데 큰 부담이 없다. “지금은 남자친구가 일본으로 돌아간 상태예요. 한두 달에 한 번씩 들어와서 며칠씩 아이를 만나고 가요. 나중에 아이가 좀 크면 일 년에 두세 달은 아빠와 같이 지내도록 할 거예요.”

만약 정씨가 한국에 있었다면 아이를 낳을 수 있었을까. “우선 남자친구를 만나 결혼하는 일부터 생각했겠지요. 결혼하려면 같이 사는 방법부터 생각했어야 하고, 집부터 마련했겠죠. 돈이 없고, 일이 힘드니 막상 결혼해놓고는 아이 낳을 생각을 못 했을 수도 있어요. 제 친구 중에 그런 애들이 좀 있거든요.”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든 아이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책임을 진다. 유럽·북미·호주 선진국들이 저출산 문제에 임하는 자세다. 여기에는 출산 전 결혼 같은 엄격한 제도의 문제가 개입되지 않는다. 결혼을 했든 하지 않았든 태어난 아이는 무조건 보호받고 지원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 정씨는 “계획한 임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이를 낳을지 말지 고민했는데 호주에서 아이 낳고 기르는 데는 결혼 여부가 큰 문제가 안 된다는 주변의 조언을 듣고 출산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아이가 생겨도 낳지 않는다

독일의 경우를 보자. 독일은 1970년 2.03명이던 합계출산율이 1970년대 후반에 1.5명대로 떨어졌다. 주변 유럽 국가에 비해서도 낮은 출산율은 1995년에는 1.25명을 기록하며 최저점에 달했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에는 서서히 회복해 2015년에는 30여년 전 수준인 1.50명으로 회복했다. 원동력은 바로 비혼출산이었다.

신옥주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국젠더법학회장이다. 신 교수는 “비혼출산과 양육에 대한 지원이 충분했던 것, 특히 단독양육모에 대한 지원이 체계적으로 성립되고 난 뒤부터 독일의 출산율이 회복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독일에서는 결혼하지 않은 채로 아이를 낳았다는 뉘앙스가 포함된 ‘미혼모’라는 말 대신 좀 더 객관적인 ‘단독양육모(Alleinerziehende)’라는 단어를 쓴다.

신 교수의 설명에 따라 독일에서 단독양육모가 아이를 낳고 기르는 과정을 따라가 보자. 독일은 임신 12주 이내에는 자유롭게 낙태를 할 수 있는 낙태 허용국가다. 그래서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를 가지게 되면 우선 ‘임신갈등’ 문제를 해결하는 단계부터 국가가 개입한다. ‘임신갈등’이란 아이를 낳을지 낙태할지를 고민하는 상황을 말하는데 독일에서는 임신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전문상담원은 물론 전문상담시설까지 갖추고 있다. 갈등단계를 거쳐 아이를 낳겠다고 결심한 사람은 독일 기본법에 의해 보호된다. 독일 기본법 제14조 제5항은 다음과 같다.

‘혼인 외 출생 아동에게 법률 제정을 통해 그들의 육체적·정서적 발달과 사회 내에서의 지위를 위하여 혼인 중 출생 아동과 같은 동일한 조건들이 형성되어야 한다.’

독일의 단독양육모는 연간소득 중 약 1300유로에 대해 면세 혜택을 받는다. 양쪽 부모가 있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같은 출산휴가와 부모수당을 받는다. 특히 단독양육모는 기초보장이나 실업수당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양 부모 가정보다 더 지원받을 수 있다. 각종 생활보조금이나 가사 지원, 질병아동 지원 같은 혜택도 적용된다. 이런 정책은 2010년 이후 자리 잡기 시작했는데 독일의 출산율이 반등한 시점도 2010년부터다.

우리나라에서도 미혼모들의 대다수는 여건이 허용한다면 아이를 직접 기르고 싶어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아이를 기를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미혼 상태에서 아이가 생겨도 낳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고 낙태가 불법이지만 낙태가 만연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엄연히 존재한다.

이 상황에서 아이를 기꺼이 낳아 기르겠다고 결심한 양육 미혼모들에게 충분한 지원이 이뤄져야 하는 것이 당연해 보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공식적으로 양육 미혼모에 대한 통계를 수집한 것도 2015년이 처음이다. 2015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양육 미혼모는 2만4000여명이다. 이들 대다수는 경제적 빈곤, 사회적 차별에 시달리고 있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채 만삭일 때 남편이 심장마비로 사망해 미혼모가 될 수밖에 없었던 김은희 대구미혼모가족협회 대표는 “아이를 낳으라고 애원하면서도 아이를 낳고 나면 ‘왜 결혼하지 않았냐’는 얘기를 듣는 게 양육 미혼부모들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미혼부모는 아이를 기를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임신과 출산을 경험한다. 아이에 대해 책임지겠다고 결심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 부모가 함께 아이를 돌볼 수 있는 대다수 가정과 달리 한부모가정에서는 아이 양육과 경제활동을 한 사람이 동시에 해내야 한다. 김은희씨도 같은 과정을 겪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저는 공무원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이 아빠가 갑자기 사망하고 아이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오니 도저히 일과 가정을 양립하기가 어렵더군요. 자연히 일을 그만두게 됐는데 몇 년 되지 않아 모아둔 돈까지 다 떨어졌습니다. 시간당 임금을 받는 가사도우미 일까지 하게 됐지요.”

미혼부모에게 쏟아지는 암묵적 편견과 비난의 시선은 어떻게든 견뎌낼 수 있다. 그러나 실제적인 고통은 차별과 빈곤이다. 김혜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심각하다는 데 동의하는 미혼모는 89%에 달한다. 구체적으로 취업할 때 차별을 경험한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연구원의 2009년 조사만 봐도 임신·출산기에 직장을 그만두거나 해고당했다는 미혼모는 전체의 93%다.

가정을 혼자 지켜야 하는 미혼부모를 도와주는 제도는 없다시피하다. 김은희씨만 해도 국가에서 매달 12만원 지원받는 것이 전부다. 그마저도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면 중복 지원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대다수 미혼부모들은 경제적 빈곤과 더불어 사회적 차별에 시달린다. 김씨의 말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아이가 생겨 기꺼이 책임지겠다고 생각하고 낳았는데, 어려움만 지속된다면 누가 ‘아이를 낳으라’고 권하겠습니까.”

사정이 이렇다 보니 비혼 상태에서 아이가 생기면 ‘아이를 낳아 기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한국의 비혼출산율은 1.9%로 다른 유교문화권 국가에 비해서도 유독 낮은 편이다. 비혼 상태에서의 임신은 일탈적 행동으로 손가락질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난해 10월 아이를 낙태한 29살 동갑내기 커플 박정민·김유진(가명)씨는 이런 현실과 맞닥뜨렸다. 두 사람은 경기도 부천시의 한 연립주택에서 2년째 동거 중이다. 박씨는 “둘 다 지방에서 올라와 자취하고 있었는데, 월세도 아낄 겸 어차피 거의 매일 만나고 있었으니 자연스럽게 동거를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씨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안 것은 지난해 10월. 임신 2개월 차였다.

“처음에는 마냥 기쁘기만 했는데 곧 현실적인 문제를 고민하게 됐습니다. 제가 올해 가을 미국으로 유학할 계획이 있어서 결혼을 하게 되면 5~6년 뒤에 하자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두 사람은 우선 김씨의 부모에게 아이를 가진 사실을 알렸다. 김씨는 “동거 사실도 모르던 엄마 아빠가 펄쩍 뛰며 화를 냈다”고 말했다. “당장 결혼할 생각이 없으면 왜 아이를 가졌냐고 하더군요. 무책임하다, 부도덕하다 화를 내시는데 ‘아이를 기르다가 남자친구가 귀국하면 결혼하겠습니다’라고 말을 못 하겠더라고요.”

박씨와 김씨도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를 키우는 일이 어려운 일이라는 현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박씨는 “우선 혼인신고만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울까도 생각했는데 한참을 떨어져 지내야 하는 상황, 부모의 반대, 주변의 시선 같은 것을 고려해 보니 아이를 지우는 게 답이었다”고 말했다.

변수정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최근 비혼 동거가족의 출산 및 양육실태에 대해 보고서를 내놓았다. 변 연구위원은 먼저 “최근 들어 동거는 책임감 없는 행동이 아니라 현실의 상황에서 선택한 합리적 행동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동거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해 본 결과 단순히 ‘경제적 문제로’ 동거하는 경우는 전체의 24.1%에 불과했다. 결혼제도나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살고 싶어 동거를 선택했다는 응답자도 13%나 됐고, 결혼계획은 없지만 의지하며 지내고 싶어 같이 살고 있다는 사람도 19%에 달했다.

요하임 가우크 전 독일 대통령과 17년째 동거 중인 다니엘라 샤트는 공식석상에서 부부로 대접받는다. ⓒphoto AP
요하임 가우크 전 독일 대통령과 17년째 동거 중인 다니엘라 샤트는 공식석상에서 부부로 대접받는다. ⓒphoto AP

비혼출산 지원=비혼출산 장려?

그런데 이런 동거 커플의 대다수는 임신·출산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자녀가 있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79.1%에 달했지만 실제로 동거 중 임신·출산 계획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4.7%에 불과했다. 그 원인은 우리 사회에서는 동거 커플을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동거 커플은 ‘결혼하지 않은 채’ 임시로 같이 사는 사람들에 불과하고 일탈적인 관계인 사람들로 취급된다.

이로 인해 동거 커플이 몇 명이나 되는지에 대한 통계는 거의 없고, 동거 커플이 출산 혹은 혼인의 단계로 진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스템도 없다. 변수정 연구위원의 말을 들어 보자.

“아예 무자녀를 계획하고 동거를 선택한 사람은 어쩔 수 없지만, 동거했기 때문에 자녀를 낳지 않는 현상은 막아야 한다. 어떤 가족이든 가족으로 안정적인 삶을 추구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다면 출산에 대해 고려하게 될 것이다. 자녀가 없는 동거 부부 중에 경제적 상황을 이유로 꼽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혼인 여부와 상관없이 자녀가 생기면 충분히 지원해줄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비혼출산에 대한 지원을 말하면 반발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다. 비혼출산을 지원하자는 얘기를 곧 비혼출산을 장려하자는 얘기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삼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저출산고령화대책 기획단장은 “저출산 대책은 사회의 변화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며 “비혼출산에 대한 지원은 변화를 수용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비혼출산을 지원하는 일은 곧 어떤 방식으로 태어난 아이든지 국가가 책임지고 길러주겠다는 정책 방향을 보여주는 일이다. 극심한 저출산 사회에서 아이가 태어나 양육되는 일이 부모의 혼인 관계나 경제적 상황에 따라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 ‘낳기만 하면 기르는 것은 국가의 몫’이라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궁극적으로는 어떤 가정 형태든 평등하고 안정적으로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는 상황이 오면 저출산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비혼출산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들에 대한 지원 대책을 수립하지 않는다면 저출산을 극복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낮은 비혼출산율은 그만큼 한국 사회가 비혼출산에 부정적이라는 현실을 반영한다. 만약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를 낳아도 충분히 지원받을 수 있다면 아이 낳기를 결심하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미혼모의 출산과 양육에 대해 상담하고 있는 김은희 대구미혼모가족협회 대표의 설명이다.

“얼마 전부터 저소득층 미혼모에게 기저귀값과 분유값을 지원하는 정책이 생겼어요. 돈으로 따지면 얼마 되지 않는 건데, 이거 하나가 아이를 낳을까 말까 고민하는 미혼모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더라고요.”

앞으로 한국의 가족 형태가 어떻게 변할지, 이 변화에 맞춰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부터 시작돼야 하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특례법으로 ‘특별 취급’ 받는 비혼출산에 대한 인식부터 없어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영미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대표는 “한부모가족만을 따로 지원하는 한부모가족지원법이 아니라 한부모가족도 다른 가족과 마찬가지로 평등하게 대우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혼 상태에서 아이를 출산하는 것이 유별난 일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아이를 낳고 기르는 과정 중 하나”라는 설명이다.

즉 어떤 방식으로 아이를 낳고 기르든지 존중받고 나아가 국가의 보호와 지원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결혼할 마음이 없는 청년을 설득해 결혼에 이르고 출산을 결심하도록 만드는 과정보다 훨씬 더 유연한 현실적인 방법이다. 매년 100건 가까이 일어나는 아동 유기 범죄에서 아동을 보호할 방법이고, 통계로 집계도 되지 않는 불법 낙태에서 모성을 보호할 수 있는 대안이다. 다양한 환경에서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도록 도와줌으로써 어떤 상황에서든 아이를 책임질 준비가 된 사회라는 것을 청년들에게 인식시키는 것. 이것이 저출산을 극복하는 방법이다.

프랑스 PACS(시민연대협약)의 교훈

다양한 가족 형태 인정… 비혼출산율 1970년대 비해 8배

프랑스 법무장관을 지낸 라시다 다티는 2009년 장관 재직 시절 미혼으로 임신해 출산했다. ⓒphoto AP
프랑스 법무장관을 지낸 라시다 다티는 2009년 장관 재직 시절 미혼으로 임신해 출산했다. ⓒphoto AP

프랑스는 비혼출산을 저출산 극복 원동력으로 적극 활용한 대표적인 국가다. 1994년 프랑스의 합계출산율은 1.66명으로 1960년대 이래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후 꾸준히 출산율이 회복되는 모양새를 보이더니 2004년 들어서는 1.90명을 넘겼고 2010년에는 2.02명을 기록했다. 2015년에도 1.92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는 다른 유럽 선진국과 비교해서도 높은 수치다.

프랑스는 어떻게 저출산을 극복할 수 있었을까. 전문가들은 프랑스의 높은 비혼출산율에 주목하고 있다. 1970년대만 하더라도 프랑스의 비혼출산율은 7%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해가 갈수록 높아져 2006년에는 50%를 돌파했고 2012년에는 56.7%에 달했다.

프랑스의 비혼출산율이 높아진 이유는 비혼출산을 지원하는 제도가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고승연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일시적으로 출산율이 하락하자 프랑스 정부는 ‘모든 아이는 국가가 키운다’는 적극적인 자세로 정책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프랑스에서는 출산 전후 9개월간 유아수당을 지급받는다. 출산 후에도 부모의 근로 유형에 따라 다양한 보육수당이 주어지고 대다수 프랑스 아이들은 공립 유치원에 다닌다. 프랑스에서 출산과 육아에 관련된 예산은 GDP의 5%가 넘는데 말 그대로 “아이는 국가가 키울 테니 아이를 낳기만 하라”는 방침에 따른 것이다.

모든 지원은 결혼 여부를 가리지 않고 지원된다. 프랑스는 전통적인 가족 개념에서 일찍 벗어난 국가 중 하나였다. 혼인율은 꾸준히 떨어지고 있었는데 대신 프랑스 젊은이들은 동거를 하거나 자유로운 결합을 통해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프랑스어로 ‘탈결혼(demaraiage)’이라는 용어가 생길 정도로 프랑스에서는 결혼하지 않고 함께 사는 형태의 가족이 급격하게 증가했다. 1990년대 프랑스의 동거 비율은 80% 후반대였다.

이런 추세를 반영해 프랑스에서는 1999년 PACS(팍스·시민연대협약)라고 불리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제도를 도입했다. PACS를 선택한 동거 커플은 법적으로 미혼자이지만 일정한 사회보장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세금 납부나 주택 거래, 사회복지서비스에서 법적 혼인 관계에 있는 부부들과 차이가 없어졌다. 대신 법적 절차를 거쳐야 하는 혼인 관계와 달리 PACS는 문서 한 장만 제출하면 된다. PACS를 체결했다가 해지하는 과정 또한 문서 한 장으로 끝난다.

비혼출산율이 높아진 데는 이런 제도가 뒷받침되었다. 굳이 결혼에 얽매이지 않고도 관계를 맺을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아이를 낳더라도 국가가 양육 부담을 덜어주니 임신과 출산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PACS와 같은 제도를 도입하는 것을 고려해 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변수정 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PACS 제도는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하는 상징적인 제도이기는 하나 우리와는 다른 사회적 환경에서 형성된 제도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거 커플이 얼마나 있는지 통계조차 없는 상황에서 갑자기 PACS를 도입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프랑스는 가족이 아이의 양육을 전적으로 책임지지 않아도 되고 대신 아이를 낳으면 국가가 길러준다는 인식과 환경이 마련됐기 때문에 비혼출산율이 올라갔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해 억지로 비혼출산율을 올리거나 아직 적은 비혼출산 수를 지나치게 주목해 지원할 필요는 없다. 그것보다 혼인 여부, 경제적 상황에 상관없이 마음 놓고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면 청년들 역시 상황에 구애받지 않고 출산을 결심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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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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