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 재난 수준의 폭염이 덮친 시간, 나는 지구의 마지막 파라다이스를 찾았다. 갈라파고스의 본섬 산타크루즈의 아요라항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비로소 현실에선 멀기만 했던 갈라파고스에 도착한 것을 실감했다. 그런데 내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상상과는 달랐다. 크지 않은 항구의 길거리엔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이 넘쳤다. 관광객을 가장 먼저 맞이한 것은 외관에 꽤 신경을 쓴 레스토랑과 바, 호텔, 기념품 가게들이었다. 이미 섬은 웬만한 관광지의 편의시설은 다 갖춘 도시의 모습이었다. 다양한 관광 코스와 액티비티 상품을 선전하는 간판들은 풍경의 일부처럼 보였다. 수많은 관광객들로 인해 섬은 이미 전력 생산 차질, 상하수도 문제, 교통과 숙박시설, 쓰레기 처리 등 각종 문제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한다. 내 눈에 섬들은 자연보전과 관광을 위한 개발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생명과 자연 그리고 인간의 공존이 말처럼 쉬운 길이 아님을 이곳에 도착한 순간 실감했다.
지난 7월 말 나는 갈라파고스(Galapagos)에 다녀왔다. 지구 반대편 갈라파고스에 가게 된 이유는 내가 진행하는 프로젝트 ‘그리팅맨-인사하는 사람’ 조각 때문이었다. 그동안 지구상에 몇 안 남은 생태계의 보고 갈라파고스에 그리팅맨을 세우고 싶어 여러 경로로 노력을 했다. 결국 그리팅맨은 갈라파고스에는 가지 못하고 아쉽지만 갈라파고스를 가기 위한 관문 도시 에콰도르 과야킬에 세우게 됐다. 하늘이 도왔는지 작품 설치가 예상보다 일찍 끝나 오픈일까지 일주일 정도 시간이 허락됐다. 나는 주저 없이 갈라파고스로 날아갔다. 비행기가 착륙할 즈음 섬들이 눈 안으로 들어오자 벅찬 흥분으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이곳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나는 그리팅맨을 여기에 세우지 않은 것에 안도했다. 인간에 의한 상처와 작위적 치장에 신음하는 이 섬과 이곳의 생명을 생각해보니 나 한 명이라도 더 이상 ‘인간의 것’을 보태지 않는 것이 갈라파고스를 살리는 길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갈라파고스는 아직도 인간의 손때가 덜 탄 생명의 땅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에서도, 사람이 넘치는 길거리와 작은 어시장, 해변 등 어디에서도 이곳의 ‘진짜 주인’들을 만날 수 있다.
지구상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갈라파고스의 생명체들을 통해 지구가 베풀어준 경이로움과 자연에 대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자연과 인간, 생명의 공존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8일간의 짧은 체류였기에 갈라파고스제도 전체를 다 볼 수는 없었지만 내가 느낀 감동의 작은 조각들을 틈틈이 썼던 일기를 통해 전한다.
갈라파고스 일기 #1
발트라공항(Isla Baltra)~산타크루즈섬(Isla Santa Cruz)~아요라항(Puerto Ayora)~다윈연구소~산타페섬(Isla Santa Fe)
갈라파고스는 128개의 크고 작은 섬과 암초로 이루어져 있다. 13개의 섬(10㎢ 이상 크기)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중에 사람이 살도록 허락된 섬은 다섯 개(그중 한 군데는 군인들만 거주함)다. 본섬인 산타크루즈에는 다윈연구소가 세워져 있다. 다윈이 이곳의 동물들을 관찰하고 연구했던 장소다. 특히 연구소 부지에서 갈라파고스 땅거북과 육지이구아나를 키우고 있어서 이들을 가까이서 만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산타크루즈섬에서는 바다사자들과 바다이구아나, 펠리컨들이 사람과 어울려 살고 있다. 길거리 곳곳에서 이들을 만나는 것은 강렬하고 신기한 경험이다. 둘째 날, 무인도인 산타페라는 섬에 투어를 다녀왔다. 사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느긋하게 일광욕을 즐기는 수많은 바다사자와 바다이구아나, 바다거북, 갈라파고스의 상어들을 만났다. 이들이 이 섬의 주인이다. 주인의 초대 없이 무단 침입한 이방인으로서는 그들의 삶을 방해하지 않고 최대한 겸손해지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만약 지구상에 인간이 지금처럼 존재하지 않았다면, 다시 말해 지구상의 최상위 포식자로 경쟁자 없이 군림하는 왕이 없었다면 이 지구는 어땠을까? 약육강식의 투쟁적인 세계로 해석된 자연계가 아니라 생명의 본래 뜻대로 지구는 아름답지 않았을까? 다윈이 ‘종의 기원’을 통해 설파한 생명의 진화론을 우리는 정복하고 군림하고 지배하는 인간의 관점으로만 해석한 것이 아닐까? 인간이 만든 투쟁적이고 승자독식의 세계관은 오히려 우리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들고, 그 불행이 아(我)와 타(他)를 해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곳에 오니 우리가 다른 종에게 저지르는 숱한 잘못들이 떠오른다. 앞으로 인간이 고스란히 되돌려받게 될 죄업을 생각하니 등이 서늘해졌다. 지금까지 멸절해간 수많은 생명 종들에 대한 사죄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만감이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