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바티칸으로 불리는 로마 ‘산 조바니 라테나노 대성당’에 있는 교황 전용 기도실 산크타 산크토룸.
제2의 바티칸으로 불리는 로마 ‘산 조바니 라테나노 대성당’에 있는 교황 전용 기도실 산크타 산크토룸.

유럽, 특히 이탈리아의 오래된 교회로 들어서면 바닥이 대리석으로 돼 있는지 주목하게 된다. 특히 색깔이 오렌지색을 포함한 황금색 계통인지부터 살핀다. 바닥이 대리석이라도 황금색 계통과 무관한 흰색일 경우 ‘지방 교회’다. 부분적이라도 황금색 바닥으로 장식돼 있을 경우 바티칸이 직접 통치하는 교회다. 중세 이래 전통이지만, 황금색 대리석이 많을수록 교황의 그림자가 강하게 드리워진 곳이다. 가톨릭 교회 자체가 교황의 땅이지만, 재정·조직·운영 모든 면에서 바티칸의 직접적인 통제하에 놓였다는 증거가 황금색 대리석 바닥이다. 권력가·재력가가 죽기 전에 교회를 건립해 교황에게 바친다 해도 제멋대로 바닥 대리석을 결정할 수 없다.

교회의 우열을 따진다는 것이 이상하지만, 굳이 나눌 경우 황금색 바닥의 교회가 그렇지 않은 교회보다 높다. 왜 황금색일까. 유사 이래 황금을 대하는 인간의 특별한 감성이 원인일 듯하다. 세속적 재화라서가 아니다. 변하지 않는 신비함과 은은한 아름다움 때문이다. 황금색의 사촌 격인 노란색은, 바티칸 국기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색이기도 하다. 예수 탄생 때 3명의 동방박사 가운데 첫 번째 인물이 바친 선물도 황금이다. 대리석도 황금색 계통이 훨씬 더 귀하다.

연말연시 바티칸은 전 세계 미디어가 주목하는 현장이다. 종교적 열정에 사로잡힌 기독교도들 때문만이 아니라 역사·전통·예술이 숨쉬는 글로벌 관광지가 바티칸이기 때문이다. 최근 여행 전문사이트 트립어드바이저(Tripadvisor.com)가 내건 ‘이탈리아에서 체험해야 할 10선(選)’ 중 1위 자리에 오른 것도 바티칸 방문이다. 일찍 일어나 바티칸 교회 미사에 참여하라는 것이 아니다. 역대 교황들이 수집해온 유물과 유적의 보고인 박물관부터 체험하라는 것이 여행 사이트의 조언이다. 필자 역시 로마에 갈 때마다 바티칸은 반드시 찾는다. 워낙 많은 인파가 몰리기에 꼬박 하루를 잡아야 다 둘러볼 수 있는 곳이다.

이미 수차례 둘러봤지만 이번에는 교회 바닥을 열심히 들여다볼 생각으로 로마에 왔다. 구체적으로 어떤 색상과 문양에다, 어떤 장식이 새겨졌는지를 알고 싶었다. 황금색도 있지만 고대 이래 대리석의 최고봉인 검붉은색 바닥이 바티칸만의 권위이자 특징이다. 황금색도 귀하지만 검붉은색은 대리석의 다이아몬드에 해당한다. 검붉은 대리석은 고대 로마 황제의 전유물이기도 했다. 대리석 하나를 통째로 깎아 만든 황제 전용 원반형 목욕탕도 검붉은색이다.

라테나노 대성당 외관. 바티칸 이전 1000년간 교황의 사저로 쓰인 곳이다.
라테나노 대성당 외관. 바티칸 이전 1000년간 교황의 사저로 쓰인 곳이다.

로마의 또 다른 성지

바티칸 방문 계획을 잡고 있는데 로마 호텔 체류 중 알게 된 필리핀인으로부터 흥미로운 얘기 하나를 듣게 됐다. “2019년 1월 1일부터 사람들로 터져나갈 제2의 바티칸이 있다. 거기부터 가는 것도 좋을 듯하다. 바닥 대리석은 바티칸 못지않다. 아침 일찍 가면 한산하다.”

필리핀인이 소개해준 곳은 ‘산 조바니 라테나노 대성당(Archbasilica of St. John Lateran·이하 라테나노)’이었다. ‘제2의 바티칸’이란 말이 인상 깊어서 곧바로 찾아가봤다.

라테나노는 바티칸을 기점으로 할 경우 동쪽으로 5.6㎞ 떨어져 있다. 로마 테르미니 중앙역에서 출발하면 천천히 걸어도 30분 만에 갈 수 있다. 필자가 그러했듯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라테나노가 금시초문일 듯하다. 그렇지만 가톨릭 신자라면 바티칸이나 이스라엘에 버금가는 성지가 라테나노다. 테르미니역에서 라테나노로 걸어가면서 확인했지만, 라테나노로 향하는 사람들이 엄청 많다. 라테나노로 향하는 표시판도 곳곳에 걸려 있고 도중에 성구(聖具)를 파는 가게도 많다.

흥미로운 것은 라테나노 성당의 지형적 위치다. 라테나노를 중심에 둘 경우 남동쪽으로 인접해 이어진 길의 이름이 신(新)아피아(Appia)다. 그 유명한 고대로마의 동맥선인 아피아도로로 연결되는 길이다. 로마에서 출발해 이탈리아 지도상 구두 뒤축에 해당하는 브린디지(Brindisi)까지 연결되는 전장 562㎞ 도로의 출발점이 라테나노인 셈이다.

라테나노에 도착하자 초대형 교회와 더불어 45.7m 높이의 오벨리스크가 눈에 띈다. 4세기 때 황제였던 콘스탄티누스 2세가 이집트에서 갖고 온 것이다. 원래 2개였는데 한 개는 터키 이스탄불에 가 있다. 로마에는 현재 모두 8개의 이집트 오벨리스크가 서 있다. 라테나노 오벨리스크의 경우 로마 멸망과 함께 버려져 있다가 16세기 현재 위치로 옮겨졌다. 로마에 세워진 오벨리스크 꼭대기를 유심히 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다. 예외 없이 십자가를 달고 있다. 기원전 3000년 전 시작된 인류 문명의 출발점인 이집트가 이미 오래전 바티칸의 영향력 아래 들어갔다는 것을 방증해준다.

라테나노 안으로 들어갔다. 필리핀인의 말처럼 바닥은 검붉은 대리석으로 덮여 있다. 예수는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라고 강조했다. 건물의 기반만이 아니라, 신앙을 강하게 하라는 은유적 표현이다. 그러나 반석 위 교회는 이스라엘과 주변의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당연한 결론이기도 하다. 바로 지진이 문제였다. 지진에 견디면서 오래가기 위해서는 반석이 필요했다. 고대 그리스 도시의 대부분은 높은 언덕 바위 위에 세워져 있었다. 다른 문명권과 달리 고대 그리스의 유물과 유적이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는 이유는 바로 반석 위 건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대 로마의 생활기반은 대체로 토지로 이뤄진 평지다. 땅 위에 그냥 교회를 세울 경우 예수의 말을 거역하게 된다. 대리석은 그 같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평지지만 예수의 ‘반석 위 교회’를 실천하기 위한 방안으로 대리석 바닥이 차용됐다. 황금색이나 검붉은 대리석은 미적 감각과 더불어 강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기반이다. 차가운 흰색이 아니라 다양한 색상과 문양들이 바닥, 벽, 나아가 천장으로 이어져 있다. 라테나노 안의 수많은 문양은 역대 로마 교황들이 개인적으로 사용했던 것들이다. 교황과 기독교 역사의 흔적들이다. 라테나노가 ‘제2의 바티칸’이라 불리는 이유를 수많은 문양 속의 스토리를 통해 재확인할 수 있다.

라테나노 대성당 실내. 천장이 돔형이 아니라 평면으로 돼 있다.
라테나노 대성당 실내. 천장이 돔형이 아니라 평면으로 돼 있다.

가장 오래된 공공교회

바티칸과 비교해볼 때 라테나노는 크기가 거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장식의 화려함은 바티칸 못지않다. 중간 회랑을 중심으로 좌우 각각 5개의 성인 조각이 들어서 있다. 제단을 바라보면서 가장 가까운 쪽에 바울과 베드로가 들어서 있다. 제단의 예수를 지키는, 초기 기독교 설계자들이다. 예수를 바라보면서 바울이 오른쪽, 베드로가 왼쪽이다. 항상 똑같은 구도다. 바울은 동쪽의 그리스정교, 베드로는 서쪽 로마 가톨릭의 출발점이다. 오해하기 쉬운데, 예수 12제자들은 ‘결코’ 하층민이 아니었다. 경제적·사회적으로 소외되고 가난했던 프롤레타리아 계급 소속이 아니었다. 예컨대 어부 베드로는 자기 배를 갖고 있었다. 글을 읽고 쓸 줄 알며 심지어 그리스어까지 이해한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당대의 지식인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12제자와 무관한 것은 물론 예수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바울은 학식·견문이란 측면에서 ‘아주’ 특출하다. 바이블은 그 같은 당대 최고 지식인들의 집산물이다. 흥미로운 것은 황금색으로 장식된 라테나노 회랑 천장이다. 바티칸의 웅장한 돔형과 달리 전부 평면이다. 초대형 돔형 천장은 평면보다 한층 더 발달된 건축기법이다. 크고 길게 연결해도 안 무너진다. 라테나노보다 바티칸이 2배 정도 커진 비밀이기도 하다.

라테나노는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공공교회다. 원래 바티칸은 신자들 모두에게 개방된 공공교회가 아니었다. 반면 라테나노는 기독교도 모두에게 문을 열면서, 역대 교황의 집무실이자 집으로도 활용됐다. 라테나노 대성당 바로 옆에 붙은 붉은 벽돌 건물이 바로 교황의 집이다. 따라서 라테나노는 대성당(Archbasilica)만이 아니라 성(Palace)으로 불리기도 한다. 14세기 교황 클레망스 5세가 프랑스 아비뇽으로 옮기면서 기능을 상실했지만, 거의 1000년간 교황의 사저로 쓰인 곳이다. 바티칸이 현재의 모습과 크기로 등장한 것은 16세기부터다. 교황이 아비뇽에서 다시 로마에 돌아오면서 사저로도 쓸 수 있도록 증축된 바티칸으로 옮겨왔다. 따라서 바티칸 교황 사저의 역사는 길어야 500년이 안 된다.

라테나노는 제2의 바티칸인 동시에 바티칸처럼 치외법권이 적용되는 특이한 곳이다. 국가로서 로마 바티칸의 명칭은 ‘홀리 시(Holy See)’다. 성좌(聖座)로 풀이될 수 있는 말로, 유엔에 등록된 바티칸 국명도 ‘홀리 시’다. 성좌는, 예수로부터 천국문 열쇠를 받은 베드로의 권위에서부터 시작된다. 제1대 교황에 해당하는 베드로와 이후 교황으로 연결되는 성(聖)의 정통성이 성좌다. 상식적 얘기지만, 바티칸의 중심건물은 베드로(San Pietro)교회다. 사실 종교적으로 보면 전 세계 가톨릭 교회와 사제단 전부가 성좌 영역에 들어간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보면 로마 바티칸만이 교황의 직접적인 통제하에 있다. 흥미롭게도 라테나노는 바티칸과 더불어 교황이 직접 통제하는, 정치적 의미의 교황의 땅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라테나노에서 형사사건이 발생할 경우 이탈리아 정부가 아닌 ‘홀리 시’ 관할이라는 의미다. 이탈리아인 범법자가 라테나노 대성당에 도망가면 바티칸과 마찬가지로 이탈리아 경찰이 무단침입해 검거할 수 없다. 라테나노는 이탈리아에서 유일한, 바티칸 바깥에 위치한 성좌다.

교황 기도실 내부에 그려진 예수. 천사가 그린 것으로 통한다.
교황 기도실 내부에 그려진 예수. 천사가 그린 것으로 통한다.

1월 1일 재오픈… 한 달 예약 끝나

라테나노는 로마의 성지순례 영순위에 해당하는 곳이다. 대략 4세기부터 지금까지 순례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필자 판단이지만, 기독교도들에게는 바티칸보다 이곳이 더 중요할 수 있다. 기독교에서 성지순례는 예수나 12제자의 흔적을 되새기며 기도하는 데 있다. 기본적으로, 교황이 성지순례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라테나노는 교황의 집으로 1000년간 활용됐다는 점 때문만이 아니라 예수의 흔적이 서린 곳이기에 영순위 성지순례지로 자리 잡은 것이다. 어떤 곳이 직접 예수와 연결될 수 있을까. 라테나노 바로 앞에 들어선 ‘스칼라 산크타(Scala Sancta)’가 답이다. 영어로 ‘성스러운 계단(Holy Stairs)’으로 번역되는 곳으로 예수가 십자가 처형 선고를 받을 당시 오르내렸던 바로 그 계단이다. 예수를 심문하던 당시 로마 총독 빌라도 집무실의 계단이었는데 4세기 기독교를 국교로 정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가 이스라엘에서 통째로 들고 왔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계단으로 전부 28단으로 이뤄져 있다.

라틴어로 ‘산크타 산크토룸(Sancta Sanctorum)’은 교황 전용기도실을 의미한다. 스칼라 산크타는 산크타 산크토룸으로 이어지는 전용계단이다. 계단은 원래 라테나노 교황 사저 안에 들어서 있었는데 16세기 교황 전용기도실을 라테나노 바깥에 만들면서 기도실로 올라가는 계단이 됐다.

스칼라 산크타는 오리지널과 이후 만들어진 계단들이 섞여 있다. 중간의 계단이 이스라엘에서 갖고 온 계단이고 나머지는 나중에 추가된 계단들이다. 중간의 스칼라 산크타는 예수의 고통과 부활을 믿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찾아가 경험하고 싶어하는 대상이다. 전 세계 기독교 신자들이 몰려들기 때문에 미리 등록을 하고 약속된 시간에만 오를 수 있다. 그냥 걸어서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무릎을 꿇은 채 밑에서부터 기어올라 28개 계단을 하나씩 통과해야 한다. 한 번 오를 때마다 기도를 하면서 천천히 올라간다. 최후의 계단 위에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30분은 걸린다.

왜 그 필리핀인이 2019년 1월 1일부터 인파로 터져나갈 것이라고 했을까. 스칼라 산크타에 도착한 뒤에야 이유를 알았다. 2018년 내내 수리를 하다가 2019년 1월 1일부터 새로 문을 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는 스칼라 산크타를 체험할 수 없었다. 입구에서 안내원에게 물어보자, 새해 1월 1일 이후 한 달 이상은 이미 방문자가 모두 차버렸다고 한다. 중간의 스칼라 산크타가 어떤 곳인지 보고 싶었지만, 바늘 통과할 만한 작은 구멍 하나 없이 봉쇄돼 있다. 대신 주변의 4개 외곽 계단을 통해 분위기를 알아낸 정도다. 임시로 설치된 4개 계단 중 제일 오른쪽의 스칼라 산크타가 성지체험 신자들에게 오픈돼 있다. 모두 무릎으로 천천히 계단 위로 오르고 있다. 계단을 전부 통과하고 올라서면 회의실과 작은 방을 만나게 된다. 작은 방은 산크타 산크토룸, 즉 교황 전용기도실이다.

신의 도움 덕분인지, 필자가 산크타 산크토룸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폐장과 함께 더 이상 방문객을 받지 않았다. 가로 세로 약 5m 정도의 공간으로, 한가운데 두 개의 기둥을 중심으로 작은 제단이 들어서 있다. 기둥과 바닥, 벽을 장식한 것은 검붉은색 대리석이다. 제단 중간에는 예수의 얼굴을 묘사한 그림이 들어서 있다. 인간이 아닌, 천사가 그린 것으로 통하는 예수의 모습으로 서기 1세기 때부터 존재해온 것이라고 한다. 천장 가까운 벽면에는 수십 명의 역대 교황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기도실 안에는 작은 의자 두 개가 있다. 심호흡과 함께 자세를 바로잡았다. 로마에서 가장 성스러운 공간이자 역사의 현장에 선 인생 최고의 순간이다. 2019년 진짜 스칼라 산크타를 체험할 시간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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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호 퍼시픽21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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