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0일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화 최종 결과를 발표하는 김지형 공론화위원장. ⓒphoto 뉴시스
지난 10월 20일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화 최종 결과를 발표하는 김지형 공론화위원장. ⓒphoto 뉴시스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언제가 최적 시점인지, 그래서 그 상태가 지속되기를 원하는지 물어보면 답하기 어렵다. 또 지속가능을 위하여 얼마나 돈을 쓸 수 있는지를 물어봐도 답을 듣기 어렵다. 즉 지속가능성은 하나의 원칙일 뿐이다. ‘착하게 살기’와 마찬가지다. 오늘 지하철역에 누워 있는 걸인에게 돈을 줄지 말지에 대한 답을 주지는 못한다. 지속가능성과 싸워서 이길 수 없다. 이는 마치 상상의 용과 현실의 호랑이가 싸우는 격이 된다.

지난 10월 20일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공론화위원회는 3개월간에 걸친 공론조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여기서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재개는 59.5% 그리고 건설 중단은 40.5%로 나타났다. 압도적인 19%포인트 차로 건설 재개가 결정되었다.

공론화위원회에서 건설 중단 측에 맞서서 시민대표단을 설득하는 과정도 허상(虛想)과의 싸움이었다. 1970년대 석유파동 이후 에너지의 안정적 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 인식한 후 에너지정책이 비로소 수립되기 시작했다. 에너지정책은 안정적 공급이 목표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정책은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적 논의로 일관하였다. 안정적 공급보다 원자력, 석탄, LNG, 신재생에너지 가운데 무엇을 죽이고 무엇을 살리느냐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다.

태양광이나 풍력발전과 같은 재생에너지는 연료를 필요로 하지 않고 이산화탄소 배출이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깨끗하다고 이해한다. 그러나 이산화탄소의 배출은 발전의 과정에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태양광패널이나 풍력발전기를 제조하고 설치하고 관리하는 과정에서도 이산화탄소는 발생한다.

또 재생에너지는 전력 1㎾h(킬로와트시)를 생산하는 비용이 원자력 발전이 50원 정도인 데 반하여 220원으로 4배 이상 비싸다. 과연 동일한 재화를 생산하는데 더 비용이 많이 들고 자원 투입이 많다면 그것이 친환경적인 것일까.

또한 햇볕이 없거나 바람이 불지 않을 때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다른 발전소를 지어두어야 한다. 우리나라와 같이 인접 국가와 전력망으로 연결되지 않아서 전력을 꾸어올 수 없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결과적으로 재생에너지와 같은 양의 화력 또는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는 데 비용이 들어간다. 바람이 일정치 않거나 구름이 지나가면 전력 생산은 간헐적이다. 이를 보상하기 위해서도 양수발전이나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요구한다. 이것도 추가 비용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재생에너지의 청정한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여기에 태양광이나 풍력이 잘되는 다른 나라의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 적용되지 않는 허상들이 심어지고 전력망의 지능화를 통하여 현재 재생에너지가 가진 문제점들이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감의 허상이 심어지면 더욱 더 이기기 어려워진다. 에너지정책은 당장 전력을 공급해야 하는 현실의 문제이지 미래에 싸질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수립할 수 있는 정책도 아니고 대세를 따를 필요도 없는 문제이다.

실제로는 원자력 vs LNG의 대립

현재 우리가 당면한 문제도 실은 재생에너지와 원자력과의 대립의 문제가 아니다. 재생에너지는 현재 우리나라 발전량의 1.2%를 차지하고 있고 기존의 7차 전력수급계획에서도 2029년까지 11.9%까지 확대가 계획되어 있었다. 그런데 정부가 아무리 노력해도 이 목표가 달성되지 않은 것이다. 워낙 비싸서 보급되지 않는 것이다. 원자력이나 석탄이 많은 비율을 점유해서가 아니었다.

즉 탈원전(脫原電), 그리고 탈석탄 이후 재생에너지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LNG발전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즉 현실의 문제는 원자력발전과 재생에너지의 대립이 아니라 원자력발전을 택할 것인지 LNG발전을 택할 것인지의 문제였던 것이다. 재생에너지는 그냥 목표대로 가면 되는 것이었다. 이 경우 LNG발전이 1㎾h를 생산하는 데 160원 정도임을 감안하면 어떤 선택이 가능한지 알 수 있다.

재생에너지 1.2%에는 2018년 약 2조3000억원이 투자될 예정이다. 차액보조금이 3800억원, 보급지원이 1050억원, 투자융자가 960억원, 수출지원이 40억원, 연구개발에 5000억원 그리고 REC 보조금에 1조2800억원이다. REC 보조금은 500㎿(메가와트) 이상을 생산하는 전기 사업자가 일정비율의 재생에너지를 구매하도록 의무화한 것을 말한다. 그런데 원자력발전은 재생에너지 지원의 약 30%를 감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한국수력원자력도 한국전력으로부터 분사될 때, 값비싼 수력발전을 지원하기 위하여 원자력발전과 붙여놓은 것이었다. 즉 원자력발전이 줄어들면 재생에너지 지원을 위해서 전기요금을 올릴 수밖에 없는 게 현실적인 구조였다.

환경운동가들이 만들어낸 허상도 있다. ‘원전 위주의 발전정책을 수립하였다’ ‘경제성 위주의 발전정책을 수립하였다’ 이런 것들이다. 만일 그랬다면 원전 비중은 현재의 30%가 아니라 70%가 되었어야 했다. 또 ‘사회적 비용을 포함하면 원자력발전이 더 비싸다’ ‘방사성폐기물 처리비용과 원전해체 비용이 포함되지 않았다’ ‘원자력발전에는 세금혜택이 크다거나 정책자금이 지원된다’는 식의 허상과도 싸워야 했다. 그렇지 않다. 그랬다면 한전으로부터 ㎾h당 더 많은 돈을 받아와야만 한국수력원자력이 망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과 관련한 공론화위원회의 과정은 이러한 사회적으로 잘못 알려진 허상을 현실로 끌어내서 싸우고 그 과정을 시민참여단에 보여주어서 판단을 얻는 과정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19%포인트의 차로 시민참여단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다. 이는 일반적인 여론조사에서 찬반이 각각 절반씩으로 팽팽한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그 차이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받고, 책임감 있는 자세에서 숙의과정과 양측의 토론을 경청하는 과정을 거친 사람들의 차이라고 판단된다.

4차례의 설문이 진행되면서 점점 건설 재개로 입장을 선회하는 분들이 늘어나는 것을 나 또한 느낄 수 있었다. 또한 20대와 30대의 미래세대들이 더 많이 입장을 선회하였다. 찬반 양측의 부동층이 모두 40%로 가정한다면 실질적으로 의견 변화를 보일 만한 계층은 전체의 20%에 불과하다. 따라서 59.5%와 40.5%라는 차이는 20%를 중심으로 본다면 19.5%와 0.5%로 볼 수 있다. 과학이 공포를 압도적으로 이겼던 것이다. 현실이 허상을 이긴 것이다.

공론화위원회는 총리령에 의해서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에 국한한 권고사항을 마련하도록 되어 있었다. 공론조사의 과정에서도 시민참여단에 탈원전 정책을 논의하는 과정이 아니라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재개 여부만을 논의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원자력발전 비중의 축소 그리고 안전성 강화 등을 권고한 것은 문제가 있다.

시민참여단의 53.2%가 원자력발전 비중 축소로 나타났다는 이유로 원전 비중을 줄이도록 권고했다. 그러나 사실은 3차까지 설문에서 원전 비중의 유지 및 확대가 우세하였고 4차에서만 그런 수치가 나타났다. 그런데 이것을 근거로 무리한 결론을 유도했고 권한 밖의 권고를 하였다. 또한 제4차 설문에서 공론화위원회가 단독으로 건설 재개 시의 조치사항 4가지를 설문에 넣었다. (1)안전기준 강화 (2)탈원전 정책유지 (3)사용후 핵연료 해결방안 마련 (4)신재생에너지 투자 확대. 시민참여단의 답변을 4가지 중에 하나로 선택하도록 해놓고 이것이 마치 시민대표단이 발의한 것인 양 권고한 것도 무리였다.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끝이 아니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이름을 바꾼 탈원전 정책 그리고 대중들이 가진 허상과의 싸움이 여전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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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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