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피부를 지닌 할리 베리(52)는 ‘검은 미녀’라 부를 만큼 아름다웠다. 긴 머리로 두 볼을 덮은 얼굴이 여고생처럼 젊어 보였다. 미소를 지으며 겸손한 태도를 보였지만 야무진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그런데 얼굴이 어딘가 과거와 다소 달라졌다는 인상을 받았다. 질문에 가끔 큰 소리로 웃어가며 솔직하고 자상하게 대답했다.

할리 베리는 키아누 리브스가 주연을 맡은 액션영화 ‘존 윅 3: 파라벨룸’(한국 개봉 6월 26일)에서 현상금을 노리고 몰려오는 킬러들과 싸운다. 존 윅을 돕는 격투에 능한 맹견훈련사 소피아가 그가 맡은 역할이다. 할리 베리와의 인터뷰가 최근 뉴욕의 포시즌스호텔에서 있었다.

- 계속해서 액션을 해야 하는 역인데 육체적으로 얼마나 고통스러웠는가. “여태껏 역을 위해서 한 신체단련 중에 가장 혹독한 단련을 해야 했다. 유도, 아키도, 쿵푸 등을 배워야 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안 다뤄본 무기 사용법도 배워야 했다. 거기다가 영화에 나오는 맹견 훈련까지 해야 했다. 6개월간 매일 8시간씩 격투를 배우고 사격장에 나갔는데 그 후에도 두세 시간을 개 훈련까지 해야 했다.”

- 개들을 다루기가 어땠는지. “정말로 똑똑하고 훌륭한 개들이다. 물론 훈련을 받은 개들이지만 영화에서 도저히 해낼 수 없으리라고 생각한 액션들을 해내는 것을 보면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에 나오는 개는 모두 5마리로 그중 일부는 잘생겨서 얼굴만 내밀었고 나머지는 달리고 뛰는 액션을 좋아하는 개들이어서 액션신에 동원됐다.”

- 나이가 52세인데도 액션영화에 나오기에 충분한 육체적 힘을 지녔다고 생각하는가. “이 역을 하기에 충분한 완력을 지녔다고 생각해 감독 채드 스타헬스키에게 꼭 해야겠다고 졸라댔다. 채드는 나를 쓸 수밖에 없었다. 50세가 넘었기에 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린 나이 차별에 대해 도전해야 한다. 숫자에 의해 규정지어지는 것에 지쳐 역으로 도전하는 자세로 임했다.”

- 정신적 건강도 여전히 왕성한가. “그렇다. 정신적으로 강해야 육체적으로도 강할 수가 있다. 둘은 함께 손을 잡고 간다.”

- 언제 봐도 단단한 체격에 날씬한데 무슨 비법이라도 있는지. “내 신체조건은 늘 같다. 어렸을 때 체조로 몸을 단련했고 그 후에도 늘 내 삶의 한 부분이 되다시피 한 스포츠로 몸을 단련한 덕분이다.”

- ‘존 윅’ 시리즈를 좋아하는 여성 팬들이 많다고 들었는데. “그렇다. 존은 처음에 죽은 아내가 남긴 개가 살해되면서 복수를 시작한다. 우선 그런 점이 여성 팬들의 감정에 어필한 것 같다. 액션을 좋아하는 여성들도 많다. 그리고 이 영화의 격투와 폭력신은 단순히 몰지각한 폭력이라기보다 거기에서 한 단계 올라선 발레 장면과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영화가 환상적인 분위기를 지녀 폭력도 춤추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점들이 여성 팬들에게 어필하는 이유라고 본다.”

- 당신은 영화에서 위급 시 당신이 훈련한 개들의 도움을 받는데 실제 삶에서는 도움이 필요할 때 누구를 부르는가. “절대로 아무도 안 부른다고는 말하지 않겠으나 난 늘 자립해왔다. 물론 주변에 날 도와줄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내 문제를 혼자 해결하면서 살아왔다. 주위의 사람들이란 왔다 가게 마련이다. 평생을 함께 있을 사람이란 거의 없다. 사람들이란 밀물과 썰물처럼 들락날락하게 마련이다.”

- 그런 생활방식이 건전하다고 보나. “내겐 그렇다. 그래서 내가 아직까지 여기에 있고 또 내 머리도 돌지 않은 것이다. 내 문제는 내가 해결한다는 것이 내 철학이다.”

- 당신의 인생에 큰 영향을 준 사람은 누구인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 흑인 여선생님이다. 감수성이 예민하던 때였는데 두 살 때 집을 나간 아버지는 폭력을 휘두르는 술주정뱅이였다. 가끔 집에 찾아와 폭력을 휘둘렀다. 난 공포에 떨며 살아야 했다. 어쩔 줄 몰라하고 있을 때 날 학교에 데리고 간 사람이 그 선생님이었다. 어머니는 가정폭력의 희생자여서 날 도와주지 못했다. 어머니 대신 선생님이 날 역사박물관에도 데려가고 흑인 역사에 대해서도 가르쳐줬다. 그리고 내게 자신감을 심어줬다. 그 선생님이 내 인생의 구원자다. 내가 지금 여기에 있는 것도 선생님 덕분이다.”

- 작품은 어떻게 선정하는가. “나는 일을 좋아하지만 작품 내용이 정말로 날 흥분시키는 것이라야만 한다. 다음 영화는 ‘브루즈드(Bruised)’로 내가 감독으로 데뷔한다. 종합무술 여자 선수의 얘기로 채드가 영화의 액션과 스턴트 부분을 감독한다. 올여름부터 뉴욕에서 촬영에 들어간다.”

- 그동안 여러 감독과 일을 했는데 나쁜 감독이란 어떤 사람인가. “감독이란 영화 제작을 위해 다방면에서 고용된 사람들을 잘 다룰 줄 알아야 한다. 또 복잡한 제작과정이라는 긴 항해를 잘 헤쳐나가야 하는 팀플레이어여야 한다. 따라서 영화에 관계한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협동하지 않는 감독이 나쁜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배우와 여러 부문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다 창조적 의견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창조성을 살리지 않는다면 영화는 실패하기 마련이다. 좋은 감독은 작품을 만드는 다른 사람들과 협동하고 또 그들을 신뢰하는 사람이다. 나도 ‘브루즈드’를 만들 때 이 점을 잊지 않을 것이다.”

- 당신이 청춘기에 감동한 영화는 무엇인가. “내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영화는 더스틴 호프만과 메릴 스트립이 나온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다. 그 영화를 보고 난 언젠가 반드시 아이를 키우겠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보고 아이를 둘러싼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과 다툼과 함께 그 사이에 낀 아이의 입장을 철저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이 영화를 11살 된 내 딸과 함께 본다. 그 아이도 이혼가정의 아이여서 영화를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영화가 이렇게 때론 교훈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내가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다.”

- 당신에게 깊은 영향을 미친 감독은 누구인가. “내 친구요, 내가 의문이 있을 때 조언을 해주는 워런 비티다. 내가 물어볼 것이 있을 때 제일 먼저 찾는 사람이다. 남성 위주인 감독 세상에서 자기 뜻을 지키면서 살아남아 활동하는 여류 감독 수잔 비에르의 조언도 구하곤 한다. 그 밖에 마크 포스터와 데이비드 O. 러셀도 내가 귀감으로 여기는 감독들이다.”

- 주먹과 발길질을 하면서 남자와 싸워본 적이 있는가.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영화를 위해 무술을 익히면서 배운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않으면 무술을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내가 만난 무술 실력자들은 한결같이 매우 친절하고 양순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내게 ‘꼭 필요하면 배운 대로 무술을 써야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싸움을 피하라’고 조언했다. 한 가지 알려줄 것은 그동안의 연습으로 내 무술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점이다.”

- 영화를 안 찍을 때는 하루를 어떻게 지내는가. “아침 5시 반에 일어나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아이들을 깨워 밥을 먹인 뒤 학교에 데려다준다. 그리고 신체단련을 한다. 운동이 내 하루의 큰 몫을 차지한다. 그리고 앞으로 만들 영화를 위해 사람들을 만난다. 오후에는 저녁밥을 짓고 학교에 가서 아이들을 만나 축구나 배구 같은 방과후 활동에 데려간다. 집에 와선 아이들 숙제를 도와준다. 저녁을 먹고 저녁 10시에 취침하는 따분한 일상이다.”

- 아이들을 이혼한 전 남편 집에 데려다주고 혼자 있을 땐 어떻게 지내는가. “아이들 돌보느라 못 읽은 책을 읽고 오랫동안 목욕을 한다. 얼굴과 머리와 손톱을 다듬는 등 여자가 흔히 하는 일을 한다.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오래 하이킹을 한다. 한마디로 말해 내가 하고픈 일을 한다.”

- 여행한 곳 중에 좋았던 곳은 어디인가. “모로코다. 그리고 인도에 가면 내가 그곳에 속해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나는 인도 문화와 사람들 속에 잘 섞여드는 것 같다. 음식도 인도 음식을 좋아한다. 그리고 프랑스 파리도 아주 좋아한다. 파리가 아마 가장 좋아하는 장소인 것 같다. 노트르담성당이 불타는 것을 보고 가슴이 무너지는 아픔을 느꼈었다.”

- 집에서 동물을 키우는가. “난 동물애호가다. 개와 고양이를 키우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새와 모르모트와 도마뱀도 키운다.”

박흥진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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