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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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4일, 영국의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가 향년 76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대중적 인지도가 높았을 뿐 아니라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뒤를 잇는 세계적 물리학자로 손꼽혔다. 생전의 그의 연구는 분명 과학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그가 어떤 업적을 남겼는지 잘 모른다. 그는 인류에게 무엇을 남기고 갔을까.

1963년,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던 21세의 호킹은 온몸의 근육이 서서히 마비되는 루게릭병(근위축성측삭경화증)이라는 진단과 함께 2년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다. 그럼에도 당시 여자친구였던 와일드는 좌절한 호킹을 일으켜세우기 위해 그와 결혼했다. 이후 호킹은 그녀의 보살핌 속에 열심히 공부하여 시간과 공간의 근원을 설명하는 ‘호킹-펜로즈 특이점 이론’을 완성하고 이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호킹을 일약 스타덤에 올린 대표적 업적이 바로 이 ‘특이점 이론’이다. 가끔씩 하늘을 올려다보며 누구나 한 번쯤 가져보았을 ‘우주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라는 의문을 호킹이 과학적으로 설명한 것이 특이점 이론이다. 기독교 성경에서 말하는 ‘전지전능하신 신이 우주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특이점에서 시간과 공간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우주는 특이점서 탄생

현재의 표준적인 우주 생성 모델은 빅뱅(대폭발)이다. 빅뱅 이론은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상태에서 대폭발이 일어나 시간과 공간이 생겼다는 이론인데, 1964년 당시 무에서 유(有)가 생겼다는 점이 증명되지 않아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정상 우주론’과 ‘대폭발 이론’을 놓고 한창 논쟁 중이었다. ‘정상 우주론’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우주가 항상 같은 형태, 즉 ‘우주의 평균 밀도가 일정하게 유지돼왔다’는 이론이다. 하지만 1965년에 우주의 과거에 뜨겁고 조밀한 단계가 있었음을 뜻하는 마이크로파 배경복사가 발견되면서 ‘정상 우주론’은 타격을 입었다.

이때 호킹은 역발상을 했다. “현재의 팽창하는 우주를 시간적으로 거꾸로 돌리면 어떻게 될까? 과거로 돌아갈수록 수축된다는 의미가 아닐까?” 현재의 우주 공간이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은 미국의 천문학자 허블이 1929년 처음 확인했다. 이러한 우주의 팽창을 역으로 적용해 호킹은 1966년 천재 수학자 로저 펜로즈와 함께 지구, 태양, 은하 등 우주의 모든 물질을 과거로 되돌리면 결국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높은 온도와 어마어마한 에너지 밀도를 가진 매우 작은 하나의 특이점(singularity)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호킹에 따르면 137억년 전 무한히 작은 이 특이점에 모든 물질이 모여 있다가 대폭발을 거쳐 지금의 우주처럼 팽창했고, 그 팽창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중력 이론)과 같은 물리학 법칙에 의해 우주는 무의 상태에서 스스로 창조됐고, 이 같은 자발적 창조가 우주와 우리가 존재하게 된 이유라는 것이 호킹 박사의 설명이다. 또 특이점을 통해 우주의 시작이 있었으니 언젠가는 종말도 있을 것이라는 점도 제시하였다.

전문가들은 호킹의 ‘특이점 이론’이 당시 빅뱅 이론을 둘러싼 최대 의문을 해결하는 열쇠가 되었고, 우주의 시작을 설명하는 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특이점 이론을 통해 호킹은 단숨에 유명인이 되었다.

호킹은 또 1983년 ‘무경계 우주론’으로 특이점에 대한 의문을 훌륭하게 설명했다. 우주에는 시작이나 끝을 나타내는 시간적 경계가 없고 또 공간적 부피는 있되 경계가 없다는 것이 무경계 우주론이다. 우주는 마치 지구 표면처럼 면적은 있지만 경계선이 없다는 것이다.

우주론자들은 빅뱅이 시작된 시점을 태초라고 부른다. 태초에 대해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예외 없이 “태초 이전은 뭐냐”고 묻는다. 호킹은 “태초 이전은 뭐냐”고 묻는 것은 “북극점에서 더 북쪽은 어디인지를 묻는 질문과 같다”는 예를 들었다. 우리는 지구상에서 북쪽으로 가면 언젠가는 북극에 도달한다. 하지만 북극에 도달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북쪽으로 갈 수 없다. 북극에서는 북쪽이라는 방향조차 없다. 동쪽이나 서쪽도 없고 오로지 남쪽이라는 방향만 존재한다. 방위개념이 없는 상황이라면 북극에 서있는 사람이 어느 쪽으로 간다 해도 그쪽은 모두 남쪽인 것이다.

호킹 박사는 태초보다 10분 전의 시간에 대해 묻는 것도 지구의 북극에서 북쪽으로 1㎞ 간 지점이 어디냐고 묻는 것과 같다고 풀이했다. 빅뱅이란 공간의 시작일 뿐만 아니라 시간의 시작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언젠가는 태초에 도달하지만, 태초에 도달하면 더 이상 과거는 없고 미래만이 존재할 뿐이라는 것이다. 정말 놀라운 해석이다.

‘중력 이론’과 ‘양자 이론’ 결합

스티븐 호킹의 대표 저서 ‘시간의 역사’
스티븐 호킹의 대표 저서 ‘시간의 역사’

호킹 박사의 아내 와일드는 그의 특이점 이론을 신의 천지창조 근거로 해석했다. 이에 대해 호킹은 신적 존재의 개입이 아닌 중력의 법칙에 의해 천지가 불가피하게 발생했다며 ‘호킹 복사(hawking radiation)’ 이론을 내놓았다. 호킹 복사는 모든 것을 빨아들이기만 하는 블랙홀이 에너지(빛 입자)를 방출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은 일반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이 양립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일반상대성 이론은 중력이 적용되는 거시적 세계를 설명하는 반면 양자역학은 원자 단위의 운동 세계를 다루는 이론이다. 따라서 당시에는 두 이론이 서로 양립할 수 없다고 알려져 있었다. 일반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중력의 영향으로 에너지인 빛이 휘어진다. 중력이 너무 클 경우, 빛이 너무 많이 휘어서 빠져나올 수가 없게 된다. 이런 이론을 통해 블랙홀의 존재가 예측되었고, 실제로 확인도 되었다.

한때 공상과학영화와 소설에서 블랙홀은 공간이동을 할 때 사용하는 단골 소재였다. 블랙홀은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천체이므로 질량보존 법칙에 의해 어디선가는 사라진 물질이 나오는 화이트홀이 존재할 것이라는 가설도 나왔다. 그러나 호킹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1974년 논문을 통해 양자역학과 중력 이론인 일반상대성을 결합해 본 결과 ‘블랙홀에 빨려 들어간 물질이 화이트홀에서 방출되는 게 아니라 블랙홀에서 방출된다’고 주장했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아무것도 없는 진공은 존재하지 않는다. 즉 진공은 양자 요동으로 끊임없이 입자의 쌍이 생겼다가 소멸하는 상태이다. 호킹은 이 양자역학적 효과 때문에 블랙홀 주변의 진공 상태에선 입자와 반입자 쌍이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거듭하고, 이러한 요동으로 블랙홀이 에너지(빛 입자)를 내뿜는다는 ‘호킹 복사’를 수학적으로 증명해냈다. 더구나 블랙홀 복사가 일어나면 에너지가 빠져나가 결국은 블랙홀이 증발돼 사라진다고 주장했다. 그전까지 블랙홀은 말 그대로 검은 구멍, 즉 들어갈 수는 있어도 나올 수는 없는 천체였다. 이 현상의 발견으로 호킹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전문가들은 1974년에 발표한 호킹의 논문을 높이 평가한다. 호킹 복사 이론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 그동안 양립하지 못했던 ‘중력 이론’과 ‘양자 이론’이 처음으로 결합하면서 물리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것. 즉 양자역학이 도입되면서 블랙홀도 수명이 있다는 놀라운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호킹은 일반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을 결합하는 양자 중력 이론을 평생 연구했다. 물론 두 이론이 서로 연결될 수 있는지의 여부는 아직 풀리지 않은 난제이다. 호킹 복사 또한 이론적으로는 계산되나 아직 명확히 관측된 적이 없다.

우주 정착촌을 찾아라

“인류, 멸망 피하려면 외계로 떠나라.” 호킹이 인류 생존에 대해 던진 화두이다. 그는 지구가 유한한 자원 고갈과 기후 변화, 핵무기, 변종 바이러스, 소행성 충돌 등의 재난으로 멸망할 위험이 점점 커지고 있다면서, 인류의 생존은 외계 행성에서 새로운 정착촌을 찾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경고했다. 인류가 1000년이나 100만년은 제쳐두고 앞으로 100년 동안만이라도 자멸을 피하려면, 지금부터 지구의 지원 없이도 영구 거주할 수 있는 우주 정착촌 준비에 나서야 할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어쩌면 달이나 화성에 인류가 정착할 수 있는 기지를 세우기 위해, 또 외계에서 지구형 행성을 찾기 위해 로켓을 쏘아 올려 우주를 탐사하는 지금의 프로젝트들은 이미 호킹의 말을 행동으로 옮기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호킹은 50년 안에는 달에, 2100년에는 화성에 인류가 정착해 살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인류가 태양계를 넘어 나아갈 첫 번째 외계의 별(항성)로 지구로부터 4.2광년(약 41조㎞) 떨어진 프록시마 켄타우리(Proxima Centauri)를 주목하며, 그곳에 암흑물질과 블랙홀을 이용해 빛보다 빠른 우주선을 보내는 방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호킹은 ‘과학기술이 인류에게 위협이 돼선 안 된다’며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인공지능(AI)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경고했다. 물론 인공지능이 올바른 일에 쓰일 수 있다는 희망도 전했다. 하지만 “인류가 너무 공격적으로 기술을 진보시키고 있다”며 “만일 인류가 인공지능에 대처하는 방법을 익히지 못한다면 인공지능 자동화에 의해 일자리를 빼앗기고, 인간보다 뛰어난 인공지능 기술은 인류 멸망을 초래할 최악의 사건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과학 대중화에도 기여

호킹의 업적 중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는 대중에게 천체물리학을 알린 공로이다. 그는 책 집필과 강연 등을 활발하게 했다. 그가 1988년에 펴낸 대중 과학서적 ‘시간의 역사’는 40개 국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 1100만부 이상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호두껍질 속의 우주’ ‘조지와 빅뱅’ ‘청소년을 위한 시간의 역사’ 등도 대중 도서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는 사회적 문제도 외면하지 않았다. 핵무기 감축운동 등에 참여했고, 특히 이스라엘의 대팔레스타인 정책에 반대하여 이스라엘에서 열리는 학회에 불참했다. 또 2003년의 이라크 침공에 대해서는 당시 ‘전쟁 범죄’라고 평가했다.

무엇보다도 그의 가장 큰 업적은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전했다는 점이다. 희귀병으로 얼굴 근육 일부만 움직일 수 있는 극단적 장애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의지로 한계를 극복, 장애가 없는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해냈다. 그의 업적과 진정한 용기는 우리 모두에게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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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전 ‘뉴턴(NEWTON)’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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