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혈폭력이 난무하는 액션스릴러 ‘이퀄라이저 2’에 출연한 덴절 워싱턴(63)과의 인터뷰가 최근 LA 비벌리힐스의 포시즌스호텔에서 있었다. 그는 이 영화에서 악인들과 힘 있는 자들에 의해 괴롭힘을 당하는 무기력한 사람들을 대신해 폭력으로 정의를 실현하는 전직 정부기관 비밀요원 로버트 맥콜로 나온다. 굵고 우렁찬 바리톤 음성을 지닌 워싱턴은 요란한 제스처와 함께 혼자서 웃고 떠들면서 인터뷰를 즐겼는데(?) 막상 질문에는 명확한 대답을 하기보다 “질문이 뭐지”를 반복하면서 불성실한 태도를 보였다. 자신만만하고 도도한 언사와 태도가 다소 오만하게 느껴졌다.

- 영화에서 맥콜은 같은 아파트에 사는 고교생이 탈선을 못 하도록 후원자 역할을 하는데 실제로도 그런 일을 하는가. “그렇다. 나는 여러 명의 불우한 아이들을 돕고 있다. 그들이 살아 있다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보람을 느끼는데 그들 중 일부는 대학을 마쳤다.”

- 액션신을 위해 어떤 준비를 했는가. “매 장면이 다 심사숙고해 이뤄진 것이다. 와인 병따개와 뜨거운 커피 그리고 병 등 눈에 보이는 물건들을 무기로 사용하는 것을 비롯해 무엇 하나 즉흥적으로 한 것이 없다. 감독 안트완 후콰와 함께 면밀히 상의해서 한 것이다.”

- 속편 만드는 데 왜 4년이나 걸렸는가. “우선 우린 속편이란 말을 쓰지 않았다. 각본을 쓰는 데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러나 사실 전편이 2014년에 나온 것을 생각한다면 그렇게 오래 걸린 것은 아니다. 그리고 감독이나 각본가가 날 기다렸는지는 모르겠으나 난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 영화에서 맥콜은 책을 즐겨 읽는데 역을 위해 실제로 책을 읽었는가. “내 실제 삶을 위해서 읽은 책들은 있지만 역을 위해선 안 읽었다. 그럴 필요를 못 느꼈다.”

- 제공되는 역들이 많을 텐데 역을 어떻게 결정하는가. “각본에서 무언가 흥미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한 기준이다.”

- 맥콜은 독서광인데 실제로 당신에게 큰 영향을 준 책들은 무엇인가. “어렸을 때 본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와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이다. 특히 정보화 시대에 관한 ‘제3의 물결’에 관심이 많다. 40년 전에 그가 말한 것이 이제 현실화하지 않았는가.”

- 집에서 보내는 완벽한 저녁은 어떤 것인가. “하겐다스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이다. 칼 말고 숟가락으로 퍼 먹는다. 그리고 매사를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 좋아하는 음식은. “아내가 해주는 것은 다 좋아한다. 난 술은 안 마신다.”

- 4남매를 키우면서 배운 것은 무엇인가. “아이 양육에 한 가지 방법이란 없다. 내 아이들은 서로 아주 다르다. 내가 배운 것은 기반과 근본이다. 연기는 내 생계를 위한 것이지 내 삶은 아니다. 젊었을 땐 연기가 내 삶이었다. 그러나 첫아들 존 데이비드가 태어나면서 연기는 생계수단이 되었다. 아들이 내 삶이었고 삶의 기적이었다. 아들이 태어나자마자 내가 돌봐야 한다는 책임을 깨달았다. 그러나 아이들이 다 서로를 사랑하고 균형 있게 성장한 것은 순전히 내 아내의 공이다.”

- 인내심이 많은가. “나이를 먹으면서 전보다 많아졌다. 행동이 굼떠지니 자연 참을성도 늘어나게 된다. 난 요즘 한숨 쉬어가는 것을 배우고 있다. 과거에는 단숨에 달려가곤 했다.”

영화 ‘이퀄라이저 2’의 덴절 워싱턴.
영화 ‘이퀄라이저 2’의 덴절 워싱턴.

- 후콰 감독과 자주 일하는 이유는. “우리는 함께 영화를 만들면서 성공했다. 난 후콰뿐 아니라 스파이크 리와 에드 즈윅과도 콤비가 잘 맞는다. 그들과는 긴 말 없이도 서로가 상대의 뜻을 알 수 있다. 후콰와는 그가 영화를 어떻게 만들까 하고 염려할 필요도 없고 또 간섭할 필요도 없다. 그는 연출하고 나는 연기를 하면 된다.”

- 액션을 위해 신체 단련이라도 했는가. “전편보다 몸 푸는 운동을 많이 했다. 내가 아직도 액션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 연극배우로 무대에 선 소감은. “난 연극을 정말로 사랑한다. 내가 배우로서 먼저 사랑하게 된 것은 연극이었다. 연극 관객으로부터 얻는 반응은 영화, TV의 관객이나 시청자들로부터는 결코 얻을 수 없다. 연극은 그날 참석한 관객들의 숨결에 의해 생명력을 얻게 된다. 배우로서 최고의 경험은 무대에 서는 것이다.”

- 젊은 배우지망생들에게 해줄 조언은. “무대에 서라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가 가진 소질을 꾸준히 향상시키라고 말하고 싶다.”

- 현재의 성공에 이르기까지 힘들었는가. “쉽지 않았다. 이 직업에 성공을 위한 마법적 특효약이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모든 일을 제대로 해도 여전히 아무 곳에도 다다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도대체 성공이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은 명성을, 또 어떤 사람은 돈을 원하는데 난 좋은 배우가 되길 원한다.”

- 과거의 고통이 후에 삶의 약이 된 경우가 있는지. “대학에서 쫓겨난 것이다. 그때 난 삶의 방향을 잃고 허둥댔었다. 마침 여름캠프에 자리가 나 거기 취직해 아이들을 위해 연극을 했다. 그때 누군가 나보고 연기에 소질이 있다면서 배우가 될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난 다시 인문학을 가르치는 대학교로 돌아가 여러 과목을 공부하면서 서서히 예술 쪽으로 방향을 잡아나가게 됐다. 삶의 바닥에 이르렀을 때 내 본업을 찾게 된 것이다.”

- 지금까지 드라마나 액션영화에만 나오다시피 했는데 코미디 기질도 있는가. “사람들은 나보고 코미디를 하라고 말들을 한다. 내가 재밌다고 한다. 나는 유머감각이 풍부하다. 그러나 난 드라마로 이 분야에 들어섰기 때문에 방향을 틀기가 쉽지 않다.”

- 후콰를 좋아하는 이유는. “난 그가 감독한 ‘트레이닝 데이’로 오스카상을 탔다. 그는 무엇보다 좋고 멋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위대한 영화인이다. 난 충성심이 강한 사람이다. 그래서 일단 누군가를 좋아하면 끝까지 간다.”

- 맥콜은 영화에서 리프트 운전사로 나와 여러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는데 실제로 대화 기술이 좋은가. “아니다. 난 언제나 어떤 질문에라도 즉각적으로 대답을 한다. 두 번 생각하고 한 번 말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두 번 말하고 한 번 생각하는 스타일이다.”

- 영화 끝에 맥콜은 허리케인 속에서 적들과 싸우는데 그런 천재지변을 만나본 적이 있는가. “노스리지(LA 북쪽 인근 도시) 지진을 겪었다. 기차가 집 안으로 돌진해 들어오는 줄 알았다. 그래서 베개를 머리 위에 올려놓고 ‘아이고 어머니’ 하고 부르짖었다.”

- 흑인이 감독하고 주연하는 영화는 아직도 많지 않은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차차 나아지고 있다. 얼마 전에 뉴욕에서 흑인이 감독하고 흑인들이 주·조연한 ‘블랙팬서’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시드니 포이티에가 흑인의 이름을 스크린에 뚜렷이 부각시킨 뒤로 수십 년 만에 내가 그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이제 바통은 ‘블랙팬서’를 만든 사람들에게로 넘어가고 있다. 아직 달리기를 끝낸 것은 아니나 바통을 물려준 것은 사실이다. 이젠 그들에게 달렸다. 난 달리는 그들을 뒤에서 응원하는 자리에 서 있다. 훌륭한 사람들에게 바통을 물려준 것에 만족한다.”

- 올해 칸영화제에서 당신의 아들 존 데이비드가 주연하고 스파이크 리가 감독한 ‘블랙클래스맨’이 상을 탔을 때 기분이 어땠는가. “나보다 아내가 더 뛸 듯이 좋아했다. 난 아들이 어렸을 때부터 훌륭한 배우가 될 줄 알았다. 존은 어렸을 때, 내가 할리우드에 제대로 명함을 내밀게 된 영화 ‘글로리’를 수없이 보면서 영화에 나온 모든 사람들의 대사를 숙지했다. 그래서 존이 배우로 입문해 좋은 평을 받는 것이 사실은 놀랄 일도 아니다. 모든 악센트에도 능하고 재능이 있다.”

박흥진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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