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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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4년 전인 2015년 5월, 20대 총선을 11개월 앞두고 한국갤럽이 실시한 정당 지지율 조사에서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42%)이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22%)을 압도했다. 하지만 다음해 4월 총선에서 새누리당(122석)은 야당이 더불어민주당(123석)과 국민의당(38석)으로 쪼개졌음에도 불구하고 패했다. 2020년 4월 총선을 11개월 앞둔 요즘도 여당이 지지율 선두를 달리고 있다. 5월 첫째 주 갤럽 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36%)과 자유한국당(24%) 지지율 차는 12%포인트였다. 그래도 전례(前例)를 보면 내년 4월 총선 결과를 예단하기 쉽지 않다. 총선 예측이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역대 총선은 예외 없이 박빙의 승부가 펼쳐졌기 때문이다. 1988년 소선구제 도입 이후 실시한 8번의 총선에서 원내 제1당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것은 3번에 그쳤다. 이 경우에도 절반을 간신히 넘는 152~153석으로 승리했다. 그만큼 치열한 접전이 펼쳐졌다는 얘기다.

총선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이유

내년 21대 총선을 향한 여야(與野)의 경쟁은 벌써부터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중간평가 성격이 강한 내년 총선의 결과에 따라 정치적 운명이 좌우된다는 위기감도 감돈다. 총선에서 한국당이 패한다면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등 치욕적인 3연패 사슬을 끊지 못한 채 암흑 터널에 계속 갇히게 된다. 민주당이 패할 경우엔 곧바로 레임덕(권력누수 현상)에 빠져들면서 정권 재창출이 험난해질 수 있다. 총선과 대선의 밀접한 상관관계는 지난 두 번의 총선에서도 확인된다. 2012년 4월 19대 총선에서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은 민주통합당을 꺾었고 그해 연말 대선에서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4년 차인 2016년 4월에 치러진 20대 총선에서 패한 이후 최순실 사태가 불거지면서 탄핵 정국으로 내몰렸고 다음해 대선에서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평가에선 유권자가 지지층과 반대층으로 각각 45%가량씩 양분되어 있다. 내년 총선도 여야가 예측불허의 접전을 펼칠 것이란 예상의 근거다. 선거 전문가들은 총선의 승부를 좌우할 주요 변수로 범여권 연대에 맞선 ‘보수 통합’ 여부, ‘세대 및 지역 구도’ 변화, 각 정당이 내세울 ‘인물’, ‘경제 실정(失政)’을 둘러싼 공방 등 네 가지를 꼽고 있다. 역대 선거 결과를 좌우했던 구도, 인물, 이슈 등이 내년 총선에서도 주목된다는 견해다.

우선 2020년 총선도 ‘선거 구도’, 즉 양자 구도 또는 다자 구도 여부가 결정적 변수란 의견이 많다. 여권과 야권 중 어느 쪽이 분열되어 선거를 치르게 될지가 승부의 관건이란 것이다. 지난 4월 3일 경남의 창원 성산에서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한국당은 민주당과 단일 후보를 낸 정의당에 불과 504표(0.5%포인트) 차로 졌다. 당시 대한애국당의 득표수는 838표였다. 만약 한국당과 애국당이 연대했다면 승패가 바뀌었을 것이다. 당시 바른미래당과 민중당은 각각 3.6%, 3.8%를 얻었다. 총선에서 민주당과 정의당뿐 아니라 민중당까지 포함하는 범여권 연대가 이뤄질 경우 야권은 한국당, 바른미래당, 애국당 등 보수표를 모두 끌어모아야 승부를 걸 만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야권이 ‘반(反)문재인’ 연합전선을 구축하지 못할 경우엔 홍준표·안철수·유승민 후보 등으로 갈라졌던 지난 대선처럼 총선도 여권에 유리할 수 있다. 물론 예외도 있다.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제1야당이던 새정치민주연합이 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분열됐지만 여당인 새누리당이 패했다. 민주당이 다자 구도 속에서도 예상외로 승부처인 수도권 122석 중 82석을 휩쓸고 새누리당이 35석에 그친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최근 수도권은 문 대통령 지지층과 반대층이 반반으로 갈라져 있어서 내년 총선에선 특정 정당으로 쏠릴 가능성이 높지 않다. 그럴 경우 여권과 야권 중 분열되어 선거에 나서는 쪽이 필패(必敗)할 가능성이 높다.

20대가 캐스팅보트 쥘 것

내년 총선의 두 번째 변수는 과거와 달라진 ‘세대 및 지역 구도’가 꼽힌다. 유권자의 ‘세대 대결 구도’는 현 정부 들어 드라마틱하게 바뀌었다. 2002년 대선 때부터 뚜렷해진 세대 구도는 당시 노무현 후보가 강했던 20·30세대와 이회창 후보에게 쏠렸던 50·60세대의 대결로 시작됐다. 2012년과 2017년 대선에선 20·30 청년세대 연합이 40대까지 확장되면서 진보 성향의 20·40세대와 보수 성향의 60·70세대가 맞섰다. 당시엔 50대가 캐스팅보트를 쥐었다. 하지만 문 대통령 취임 이후 20대의 국정 지지율이 가파르게 하락하면서 세대 대결 구도가 달라졌다. 20대는 대선에서 문재인·심상정 후보 등 진보 쪽 후보를 지지했던 비율이 60%였지만, 지난 5월 첫째 주 갤럽 조사에선 문 대통령 지지율이 44%로 여권 지지 표심(票心)이 16%포인트나 줄었다. 같은 기간 동안 30대(64→61%), 40대(59→54%), 50대(41→42%), 60대 이상(36→30%) 등에선 여권 지지 표심의 변화가 크지 않았다. 현재 20대의 문 대통령 지지율은 30~40대보다 낮고 50~60대 이상보다 높아서 각 세대의 중간 수준이다. 허진재 갤럽 이사는 “지금 같아선 내년 총선은 역대 선거 사상 처음으로 20대가 ‘캐스팅보트’ 세대로 떠오를 것”이라며 “20대의 마음을 얻는 쪽으로 승부가 기울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한편 역대 선거에서 상수(常數) 역할을 했던 ‘지역 구도’도 내년 총선의 관심사다. 동서 대결 ‘지역 구도’는 작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시·도지사 17곳 중 14곳을 석권하며 허물어졌지만 최근엔 다시 예전 상태로 되돌아가고 있다. 지방선거에선 한국당이 대구·경북을 제외하고 수도권과 충청권을 비롯해 부산·울산·경남까지 내주면서 전체적으로 ‘궤멸’ 수준의 참패를 당했다. 하지만 한국갤럽의 5월 첫째 주 조사에서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지지와 반대가 수도권(43% 대 46%)과 충청권(45% 대 47%)은 과거처럼 중립 지역으로 회귀했다. 부산·울산·경남(39% 대 55%)도 한쪽으로 크게 쏠리지 않았다. 이에 비해 호남권(73% 대 18%)은 문 대통령 지지가 여전히 압도적인 반면 대구·경북(30% 대 60%)은 반대가 두 배나 높았다. 여야가 호남권과 대구·경북을 각자 기반으로 할 경우 수도권과 충청권, 부산·울산·경남(PK) 등 전국 곳곳이 승부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 중에서 가장 관심이 쏠리는 곳은 PK 지역이다. 한국당의 전신(前身)인 새누리당과 한나라당 등이 과거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하며 승리를 거둘 때에는 PK 지역이 철옹성이었지만 얼마 전부터 여야 어느 쪽도 압도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4·3 보궐선거의 창원 성산에서 불과 0.5%포인트 차로 승패가 갈렸듯이 총선도 PK 지역에서 접전이 벌어질 수 있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은 “지난 총선에 이어 이번에도 ‘낙동강 벨트’에서 ‘PK 목장의 결투’가 치열할 것”이라며 “PK 지역의 승패가 전체 승부에 결정타를 날릴 수 있다”고 했다.

총선 세 번째 변수는 ‘인물’이다. 총선은 정부와 여야 정당에 대한 평가를 표를 통해 확인하는 기회지만 기본 기능은 지역의 대표 인물을 뽑는 것이다. 유권자로선 거주하는 지역에 누가 출마하는지가 1차 관심사다. 역대 총선과 마찬가지로 내년 총선도 ‘현역 의원 물갈이 욕구’가 강하다. 한국갤럽의 지난 4월 조사에선 지역구 국회의원이 내년 총선에서 ‘다시 당선되는 것이 좋다’(27%)에 비해 ‘다른 사람이 당선됐으면 좋겠다’(45%)가 높았다. 모든 지역에서 현역 의원이 다시 당선되는 것에 대한 반대가 우세했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2015년 10월에 실시한 갤럽 조사에서도 지역구에서 ‘다른 사람이 당선됐으면 좋겠다’ 47%, ‘다시 당선됐으면 좋겠다’ 24%로 요즘 여론과 비슷했다. 각 정당이 총선 때마다 물갈이 공천을 통한 새로운 후보 발굴에 전력을 쏟아야 한다는 조사 결과다.

지난 5월 4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자유한국당 주최로 열린 문재인 정권 규탄집회. ⓒphoto 뉴시스
지난 5월 4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자유한국당 주최로 열린 문재인 정권 규탄집회. ⓒphoto 뉴시스

헤비급들의 대결

지역구 후보도 중요하지만 여야가 전면에 내세울 대선주자급 인물도 관심을 끈다. 여야 거물들의 빅매치가 성사되면 대선 예선전 성격이 강해지면서 총선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른다. 특히 최대 승부처인 서울은 ‘대선 잠룡(潛龍)’의 각축장이 될 전망이다. 여권은 이낙연 국무총리,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추미애 전 민주당 대표 등의 출마가 거론되고 있다. 야권은 황교안 한국당 대표, 오세훈 전 서울시장, 김병준 전 한국당 비대위원장 등이 출마 예상자로 분류된다. TK에선 김부겸 전 행정안전부 장관, PK에선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 장관 등 국무위원을 거친 ‘헤비급’ 후보가 출격을 준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내년 총선을 좌우할 변수로는 ‘민생·경제’ 이슈가 꼽힌다. 한국당이 연패(連敗)했던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는 경제 이슈보다 탄핵 또는 남북 문제가 이슈로 부각되면서 민주당이 유리했다. 내년 총선은 과거 선거에서 단골 메뉴였던 ‘경제 심판론’이 다시 강하게 작동할 것으로 보는 선거 전문가들이 많다. 적폐 청산과 북한 비핵화 이슈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반면 민생·경제 이슈가 급격히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를 살리겠다고 약속했지만 각종 통계 수치가 보여주듯 오히려 일자리가 줄어들고 경제는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다. 정부의 경제정책 운용에 대한 불안도 치솟고 있다. 얼마 전 한국갤럽의 문재인 대통령 취임 2주년 조사에서 정부가 경제정책을 ‘잘못하고 있다’(62%)가 ‘잘하고 있다’(23%)보다 3배가량이나 높았다. 작년 5월 조사에선 경제정책에 대한 긍정 평가(47%)가 부정 평가(27%)보다 더 높았지만 1년 만에 민심이 확 달라졌다.

민생·경제 불만이 내년 총선까지 이어질 경우엔 ‘먹고사는 문제에 소홀한 정부’란 부정적 인식으로 인해 여권이 불리해질 가능성이 높다. 야권은 정부·여당에 대한 심판 정서를 강화하기 위해 ‘경제 실패’ 부각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반면 여권은 ‘경제 실정론’ 방어에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국회 토론회에서 “이 정권은 소득주도성장, 반기업정책, 포퓰리즘이라는 세 가지 악의 축으로 마이너스 정권이 되고 있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여기에 맞서 민주당 박광온 최고위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경제가 어렵다, 어렵다’ 하는데 그것이 도를 넘어서면 국민에게 불안감을 주고 국민의 소비심리를 위축시키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5월 7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문재인 정부 2주년 정책 컨퍼런스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5월 7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문재인 정부 2주년 정책 컨퍼런스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경제 실패 부각 vs 실정론 방어

구도, 인물, 이슈 등의 변수 이외에 한국당을 뺀 여야 4당이 합의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에 올린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도 내년 총선의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이 제도가 적용된다면 의석수보다 정당 득표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소수 정당은 유리하지만 지역구 의석이 많은 거대 정당은 불리해진다. 하지만 거대 여당인 민주당과 소수 정당인 정의당, 민주평화당 등이 각자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을 최대로 모은 후 21대 국회에서 범여권 연대를 구축한다면 국회 과반수를 무난히 차지할 가능성이 있다. 그래도 범여권 내에서 각 정당의 셈법이 다르고 향후 정당 지지율 변화와 지역구 조정 등 남은 변수들이 많아서 섣불리 유·불리를 따지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교착 상태에 빠진 북한 비핵화 문제도 여전히 불씨가 살아있다는 견해가 있다. 내년 봄까지 다시 돌파구를 찾는다면 여권이 유리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미·북 간 강대강 대치가 길어지는 가운데 북한의 미사일 기습 발사 등 도발이 계속될 경우엔 그동안 여권에 호재였던 대북 문제가 총선에선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내년 총선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있고 변수들도 복잡해서 아직 승부를 전망하긴 이르다”며 “야권의 ‘경제를 망친 정권 심판론’에 맞서 여권의 ‘국정 발목 잡는 야당 심판론’이란 프레임 대결도 팽팽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양훈 칸타퍼블릭 이사는 “정부에 불만은 있지만 한국당도 예전과 달라진 게 없다며 희망을 걸지 않는 유권자가 여전히 많은 편”이라며 “한국당이 선거를 좌우할 중도층까지 지지를 확장할 수 있을지가 중요한 관전 포인트”라고 했다. 조일상 메트릭스 대표는 “현 정부 초반엔 민주당에 지지율이 40%포인트나 뒤지던 한국당이 최근엔 10%포인트 안팎까지 추격했다”며 “이 추세가 총선까지 이어진다면 여야가 초접전을 벌일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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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림 조선일보 여론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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