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탬’ 조심합시다.” 정종민 연구관이 말했다. 일회용 헤어캡과 팔토시, 라텍스 장갑을 벌써 착용한 채였다. 같은 차림의 곽성신 연구사는 작업대 위에 메스와 작은 보관용기를 조심스럽게 늘어놨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원주 본원에서 들고 온 도구들이었다. ‘컨탬’은 컨태미네이션(contamination), 즉 ‘오염’을 뜻하는 준말이다.
지난 5월 15일 고려대 의대 내 ‘지역 법의관 사무소’ 안이었다. 이 사무소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대학들과 협약을 맺고, 시신 부검을 할 수 있도록 대학 내에 설치한 일종의 작은 분소다. 서울에선 3개 대학에서 운영 중이다. 고려대, 서울대, 가톨릭대다.
문 밖이 갑자기 소란스럽다. 카트 바퀴 소리다. 서둘러 헤어캡을 뒤집어썼다. ‘애써서 검사했는데 시료를 오염시킨 기자의 고향이나 알아냈다’는 원망을 들을 순 없었다. 좁은 침대 모양을 한 카트가 천천히 들어섰다. 카트의 탑승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흰 천을 덮어쓰고 있다. “그냥 카트 위에서 합시다.” 김한겸 고려대 의대 교수가 말했다. 역시 ‘컨탬’ 가능성 때문이었다. 흰 천을 들췄다. 투명한 비닐 아래 주인공이 모습을 드러냈다. 뼈와 살이 모두 온전한 시신, 미라였다. 얼핏 봐도 건장한 체격의 남성이다. 비닐을 자르는 모습을 지켜보는 김 교수의 얼굴에 살짝 긴장감이 스치는 듯했다. ‘미라 전문가’인 그에게도 의미 있는 장면이었다. 국과수 연구팀이 최초로 미라 연구에 동참하는 순간이니 말이다.
400년 전 40대 이상 추정
미라의 상태는 놀랄 만큼 온전했다. 피부색만 어둡게 변했다 뿐이지 몸이며 얼굴 생김이 생생했다. 손톱과 머리카락도 그대로였다. 2016년 경기도 의정부에서 발견된 이후로도 보관을 잘 해온 듯했다. 고려대 의대 해부학교실 냉장고가 이 가칭 ‘김의정’ 미라의 임시 거처다. 의정부라는 발굴 지명을 딴 가칭이다. 김한겸 교수팀은 김의정 미라가 400년 전에 생존했고 적어도 40대 이상이라 추정한다. 같이 있을 법한 묘비석은 아쉽게도 못 찾았다. 입고 있던 옷과 칠성판, 만사 등 함께 출토된 물품은 각기 다른 기관들에서 연구 중이다. 칠성판은 관 바닥에 까는 널빤지다. 북두칠성 모양으로 구멍을 뚫어 놔서 칠성판이다. 시계가 없던 시절엔 북두칠성이 시계였다. 북두칠성만 찾으면 시간을 알 수 있었다. 북극성을 중심으로 한 시간에 15도씩 반시계방향으로 돌고 있어서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계의 태엽이 끝나면 죽음이다. 다시 새로운 시간을 받으러 돌아가야 한다. ‘돌아가셨다’고 할 때, 돌아가는 그곳이 바로 북두칠성이다.
사망원인은 뭘까. 출토 이래 김한겸 교수팀은 여러 가지 검사를 하며 연구를 해왔다. 추정되는 사망원인을 일단 3가지로 추렸다. 첫째, 심혈관 질환이다. 미라는 육안으로 보기에도 비만 체형이었다. 신장 169㎝에 생존 당시 추정 몸무게는 90㎏이다. 특히 복부 부분의 지방층이 현저히 두꺼워 보였다. 검사 결과 동맥경화가 관찰됐다. 둘째, 폐디스토마다. 이름 그대로 사람의 폐 안에 들어가 사는 기생충이다. 번식을 위해 숙주인 사람이 기침을 하게 만든다. 알을 몸 밖으로 배출하기 위해서다. 폐디스토마에 걸리면 기침이 나오고, 마치 결핵처럼 피 섞인 객담을 뱉는 이유다. 김 교수는 2004년 대전에서 발견된 ‘학봉 장군 미라’ 역시 폐 질환과 디스토마 때문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다. 조선 전기에 양반계급에선 민물생선을 날로 먹는 식생활이 일반적이었다. 기생충에 노출되기 쉬운 환경이었단 얘기다. 세 번째는 간경화다. 최종 결론은 앞으로 발표할 보고서에 담을 예정이다.
정종민 연구관이 메스를 들었다. “일단 모발부터 채취할게요.” 머리카락은 많은 얘기를 해준다. 한 달에 약 1㎝씩 자란다. 긴 머리카락을 분석하면 지난 몇 년간 뭘 먹었는지, 어떤 약물을 복용했는지 등을 알 수 있다. 중금속 함유량 등을 통해서다. 정 연구관이 조심스럽게 메스를 움직여 머리카락을 모근째 떼어냈다. 머리가 엉켜 있어 분리하는 데 애를 먹었다. 자세히 보니 상투였다. 그것도 ‘쌍상투’였다. 정 연구관은 상투를 고정한 검정색 끈도 조금 잘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