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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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 3개국을 순방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인 외교 전략인 신남방정책이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말레이시아에서 인도네시아어로 두 차례 인사를 하고, 무슬림 국가인 브루나이에서 건배 제의를 하는 등 외교 결례를 범해서 청와대와 외교부의 의전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정부의 신남방정책은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일까. 이와 관련해 지난 3월 19일 한성대에서 이민정책 전문가인 오정은(45) 한성대 이민다문화전공 교수를 만났다.

오 교수는 국내에서 흔치 않은 이력을 지닌 전문가다. 서강대에서 정치학을 포함한 3개 전공의 학사학위를 땄고, 석사학위도 3개를 취득했다. 벨기에 루벤 가톨릭대학교에서 국제정치학으로 박사학위도 받았다. 일반적으로 국제법이나 FTA협정 등 법과 제도에 집중하는 국제정치학 전공자들과 달리 그는 우리 교민들의 해외 이민 연구에 집중했다. 오 교수는 “사람에 집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출국이민자에 관심이 가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법무부 산하 연구기관인 IOM이민정책연구원의 창립멤버로 연구교육실장을 지냈고, 법무부 사회통합위원회 자문위원을 지냈다. 그는 “다양한 학문 세계를 거치면서 나부터 다문화가 된 것 같다”며 웃었다.

오 교수는 현재 외교부 요청으로 신남방정책 관련 연구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아세안(ASEAN) 10개국 여행객 중 관광 목적으로 한국에 입국할 때 입국사증(비자)이 면제되는 나라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태국 4개국이다. 필리핀, 미얀마, 베트남, 인도네시아, 라오스, 캄보디아 등 나머지 6개국 관광객들은 사증을 발급받아야 한국에 입국할 수 있다. 오 교수는 만약 이들에게 사증을 면제해줄 경우 우리나라에 경제적·사회적으로 어떤 효과가 나타날지를 연구하고 있다. 이 연구 결과는 3월 말 발표 예정이다.

- 동남아 국가들을 대상으로 입국비자 면제를 확대하면 불법체류자가 늘어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법무부는 반대하고 있다. 반면 외교부는 전향적인 입장이다. 지금 사증면제를 하자는 단계는 아니고 사증면제를 하면 부정적 효과와 긍정적 효과가 있는데 어느 게 큰지 조사 하는 단계이다.”

- 어떤 방식으로 조사했나. “소득·지역 등을 고려해 전국 단위로 2000명 여론조사를 했고, 현지에 있는 전문가 80명 정도를 인터뷰했다. 문헌조사도 물론 병행했다. 이런 정책을 폈을 때 한국인에게 주는 의미가 뭔지를 중심으로 조사했다.”

- 여론조사에서 긍정적인 답변이 더 높았나. “국민 여론은 긍정적인 응답이 훨씬 높았다.”

- 의외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재미있는 건 ‘동남아라고 하면 제일 먼저 무엇이 떠오르냐’고 했을 때 ‘불법체류자가 떠오른다’는 응답이 40%가 넘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사증을 면제하면 어떨 것 같냐’는 질문에는 ‘외국인 관광객도 많아지고 경제에 도움이 될 것 같다’며 긍정적이라는 응답이 많았다.”

- 모순 아닌가. “물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막연하게 제대로 모를 때 조사를 하면 이런 결과가 나온다는 것도 의미가 있다. 한편으로는 불법체류자 증가를 걱정하면서도 ‘외국인이 많아지면 우리에게 이익일 것 같다’는 의식이 엿보인다.”

- 이런 응답이 나오게 된 계기가 있을까. “첫째가 2015년 메르스(MERS) 사태다. 그전까지 제주도에 중국인이 몰려왔을 때 여론이 굉장히 나빴다. 제주도에는 중국 자본이 많이 진출해 있는데, 중국 관광객들이 오면 시끄럽고 와봐야 중국인 소유 호텔에 가고 중국인 소유 식당·여행사를 이용하기 때문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다 중국 관광객이 끊기면서 이들이 우리 경제에 큰 기여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자각했다.”

- 관광객 증가가 유발하는 경제적 효과 때문인가. “그렇다. 문화적 갈등도 여유가 있을 때 얘기다. 경제가 어려울 때는 우선 경제가 최고다. 중국 관광객이 크게 감소하면서 면세점부터 소상공인까지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많다. 일자리도 어려운데 하다못해 가게라도 하나 더 생기고, 면세점 일자리도 늘어나지 않겠나.”

- 최근 입국하는 동남아 여행객들의 특징은. “다른 국가 관광객들에 비해 구매력이 높다.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우리도 옛날엔 일본 가면 코끼리밥통부터 화장품까지 다 사왔지 않나. 지금 동남아 관광객들은 한국 여행을 오는 게 그들 소득 수준에서 부담이다. 그래서 한번 오면 주변 사람들 것도 사가기 때문에 구매력이 엄청 높은 특성을 보인다. 오히려 서구 사람들은 조그만 기념품만 사는 반면 동남아 사람들은 스마트폰이라든지 카메라 등 큼직큼직한 걸 산다.”

오 교수는 “부자 나라의 가난한 사람보다 가난한 나라의 부자 씀씀이가 훨씬 크다”며 “국가가 가난하다고 사람이 가난한 것이 아니고 국가 교육 수준이 낮다고 사람 교육 수준이 낮은 게 절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가는 사람은 최고의 엘리트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국적을 이유로 이런 사람들을 무시하면 결국 손해를 보는 것은 우리”라고도 했다.

- 정부가 지금 신남방정책에 공을 많이 들인다. “사실상 중국 같은 경우는 실패하지 않았나. 중국에 투자도 많이 하고 공을 엄청 들였는데 우리가 중국을 제대로 몰랐던 거다. 공산주의 국가는 수틀리면 재산을 한순간에 몰수할 수 있다. 사드 배치로 인해 한·중 관계가 악화되면서 현지에서 사업하던 사람들이 각종 세무조사 명목으로 대부분 재산을 몰수당했다.”

- 동남아도 비슷한 유의점이 있을까. “베트남, 라오스 등 동남아에도 공산주의 국가가 많다. 공산주의를 자본주의처럼 생각하면 안 된다. 어느 날 정부가 법을 바꾸면 한순간이다. 합리적 사고가 잘 통하지 않고, 친하면 몰아주지만 수틀리면 한 방에 갈 수 있다.”

- 리스크가 크겠다. “좀이 아니라 아주 크다. 만약 동남아에서도 리스크가 현실화되면 빨리 철수할 생각을 해야 한다. 사업도 힘든데 출구전략까지 마련하기는 힘들겠지만, ‘여기가 뼈를 묻을 곳이다’까지는 생각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 동남아 국가들의 정부가 문제라는 얘기인가. “동남아 국가들 중에는 공산주의까지는 아니어도 사실상 민주국가라고 보기 어려운 곳이 많다. 말레이시아·싱가포르도 민주국가라고는 하지만 야당이 활동 못 하는 상황이다. 베트남은 공산당 일당 체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서구의 합리주의가 통하지 않는다. 대신 사이가 좋으면 적극 밀어주는 풍토가 있다.”

- 동남아 국가들이 한국인을 좋아한다는 점이 특이하다. “일단 경제대국이고 투자를 많이 한다는 점이 크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문화의 힘이라고 본다. K팝이 굉장히 인기 있다. 한국에 온 동남아 유학생들도 한류 때문에 한국에 왔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 1990년대에도 동남아 사람들이 한국을 좋아했나. “아니다. 그때는 한국이 일본하고 뭐가 다른지도 몰랐다. 동남아 사람들이 한국을 좋아하는 건 최근 들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 동남아로 이민을 떠나는 사람들을 비롯해 정부의 출국이민 현황 통계가 허술하다는 지적이 많다. “현실적으로 집계가 어렵긴 하다. 비용 대비 효과가 떨어진다. 영향력 있는 몇몇 한인회 같은 곳에 연락해서 파악하는 게 비용 대비 효율성은 높다. 어차피 한인회 안 나오는 분들은 한국과 별로 상관없는 삶을 사시는 분들이다.”

- 교수님은 어떤 입장인가. “나는 학자니까 정확한 이민 통계를 알고 싶다. 정확한 통계를 아는 게 혹시 놓칠 수 있는 우리 교민 자산을 파악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본다.”

- 우리 교민의 안전은 누가 보호하나. “물론 재외국민도 한국인이고 국가는 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근데 문제는 어디 사는지 전혀 신고도 안 하는 사람들이다. 육로로 이동하면 국경을 넘어도 추적하기 어렵다. 사고가 발생하면 국민이기 때문에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데, 권리가 있으면 의무가 있기 때문에 국민도 원칙적으로는 국가를 이동할 때마다 재외공관에 신고를 해야 한다.”

신남방정책과 관련해 오 교수에게 “전문가로서 보기에 지금도 동남아가 기회의 땅”이냐고 묻자 그는 “기회는 자기가 만드는 거지 주어지는 건 없다”며 “내가 살 만한 적재적소를 찾을 때 적소를 찾을 수 있는 영역이 넓어졌다는 의미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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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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