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잡힐 듯한 구름. 풀을 뜯는 야크 떼. 보는 순간 넋이 나가는 풍경이다. 볼수록 잘 왔다 싶다. 순도 100%의 상쾌한 공기, 걷는 내내 즐겁다. 벌써 네 번이나 똑같은 길을 걸었지만 변한 게 없다. 자주 보니 더 반갑고 정겹다. 머리 위 뭉게구름을 헤아리며 히말라야 트레킹에 나섰다.
우리가 계획한 트레킹 코스는 티베트로 넘어가는 낭파라(Nangpa La)를 향하는 길을 따른다. 해발 2784m 루크라비행장에서 시작한 트레킹은 6박7일을 걸어야 낭파이고숨 베이스캠프에 도착한다. 낭파라 고개는 해발 5716m로 중국령 티베트와 네팔을 이어주고 있다. 500년 전 셀파족이 네팔로 이주할 때 밟았던 길이다. 두 나라의 전통적인 통상로였던 이 길은 2006년 9월 티베트 사람 80여명이 고개를 넘다 중국군에 붙잡히고 일부 사살된 사건이 발생하면서 단절이 됐다.
원정대는 이 길의 끝에 자리한 낭파이고숨(Nangpai Gosum·7312m)에 도전했다. 낭파이고숨은 네팔 쿰부 히말 북동부의 초오유(8201m) 능선 서단에 솟았다. 모두 3개 봉우리로 이뤄져 있는데 하나는 파상라무(7351m·과거 1봉)이며, 현재 1봉으로 불리는 낭파이고숨이 7312m 높이다. 2봉과 3봉은 네팔 현지 관광사무소 확인 결과 기록에만 존재할 뿐 GPS상에는 능선의 언덕 정도였다. 첫 등반을 시도했던 1986년 10월 일본 원정대의 실패 이후 어느 누구에게도 정상을 내어주지 않았다. ‘2017 낭파이고숨 원정대’는 35일 일정으로 동남릉 신루트로 초등할 계획을 세웠다. 김미곤(46) 대장을 비롯해 윤욱현(43), 염동우(39), 이은석(21) 4명의 대원이 지난 9월 22일 네팔에 입성했다.
대원들은 카트만두에서 경비행기로 루클라(2784m)까지 날아간 다음 약 3시간 거리인 팍딩(2610m)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내일 아침도 6, 7, 8입니다.”
팍팅에 도착해 니마(쿡)가 기상과 밥을 먹고 출발하는 시간을 알린다. 그러면서 “늦으면 밥 없다!”고 농을 던진다. ‘6, 7, 8’은 6시 기상, 7시 식사, 8시 출발이란 의미다.
벌써 날이 밝았다. 8시간이나 잤지만 갑작스레 고산에 들어선 우리의 피로를 씻어주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말 놀라운 것은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었다. 피로는 잠시일 뿐! 산안개가 내리깔린 깊은 계곡 저편에 탐세루크(6608m)가 우뚝 솟아 우릴 맞아주고 있었다. 몬조와 조르살레를 거쳐 8시간을 걸어 남체바자르(3440m)에 올라왔다. 여기까지 이르는 동안 가장 큰 매력을 꼽는다면 산, 강, 숲 등 원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순수 자연의 숨결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남체 체류 둘째 날. 고소 적응차 남체 마을 언덕에 있는 에베레스트뷰호텔(3859m)에 올라섰다. 이곳은 쿰부 히말라야의 명봉들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저 멀리 로체(8516m)와 눕체(7864m)가 거대한 장벽을 이루고 있고 그 위에 에베레스트(8850m)가 정수리만 보인다. 고소가 처음인 이은석 대원에게 하나하나 설명을 해줬다. 한결 편해진 발걸음이지만 초행자에겐 고소에 대한 두려움에 산수가 들어올 리 만무하다.
히말라야 원정은 크게 둘로 나뉘는데 등반과 트레킹이다. 등반이 6000m 이상의 산을 오르는 것으로 본다면 트레킹은 5000m 이하의 산을 말한다. 에베레스트를 비롯한 8000m급 고산 등반을 위해서는 숙련된 가이드와 셰르파, 그리고 많은 장비와 식량이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이는 돈으로 해결 가능하지만 정작 등반하는 사람의 체력과 경험은 돈으로 쉽게 살 수 없다. 일반인이 범접하기 어려운 영역이라고 생각이 들겠지만 국내에서 겨울 산행을 좀 해본 등산가라면 어느 정도 준비를 거쳐 6000m급에 도전해 볼 만하다. 그래서 원정대 대원이라면 트레킹은 기본으로 삼아야 등반도 가능하다. 하지만 트레킹의 맛과 멋은 어디까지나 서두르지 않는 느긋함에 있다.
고소 적응을 마친 원정대는 3500m 이상에서 본격적인 트레킹에 나섰다. 9월 29일. 남체를 떠나 타모(3493m)로 향하는 길은 온통 숲으로 둘러싸여 산안개로 가득 차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쾌청한 산소를 무한히 배출하는 열대우림 때문인지 그리 습하다거나 걷기가 불편하지는 않았다. 주변에는 이끼가 많고 활엽수와 잎이 넓은 식물이 많아 밀림에 들어왔다는 게 실감 났다. 어느새 수목 한계선을 지나고 고도가 높아지면서 육중한 몸집을 가진 야크의 발굽과 트레커의 발길에 트레일에서 흙먼지가 풀풀 날린다. 타모(3493m) 마을을 지나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거친 너덜 길을 지난 끝에 타메(3820m)에 다다랐다.
이곳부터 다음 목적지인 아이레(4300m), 그리고 낭파이고숨 베이스캠프까지는 길 없는 길이 이어진다. 아이레를 지나면서는 도중에 쉴 만한 롯지가 없다. 이제는 트레커들도 우리처럼 목적이 있지 않고서는 이곳을 찾지 않기 때문이다. 또다시 길고 긴 트레일을 따라 걸었다. 길 위에 남은 발자국, 발길에 차이는 돌들, 흙먼지가 날려 바짓단에 묻지만 개의치 않는다. 풀을 뜯는 야크 떼, 미니어처처럼 작은 마을, 해맑은 아이들. 걷는 즐거움을 온몸으로 느낀다. 히말라야는 깊은 협곡과 우뚝 솟은 고봉들이 즐비하지만 이처럼 대충 그린 스케치처럼 포근함과 부드러움도 있다.
7일간의 캐러밴을 마치고 원정대는 10월 2일 베이스캠프(5200m)를 구축했다. 올라오는 내내 날씨가 좋지 않았다. 에베레스트의 관문인 루크라공항은 사고가 많기로 유명한데 날씨가 좋지 못하면 이착륙이 며칠이고 미뤄지는 변수가 많다. 우리 원정대도 비행기가 뜨지 않아 카트만두에서 이틀을 체류해야 했다. 그러면서 원정물자 도착이 늦어져 일정이 약간 꼬였다. 거기에 막내 이은석 대원은 두통이 끊이지 않아 타메(3820m)에서 이틀을 체류하고 10월 5일 원정대와 합류했다.
우리가 예상했던 베이스캠프는 마지막 마을인 아이레에서 6시간 거리였다. 하지만 캐러밴 도중 너덜지대가 무너져 길이 끊어진 상태였다. 결국 빙하 건너편으로 2시간을 더 진행해 과거 프랑스 원정팀이 사용하던 곳에 캠프를 차렸다. 때문에 낭파이고숨까지 접근이 불편해졌다. 낭파이고숨이 높은 고도와 멋진 등반 라인을 갖추고도 미등봉인 이유가 있었다. 순조로운 일정 같았지만 조금 삐걱거렸다. 완벽할 순 없는 게 히말라야라고 하지만 최근 중국인들의 히말라야 진출로 더한 것 같다. 셰르파와 포터가 모두 중국 원정대에 참가해 그들보다 더 많은 웃돈을 주어야 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