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0일 이스라엘 병사가 예루살렘 구시가지 성벽 위에서 구시가 광장을 내려다보며 경계를 서고 있다. ⓒphoto AP·연합
지난 12월 10일 이스라엘 병사가 예루살렘 구시가지 성벽 위에서 구시가 광장을 내려다보며 경계를 서고 있다. ⓒphoto AP·연합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2월 6일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한다”며 “미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기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예루살렘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중 어느 나라의 수도냐 하는 문제는 지난 70년간 국제사회가 함부로 다루지 못하는 금기 중의 금기였다. 예루살렘은 세계 3대 종교의 성지(聖地)이면서 민족과 인종에 따라 정치적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각종 분쟁이 끊이지 않는 ‘세계의 화약고’이기 때문이다.

과거·현재·미래가 혼재한 도시

2015년 여름 예루살렘 특파원으로 갓 부임했을 때다. 예루살렘 시내를 둘러보다 깜짝 놀랐다. ‘마하네 예후다’란 이름의 유명 재래시장 초입에서 한 젊은 서양 남자가 알몸에 하얀 침대시트를 걸치고 서서 행인들을 향해 큰소리를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잘 알아듣기 어려운 발음으로 횡설수설하는데, 요점은 “종말(終末)이 머지않았다”였다.

이런 광경을 처음 본 사람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한참을 그의 앞에 서서 물끄러미 지켜봤다. 반면 현지에 오래 산 ‘예루살렘인(人)’은 익숙한 듯 눈길도 주지 않고 장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궁금증은 풀어야 할 것 같아 한 야채가게 남자에게 다가가 “저 사람 뭐 하는 거냐”고 물었더니 그는 벌써 몇 번은 같은 질문을 받아본 듯 곧바로 대답을 내놓았다.

“자기가 성경 속 예언자라는 환상에 빠졌다. 침대시트는 ‘토가(toga·고대 로마인이 입던 길고 헐렁한 옷)’인 줄 알고 입은 것이다.”

잠시 뒤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무슨 폭탄 테러라도 났나?’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는데 응급차가 와 침대시트를 입은 ‘예언자’를 태워갔다. 나중에 이스라엘 보건부에 문의해 보니 그는 시 외곽 지역인 크파르 샤울의 정신병원에 이송됐다. 보건부 관계자는 “예루살렘에는 종교적 망상이나 강박적 사고에 사로잡혀 특이행동을 하는 사람이 종종 생긴다”면서 “이런 현상을 ‘예루살렘 신드롬(Jerusalem Syndrome)’이라 부른다”고 했다.

신드롬의 표출 형태는 아주 다양하다. 2010년대 초반 한 오스트리아 성지순례객은 예루살렘의 한 호텔에 머물다가 호텔 주방장에게 “왜 나와 열두 제자를 위한 최후의 만찬을 준비하지 않느냐!” “내일 나는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 처형을 당할 거란 말이야”라고 시비를 걸다가 경찰에 연행됐다. 베들레헴에서는 한 아일랜드 미혼 여성이 예수 탄생 교회에 들어갔다가 갑자기 자기 아랫배를 부여잡고 “아기 예수가 태어나려 한다. 진통이 느껴진다”면서 비명을 지르며 주위 관광객들을 붙잡고 “분만 준비를 해달라”고 하는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스라엘 ‘하 아레츠’ 신문에 따르면, 예루살렘 신드롬 환자 발생 수는 연평균 약 100명에 달한다. 사흘에 한 명꼴로 ‘예언자’ ‘예수 그리스도’ ‘동정녀 마리아’ 같은 성경 인물이 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정신병리학자 모셰 칼리안 박사는 저서 ‘성스러움과 광란의 예루살렘’에서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 신자 대부분은 신앙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예루살렘을 순례하지만, 일부는 이곳의 종교적 유물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고 그 분위기에 취해 이상행동을 한다”고 분석했다.

예루살렘 신드롬은 개인뿐 아니라 정치 세력·국가 등 집단 차원에서도 나타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영토 싸움이 대표적인 예다. 1948년 이뤄진 이스라엘 건국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자는 유대인 디아스포라의 ‘시온주의 운동’의 결과물이다. 영국 등 유럽 국가의 정책결정자들은 시온주의 운동에 동조하면서도 한편으로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 국가’가 세워지는 것에는 우려했다. 이 땅은 오랫동안 이슬람을 국교로 하는 오스만제국이 다스렸고 무슬림(이슬람 신자) 인구가 다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중동보다 비옥한 땅과 살기 좋은 기후를 가진 우간다나 아르헨티나 영토 일부에 ‘유대국가’를 세우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시온주의자들에게 했다.

하지만 시온주의자들은 이런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2000년을 더 기다리더라도 신이 주신 땅 예루살렘을 수도 삼아 살아야만 한다”고 고집했다. 이스라엘은 세상 누가 뭐라 해도 신념을 굳히지 않을 정도로 예루살렘에 집착한 이들이 세운 나라인 것이다. 이들 못지않게 아랍 민족도 신의 이름을 외치며 죽어도 이 땅 아니면 안 된다고 맞선다. 두 집단의 종교적 신념과 고집 그리고 민족적 자존심이 팽팽하게 줄다리기하기 때문에 불화는 불가피하다. 평화의 도시 예루살렘은 땅에 너무 많은 의미를 두고 집착한 인간에 의해 분쟁의 도시가 된 것이다. 미국 가톨릭 사제 출신 사회과학자 제임스 캐럴 박사는 ‘예루살렘 광기’란 책에서 “인간의 욕심과 신앙의 본질을 왜곡한 종교적 집착이 성지를 전쟁터로 만들었다”고 개탄했다.

지난 12월 7일 이스라엘 군인들이 예루살렘 구시가지 통곡의 벽 주변을 순찰하고 있다. ⓒphoto 로이터·연합
지난 12월 7일 이스라엘 군인들이 예루살렘 구시가지 통곡의 벽 주변을 순찰하고 있다. ⓒphoto 로이터·연합

아이만 웃는 도시

예루살렘에서 차를 처음으로 몰던 때를 잊을 수가 없다. 신호등에 빨간불이 들어와 차를 세우고 녹색불로 바뀔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3~4분이 지났을까, 뒤의 차들이 갑자기 경적을 요란하게 울려댔다. 신호등이 빨간불에서 녹색불도 아닌 노란불로 바뀌려는 순간이었다. 녹색불 들어와서 가속페달 밟으면 늦으니 노란불 들어올 때쯤 되면 브레이크에서 발 떼고 노란불 들어오면 그때부터 출발하는 것이 예루살렘의 운전 문화였던 것이다. 하도 뒤에서 “빵! 빵!” 소리를 많이 들어서 이 문화를 터득해 실전으로 옮기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노란 신호 출발’ 운전법은 팔레스타인인, 이스라엘인을 가리지 않았다. 분쟁 속에 사는 이들은 느긋한 법이 없었다. 거리를 걷는 이들의 발걸음도 항상 빨랐다. 이 도시에서 천천히 두리번거리며 사진 찍는 사람이 있다면 십중팔구 외국인이다.

예루살렘에는 지상 경전철이 있는데 차창이 커서 바깥 구경하기가 참 좋다. 일부러 관광한다고 전철에 오르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막상 전철에 올라타면 숨이 막힌다. 승객이 많아서가 아니다. 사람들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어서다. 히잡을 쓴 팔레스타인 여성과 널따란 챙이 달린 검은 모자를 쓴 이스라엘의 정통 유대인 남자가 마주 보고 앉아 있는 모습이 쉽게 눈에 띈다. 이들은 웬만해선 말도 섞지 않고 실수로 눈이라도 마주치진 않을까 싶어 시선을 아래로 향하고 있다. 한쪽에는 이스라엘 남녀 병사들이 개인 소총을 매만지며 서 있다. 이스라엘은 남성은 3년, 여성은 2년간 군복무를 하는데 전투부대원 등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은 집에서 소속부대로 출퇴근을 해 전철이나 버스에서 쉽게 목격된다. 전철 안에 흐르는 이·팔 사람들의 어색함과 긴장감은 제삼자도 불편하게 만든다.

가장 가까우면서도 먼 도시

전철이 역에 서면 거의 예외 없이 무장한 이스라엘 경찰이 들어와 빠르게 돌아다니며 구석을 살피고 나간다. 팔레스타인 사람이 폭발물을 설치하진 않았는지 수색하는 것이다. 이런 광경을 처음 본 외국인 가운데 일부는 눈이 휘둥그레져 놀라며 내릴 역이 아닌데도 뛰쳐나가기도 한다. 세계에서 가장 신성한 도시 예루살렘은 테러 위협이 일상이다. 이 가운데 해맑게 소리 내며 웃는 건 어린아이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툭하면 테러리스트로 의심받으며 불심 검문을 받자 팔레스타인인은 이스라엘인보다 경전철을 덜 타는 편이다.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점령에 대한 항의 시위로 이 경철전 탑승을 거부하는 이들도 있다.

지난해 2월 중순 한 날 이른 새벽 동(東)예루살렘의 팔레스타인 거주지 베이트 하니나를 산책하고 있을 때였다. 마을 외곽에 다다르자 높이 8m의 콘크리트 장벽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장벽 너머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임시 수도 라말라였다. 장벽 아래를 뚜벅뚜벅 걷는데 갑자기 라말라에서 베이트 하니나 쪽으로 동아줄이 장벽을 넘어왔다. 깜짝 놀라 몇 발 뒤로 물러서자 어디선가 한 청년이 나타나 넘어온 동아줄을 잡고 “얄라얄라(‘어서어서’라는 뜻의 아랍어)”라고 말하며 신호를 보냈다. 이내 장벽 위로 허름한 옷차림의 청년들이 올라왔고, 3초 만에 줄을 잡고 미끄러지듯 내려왔다. 이들은 주위를 둘러보지도 않고 인근 건물 뒤를 향해 뛰어갔다.

동아줄을 잡고 있던 청년은 “이스라엘이 설치한 ‘분리 장벽’에 갇혀 사는 많은 팔레스타인인이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법을 어기며 담을 넘는다”면서 “체포를 감수하고 이스라엘 쪽으로 넘어와도 일거리를 못 얻어 빈손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팔레스타인인은 출생지가 예루살렘이나 텔아비브 등 이스라엘 행정구역이 아닌 이상, 허가증 없이는 라말라 등 장벽으로 둘러싸인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만 살아야 하고 그 밖으로 나갈 순 없다. 국제인권단체들은 “이스라엘엔 ‘보안장벽’이지만, 팔레스타인인에겐 ‘분리장벽’이 돼 경제활동과 같은 기본 권리가 침해받고 있다”고 지적한다.

분리장벽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영토 대부분을 둘러싸는 길이 500㎞의 콘크리트 장벽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이 1987~1993년 “팔레스타인의 영토를 불법 점령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규탄한다”면서 ‘인티파다(민중 봉기)’를 일으키자 1994년 이스라엘 정부가 치안 유지 목적으로 장벽을 세우기 시작했다. 신분 조사를 통해 ‘허가증’을 발급받은 팔레스타인인만 장벽을 통과해 이스라엘 지역에서 활동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200㎞ 길이의 장벽 추가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날 장벽을 넘은 이들을 따라가 봤다. 다들 인근에 준비된 차량에 태워져 예루살렘 외곽의 건설 공사장에 투입됐다. 이스라엘 정부에 따르면, 허가증 없이 장벽을 넘어 예루살렘 일대에서 불법 노동하는 팔레스타인 사람은 약 4만명이다. 팔레스타인 자치지역 내 실업률이 31%를 넘는 등 경기가 악화하면서 장벽을 넘는 숫자가 늘어나고 있었다. 건설 업체 관계자는 “팔레스타인 사람도 이스라엘 시민과 똑같이 일당으로 250셰켈(7만5000원) 정도를 받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라말라 출신 30대 남성 함단은 “장벽에 동아줄을 놓아주고 취업을 알선해준 이들에게 수입의 30% 이상을 떼어줘야 하기 때문에 실제로 집에 가지고 가는 돈은 170셰켈(5만원) 정도”라고 했다. 팔레스타인에서 경기가 가장 좋은 라말라·베들레헴 같은 도시에서는 건설 근로자 일당이 100셰켈(3만원)이다. 이 때문에 구금되거나 번 돈의 수배에 달하는 벌금을 물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담을 넘었던 것이다.

이날 오후 4시 무렵 건설 현장의 팔레스타인인들이 다시 차에 올랐다. 새벽에 넘어왔던 장벽으로 이동했다. 이스라엘 경찰이 장벽을 순찰하기 직전에 빠져나가기 위해서였다. 오후 5시 장벽 앞에 모인 20여명은 동아줄을 타고 장벽을 올라 순식간에 라말라로 넘어갔다.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갓 스무 살의 마흐무드는 “온종일 ‘펠라펠(야채와 콩으로 만든 완자를 복주머니 같은 빵에 넣은 것)’ 1개, 홍차 한 잔밖에 못 먹었다”면서도 “돌아가는 길에 양고기를 좀 사서 굶고 있을 가족과 나눠 먹을 생각을 하니 행복하다”고 했다. 장벽이 없었다면 이들은 이런 불법 행위’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1967년 전쟁 전까지만 해도 당나귀 끌고 편하게 드나들었던 예루살렘에 오랜 시간 걸려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팔레스타인인들은 예루살렘 가는 길이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멀다”고 말한다.

지난 12월 11일 복면을 한 팔레스타인 시위대가 팔레스타인 자치구인 요르단 서안지구에서 이스라엘군을 향해 화염병을 던지고 있다. ⓒphoto AP·연합
지난 12월 11일 복면을 한 팔레스타인 시위대가 팔레스타인 자치구인 요르단 서안지구에서 이스라엘군을 향해 화염병을 던지고 있다. ⓒphoto AP·연합

아무것도 아닌 땅에 모든 것을 건 도시

예루살렘으로 성지순례를 온 한국인 단체관광객을 한 식당에서 우연히 만난 적이 있다. 하루 종일 돌아다녀서 그런지 다들 그릇에 음식을 가득 담아 먹었다. 그런데 고기 반찬은 놔두고 작은 그릇에 따로 챙겨온 죽을 담아 천천히 떠먹는 60세 전후의 여성이 있었다. 딸은 옆에서 어머니의 숟가락 위에 김 조각을 작게 잘라 올려줬다. 왜 그런지 궁금해 인솔자를 식당 구석으로 불러 물어보니 그가 답했다. “저 아주머니 말기암 환자예요. 살 날이 한 달밖에 안 남았다는 의사 얘기를 듣고 딸 데리고 죽기 전에 순례를 온 거죠. 여기가 아무리 위험하고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고 해도 성지이긴 하니까….” 그러면서 그는 “이런 경우가 드물지 않게 종종 있다”면서 “죽음을 앞둔 불안한 마음이지만 아픈 몸까지 이끌고 찾아오는 곳이 예루살렘”이라고 했다. 민족과 민족, 나라와 나라 간 혼탁한 정치싸움이 벌어지는 곳이긴 하지만 삶의 의미를 찾고 마무리를 하러 엄숙한 마음으로 이 도시를 찾은 사람도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TV와 신문과 잡지를 보면 연일 ‘팔레스타인 10대가 거리에서 흉기로 이스라엘 경찰을 공격했다’ 같은 험악한 뉴스가 나온다. 그러던 작년 7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이야기가 전해졌다. 유대인 일가족이 탄 승용차가 예루살렘 인근을 달리다가 갓길에 숨어 있던 한 팔레스타인인의 총격을 받고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우범지역이라 이 사고를 보고도 사람들은 차를 타고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한 팔레스타인 의사는 이 사고 현장을 보고 주저 없이 차를 세웠다. 그리고 달려가 차 안의 유대인 가족을 끄집어냈다. 그는 구급차가 오기 전까지 응급처치를 해 이들 가족의 부상 악화를 막았다. 생명을 살린 것이다. 착한 사마리아인과 같은 팔레스타인인의 행실에 이스라엘과 세계 유대인 사회가 크게 감동했다. 뉴욕타임스 등 세계 외신들은 “이런 의인이 예루살렘에 있다”며 이 소식을 크게 다뤘다.

예루살렘에 이민이나 파견근무를 온 외국인이 빠지지 않고 보는 영화가 있다. 바로 이 지역을 배경으로 한 ‘킹덤 오브 헤븐(Kingdom of Heaven·천국의 왕국)’이다. 이 영화 끝 무렵에 십자군 장수가 예루살렘 성을 결국 지키지 못하고 이슬람 아랍군에 항복을 선언하면서 아랍군 장수 살라하 딘과 대화를 주고받은 장면이 나온다.

“살라하 딘, 당신에게 예루살렘은 무엇입니까.”

살라하 딘은 단호하게 말한다. “Nothing.(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고선 그는 등을 돌려 몇 발을 걷다 다시 돌아서서 말한다. “And everything.(그리고 모든 것이기도 합니다.)”

내가 겪은 예루살렘은 아무것도 아닌 땅에 모든 것을 건 인간의 도시이자, 이런 인간의 어리석음을 통해 신의 존재를 깨닫게 하는 성지 중의 성지였다.

노석조 조선일보 국제부 기자·전 예루살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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