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먼드 버크
에드먼드 버크

우리나라 보수는 풍요로운 경제를 건설하고 민주주의의 초석을 놓았다. 하지만 그들은 지나간 좋은 시절(old good days)만 되뇌며 진화의 수고로움을 회피했다. 어떠한 생명체든 진화를 멈추면 도태(淘汰)로 내몰린다. 이것이 오늘날 보수가 자초한 현실이다.

보수가 회생하려면 무엇보다 ‘나는 누구인가’에 천착해야 한다. 보수의 뿌리는 무엇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어떻게 전개되었고, 그 공과(功過)는 무엇이며, 앞으로는 어떻게 갱신되어야 할까? 이 일련의 심각한 물음에 대해 진지하게 답을 모색하는 것이 보수혁신의 단초이다. 이를 통해 한 시대에 ‘갇힌’ 보수에서 통시적으로 ‘열린’ 보수로 거듭나야 한다. 그래야 보수는 비로소 역사적인 맥락을 갖게 된다.

이런 작업의 일환으로 우리가 보수의 뿌리를 탐색하려고 할 때, 가장 먼저 통과해야 할 관문(關門)이 있다. 바로 에드먼드 버크(1729~1797)의 ‘프랑스혁명에 관한 성찰’(Reflections on the Revolution in France·1790)이다. 이 책에서 버크는 프랑스혁명을 ‘이제까지 세상에서 벌어진 일 가운데 가장 경악스러운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도대체 왜 자유·평등·박애의 상징인 프랑스혁명을 그토록 폄하했을까.

버크는 아일랜드 출신으로 영국에서 활동한 정치인이자 문필가이다. 그는 30년간 의원직을 수행하며, 영국의 헌정질서를 옹호하는 보수적인 노선을 걸었다. 그는 미국인의 자유를 고무한다는 이유로 미국 독립을 지지했다. 반면 인도인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영국의 인도 통치에는 반대했다. 오히려 당시 진보주의자인 존 스튜어트 밀은 인도를 계몽한다는 이유로 인도 통치를 옹호했다.

이처럼 버크가 세상을 바라보는 중요한 기준 가운데 하나는 자유였다. 그리고 그 기준을 어디에나 원칙적으로 적용했다. 그는 프랑스혁명이 당시 프랑스인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프랑스혁명은 공포, 폭동, 처형, 보복, 혁명, 반혁명 등으로 얼룩졌다. 그는 프랑스혁명이 무정부 상태를 초래한 다음, 군사독재로 흐를 것이라고 예언했다. 나중에 사태가 그의 전망대로 전개되자, 그의 안목은 새삼 주목을 받기도 했다.

1789년 프랑스혁명의 여파는 즉각 영국으로 밀려왔다. 일부 세력은 영국에서도 혁명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이때 마침 프랑스 지인이 프랑스혁명에 관한 의견을 물어오자, 그에 대한 장문(長文)의 답신이 바로 이 책이 된 것이다. 그럼에도 제1부 제목이 ‘프랑스 사태와 일부 영국인의 경거망동’이다. 이에 비추어, 이 책은 프랑스인의 문의에 대한 답신이자, 동시에 영국인의 ‘경거망동’에 대한 경고이기도 한 것이다.

그는 복잡한 본능과 감정을 가진 인간의 이성은 불완전하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오랫동안 발전되어온 사회적·역사적 제도들은 개인의 이성보다 우월하다. 따라서 가급적 기존 제도와 질서를 보수하되, 부득이 바꾸더라도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럼에도 프랑스혁명은 인간의 이성을 절대화하고 그에 기반해 기존 질서를 무차별 파괴했다. 그의 눈에 그것은 ‘경악스러운 일’이었다. 실제로 혁명의 성취도 지대했지만, 그 이면의 참상도 끔찍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기존 제도나 질서를 무조건 지키자고 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는 “변화시킬 수단을 갖지 않은 국가는 보존을 위한 수단도 없는 법이다”라고 역설했다. 그는 철저한 보수주의자이지만 보수하기 위해서라도 개혁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인정했다. 이처럼 그는 단순히 수구(守舊)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프랑스혁명은 비판했지만 영국의 명예혁명이나 루터의 종교개혁은 지지했다.

프랑스혁명처럼 인간의 이성이 완전하다는 신념 아래 어떠한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일시에 전면적인 변화를 시도할 것인가. 명예혁명처럼 다양한 본성을 지닌 인간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희생을 최소화하며 점진적인 변화를 시도할 것인가. 물론 이 선택은 그 사회의 특징에 따라 좌우된다. 하지만 그러한 특징은 그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관에 기반해 있는 것이다. ‘프랑스혁명에 관한 성찰’은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낡고 진부하다. 그럼에도 그것은 여전히 보수주의의 단초를 제공한 ‘경전’으로 평가된다. 거기서 비롯된 보수주의는 역사 속에서 차츰 그 모습을 뚜렷이 형성해갔다. 하지만 보수주의는 논리적으로 체계화된 철학이 아니다. 오히려 다양한 개념이 모여, 일정한 방향성을 갖도록 정돈된 사유 및 행동의 지침이다. 따라서 부득이 몇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그 특징을 짚어 볼 수밖에 없다.

‘프랑스혁명에 관한 성찰’ 초판
‘프랑스혁명에 관한 성찰’ 초판

첫째로, 인간의 이성은 불완전하고 기존의 제도나 질서는 여러 세대의 지혜가 녹아 있다. 따라서 보수주의는 과거와의 단절보다 연속과 계승을 원칙으로 한다.

둘째로, 인간은 사회적·역사적으로 서로 의존해 있는 존재인 바, 일정한 위계질서는 불가피하다. 그 속에서 개인의 자질과 노력에 따른 성취는 존중되며, 이로 인한 적절한 불평등은 사회적 활력을 자극한다. 반면, 기계적인 평등은 결국 자유도 평등도 파탄낸다고 경계한다.

셋째로, 인간의 숭고함은 자유와 자율과 자기책임 속에서 구현된다. 국가나 사회가 개인의 삶을 책임진다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현실적이지도 않다. 따라서 보수주의는 국가 개입을 배척하고 시장자율을 존중한다.

넷째로, 보수를 원칙으로 하되 필요 시 개혁에도 적극적이다. 이때 검증된 방식을 사용해 비용이나 희생을 최소화한다.

반면 진보는 대체로 그 반대이다. 그들은 역사를 단절적으로 인식한다. 새로운 단계는 이전 단계를 부정·극복하고 탄생한다. 따라서 기존의 제도나 질서는 부정된다. 이때 인간은 이성을 통해 새로운 제도나 질서를 효과적으로 창출하는 완전한 존재이다. 또한 진보는 자유나 자율이나 자기책임보다 사회적 부조(扶助)를 강조한다. 따라서 자유보다 평등이 중시되며, 시장자율보다 정부개입이 선호된다.

지금 대한민국의 보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보수의 뿌리는 무엇이고, 우리나라에서는 어떻게 전개되었고, 그 공과는 무엇이며, 앞으로는 어떻게 갱신되어야 하느냐를 놓고 밤을 지새우고 있을까. ‘프랑스혁명에 관한 성찰’은 바로 이러한 담론의 역사적 들머리라고 볼 수 있다. 보수가 바로 서는 것은 단순히 보수 자신만을 위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또한 진보를 위하는 일이요, 궁극적으로 나라를 위하는 일이다.

박종선 인문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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