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최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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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훈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는 미국 프린스턴대학 출판부가 펴낸 야심적인 수학책 두 권의 한글판 역자다. ‘프린스턴 순수수학 안내서’와 ‘프린스턴 응용수학 안내서’. 한글판은 모두 승산출판사(대표 황승기)가 냈다. 두 권 모두 프린스턴대학 출판부가 현대 수학의 지평을 보여준 기념비적인 책으로 얘기된다. 순수수학 안내서의 영어판은 2008년, 응용수학 안내서의 영어판은 2015년에 나왔다. 그중 응용수학편의 한글판이 최근에 나왔다.

수학의 세계가 넓은 만큼 이 두 권의 책은 놀랄 만큼 두껍다. 한글판 기준 순수수학편이 1714쪽(1권 1116쪽, 2권 598쪽, 2014년 출간)이고, 응용수학편은 1575쪽(1권 936쪽, 2권 639쪽) 분량이다. 정경훈 교수는 서울대 수학과 87학번이다.

“순수수학 책은 고등과학원에서 번역을 많이 했다. 그래서 응용수학은 서울대 수학 강의교수들이 맡았다. 책이 나온다는 걸 알고, 응용수학 공부도 할 겸해서 번역해 보자고 기초교육원(교양학부) 동료 교수에게 제안했더니 대부분 흔쾌히 응했다.”

지난 8월 31일 서울대 자연과학대 25동 123호 연구실에서 만난 정 교수는 “미적분학, 공학수학, 생명과학을 위한 수학을 가르치다 보면 갈증이 있었다. 응용수학을 좀 더 알고 싶었다”며 번역 동기를 말했다. 정 교수는 “번역한 책을 많은 이가 찾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승산출판사 황승기 대표에게 얘기했더니 ‘당연히 출판해야 한다’며 선뜻 나서서 번역하게 됐다”고 말했다. 책의 40%는 미국 MIT 박사과정에 있는 박민재씨가 번역했고, 나머지는 정 교수를 비롯한 서울대 기초교육원 교수 9명이 나눠서 번역했다.

정 교수와 같은 방을 쓰는 김영득 교수도 ‘프린스턴 응용수학 안내서’ 번역에 참여했다. 김 교수는 “순수수학도 그렇지만, 응용수학도 연구의 최전선이 어디인지를 알아야 한다. 한국은 그 점에서 선진국에 비해 늦다. 이 책을 보면 각 분야 연구의 최전선이 어딘지 알 수 있다. 이르면 중 3부터 대학교 2학년 학생이 이 책을 보면 진로를 찾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승산출판사의 책 설명 문구가 인상적이다. “모든 현대 과학은 응용수학이다. 따라서 이 책은 과학 전체를 가로지르는 개론서이다.”

‘프린스턴 순수수학 안내서’는 수학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필즈상 수상자(1998) 윌리엄 티모시 가워스가 편집 책임을 맡았다. 이 책은 2011년 미국 수학학회가 주는 상을 받았다. 이 책의 성공에 힘입어 속편으로 ‘프린스턴 응용수학 안내서’가 기획되었다. 영국 맨체스터대학 응용수학자 니콜라스 하이엄이 책 편집위원회를 이끌었다. 책은 각 분야의 선도적인 연구자 165명이 집필했다. 책은 응용수학이란 무엇인가를 말하고, 중요한 개념을 소개하면서 시작한다. 이어 응용수학의 분야를 40개로 나눠 소개한다. 역(逆)문제, 컴퓨터과학, 데이터 마이닝과 분석, 네트워크 분석, 고전역학, 동역학계, 분기이론, 양자역학, 유체역학, 자기 동수력학, 지구 시스템 동역학, 정보이론, 일반상대론과 우주론이 40개 분야에 포함돼 있다.

정 교수는 ‘응용수학자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수학과를 졸업하지 않았으나, 연구에 수학을 가져다 사용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순수수학과 응용수학이 수학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고 했다. “수학자는 특정 문제가 옳은지 그른지 증명이 완료되어야 끝났다고 생각한다. 물리학자는 다르다. 물리학적으로 의미가 있는 해가 나오면 풀이가 끝났다고 생각한다.” 정 교수는 ‘물리학자는 근사치에 만족한다는 말인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정 교수에 따르면, 수학자가 아직 풀지 못한 방정식 중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이 있다. 유체의 힘과 운동량 변화를 기술하는 수식이다. 항공역학자는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의 해를 구해, 항공기 운항에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수학자는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 해의 안정성이 증명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물리학자는 근사치로도 충분하다고 보지만 수학자는 완전한 풀이를 구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때문에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 증명 문제는 밀레니엄 문제에 포함돼 있고, 증명에 100만달러의 상금이 걸려 있다.

‘프린스턴 응용수학 안내서’ 앞부분에는 일상 속의 응용수학 문제가 몇 개 소개돼 있다. 스마트폰의 카메라로 사진을 찍은 뒤 우리는 흔히 이미지를 보정한다. 이른바 ‘뽀샵’이라고 불리는 과정이다. 주변과 같은 색으로 나오지 않고 특정 부분이 반사되어 나올 경우 우리는 뽀샵을 한다. 주변 색과 같도록 보정한다. 이 작업에 엄청난 수학이 동원되는 줄 몰랐다. 편미분방정식, 라플라스 연산자, 디리클레 경계조건을 가진 푸아송방정식, 쌍조화방정식 등. 사진 보정이 금지된 사진 대회에 출품된 작품이 뽀샵을 한 것인지 아닌지를 알아내는 것도 수학의 영역에 들어가 있다.

“고교 과정에서 가르치는 수학은 응용수학의 가장 보편적인 도구라고 할 수 있다. 미분과 적분이 고교 졸업 후 나중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수학 도구다. 순수수학을 대학에 가서 배우기 위해 고교과정에서 미적분을 공부하는 게 아니다. 가령 CT촬영은 수학의 역(逆) 문제이고, 적분 문제다.”

역 문제란, 해를 거꾸로 찾아가는 수학 문제라고 정 교수는 말했다. 신체를 CT촬영한 뒤 얻은 값을 가지고 신체 내부의 3차원 모습을 거꾸로 복원하는 게 CT촬영에 들어 있는 수학 모델이다. 한 방향에서 얻은 값들과, 90도 방향에서 얻은 값들을 나란히 놓고 비교하는 식으로 특정 지점의 3차원 값을 얻어낼 수 있다.

1500쪽이 넘는 이 책은 어떻게 읽을 수 있을까. 편집위원장인 니콜라스 하이엄은 “편집자들은 독자 다수가 책을 휙 넘겨 흥미로운 무언가를 찾아 읽기 시작하고, 상호 참조를 따라 책 속을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돌아다니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황승기 승산출판사 대표는 “목차를 처음 살펴본 독자는 바버라 키피츠의 ‘보존법칙’장에 눈길이 갈 수도 있고, 제인 왕이 쓴 ‘곤충의 비행’에 눈길이 머물 수도 있다. 또는 필립 홈즈의 ‘동역학계’, 잭 돈가라의 ‘고성능 컴퓨터 계산’에 관심이 갈 수도 있다”면서 “책 곳곳에 보물 같은 주제가 숨어 있으며 독자는 자신만의 독서법을 찾아내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정경훈 교수는 한국에 잘 소개되지 않은 응용수학 분야와 관련 “내가 번역한 응용수학편의 유효매질이론의 경우 한국에 관련 자료가 하나도 없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중·고교 교사는 학생으로부터 ‘수학 배워서 어디에 쓰나’ 하는 질문에 부딪힐 수 있는데 프린스턴 응용수학 안내서는 그런 고민을 가진 중·고교 교사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서울대에서 ‘양자군의 표현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수학을 대중에게 친근하게 만드는 노력을 많이 하는 학자다. 네이버와 대한수학회가 공동으로 추진한 ‘수학백과사전’ 제작에도 참여, 2000개 표제어 중에서 150개를 집필했다. 이 사전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현재는 네이버 지식백과에 ‘365일 수학’을 다른 4명의 필진과 돌아가면서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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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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