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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
[2543호] 2019.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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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 을지로3가 2층 벽돌 건물이 허물어지는 순간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글·사진 김시덕  ‘서울선언’ 저자·서울대 규장각 교수 

▲ 을지로 3~4가의 골목. 서울의 역사가 가장 층층이 쌓여 있는 곳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2019년 1월 현재 서울 중구 입정동, 그러니까 서울지하철 2·3호선 을지로3가역의 동북쪽 을지로3가에서 철거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 지역은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세운3구역에 포함되어 있고 2023년까지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라고 한다. 을지로라고 하면 흔히 서울시청에서 시작해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근처 한양공업고등학교에서 끝나는 길의 남북쪽 블록들을 말한다. 이렇게 넓은 을지로에서도 현재 서울의 역사가 가장 층층이 쌓여 있는 지점이 바로 을지로3가다.
   
   을지로3가에 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지역은 좁고 가는 골목길과 촘촘하게 쪼개져 있는 필지에 길게 세워진 건물들이 인상적이다.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가능성도 있는 골목길들이 존재하는 을지로3~4가 일대가 오늘날과 같은 근대적 도시 공간으로 변한 것은 19세기 말에 일본인들이 청계천 남쪽, 남산 북쪽인 이 지역에 살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을지로3가역의 동남쪽에는 이순신생가터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는 건물도 있지만, 한국 곳곳에 존재하는 이런 안내판이 그러하듯이 이 위치가 바로 이순신이 태어난 곳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 고려시대의 골목길이나 조선시대 전기에 이순신이 태어난 곳뿐 아니라 조선시대 후기에 이 지역에 살았을 조선 사람들의 흔적을 오늘날 이 지역에서 확인하는 것도 쉽지 않다. 우리가 을지로3가역의 동쪽 부분에서 볼 수 있는 것은, 19세기 말부터 이 지역에 정착한 일본인들이 조선시대 후기의 길 양쪽에 일본식으로 만든 ‘적산가옥’이라 불리는 일본식 가옥, 광복 후 20세기 중·후기에 한국인들이 세운 높고 낮은 건물들, 그리고 그 사이로 드문드문 솟아 있는 20~21세기 전환기의 고층빌딩들이다.
   
▲ 멕시코 삼문화광장

▲ 을지로3~4가의 간판들

   세 개의 시층이 쌓인 공간
   
   필자는 다양한 시간의 층을, 지층(地層)이라는 단어에서 착안하여 시층(時層)이라 부르고 있다. 그리고 19세기 말~20세기 전기, 20세기 중·후기, 20세기 말에서 지금에 이르는 세 개의 시층이 쌓인 서울의 공간을 ‘삼문화광장(三文化廣場)’이라 부르고 있다. 삼문화광장이란 멕시코 수도인 멕시코시티의 삼문화광장(Plaza de las Tres Culturas)에서 빌려온 개념이다. 이곳에는 아메리카 대륙이 유럽인에게 정복당하기 전인 아스테카왕국 시대의 종교 건물,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교회 건물, 그리고 독립 이후 현대의 복합용도 건물이 시층을 이루고 있다. 멕시코는 선주민과 유럽인 사이에 혼혈이 일어난 지 수백 년이 지났기 때문에, 한국의 민족주의자나 조선 문화 근본주의자가 그렇듯이 식민지 시대의 유적을 ‘민족정기 회복’이라는 명목으로 마구 파괴하지는 않는 듯하다. 또한 기단만 남은 몇몇 조선시대 건물을 ‘복원’이라는 이름으로 ‘재창조’한 뒤에 조선 왕조의 “신성함과 존엄성 유지”를 주장하며 주변의 근현대 건물을 철거하는 한국과는 달리 독립 이후 근현대에 지어진 건물 역시 자신들의 소중한 역사로 인정하고 있다.
   
   위의 ‘신성함과 존엄성 유지’라는 말은 종묘 정문에 붙어 있는 안내판에서 인용한 것이다. 이미 망한 지 100년이 지난 나라의 왕족 사당에 대해,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의 시민이 왜 신성함과 존엄성을 지켜주어야 하는지 필자는 잘 알 수 없다. 더욱이 조선 왕조가 망한 뒤에도 조선의 왕족들은 새로 마련된 이왕직관제(李王職官制)에 따라 비교적 우대받았으니, 식민지 치하에서 고통받은 백성들과는 그 처지가 분명히 달랐다. 그랬기에 1919년 3월 1일의 독립선언을 거쳐 4월 11일에 수립된 조선인들의 임시정부는 그 이름을 ‘대한제국’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고 한 것이다. 서양 국가들 및 일본의 식민지가 된 많은 지역에서 망명정부를 수립할 때 옛 왕조의 왕족을 형식적으로나마 수반으로 앉힌 것과는 달리,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은 조선 왕조를 계승한 대한제국과 결별하고 시민의 나라인 대한민국을 수립했다. 대한제국이 망하지 않았다는 설정의 드라마가 유행하고, 조선의 왕족 및 양반들이 조선 독립에 헌신했다는 식의 주장들이 최근 10여년 사이에 늘어나고 있다. 이는 외부 세력에 대해서는 무능하고 조선 내부의 피지배층에 대해서는 가혹했던, 조선 지배층과 결별하고 싶어했던 조선 평민들의 열망을 배신하는 움직임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아야, 양반 출신 의병장인 유인석이 왜 평민 출신 의병장인 김백선을 죽였는지, 왜 의병운동을 하겠다고 모인 신처사·나윤달 등의 동학교도를 처형시켰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조선 왕실은 피지배층이 변혁을 꾀하며 일어난 동학농민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외세인 청나라 군대를 끌어들였다. 그리고 유사시에 양국 군이 동시 출병할 수 있다는 식으로 해석 가능한 톈진조약에 따라 일본군도 조선으로 건너오면서 1894년에 청일전쟁이 시작되었다. 조선 왕실 및 양반으로 이루어진 지배층과 조선의 피지배층은 청나라·일본에 맞서 일치단결한 것이 아니다. 이 두 집단의 이해관계는 정반대로 대립하고 충돌했다.
   
   예를 들어, 조선 왕조 500년간 같은 민족이면서 노예로 착취당한 노비들이 경상남도 진주에서 일으킨 신분해방운동인 형평사 운동은 독립운동인가 아닌가. 이것은 민족의 독립을 위해 계급을 초월하여 일치단결해야 하는 엄중한 시국에 적전분열한 민족 배신행위였던가. 모든 시민은 평등해야 할 대한민국에서, 왜 조선 왕조가 망한 지 100년이 지나도록 왕족과 양반의 역사와 문화만을 서울과 한국을 대표하는 존재로서 가르치고 그 ‘신성함과 존엄성’을 지켜야 하는가. 조선시대 내내 성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노비들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진주 시민들은 돈을 모아 형평운동 기념탑을 만들어 진주성 안에 세웠으나 현재 이 탑은 다시 진주성 밖으로 밀려났다. 여전히 한국에서 시민은 평등하지 못하다. 그러니 조선의 왕궁과 양반들의 기와집은 보존되는 반면, 평민들의 공간이던 을지로는 철거되고, 노비해방운동을 기념하여 시민들이 성금을 모아 만든 형평운동 기념탑은 진주성 밖으로 쫓겨났다.
   
▲ 세운청계상가에서 서쪽으로 입정동 쪽을 바라본 모습. 철거가 진행 중인 구역에 펜스가 쳐 있다.

   진정한 문화유산은?
   
   2019년 1월 16일에 박원순 서울시장은 기자회견에서 철거 중인 을지로3~4가 일대의 일부를 보존하는 방향으로 검토하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에 대해 범을지로여성연대라는 조직에서는 1월 17일에 다음과 같은 글을 조직의 트위터 계정 @suffragettetoD에 올렸다.
   
   “이 나라에 역사 문화는 없나요? 종묘만 문화유산인가요? 우리나라는 조선 이후의 과거는 없습니까? 이래놓고 3·1운동 100주년이라고 홍보하지만 정작 역사적 장소는 어느 곳에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옥에 간 사람들만 중요한가요? 서대문형무소만 보존하나요? 그 곁에서 옥바라지하던 사람들은요? 당연하게도 여성이 많지 않았겠습니까? 이렇게 여성의 서사가 하나 지워졌습니다.”
   
   이처럼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모든 시민이 평등한 민주공화국임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의 의사결정층은 여전히 옛 지배층과 남성 중심적인 관점으로 역사를 구성하고 그것만을 기억하도록 강요한다. 평민과 노비의 역사는 기억할 가치가 없다는 식으로 시민들에게 주입하고 있다. 이것은 기억의 전쟁이자 계급 간의 전쟁이다. 이 기억의 전쟁에서 조선 왕족·남성 중심의 관점을 지닌 층이 평민의 역사를 지울 때 일반 시민들에게 내세우는 가장 편리한 논리가 ‘일제 잔재 청산’이다. 문제는, 지난 100년 동안 우리 평민들이 살아온 공간 대부분이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적산가옥이라 불리는 일본식 가옥뿐 아니라 ‘조선시대의 모습’을 전하는 것으로 선전되고는 하는 북촌과 서촌의 기와집들 또한 20세기 전기의 식민지 시대에 세워졌다. 건축가 황두진은 현재 서울에 존재하는 기와집의 절대 다수는 이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한다. 개량한옥이라 불리는 이들 20세기 전기의 기와집이 조선시대 양반의 으리으리한 기와집에 비해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떨어지는 게 아니라, 청계천 남쪽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이 청계천 북쪽으로 진출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정세권과 같은 인물들이 조선인 중산층이 살 수 있도록 보급한 것이라는 사실을 밝힌 것이 김경민 선생의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이다. 일식가옥과 개량한옥은 모두 단순한 식민 잔재가 아니다. 이는 조선총독부 건물이 일본의 식민지 통치로 이용된 기간보다 대한민국의 중앙청 및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된 기간이 더욱 긴 것과 마찬가지다. 이들 건물과 공간은 우리의 어머니·아버지, 할머니·할아버지가 이용한 곳이다. 이들 건물과 공간을 철거하는 것은 ‘식민 잔재 청산’이 아니라 ‘우리의 역사’ ‘우리의 기억’을 지우는 파괴 행위이다. 그리고 이 기억의 전쟁이 바로 지금, 2019년 1월 현재 을지로에서 일어나고 있다.
   
   물론 필자는 을지로3~4가 일대를 모두 보존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서울의 어떤 공간을 재개발하고 어떤 공간을 보존할지에 대해, 필자는 지난해 출간한 ‘서울선언’에서 이렇게 적은 바 있다. “식민지 경성과 현대 서울의 건물·공간을 무조건 보존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좀 더 쾌적하게 살기 위한 서울의 재개발은 불가피합니다. 하지만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조선시대의 건물·공간을 창작한 뒤에 비워둘 거라면, 그런 복원은 퇴행적인 역사 왜곡이라는 말입니다. 조선 왕실이 곧 한민족은 아니며, 조선 왕조가 곧 현대 한국인 것은 아닙니다. 현대 한국의 발전은 조선 왕조를 긍정하고 계승한 것이 아닌, 조선 왕조를 부정하고 대한민국이라는 공화정을 건설한 데서부터 시작되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지배층의 공간만을 역사라고 생각하여 보존 및 복원(이라는 이름의 창조)해야 하고, 그 이후의 서울시민의 공간은 식민잔재와 개발독재의 흔적일 뿐이므로 지킬 가치가 없다는 사고방식이 2002~2006년 청계천 복원사업과 2019년 현재 을지로3가역 일대의 철거작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 을지로 일대에서 확인되는 일본식 가옥들.

▲ 지난 13년간 추진해온 세운상가 재정비 사업이 최근 노포 보존을 이유로 전면 수정될 전망이다.

   ‘도시재생’을 묻다
   
   필자는 지난해 3월부터 집중적으로 을지로3~4가 일대를 답사하고 사진을 찍고 있다. 이 지역에 대한 개발 압박이 심상치 않다는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을지로3~4가 골목을 걸으며 이 지역이 대형 화재에 취약하다는 점을 확인했고, 그 땅값 비싼 서울 한복판에 을지로3~4가와 같은 지역이 부동산 개발 압력에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서울에서 살고 싶어하는 시민들을 위한 거주지를 서울시 바깥에 신도시라는 형식으로 조성할 것이 아니라 서울시 내부에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에도 동의하고 있다. 그래서 결국 이 지역은 어떤 형식으로든 정비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상해서, 힘 닿는 대로 많은 기록을 남기려 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지난 한두 달 사이에 을지로, 을지로3~4가 일대에서 진행되고 있는 철거작업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일이었다. 서울시 및 시공사 측에서도 몇 년 전부터 개발 계획을 공개한 상태였다. 다만 지난 몇 년 동안 ‘다시 세운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이 지역을 이용하는 사람들과 서울 시민은 세운상가 주변 지역도 전면적인 재개발이 아니라 비교적 원형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도시재생’될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번 입정동 일대에 대한 철거작업은 뜻밖이었다. 들리는 바로는, 결국 세운상가만 남기고 주변의 저층 건물은 모두 철거한 뒤 세운상가 양옆을 고층빌딩이 감싸는 형태로 만드는 것이 이번 재개발의 최종적인 계획인 것 같다. 과연 세운상가는 지난 100여년 동안 조성된 을지로3~4가의 도시 공간에 비해 더욱 보존할 가치가 있는 것일까. 필자는 세운상가보다 그 양옆 100년간의 시층이 더욱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을지로3~4가 일대의 저층 빌딩들이 노후화되어 붕괴 위험이 있다고 한다면, 마찬가지로 곳곳이 재난위험시설(D등급) 판정을 받은 세운상가만 왜 보수되어 남겨져야 하는가. 설사 이런 방식으로 을지로3~4가 일대가 전면 철거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지난 100여년간의 시간이 멕시코의 삼문화광장처럼 시층을 이루고 있는 이 지역을 꼼꼼히 조사하여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 사람들에게 철거 속도는 너무 빠르게 느껴진다. 과연 을지로3~4가 일대는 보존은커녕 조사될 가치도 없는, 그저 식민잔재이자 개발독재의 흔적이기만 한 것인가.
   
▲ 세운지구 서쪽의 일명 ‘을지로 노가리 골목’. 이곳이 포함된 수표도시환경정비구역 사업도 상인 이주대책 미흡을 이유로 일시 중지됐다.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필자에게 을지로3~4가 일대는 발견의 장소다. 식민지 시대의 일식가옥, 20세기 중후반 부족한 기술이지만 성실하게 지어 올린 빌딩들, 그 무엇보다 을지로3~4가의 개성을 만들어내고 있는 간판들. 필자가 을지로의 가치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을지로3가 입정동의 창림빌딩 1층 계단 옆에 박혀 있는 머릿돌을 확인하면서였다. 고대 중국에서는 건물을 놓을 때 ‘전기(奠基)’라는 의례를 지냈다. 그 전통시대의 개념을 1965년에 세워진 을지로3가의 건물에서 발견했을 때의 놀라움이란! 필자는 전국의 건물에 박혀 있는 머릿돌을 찾아서 기록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전기(奠基)’라는 글자가 새겨진 머릿돌은 아직까지 을지로에서밖에 발견하지 못했다. 또 을지로3가에서는 볼트·너트 할 때의 그 ‘볼트’를 ‘볼-트’라고 쓰는 습관이 있었던 것 같다. 어떤 단어가 장음(長音)임을 나타나는 ‘-’ 기호는 일본어에서 흔히 사용되며 20세기에 일본어 단어를 한글로 옮길 때 함께 따라오고는 했다. ‘아파-트(アパ-ト)’라는 일본어 단어를 그대로 옮긴 충무로역 서북쪽의 ‘보양상가아파-트’도 그런 경우다. 을지로3~4가의 간판에서 발견되는 ‘볼-트’라는 표기가 독특한 것은, 볼트를 나타내는 일본어 단어 ‘볼트(ボルト)’에는 정작 장음 기호가 없다는 사실이다. 이 단어도 아마 일본어에서 장음 표기할 것으로 추측한 장인(匠人)들이 이런 표기법을 고안해냈을 것이다. 그 결과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볼-트’라는 단어가 을지로에서 창조된 것이다.
   
▲ ‘전기(奠基)’라는 글자가 보이는 창림빌딩 입구의 머릿돌.

▲ ‘볼-트’라고 쓰인 간판.

▲ 수양이발실

   아는 만큼 보인다
   
   이뿐 아니다. 이발소라는 뜻의 ‘이발실’이라는 단어도 아직까지는 을지로에서만 확인했다. 식민지 시기에 이 지역에 저택이라 불릴 만한 건물이 있었음을 짐작게 하지만 아직 그 실체는 잘 알 수 없는 입정동 골목의 석조기둥, 건물의 유래를 궁금하게 하는 주교동 골목 건물의 타일장식 등, 을지로는 관찰하는 사람의 안목이 깊고 넓어질 때마다 새로운 발견을 하게 하는 서울 100년의 보물창고다. 양미옥, 을지면옥, 조선옥, 을지다방, 안성집, 우일집 같은 전통 있는 식당만 을지로의 보배가 아니라는 말이다.
   
   조선시대만 ‘아는 만큼 보이는’ 게 아니다. 을지로3~4가로 대표되는 서울 100년의 시층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 우리는 그 100년의 시층을 아직 꼼꼼히 탐험하지 못했다. 그렇게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져 있는 서울 100년의 시층이 지금 서울 곳곳에서 철거되고 있다. 되풀이하는 바, 필자는 기본적으로 조선시대 공간을 재현하기 위해 지난 100여년의 서울 공간을 파괴하는 것에는 반대하지만, 사람이 살기 위한 건물과 블록을 만들기 위해 파괴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서울에 이처럼 무한한 발견의 공간이 하나 정도는 남겨져도 좋지 않을까. 만약 이런 공간 하나조차 남겨질 필요 없이 모두 재개발되어 고층빌딩이 세워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서울 시민은 문화를 누릴 자격이 없다.
   
   지난 1월 18일 입정동 135번지의 2층 벽돌 건물 철거가 시도됐다가 현재는 중단된 상태다.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라는 조직에 따르면, 이 건물은 1926년의 6·10만세운동에 관여한 전기종 선생의 하숙집으로 추정된다. 필자는 아직 이러한 주장이 사실인지 여부를 확인하지 못했지만,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한다. 이 또한 조금만 더 천천히 시간 여유가 주어져서 이 지역이 꼼꼼히 조사된다면 확인할 수 있을 터이다. 그 발견의 공간이 사라지려 하고 있다.
   
▲ 을지로 재개발에 반대하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다.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은 망해버린 조선 왕조의 궁궐이 다섯 개나 있어서 위대한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평등한 국가를 만들고자 100년 전에 선언한 그대로 민주공화국을 수립하는 데 성공한 과정이 남아 있는 곳이기 때문에 위대하다. 퇴행적인 조선시대 신봉자들로부터, 그리고 서울이 주상복합건물로 뒤덮이는 미래를 꿈꾸면서도 외국에 나가서는 그곳의 잘 보존된 역사와 문화를 부러워하는 사대주의자들로부터 서울의 100년 역사를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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