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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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는 지진이 발생하는 지역입니다. 오랫동안 응력(應力)이 쌓여 있다면 리히터 규모 7.0 내외의 큰 지진이 발생할 수 있고 실제로 발생한 적이 있죠. 1978년 공식적으로 지진 관측이 시작된 이래로는 경주와 포항 일대를 중심으로 지진이 발생했지만 아직까지 수도권이나 충청권에서는 이렇다 할 지진이 발생하지 않았어요. 지진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은 해당 지역에 힘이 쌓이고 있다는 이야기고, 이 힘이 언젠가 다 차게 되면 지진을 유발합니다. 지금 그런 위험이 있는 곳, 다시 말해 지진이 향후에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지역은 오히려 지금 지진이 발생하지 않는 곳, 즉 수도권 혹은 충청권이라고 봅니다.”

지진 전문가 홍태경 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의 말이다. 홍 교수는 지난해 경주 지진 발생 직후 한 발표에서 “경주 북동쪽이나 남서쪽 지역에서 지진이 다시 발생할 수 있다”고 예측했던 사실이 최근 규모 5.4의 포항지진과 들어맞으면서 유명세를 탔다. 지난 11월 15일 발생한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은 지난해 지진이 발생한 경주 진앙으로부터 북동쪽으로 약 40㎞ 떨어진 위치다. 홍 교수와 박사과정생들로 이뤄진 연구팀은 지난해 경주지진이 발생하기 수년 전에도 한반도의 지진 발생 가능성을 말하는 논문을 발표해 주목받았다. 지난 11월 21일 서울 연세대학교 과학원에서 홍 교수를 만났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후에 한반도 내에서 발생하는 지진활동의 양상이 변했습니다. 저희가 분석해 보니 동일본대지진 때 한반도 지각이 일본 쪽으로 끌려가는 일이 발생했고 이에 따라서 한반도 지각이 확장됐습니다. 지각이 확장되면 결과적으로 지각이 견딜 수 있는 힘의 한계가 떨어지니까 지진이 발생하기 쉬워집니다. 실제로 계산 결과도 그렇고요. 지진 발생 빈도가 급증하는 게 확인이 됩니다.”

동일본대지진은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부 태평양 연안에서 발생한 규모 9.0의 대지진이다. 지진이 잦은 일본에서도 관측 사상 가장 규모가 컸던 지진으로 꼽힌다. 홍 교수는 이 지진이 발생한 후부터 “동일본대지진으로 한반도 지각의 지진활성도가 이전과 달라졌기 때문에 큰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을 했고 이를 논문으로도 펴냈다. 그가 이 주장의 근거로 든 것이 2013년을 전후해 약 1년간 충남 보령시 앞바다, 백령도 앞바다 등에서 발생한 규모 4 이상의 지진이다. 홍 교수는 “1년간 규모 4.9 내외의 지진이 세 번이나 일어난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일로 동일본대지진 이전에는 없었던 일”이라며 “분명히 한반도에서의 지진 발생 추이와 특성이 바뀌었다고 봤고, 그래서 이후에 또 다른 큰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음을 경고한 것”이라고 말했다.

홍 교수는 최근 한반도에 지진이 빈발하는 이유로 한반도의 지각이 예년에 비해 약화돼 있다는 점을 들었다. 동일본대지진의 여파로 한반도 지각이 약화된 결과, 평소 100의 힘이 쌓여야 지진이 일어났다면 현재는 90의 힘만 쌓여도 지진이 일어나는 상황이 됐다는 설명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홍 교수는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한 방향의 지반에서는 지진파가 전파되는 속도가 느려진다”는 점을 들었다. 지진파가 전파되는 속도는 암석의 강도에 따라 일정한데, 이 속도가 느려진다는 것은 해당 지역의 지반 암석이 약화돼 있다는 얘기다. 홍 교수는 “한반도의 여러 경로에서 지진파 전파 속도를 측정해 보니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한 방향으로 최대 3%까지 속도가 떨어진 것이 확인됐다”며 “아직까지도 지반의 강도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역사적으로 한반도에서 의외로 큰 지진이 많이 발생했다는 것이 발견이 됐고 자체 연구 결과 규모 7 내외의 지진이 실제로 발생한 사례가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수학·물리 어려워 중도포기 연구자 많아

그간 지진 안전지대로 여겨진 한반도에도 1년 간격으로 규모 5.0이 넘는 지진이 두 차례 발생하면서 각계는 대책 마련으로 분주하다. 학계는 지진 원인과 대책 마련을 위한 연구와 분석으로, 정책 당국과 건축계 등은 내진 설계 의무화 등을 둘러싸고 대책을 논의하는 상황이다. 국민들의 인식 한편에도 “한반도가 결코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다”라는 의식이 자리 잡았다.

1972년생인 홍태경 교수는 국내에서는 흔하지 않은 지진학계의 젊은 학자다. 1991년 서울대 지질과학과(현 지질학과)에 입학해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호주국립대(ANU)에서 지진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진학계의 세계적 권위자인 브라이언 케넷 호주국립대 명예교수가 그의 박사과정 지도교수다. 현재는 연세대 이과대학과 대학원에서 학부생들과 대학원 학생들에게 지구물리학과 지진학 관련 수업을 하고 있다.

지진의 원인을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학계를 중심으로 한 철저한 분석과 연구가 필요하다. 하지만 한국에는 지진 연구자가 많지 않다. 홍 교수에 따르면 지진학을 전공한 국내의 박사급 연구원은 30명에서 40명 내외다. 지진을 자주 겪는 옆나라 일본은 수천 명의 연구자가 대학과 각종 기관에서 지진을 연구하고 있다. 홍 교수에게 후학을 양성하는 데 겪는 어려운 점이 어떤 것인지 물었다.

“지진학은 높은 수준의 수학과 물리를 필요로 하는 학문입니다. 지구시스템과학과가 수학과 물리를 상대적으로 많이 필요로 하지 않는 이과대학에 있다 보니 학생들이 지진학을 연구하겠다고 대학원에 들어왔다가 중도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요즘은 지진이 이슈가 되면서 학생들이 관심은 많은데 막상 대학원에 진학하면 ‘교수님 이 길은 제 길이 아닌 것 같습니다’라고 하죠. 제 생각엔 아마 우리 학생들이 애초 지구시스템과학과에 들어올 때 수학, 물리하고는 거리가 먼 분야일 거라고 생각하고 온 학생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막상 상당한 수준의 수학과 물리를 요하니까 부담스러워서 포기를 하는 거죠.”

홍 교수는 “처음에는 지진학계 연구자들이 많지 않다 보니 높은 수준의 학생들을 배출하는 것이 학계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그런 학생들을 많이 배출하기 위해 어렵게 공부를 더 시켰다”며 “현재는 학생들이 너무 어려워한 나머지 중도포기자가 늘어나 조금 더 강도를 낮추고 인력을 조금이라도 많이 배출할 수 있는 방향으로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현재 서울대, 연세대, 세종대를 포함해 주요 지방 거점 국립대학교에는 지진학을 전공한 교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배출되는 인원이 어떤 면에선 꽤 됩니다. 하지만 너무 쉽게 교육을 받고 나온 학생들의 경우에는 연구 역량이나 해당업무 맡아 할 역량이 부족해 연구기관에서 요구하는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이 때문에 지진학을 연구하는 학생들의 역량을 높이면서도 가능한 많은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점입니다.”

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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