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 일본에서 고령자들을 위한 건강상담코너가 슈퍼마켓에 등장했다. 사진은 사이타마현 고시가와시의 한 슈퍼마켓. ⓒphoto NHK
초고령사회 일본에서 고령자들을 위한 건강상담코너가 슈퍼마켓에 등장했다. 사진은 사이타마현 고시가와시의 한 슈퍼마켓. ⓒphoto NHK

“아버지를 데려간다. 미안하다.”

지난 2월 21일 80대 치매 아버지를 간병하던 40대 아들이 아버지를 숨지게 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했다. 아들은 10여년 전 직장을 그만두고 혼자 아버지의 간병을 맡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아버지의 건강이 악화된 것을 비관해온 아들은 형제들에게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지난해 12월 31일 경기도 고양시에서도 70대 노모와 40대 딸이 나란히 숨진 채 발견됐다. 노모는 암 수술 후 치매를 앓아왔다. 경찰은 간병을 맡아온 딸이 어머니의 목을 조르고 목숨을 끊은 것으로 판단했다.

고령화시대의 비극 ‘간병살인’ 사건이 잇따르면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간병살인’은 오랜 기간 아픈 가족을 돌보다 지쳐 환자를 죽이거나 동반자살한 경우를 이른다. 2026년, 우리나라는 인구 20%가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가 된다. 치매, 뇌졸중 등 노인성 질환으로 돌봄, 지원이 필요한 노인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중앙치매센터 추정에 따르면 치매 인구만 2018년 75만명, 2024년에는 100만명에 이른다.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2.7세, 건강수명은 64.9세(통계청 기준)이다. 기대수명에서 건강수명을 뺀 17.8년 동안은 건강하지 못한 상태로 살거나 간병인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인구 5명 중 1명이 노인인 시대, 간병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다.

우리보다 20년 앞서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일본은 이미 1980년대부터 간병살인 등이 사회문제가 됐다. 일본에서는 스스로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이들을 돌보는 일을 개호(介護)라고 부른다. 개호와 관련된 새로운 용어들을 보면 개호로 인한 문제들이 보인다. 노부부가 서로를 돌보거나 60·70대 자식이 부모를 돌보는 ‘노노개호’, 독신인 자녀가 부모를 돌보는 ‘독신개호’가 있고, 개호를 받던 환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개호자살’, 개호하던 가족이 환자를 죽이는 ‘개호살인’, 개호에 대한 괴로움을 뜻하는 ‘개호피로’라는 말도 생겼다. 기사 앞부분의 사례처럼 동반자살한 경우는 ‘개호심중(介護心中)’이라고 한다. 마음에 안고 간다는 뜻이다. 개호를 위해 일을 그만두는 ‘개호이직’, 부모 등 여러 명을 개호하는 ‘다중개호’라는 용어도 등장했다.

일본에서 ‘개호살인’ 뉴스는 흔하게 접할 수 있다. 지난 2월 17일, 오사카후 기시와다시 경찰은 74세의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부인(65)을 체포했다. 부인은 경찰에서 남편이 개호를 받으면서도 걸핏하면 불만을 쏟아내 스트레스가 쌓였다고 진술했다. 부인은 이날 새벽 4시에도 남편이 계속 잔소리를 해대자 남편의 얼굴을 베개로 눌러 질식사에 이르게 했다. 이보다 앞선 1월 14일에는 야마가타현 덴도시의 주택에서 여성의 시체가 발견됐다. 81세의 남편이 71세 부인을 목졸라 죽인 사건이었다.

1~2주에 한 건씩 개호살인

이처럼 ‘개호살인’이 잇따르면서 후생노동성은 2006년부터 사례를 집계하기 시작했다. 그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15년까지 개호살인은 247건, 피해자는 250명에 달했다. 경찰청도 2007년부터 개호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했다. 경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개호피로가 동기가 된 살인은 2007~2012년까지 234건이다. 신문기사를 분석한 한 조사에 따르면 1998~2015년까지 716건이 발생, 724명이 사망한 것으로 조사됐다. 평균적으로 연간 40여건, 매월 3건 이상이다. 1~2주에 한 번씩 개호살인이 발생하는 셈이다. 이 조사에 따르면 남편이 부인을 살해한 경우는 33.5%, 자식이 부모를 살해한 경우는 32.8%였다. 가해자는 남성이 72.3%, 피해자는 여성이 74.3%에 달했다.

NHK 특별취재팀은 개호살인 다큐멘터리를 방영하고, 2017년 책으로 엮어내 화제를 불렀다. ‘엄마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제목부터 눈길을 끈 책에는 개호살인 가해자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담겨 있다. 전국 각지의 뉴스, 재판기록 등을 통해 이전 6년 동안의 관련 사건을 조사하고, 가해자들을 찾아내 사건 당시의 상황과 그들이 왜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 등을 취재했다.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형기를 마쳤거나 집행유예를 받은 사람, 형무소에 수감 중인 사람들로 대부분 세상과 인연을 끊고 사는 경우가 많아 인터뷰는 쉽지 않았다. 취재팀은 거부를 당하면서도 계속 찾아가 설득을 거듭했다고 한다. 얼마 동안 개호를 했는지, 개호보험제도는 활용을 했는지, 피해자와 의사소통은 됐는지, 개호에 얼마나 힘을 쏟았는지 등 가해 당사자들의 고백을 통해 취재팀은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그들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착하고 성실한 사람들이었다. 성실하기 때문에 갑자기 모든 것을 떠안게 됐고, 한계 상황까지 몰린 것이다.

취재 가해자 중 70대 여성의 이야기이다. 치매에 걸린 남편을 집에서 혼자 돌봐온 이 여성은 매일 새벽마다 집을 나가려는 남편을 말리느라 한바탕 소동을 겪어야 했다. 사건 당일도 남편과 몸싸움을 벌인 끝에 겨우 거실에 주저앉히고 자신도 모르게 남편의 목을 졸랐다. 그러나 양팔의 통증만 지난 밤의 비극을 말해줄 뿐, 그 순간은 ‘블랙아웃(blackout)’된 것처럼 기억을 해내지 못했다고 한다. 치매 걸린 부인을 살해한 80대 남편은 유치장에서 식사를 거부해 죽었다. 죄책감은 가해자를 괴롭히는 또 다른 고통이다.

이 책에서는 개호살인을 막기 위한 대안으로 홋카이도 구리야마를 주목했다. 대부분 정책들이 환자를 지원하는 것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재택 간병인에 초점을 맞춘 특이한 시도를 하고 있었다. 개호의 수준도 높이고 간병인들이 외부로부터 고립되는 것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위의 사람이 간병인의 상태를 들여다볼 수만 있어도 최악의 상황은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 후생노동성 자료에 따르면 간병보험제도에 기초해, 개호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사람은 2014년 600만명을 넘었다. 이 중 가족이 돌보는 재택개호는 352만명으로 60%에 달했다. 재택 간병인에 대한 설문에서 55%가 ‘살인이나 동반자살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고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재택개호를 택하는 이유는 뭘까. 요양시설 부족으로 대기표 받아놓고 마냥 기다려야 하는 것도 주요 이유지만 아직도 가족의 일은 가족이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일본 정부는 2012년 치매대책 5년 계획, 2015년 ‘신오렌지플랜’이라고 불리는 치매정책 종합전략을 세우는 등 개호 지원에 나서고 있지만, 어떤 정책도 늘어나는 고령인구를 따라잡지는 못하고 있다. 일본과 제도·문화는 다르지만 일본 사회가 겪어온 문제는 당장 우리의 현실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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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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