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허인회
일러스트 허인회

“해도해도 너무한다. 8개월 동안 도대체 뭘 한 건가.”

“한두 번도 아니고 도대체 왜 저러나.”

김상곤 교육부 장관이 지난 4월 11일 발표한 ‘대입제도 국가교육회의 이송안’을 두고 비난이 거세다. 말이 이송안(移送案)이지, 사실상 백지위임이다. 교육부는 더 이상 모르겠으니 국가교육회의에서 결정해달라는. 대입제도 개편안을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던 학부모와 학생들은 “어이가 없다” “무책임하다”는 반응이다. 지난해 8월 2021년도 수능 개편 시안을 1년 유예한 데 이어, 결정을 떠넘긴 행태에 대해 ‘지방선거를 앞둔 시간 벌기’라는 비판이 쏟아진다.

데자뷔다. 김 장관은 지난해 12월 유치원 어린이집 방과후 영어수업을 금지한다는 정책을 발표했다가 여론이 부글거리자 얼마 안 가 말을 바꿨다. 결정을 1년 유보한다는 발표였다. 오락가락 정책은 또 있다. 김상곤표 교육개혁의 대표 어젠다였던 ‘수능 절대평가’ 역시 말을 뒤집었다. 이송안 발표 자리에서 그는 “수능 절대평가가 기본입장이라는 것은 오해”라며 “국정과제에 수능 절대평가가 들어있지 않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정책 이해도를 의심케 하는 발언도 쏟아냈다. 학생부종합전형(일명 학종)이 사교육을 얼마나 유발했는지에 대한 연구결과가 있느냐는 질문에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가 심해졌다”는 알 수 없는 대답을 했다. 수능 절대평가, 학종 확대 기조를 내내 유지해온 최근 입시정책과 배치되는 대목이다.

비운의 김상곤 세대?

방향 잃고 표류하는 김상곤 장관의 교육정책에 대해 학부모와 교사 등 교육소비자들이 뿔났다. 아니, 뿔난 정도가 아니라 폭발할 지경이다. 차곡차곡 쌓여온 대입제도의 복잡성과 불확실성의 도화선에 기름을 확 부은 격이다. 현 중 3 학생은 대입제도도 모르고 영재고·과학고에 지원하는 깜깜이 입시세대가 됐다. 영재고 입시를 준비 중인 한 중 3 학부모는 “답답하고 화가 난다”며 이렇게 말했다. “고교 내신이 대입에 미치는 영향을 모른 채 고입을 준비하다 보니 불안하다. 내 아이가 오락가락 교육정책의 희생양이 된 것 같아 불쌍하고 미안하다.”

‘김상곤 세대’라는 말도 등장했다. 고입과 대입이 동시에 바뀌는 교육대혼란을 겪는 현 중 3을 일컫는 말이다. 바뀐 고입 입시에 따르면 올해부터 자사고(자율형사립고)와 특목고(외국어고·국제고) 입시가 일반고와 동시에 치러진다. 게다가 이들이 대입을 치르는 2022학년은 대대적인 개편이 예고돼 있다.

교육부 장관 이름을 딴 세대 칭호는 ‘이해찬 세대’에 이어 두 번째다. 딱 20년 전이다. 1998년 이해찬 당시 교육부 장관은 공교육 정상화를 선언하면서 대대적인 교육개혁을 단행했다. 특기 하나만 있으면 대학 갈 수 있는 무시험 대학 전형을 도입하고 야간자율학습과 모의고사 등 각종 시험을 폐지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이해찬 세대가 첫 수능을 치른 2002년 수능점수는 폭락했다. ‘단군 이래 최저 학력’이라는 오명이 따라붙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교육대혼란을 초래한 김상곤 장관은 공공의 적이 됐다. 교육소비자는 물론 여야, 진보와 보수 가릴 것 없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지난 4월 17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 정부에서 가장 많은 실망과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곳이 교육부”라며 “학부모로서, 진보 학부모로서 김상곤 교육부총리에 화가 난다”고 비판했다. 전교조 역시 “교육부가 대입제도 개편 기본원칙이나 방향도 제시하지 못했다”며 “정부가 사회적 논란에 휩싸이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대입제도 개혁의 목표와 가치를 어디에 두고 상충하는 가치 중 무엇을 우선할지 언급하지 않았다”는 날 선 성명서를 냈다. 교총은 “교육부가 아무런 입장도 없이 관련 내용만 이송한 것은 정부 주무부처로서 책임 있는 자세로 보기 어렵다”는 비판을, 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는 “교육부의 직무유기”라며 “그동안 뭘했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가뜩이나 꾸준히 제기돼온 교육부 폐지론도 다시 불거지는 상황이다. 유성엽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은 “교육부를 폐지하고 국가교육위원회를 신설, 대체하는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말했다. “역대 가장 무능하고 무책임한 교육부 장관”이라며 김상곤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김상곤 장관은 교육개혁의 아이콘이었다. ‘진보 교육감 맏형’으로 새 시대의 새 교육을 열어갈 다크호스로 기대감이 높았다. 2010년 경기도의 첫 직선제 교육감을 맡아 굵직한 개혁안을 과감하게 밀어붙였고, 하나하나 관철시켰던 전력이 기대감을 키웠었다. 무상급식, 혁신학교, 학생인권조례 등이 그가 14~15대 경기도교육감을 맡아 추진한 정책들이다. 경기도에서 시작한 이 정책들이 전국 각지로 퍼져나가고 있으니 진보교육의 개척자라 할 만하다. 분명한 방향성과 교육철학 기조가 있는 듯도 하다.

그런데 왜 교육부 장관을 맡은 후에는 내내 우왕좌왕, 갈팡질팡일까. 여기에는 몇 가지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이송안 발표 며칠 전으로 시계태엽을 돌려 보자. 4월 11일에 이송안을 발표했으니 이로부터 약 보름 전쯤 일이다. 3월 말, 박춘란 교육부 차관은 교육부의 기존 정책 기조로는 이해할 수 없는 엇박자 행보를 보였다. 서울의 일부 사립대에 전화를 걸어 정시 확대 여부를 문의한 것. 장관은 수능 절대평가와 학종 확대로 가고 있는데, 차관은 이에 반하는 행보를 보인 것이자, 10년 넘게 이어온 ‘수시 확대, 정시 축소’ 기조를 뒤집은 것이었다. 이 일로 박 차관은 자유한국당으로부터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당해 검찰 조사를 받을 예정이다.

교육부 장관과 교육부 차관 정책의 불협화음을 만천하에 알린 이 느닷없는 전화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익명을 요구한 한 교육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김상곤 장관의 교육정책은 여론을 거스르는 측면이 있다. 많은 학부모와 수험생이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수능은 ‘절대평가’로 무력화하려 하고,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는 ‘학종’은 확대하려고 하니까 김 장관의 교육정책에 대한 반발과 비난이 높아지고 있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국민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청와대가 김 장관의 지향점에 동의해줄 수 없는 거다. 청와대 차원의 제동이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 김상곤 장관의 갈팡질팡은 여기에서 생겨난다.”

박 차관의 전화는 청와대의 요구와 김 장관의 암묵적 동의하에 가능했으리라는 추측이 나온다. 4월 11일 이송안 발표 자리에서 김 장관이 그토록 강하게 견지해온 수능 절대평가의 기조를 뒤집은 것 또한 이해가 된다.

여기에서 의문이 또 하나 생긴다. 김상곤 장관은 국민 여론에 민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대입제도를 국가교육회의로 떠넘긴 것 역시 ‘여론 눈치 보다가 손 놓은 격’이라는 시선이 강하다. 여론에 민감한 그가 왜 진짜 여론인 교육소비자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못 듣는다는 지적이 나올까.

우선 김상곤 장관이 걸어온 길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는 경영학도 출신 교육자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박사를 땄다. 교육 관련 학위가 있긴 하다. 카자흐스탄 크즈오르다대 명예교육박사학위가 있다. 한신대 경영학과 교수 출신인 그는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공동의장, 전국교수노동조합 위원장을 지냈다.

김상곤표 교육철학을 접한 사람들의 평가는 엇비슷하다. “이상만 있고 각론이 없다.” “교육철학이 아름답기는 한데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현실감각이 없는 낭만적 이상주의자 같다.” 지난 2월 EBS에서 김상곤 교육부 장관 인터뷰가 방영됐다. 고 1, 초 3 두 아이를 둔 학부모는 이 인터뷰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보는 내내 욕을 참느라 힘들었다. 교육정책이 문제인데 혁신학교 얘기만 하더라. 현실을 너무 몰라서 보는 내내 고구마 백만 개 먹는 느낌이었다. 미국 고등학교 수업이 우리 고등학교에 가당키나 한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김상곤 장관은 ‘김상곤표 교육정책’을 한 마디로 요약해달라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공교육 정상화와 대학 서열화 및 학벌주의 타파, 4차 산업혁명에 걸맞은 융·복합인재 양성.” 장삼이사도 할 수 있는 공허한 메아리 같은 말이다.

현실감각이 없는 낭만적 이상주의자가 교육부 장관을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교육현장을 잘 아는 균형감 있는 참모진을 기용하면 된다. 문제는 여기에서 생긴다. 교육부 정책자문회의에는 12명의 위원이 있다. 이들의 면면을 보면 12명 중 9명이 학종의 이해관계자다. 입학사정관, 고교 진로진학교사, 기금교수 등 학종의 직접적 이해관계자가 6명, 대학입학처, 대교협 등 학종의 간접적 이해관계자가 3명이다.

그렇다면 중차대한 결정을 떠맡게 된 국가교육회의 위원들의 면면은 어떨까. 위원은 총 21명이다. 의장은 신인령 이화여대 명예교수이고, 김상곤 교육부 장관과 김동연 경제부총리를 포함한 당연직 9명, 교육계 위촉직 민간위원 11명으로 구성돼 있다. 당연직 위원들이 현장 교육을 세세하게 알기는 힘들다. 문제는 민간위원인데 11명 중 입시전문가나 현직 교사가 없다. 역시 교육현장을 모른다는 측면에서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얘기가 벌써부터 나온다.

또 하나 김상곤 장관이 ‘도정(道政)과 국정(國政)의 차이를 잘 구별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경기도교육감 시절에는 강하게 밀어붙이면 됐지만, 교육부 장관은 여론이 중요해지고 의회 요소가 세져서 독불장군식으로 밀어붙이기에는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감 시절 방식대로 밀어붙이다가 문제를 키웠다는 얘기다.

표심에만 신경 쓰는 포퓰리스트?

교육부 내부에서는 김 장관의 문책성 인사 때문에 불만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치원 방과 후 영어교육 금지 정책을 추진하던 신익현 교육복지정책국장은 자리에서 물러났고, 대입정책을 담당하던 박성수 대학학술정책관은 부경대 사무국장으로 발령났다. 교육부 에서는 이런저런 이유를 댔지만, 여론의 뭇매를 맞은 정책에 대한 책임전가라는 시선을 피하기는 어렵다.

이쯤에서 김상곤 장관이 내놓은 이송안을 들여다보자. 김 장관은 이송안을 발표하면서 “폭넓은 여론 수렴을 위해 구체적 개편안 대신 쟁점을 모아 ‘열린 안’으로 제시한다. 교육부가 선호하는 방식은 없다”고 밝혔다. ‘열린 안’은 대입을 둘러싼 각종 쟁점을 요약한 보고서에 가깝다. 이송안에 거론된 주요 쟁점은 세 가지다. △선발방법-수능전형과 학종 간 적정비율 △선발시기-수시모집과 정시모집의 선발시기 통합여부 △수능평가방법-절대평가 전환, 상대평가 유지, 원점수제 등. 이 주요 쟁점별 각론도 다양하다. 분석에 따르면 주요 쟁점을 조합한 전형만 108가지, 다른 항목까지 고려하면 1000가지가 넘는 전형방법이 있다. 케이스별로 검토하고, 공론화 과정을 거쳐 8월까지 내놓는 최종안이 얼마나 신뢰성과 적합성이 있을지 의문이 든다.

이송안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간 논의돼온 쟁점에서 다소 벗어난 ‘뜬금없는 쟁점’이라는 시각이다. 그간 입시 관련 주요 쟁점들은 ‘수능 절대평가를 둘러싼 논란’ ‘정시 확대 요구’ ‘학종 불공정성 문제’ 등이었다. 그런데 이 쟁점들이 흐지부지되고 다른 쟁점들이 던져졌다. 특히 ‘수시와 정시 통합’은 쟁점의 핵심이 아니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가교육회의에서 대입전형의 단순화와 공정성을 요구했는데, 대입전형의 단순화를 전형 시기의 통합으로 해결하려는 발상으로 보인다.

교육부는 입시제도를 검토만 하고 결정은 국가교육위원회가 공론화를 거쳐 한다는 건데, 입시정책을 공론화를 통해 결정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도 의문이다. 입시정책은 학부모, 교사, 대학 등 이해관계자에 따라 의견이 갈린다. 단순히 찬반 양론을 묻는 차원이 아니다. ‘정답’은 없고 ‘의견’만 있는 사안이다. 국민 다수가 공감하는 최종안을 도출해낼지도 미지수이지만, 백년지대계를 그려야 하는 입시정책을 민의(民意)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다. 6·13지방선거를 의식한 표심잡기라는 눈초리가 따갑다.

교육정책에서 중요한 것은 교육의 성과다. 김상곤 장관이 경기도교육감 시절에 과감하게 밀어붙인 정책들은 18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정착돼 가고 있을까. 경기도 성남의 한 고등학교에 재직 중인 교사의 말을 들어보자. “김상곤 교육감이 된 첫해 난리가 났다. 새로운 정책들이 물밀듯 쏟아졌다. 설계는 아름답지만 현실을 모른 채 밀어붙인 제도와 정책들이 많았다. 우리나라 교육시스템에서는 불가능한 외국 시스템을 무조건 적용해서 무리수가 따랐고, 무상급식으로 예산이 쏠리면서 돈이 없어 운영 못한 프로그램이 많다. 교육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시민들에게는 김상곤 교육감이 인기스타였지만, 교사들의 생각은 다소 달랐다.”

두 차례 경기도교육감을 지낸 그는 잠시 교육계를 떠났다. 교육감 임기만료를 세 달 앞두고 경기도지사 출마를 위해 사퇴한 것. 결국 공천에서 탈락했지만 이때 충격받은 이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무소속으로 출마해 전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경기도 교육계에 혁신을 일으키며 ‘교육계 혁신의 대부’로 불렸던 그가 교육계를 떠난 행보는 진정성을 의심받기에 충분했다.

김상곤은 교육개혁의 아이콘인가, 표심만 의식한 포퓰리스트인가? 평가는 갈린다. 중요한 것은 표심만 의식하는 포퓰리스트가 백년지대계를 그리는 교육부 장관이 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김상곤 장관을 다각도로 봐온 한 교육계 인사는 이런 예언을 했다. “수능 절대평가가 김상곤의 상징이었는데 버릴 수 있는 사람이다. 일관되게 주장해온 학종도 대폭 축소할 수 있는 사람이다. 왜? 교육자보다는 정치인이니까.”

김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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