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에서 팔리고 있는 하트풍선. ⓒphoto 이한솔 영상미디어 기자
시중에서 팔리고 있는 하트풍선. ⓒphoto 이한솔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5월 9일 오전. 다섯 살 딸을 어린이집에 보내기 위해 안방에서 아이 옷을 챙기던 정모씨는 갑작스레 들려온 ‘펑’ 소리와 남편의 비명에 깜짝 놀라 뛰어나갔다. 거실엔 남편 하모씨가 두 손으로 눈을 감싼 채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일주일 전 롯데마트에서 구입한 ‘하트풍선’이 화근이었다. 하씨는 이날 딸아이의 부탁으로 입으로 풍선을 불어줬는데, 풍선이 도중에 터지면서 고무 파편이 하씨의 눈으로 튀었다. 하씨는 양쪽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부인 정씨는 처음엔 호들갑이라 생각했지만, 충혈된 남편의 눈을 보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정씨는 남편 하씨를 바로 병원으로 옮겼다. 하씨는 ‘각막 찰과상, 재발성 각막 미란’ 등의 진단을 받았다. 각막의 일부 살점이 떨어진 상황이었다. 하씨는 각막 보호용 렌즈를 착용해야만 했다.

하씨는 한동안 정상적인 생활이 힘들었다. 모든 사물이 뿌옇게 보여 형체를 분간할 수 없었다. 하씨는 “당시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정말 겁이 났고 라섹 수술 후 마취가 풀렸을 때의 고통보다 더 심했다”며 “그날 아이가 풍선을 불었다면 아이가 이런 사고를 당할 수도 있었다”고 했다. 현재 하씨는 정상 시력을 되찾았지만 주기적으로 인공눈물을 넣으며 병원 정기검진을 받아야 한다. 하씨 말에 따르면, 당시 풍선은 터질 정도의 크기가 아니었다고 한다. 어른 얼굴보다 작은 크기였고, 아이가 가지고 놀 풍선이었기에 팽팽하게 불 생각도 없었다고 한다.

이런 하트풍선 피해사고는 적지 않다. 일반 풍선과 모양이 다르다 보니 내부 압력이 강해지는 등의 특이성으로, 소비자들이 예상치 못한 상해를 입는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과거 법원은 이와 비슷한 사고를 두고 업체가 소비자에게 손해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관련 업체들은 소비자 부주의에 따른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지만, 학계에서도 하트풍선의 고질적 위험성을 이미 지적한 상황이다. 하지만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어 소비자 피해 논란은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하트풍선은 바람을 주입했을 때 일반 풍선과 달리 하트 모양으로 커지는 풍선을 일컫는다. 마트나 백화점, 온라인 쇼핑몰 등에서 500~6000원에 쉽게 구입 가능하며, 크기는 6~12인치 등 다양하다. 파티, 행사 장식 용품으로도 판매된다.

초고속카메라를 통해 촬영한 하트풍선(위)과 일반풍선(아래)이 터지는 모습. 하트풍선은 두 부분으로 양분화되어 대칭을 이루며 찢어졌다. ⓒphoto 안과학회보
초고속카메라를 통해 촬영한 하트풍선(위)과 일반풍선(아래)이 터지는 모습. 하트풍선은 두 부분으로 양분화되어 대칭을 이루며 찢어졌다. ⓒphoto 안과학회보

학계 “강한 채찍질하며 터진다”

지난 2017년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이와 유사한 하트풍선 피해 사고를 입은 강모씨에게 풍선 판매업체가 7000만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화해권고결정을 내렸다. 강씨가 사고를 당한 건 지난 2015년. 당시 다이소에서 하트풍선을 구입, 아이를 대신해 두 개의 하트풍선을 연이어 불었다. 하지만 두 풍선 모두 하트 모양을 갖추기도 전에 터졌다. 두 번째로 터진 풍선 조각이 강씨의 왼쪽 안구로 강하게 튀면서 결막을 찢었다. 안구에선 출혈이 발생하기까지 했다. 병원은 망막부종, 망막하 출혈, 망막박리 등이 발생했다고 진단했다. 강씨는 레이저 시술을 받아야만 했다. 이후엔 눈부심 현상 등의 후유증으로 선글라스를 착용하며 지내야 했다. 왼쪽 눈엔 시야협착이 발생했고, 시력은 1.2에서 0.3으로 현저히 떨어졌다.

당시 강씨의 법적대리인이었던 법무법인 ‘강’의 구주와 변호사는 “일반적으로 풍선은 크기가 팽팽하게 커졌을 때 터지는데, 하트풍선은 예상치 못한 크기에서 터진다”며 “하트풍선의 경우 내부 압력이 모든 면에 고르게 전달되지 못하고 불안정하다 보니 쉽게 터진다. 제품의 하자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인터넷 지역 맘카페나 블로그 등에선 이런 피해 사례 글이 적지 않게 올라온다. 하트풍선 피해자 중 한 명인 김모씨는 “(하트풍선이 터질 때) 눈이 터졌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통이 컸다”며 “눈이 부어오르고 눈물이 나면서 눈을 제대로 뜰 수조차 없었다”고 말했다. 하트풍선 피해자인 박모씨의 경우 시력저하로 인해 평생 안 쓰던 안경을 착용 중이다. 박씨는 “하트풍선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납, 카드뮴 등의 이물질 검사뿐만 아니라 탄성검사, 인장검사도 시행해야 한다”며 “법 개정을 통해서라도 완구류 검사 절차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트풍선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이미 학계에서도 지적한 바 있다. 안과학회보(Acta Ophthalmologica)는 지난 2014년 ‘하트풍선 팽창 과정에서의 이례적인 위험성’이라는 연구 내용을 발표했다. 연구진은 초고속카메라를 통해 하트풍선과 일반풍선이 터지는 모습을 비교·분석했다. 그 결과 하트풍선은 풍선 윗면에 움푹 들어간 부분을 기준으로 풍선이 양분화됐고, 대칭을 이루며 찢어졌다고 한다. 이때 둘로 나뉜 고무재질의 풍선 파편은 일종의 ‘채찍’이 되어 외부로 빠르게 튀어 날아갔다. 이런 실험 결과는 4개의 다른 하트풍선 사례에서도 동일하게 발생해 하트풍선 파편이 이용자의 안구를 강하게 타격했다.

반면 일반풍선의 경우 터질 때 여러 개의 작은 조각들로 풍선이 갈기갈기 찢어지다 보니 채찍질 등 강한 타격을 동반하는 움직임은 관측되지 않았다. 연구진은 하트풍선을 입으로 불 경우 안구를 보호할 수 있는 장비를 꼭 착용하라고 조언했다.

불 붙는 소송전

현재 이와 관련한 소비자 반발은 커지는 분위기다. 앞서 언급한 하트풍선 피해자 하씨는 하트풍선을 판매한 롯데마트 운영사인 롯데쇼핑에 피해와 관련한 내용증명을 발송하고, 손해배상 소송 제기를 준비 중이다. 롯데쇼핑이 제조물책임법상의 책임과 민법상 매도인의 담보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제조물책임법에 따르면 제조물의 제조·가공 또는 수입을 업으로 하는 자가 제조물의 결함으로 생명이나 신체, 재산에 손해를 입힐 경우 피해자에게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 매도인의 하자담보책임 내용을 담고 있는 민법 제580조는 매매 목적물에 하자가 있을 경우 매도인은 매수인에게 그로 인해 발생하는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롯데쇼핑은 책임을 질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트풍선의 수입·납품업체는 ‘나르시스’이며 제조원은 중국 업체라는 이유에서다. 롯데쇼핑 측은 내용증명 회신을 통해 “당사는 본건 상품의 제조업자나 수입업자가 아니며 본건 상품의 제조업자로 오인할 수 있는 표시를 한 자도 아니기에 제조물 책임법상의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트풍선 수입·납품업체인 나르시스 관계자는 “과거 사건이 터진 이후 제품 뒷면에 주의사항을 명시하고 어린이제품 안전 특별법 등 관련 국내 법률을 준수하고 있다”며 “이번 사고는 소비자가 준수사안을 따르지 않아 발생한 것이며, 이들 주장에 과도한 부분이 있다” 고 설명했다. 제품 포장 뒷면에 작은 글씨로 ‘풍선이 터져 얼굴 등에 상처를 입힐 수도 있사오니 가급적 풍선펌프를 반드시 이용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의 사용 시 주의사항을 기입했기에 책임이 없다는 반박이다.

법적 대리인을 맡고 있는 법무법인 산우의 정치화 변호사는 “법리적으로 다툴 부분이 많다 보니 서로 간 내용증명을 통해 합의로 가닥을 잡고 있는데, 유사 사례 등이 모일 경우 소송전이나 큰 이슈로까지 번질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한국소비자원은 여러 가지 정황을 면밀히 따져야 책임 소재도 알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터졌을 당시 풍선의 크기가 얼마나 컸는지, 풍선 자체의 결함은 없었는지 등 여러 요건을 고려해야만 잘잘못을 따질 수 있다”며 “개별 사고마다 내용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어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소비자 피해가 접수되면 조사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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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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