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부천시가 신세계백화점 유치를 추진해온 부천영상문화단지 내 주차장 부지. ⓒphoto 이동훈
경기도 부천시가 신세계백화점 유치를 추진해온 부천영상문화단지 내 주차장 부지. ⓒphoto 이동훈

지난 5월 22일 찾은 경기도 부천의 상동영상문화단지는 한가롭다 못해 썰렁했다. 단지 내 한국만화박물관이 월요일 정기휴장한 탓인지, 단지 휴게시설로 조성한 식당과 커피숍도 한산하기는 마찬가지다. 너른 공터에 마련된 주차장은 텅텅 비어 나대지처럼 방치돼 있었다. 금싸라기 수도권 땅을 이렇게 놀려도 되나 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다. 신세계가 부천에 쇼핑시설 건립을 추진한 곳이 바로 부천영상문화단지다. 신세계 측은 당초 큰길(길주로)과 맞닿은 영상문화단지 주차장 터에 최근 경기도 하남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복합쇼핑몰인 ‘스타필드 부천’을 건립하려고 했다.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중동나들목(IC)을 바로 옆에 낀 사통팔달 교통 여건에, 바로 옆 한국만화박물관, 북쪽의 아인스월드, 남쪽의 부천상동호수공원, 웅진플레이시티와 함께 지역의 새 명소로 떠오르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부천 시민들은 한껏 기대를 걸었다. 부천시 역시 신세계 부천 유치를 적극 추진해왔다. 청년일자리 창출과 지방세수 확대가 기대됐다.

하지만 스타필드 부천 건립 계획은 바로 옆 지자체인 인천광역시 부평구와 부평시장 상인회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다. 부평구측은 “신세계가 들어오면 부천 시민들은 부평구 관내 화장장(인천시립 승화원)을 이용하지 못하게 막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더불어민주당 ‘을(乙)지로위원회’까지 전통시장 보호를 명분으로 가세해 신세계와 부천시를 압박했다. 부평시장 일대를 지역구로 둔 정유섭 자유한국당 의원(초선·인천 부평갑)까지 당적을 초월해 여기에 가세했다. 심지어 부평에서 몰려온 소위 ‘부평구 상인연합회’ 회원들이 부천시청 안에 난입해서 텐트를 치고 불법 점거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한국전쟁 전후로 부평 산곡동에 주둔하던 미군기지(캠프 마켓)에서 흘러나온 군수물자를 매매하며 부평역 앞 ‘양키골목’(현 부평 문화의 거리)을 중심으로 상권을 형성한 부평시장 상인들은 원래 드세다는 평가를 받는다. 결국 특색 없는 신세계백화점 건립 계획으로 축소됐다가 지난 5월 12일, 부천시와 맺을 예정이던 부지 매입 계약을 보류했다. 지난 5월 9일 대선으로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직후 벌어진 일이다.

부평 상인들에게 습격당한 부천

신세계 유치를 공들여 추진해온 부천시 측은 발끈하고 있다. 인근 인천 부평구가 자기 관할구역도 아닌 부천시 경내에 들어오려던 쇼핑시설에 감 놔라 배 놔라 간섭하는 통에 역점적으로 추진해온 쇼핑시설 건립이 사실상 표류하고 있어서다. 부천시는 신세계 유치를 통해 청년일자리 창출은 물론 지방세수 증대를 기대해 왔다. 부평의 반대에 마지못해 창고형 대형마트(이마트 트레이더스)와 복합쇼핑몰도 다 떼어내고 백화점만 남기기로 했다. 당초 쇼핑시설 규모도 7만6034㎡에서 3만7374㎡로 절반 가까이 줄여서라도 어떻게든 유치하려 했다. 김만수 부천시장은 지난 5월 1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부천시는 인근 전통시장의 요구를 받아들여 이마트 할인매장을 제외하고 사업부지 면적도 절반으로 축소한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인천에선 사업 자체를 하지 말라는 식입니다. 현재 인천시에 추진 중인 백화점도 아니고 대형 복합쇼핑몰이 청라 송도 등지에 5개가 넘는다고 하는데 이것도 다 반대해서 백지화할 건지 지켜봐야겠습니다.”라며 분을 삭였다.

부평구의 주장에도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신세계백화점 예정지가 부천 땅임에도 부평과 심리적으로 더 가깝다는 것이다. 부천과 부평은 대략 남북으로 나 있는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를 기준으로 동서로 나뉜다. 이곳은 바로 아래 상동호수공원과 함께 외곽순환고속도로 서쪽에 있음에도 행정구역상 부천에 속해 있다. 영상문화단지에서 부천으로 가려면 왕복 8차선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아래를 가로질러야 한다. 도보로 가려면 육교를 오르내려야 한다. 영상문화단지에 꽂아둔 ‘문화특별시 부천’이란 초대형 입간판이 아니면 부평 땅으로 착각하기 십상이다. 부천시 도시정책과의 한 관계자는 “원래 부천과 부평의 경계에 있던 자연녹지 지역”이라며 “유원지로 개발할 계획을 세우고 경륜장 등을 유치하려 했으나 광명(광명 스피돔)에 빼앗겼고, 세트장 등으로 임시적으로만 활용하면서 20년간 방치된 땅”이라고 했다. 영상문화단지에서 부천시청과 부평구청까지는 거리로도 동일하게 2㎞, 단지 아래 지하철 7호선 삼산체육관역에서도 부천시청과 부평구청은 각각 두 정거장으로 동일하다.

쇼핑시설 건립 시 부평구 관내의 롯데마트 삼산점(부평)을 비롯해 부평시장, 멀리는 부평역 지하상가까지 직접 영향권 안에 들어간다. 실제 부천시에 홈플러스 상동점, 현대백화점 중동점, 이마트 중동점, 롯데백화점 중동점(옛 GS백화점) 등 대형 쇼핑시설이 연거푸 들어섰을 때 상당수 부평 주민들은 주차장도 협소하고 에어컨도 없는 부평시장 대신 쾌적한 쇼핑 환경을 찾아 인천시에서 경기도(부천)로 원정쇼핑을 떠났다. 부평에서 온 쇼핑객들을 태우고 돌아가기위해 부천시 관내 백화점과 대형마트 앞에는 인천에 차고지를 둔 택시들이 지금도 항상 대기해 있다. 자연히 관내 상인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수밖에 없는 부평구 측에서는 사활을 걸고 부천시의 쇼핑몰 건립에 제동을 건 것이다. 부평구 입장에서는 옆 동네에 대형 쇼핑시설이 들어선다고 해서 직접적으로 지방세수가 느는 것도 아니니 ‘다 된 밥에 재 뿌리기’ 식으로 막아설 수밖에 없는 셈이다.

부평구 관내 대형마트만 4곳

백화점 건립을 둘러싼 두 지자체 간의 행정 갈등에 애꿎은 기업만 투자 적기(適期)를 실기했다. 신세계와 부천시 측은 사업을 추진하면서 아홉 차례가 넘는 크고 작은 재협상을 진행했다. 신세계로서는 진입장벽에 가로막혀 톡톡히 수업료를 내고 있는 셈이다. 조직화된 시장상인들의 말에만 귀 기울인 탓에 더 크고 더 좋은 쇼핑시설을 기대해온 일반 지역주민들의 요구는 철저히 무시됐 다. 그 결과 현대백화점 중동점과 롯데백화점 중동점에 이어 신세계백화점까지 국내 3대 백화점을 모두 품으며 분당신도시(성남시), 일산신도시(고양시) 급으로 도시 가치를 제고하려던 부천시의 계획에도 제동이 걸렸다. 심지어 부평구에는 2003년 현대백화점 부평점 폐점으로 롯데백화점 부평점을 제외하면 변변히 내세울 만한 백화점조차 없다.

롯데백화점 부평점도 최원석 회장의 동아건설이 1986년 부평 동아아파트(4603가구)를 조성하면서 아파트상가 형태로 만든 동아시티백화점이 전신이다. 이후 IMF 경제위기 와중에 동아건설이 쓰러지면서 롯데가 이를 인수해 1999년 롯데백화점 부평점으로 간판만 바꾼 것이다. 상품구색, 매출액 등에서 인천 시내나 부천 지역 백화점에 비하면 구멍가게 수준이다. 지난해 매출은 1119억원으로 전국 69개 백화점 가운데 꼴찌다. 이마저도 곧 매각해야 한다. 2013년 공정거래위원회가 롯데백화점의 인천터미널 내 신세계백화점 인수를 승인하면서 인천 지역 기존 백화점 처분 명령을 내리면서다. 하지만 딱히 인수 후보조차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엄밀히 말해 부평시장의 상권을 빼앗아간 것은 부평시장을 포위한 롯데마트 부평역점, 부평점, 삼산점(부평) 등 대형마트다. 전통시장 보호 논리를 펴는 부평구는 정작 2000년대 초반부터 관내에 롯데마트 부평역점(2000년), 롯데마트 부평점(2006년), 롯데마트 삼산점(2007년) 등 동일 기업의 대형마트를 3곳이나 허가했다. 1995년 개점한 이마트 부평점까지 합하면 무려 4곳의 대형마트가 부평구에 몰려 있다. 게다가 부평구와 부평구시설관리공단은 관내 롯데백화점 부평점 앞의 도로를 뚝 떼내서 공영주차장(총 112면)을 조성해 사실상 백화점 주차장처럼 전용토록 하고 있다. 주차공간이 절대 부족한 롯데백화점은 공영주차장을 통해 주차난을 해소할 수 있었다. 사실상 특혜에 가까운 막대한 행정편의라는 지적이다. 부평구 관내 3곳의 롯데마트와 롯데백화점은 부천영상문화단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부평시장과 가깝다.

사정이 이런데 관내 부평시장 상권 보호를 핑계로 옆 동네 백화점 건립 계획에까지 왈가왈부하는 것은 ‘누워서 침뱉기’란 지적이다. 재래시장과 백화점은 타깃고객층과 상품구색이 달라 경쟁 대상이 될 수 없다. 부천영상문화단지의 신세계백화점 건립 무산 시 가장 수혜를 보는 것은 부평시장 상인들이 아니고 신세계와 직접 경쟁관계에 있는 ‘롯데’라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일관성 없는 행정에 시장 상인들은 상인들대로 불만이고, 주민들은 쇼핑 등 편의시설 미비로 인천시내를 가로질러 새로 대형 쇼핑몰이 들어선 송도신도시까지 오가야 하는 신세다. ‘부자 부(富)’ 자가 들어가던 부평이 점점 낙후하고 쇠퇴한 지역으로 전락하는 것이 누구 탓인지 되짚어봐야 할 때다.

부천과 부평 갈등의 뿌리

조선시대 ‘부평부’ 한솥밥 먹다 갈라져

(좌) 김만수 부천시장. (우) 홍미영 부평구청장.
(좌) 김만수 부천시장. (우) 홍미영 부평구청장.

부천시와 부평구 간의 행정 갈등은 오랜 관할 문제와 맥락이 닿아 있다. 사실 인구 84만명의 경기도 부천시와 인구 54만명의 인천광역시 부평구는 조선시대 때만 해도 ‘부평부(府)’란 행정구역 안에서 한솥밥을 먹었다. 원래는 지금의 인천을 관할로 둘 정도로 큰 고을이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때인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부평에서 부천군이 떨어져 나가면서 두 집 살림이 시작됐다. 이후 원 부평은 1940년 인천에 편입됐고, 떨어져 나간 부천군은 1973년 소사읍(현 소사동)을 중심으로 부천시로 승격됐고, 노태우 정부 때인 1989년 부천시 관내 중동이 1기 신도시(분당·일산·중동·평촌·산본)로 지정되면서 시세(市勢)가 대대적으로 확장됐다.

하지만 부천시와 부평구는 함께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안에 있어 경계 자체가 모호하다. 특히 부평에서는 광학산, 만월산, 원적산 등 산을 넘어가야 하는 인천 원도심보다 부천이 지리적·심리적으로 더욱 가깝다. 부평과 부천을 동서로 관통하는 지하철도 2개 노선(1호선, 7호선)을 갖고 있다. 이에 사실상 동일 생활권을 형성하고 있다. 부천의 경우도 행정구역상 경기도에 속했다지만 인천시와 더욱 가깝다. 부천은 지역번호도 경기도(031)가 아닌 인천광역시(032) 번호를 사용하고, 관할지검과 지법도 수원지검·지법이 아닌, 인천지검·지법이다. 심지어 부천시 관내 외국인들을 상대하는 출입국관리사무소도 인천출입국관리사무소다. 부천을 처음 찾는 외지인 중 십중팔구는 이곳이 경기도인지 인천인지 자연히 헷갈리기 마련이다.

주민들의 정치 성향도 비슷하다. 신세계 부천 유치를 둘러싸고 날 선 공방전을 벌인 김만수 부천시장과 홍미영 부평구청장 모두 더불어민주당 소속 친노(親盧) 정치인이다. 김만수 시장은 부천시의 터줏대감인 원혜영 의원(5선·부천오정) 보좌관 출신으로 부천시의원을 거쳐, 노무현 캠프 공보팀장, 청와대 춘추관장, 대변인을 차례로 지냈다. 홍미영 부평구청장은 여성ㆍ빈민운동가 출신으로 부평구의원, 인천시의원을 거쳐 노무현 캠프 정무2팀장, 17대 국회의원(비례대표), 노무현재단 자문위원을 지냈다. 한솥밥을 먹던 동네에서 한솥밥을 먹던 토착 정치인들끼리 이전투구를 벌이는 중이다.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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