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관 오늘은 ‘혹성탈출: 종의 전쟁’(War for the Planet of the Apes·감독 맷 리브스)을 하기로 했지요. 꽤 오랜 기간 이어지고 있는 시리즈 영화입니다.

배종옥 난 ‘혹성탈출’ 시리즈가 처음이에요. 아니, 원숭이가 주인공인 영화 자체가 처음이네요.(웃음)

신용관 첫 영화는 ‘혹성탈출’(1968)이었지요. 원제가 ‘Planet of the Apes’이니 ‘원숭이들의 행성’인 셈인데, 일본어인 ‘혹성(惑星)’이 국내 번역 제목으로 이때 처음 쓰인 뒤로 아직까지 사용하고 있네요.

배종옥 그 영화가 꽤 반응이 좋았으니까 속편이 계속 이어진 거겠네요?

신용관 원작 소설이 있는 작품인데, “서기 2673년 인류는 원숭이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야생동물처럼 지내고 있다”는 설정이 신선한 데다 찰턴 헤스턴의 호연이 볼 만했지요. 마지막 장면의 충격은 더 말할 것도 없고.

배종옥 시리즈 영화라는 게 전편에 대한 정보 없이도 관객이 충분히 즐길 수 있게 만들어야 성공한다는 게 상식이라면 나 같은 사람도 3편에 해당하는 이 영화를 당황하지 않고 재밌게 볼 수 있어야 하겠지요.

신용관 물론. 나도 1968년 작품 외에는 보지 못했으니까요.

배종옥 촬영 스케줄 때문에 아침 일찍 극장에 갔는데, 영화 보다가 몇 번이나 엉덩이를 들썩거려야 했어요. 너무 길고 지겨워서. 나중에 확인하니 영화가 2시간20분이나 되더군요.

신용관 하하, 정말 지루했나 보네요. 난 그럭저럭 흥미롭게 봤는데요. 해외에선 반응이 좋아요. 인터넷 영화평점 사이트인 ‘로튼 토마토’에서 93%의 신선도를 기록, 스펙터클과 드라마에 대한 기대감을 두루 충족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어요. 뉴욕포스트는 “찰턴 헤스턴의 팬들에게 사과를 보낸다. ‘혹성탈출: 종의 전쟁’은 동시대 영화가 때때로 과거의 작품을 능가하기도 한다는 좋은 사례다”라고 극찬을 했고요.

배종옥 가령 똑같이 원숭이가 주인공인 ‘킹콩’만 하더라도 거대한 원숭이가 발견됐다, 인간의 탐욕이 그 원숭이를 문명세계로 데려왔다, 거대 원숭이가 한 여성을 사랑한다 등등의 스토리를 통해 우리 인간세상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를 주잖아요. 하지만 ‘혹성탈출: 종의 전쟁’에 그런 게 있나요? 왜 엄청난 돈을 들여 이런 영화를 만드는지 모르겠어요.

신용관 ‘배트맨’이나 ‘어벤저스’ ‘스파이더맨’ 시리즈, 프랑스의 ‘아스테릭스’ 시리즈, ‘반지의 제왕’ 연작이 보여주듯 서구에는 만화든 소설이든 원작의 영화화(化)에 반색하는 두꺼운 층이 형성돼 있는 듯해요. 우리는 그렇지 못하지만.

배종옥 우리야 ‘로보트 태권V’나 ‘고질라’ 시리즈가 증명했듯 원작 만화의 영화화에 대해 그리 호의적이지 못하지요. 물론 완성도 문제가 있지만.

신용관 영화를 보는 이유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우리가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상상의 세계로 잠시나마 빠져들게 만드는 역할도 중요하다고 봐요. 할리우드를 ‘꿈의 공장(dream factory)’이라 부르는 이유의 하나도 그런 기능일 것이고. ‘모노노케 히메’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같은 영화에 우리가 환호하는 이유도 그 때문일 거고요.

배종옥 상상력 자체를 자극하는 그런 영화들, 필요하죠. 제목만 바뀔 뿐, 썩은 권력자들이니 조폭과 다름없는 국가기관들이니, 너무 극단적이고 작위적이라 어떤 의미에선 오히려 비현실적인 영화들만 양산하고 있는 한국 영화계로선 더욱 필요한 영화들이고요. 그러고 보니 ‘옥자’가 무척 소중한(?) 영화네요.(웃음)

신용관 내가 별 5개 만점을 괜히 줬겠습니까?(웃음) 연기 얘기 좀 해볼까요. 주인공 원숭이 ‘시저’의 대척점에 서 있는 앤태고니스트(antagonist) 대령 역할의 우디 해럴슨 칭찬이 자자합니다. ‘래리 플린트’(1996), ‘올리버 스톤의 킬러’(1994)에서 보여준 광기와 카리스마가 보인다는 평까지 있던데요.

배종옥 잘하긴 했지만, 나는 아무래도 원숭이 시저의 연기가 놀라울 뿐이에요. 그걸 모션캡처로 했다던데 눈이 완전히 사람이더군요. 말 그대로 ‘인간의 얼굴을 한’ 원숭이.

신용관 앤디 서키스라는 배우가 이전 작품을 포함, 시저의 전 생애를 표현했는데, 촬영 기간 내내 원숭이의 심정으로 살았다고 하네요.

배종옥 그토록 자연스러운 표정을 가능케 한 기술력도 대단하지만, 나는 그 모션캡처 배우가 정말 놀라워요. 배우가 연기할 때 상대 배우와의 호흡이나 인터액션이 무척 중요하거든요. 배역에 몰입하고 감정을 제대로 잡기 위해서도. 거울로 분장을 마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연습을 하기도 하고. 그런데 이걸 오로지 혼자서 상상력에 의지해 했다는 얘기니 감탄스러울 뿐입니다.

신용관 플롯은 괜찮았나요? 지루해 했다니 성에 안 찼을 것 같긴 합니다만.(웃음)

배종옥 몇몇 군데에서 다소 안일하게 처리한 듯해요. 병에 걸린 대령과 시저의 마지막 대면 장면도 아무리 ‘영화적 시간’을 고려하더라도 너무 길어요. 밖에서는 미사일이 날아다니는 전투 중인데.(웃음) 원숭이 무리가 낯선 마을에 진입할 때에도 무슨 “우리 여기 있소” 광고하듯 말 탄 채 아무런 경계 없이 들어가고.

신용관 원래 영화에서 주연급이 대사 칠 땐 기차도 출발 안 하고 대기하는 거 아닌가요?(웃음)

배종옥 ‘부산행’에서도 그랬지만, 사태가 급박히 돌아가는 상황에서 주연 배우들의 감정선을 너무 자세히 묘사하려 하다 보니 무리가 오는 거예요.

신용관 난 그건 크게 거슬리지 않았는데, 한 가지. 내가 당나귀라면 이 영화 보고 무지 기분 나쁠 거 같다는 거.(웃음) “네가 당나귀(donkey)냐? 원숭이(ape)로서의 자부심을 잃지 말아라” 하고 있으니까. 영어 ‘donkey’가 ‘바보’의 뜻이 있는 게 사실이지만 ‘슈렉’ 보세요. 덩키가 얼마나 똑똑해요.(웃음) 번역을 원숭이로 했지만 ‘ape’는 이왕이면 ‘유인원’으로 옮겼으면 더 좋았을 것 같기도 하고.

배종옥 그런가요? 내 별점은 ★★. 한 줄 평은 “CG 어디까지 가능할까?”

신용관 나는 ★★★. “인간보다 나은 원숭이의 리더십을 지켜보는 서글픔.”

신용관 기획취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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