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부터 영화가 개봉되기를 고대했다. 특정 영화의 상영을 손꼽아 기다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덩케르크(Dunkirk)’. 이미 그는 두 편의 전작(前作)으로 높은 점수를 받았던 터였다. ‘인셉션’과 ‘인터스텔라’. 더 이상의 설명은 사족이다. 그런 놀란이 각본을 쓰고 연출한 ‘덩케르크’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생겼다.

영화 ‘덩케르크’를 기다린 이유는 감독이 크리스토퍼 놀란이라는 사실 말고도 또 있다. 지난해 우연히 덩케르크 철수작전에 대해 쓴 책을 읽어서다. 솔직히 고백하면, 이때까지 덩케르크 철수작전에 대해 알지 못했다. 덩케르크 철수작전의 스토리가 생생히 남아 있는데 때마침 동명의 영화가 나온다니 어찌 설레지 않을 수 있을까. 결과는 명불허전! 일주일 사이에 ‘덩케르크’를 두 번 봤다. 두 번 모두 마지막 엔딩 크레딧까지 확인했다.

나치 독일이 1939년 9월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2차대전이 발발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즉각 독일에 대해 선전포고를 한다. 윈스턴 처칠은 프랑스 방어를 위해 영국원정부대(BEF)를 파견한다. 덴마크와 노르웨이를 함락한 나치 독일이 벨기에와 네덜란드를 유린하고 프랑스를 침공한 것은 1940년 5월 10일. 독일군은 BEF, 프랑스군, 벨기에군, 네덜란드군을 포위하는 데 성공한다. 그곳이 벨기에와 인접한 항구도시 덩케르크. 처칠은 전원 철수를 명한다. 선박이 모자라자 구축함 외에도 민간 선박을 징발한다. 요트, 어선 등 800척 이상이 징발에 응했다. 5월 26일부터 6월 4일까지 열흘간 영국군을 포함한 33만8226명이 천신만고 끝에 영국 땅을 밟는다.

이 영화에 독일군은 등장하지 않는다. 철수작전을 저지하려는 독일 공군과 U보트만이 등장한다. 감독은 담담하게 있는 그대로를 보여줄 뿐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크게 보면 병사, 사령관, 전투기 조종사, 징발된 요트의 선장 4인이다. 그 누구도 영웅적인 행동을 하진 않는다. 이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만을 성실하게 수행할 뿐이다. 전투기 조종사는 귀대할 기름이 부족한 것을 알면서도 철수작전을 방해하는 독일 전투기를 두고 차마 돌아갈 수 없어 전투를 벌인다. 그러다 한 대는 추락하고 두 대는 비상착륙한다. 징발된 요트의 선장은 덩케르크로 가던 중 표류 중인 해군 장교를 구조한다. 장교는 요트가 덩케르크로 간다는 말에 “거기 가면 죽는다”며 집으로 가게 해달라고 애원한다. 선장은 한마디 던진다. “독일군이 영국해협을 건너면 집도 없어져.”

영화는 바다의 실체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병사들을 가득 태운 병원선(船)이 한밤중 U보트의 어뢰 공격을 받고 탑승객 대부분이 순식간에 수장(水葬)되는 광경에서는 가슴이 답답하다. 2010년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 공격을 받아 두 동강 나며 승조원 46명이 사망한 장면이 연상돼서다.

덩케르크 철수작전 10년 뒤 한반도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전개되었다. 1950년 12월,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흥남부두. 철수하는 UN군을 무작정 따라나온 적국(敵國) 주민들이 몰려들어 흥남부두는 아비규환을 이뤘다. 이들을 무시하고 유엔군만 태우고 철수해도 뭐라 할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미군은 가련한 북한 주민을 한 사람이라도 더 태우려 공간을 차지하는 무기를 바다에 버렸다. 미국인의 인도주의가 북한 주민 10만명을 살렸다. 세계 전쟁사에 전무후무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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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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