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개봉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로맨틱코미디인 ‘우리 사이 어쩌면(Always Be My Maybe)’에 나온 랜들 박(Randall Park·45)과의 인터뷰가 최근 비벌리힐스의 포시즌스호텔에서 있었다. 이 영화에서 마커스 역을 맡은 한국계 코미디언 랜들 박은 어릴 적부터 천상배필처럼 여겼던 사샤(앨리 웡 분)와 15년 만에 재회하면서 다시 사랑의 불꽃을 점화하는 인물로 나온다.

랜들 박은 2014년 영화 ‘인터뷰’에서 북한 김정은 역을 맡아 주목받았던 배우다. 영화 ‘인터뷰’는 개봉할 경우 테러를 자행하겠다는 북한의 위협 때문에 배급사인 소니가 극장 개봉을 취소하는 비운을 겪었다. 그는 현재 ABC TV의 인기 시트콤 ‘프레시 오프 더 보트’에서 플로리다주 올랜도에 중국 음식점을 차린 대만계 이민가정의 가장으로 출연 중이다.

- 요즘 들어 ‘우리 사이 어쩌면’ 같은 로맨틱코미디를 만나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 앨리와 나도 이 영화가 로맨틱코미디라는 점에 영감을 받아 선뜻 응했다. 로맨틱코미디의 꽃과도 같은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앨리와 오래전부터 우리의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를 만들자고 이야기해왔다. 우리 영화가 로맨틱코미디의 전통을 이을 수 있다는 사실이 기분 좋다.”

- 영화를 찍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무엇인가. “앨리와 내가 차 안에서 나눈 첫 섹스 장면이다. 각본에는 그 장면이 단 두 줄의 대사로 돼 있었지만 찍는 데는 여러 시간이 걸렸다. 우린 즉흥적으로 대사를 만들었는데 감독도 가만 내버려두더라. 그 장면을 비롯해 앨리는 영화를 찍으면서 내내 날 웃겼다.”

- 김정은을 연기한 사람으로서 한반도 비핵화에 대해 그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겠는가. “아이고머니나, 내가 그런 조언을 할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설령 내가 조언을 한다고 해도 김정은은 ‘저 친구 누구야’라고 비웃을 것이다.”

- 마커스와 사샤가 고물차 안에서 나눈 키스는 두 사람의 첫 프렌치키스 같은데, 당신은 첫 번째 키스를 아직도 기억하는가. “고등학교 3학년 때로 내 첫 여자친구와 데이트 장소였던 공원의 나무 밑에서 키스했다. 겁나고 온 신경이 곤두섰지만 기분이 좋았다.”

- 각본을 앨리와 함께 썼던데 서로 협조가 잘됐는가. “우린 16년간 사귀어온 친구 사이다. 우린 UCLA대 동문이다. 난 대학 연극반 창설자 중 한 명이다. 내가 졸업 후 앨리가 그 연극반에 합류했다. 그래서 우린 연극반에 있는 사람들을 통해 서로 알게 됐다. 그후로 코미디그룹에서 함께 일했고 창작을 하면서도 늘 협조했다. 이 영화의 각본을 쓸 때도 우린 무엇을 쓸 것인가에 대해 생각이 같을 때가 많았다. 같은 배경을 지닌 데다 오랜 지기 사이여서 그런 것 같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즐겁고 쉽게 작업했다.”

- 미국의 타 인종이 ‘아시안아메리칸’의 영화를 보면서 무엇을 배우길 원하는가. “그들이 우리가 맡은 인물들을 자기들과 같은 인간으로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들과 문화가 다른 점이 서로 인간적 일체감을 느끼는 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영화를 보면서 ‘아시안 영화’라고 즉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인가. “요리사로 나오는 앨리가 만드는 음식이다. 음식이 굉장히 많이 나오는데 식욕을 자극하지 않던가.”

영화 ‘우리 사이 어쩌면’의 한 장면.
영화 ‘우리 사이 어쩌면’의 한 장면.

- 대부분의 로맨틱코미디는 두 연인이 결혼해 내내 행복하게 살았다는 식으로 끝나는데 꼭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여느 로맨틱코미디들과는 달리 마커스와 사샤가 결혼하지 않고 새 삶을 시작하면서 영화가 끝나기 때문이다. 둘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다. 둘은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다. 서로 매우 다른 사람으로 각기 인생의 다른 지점에 이르면서 영화가 끝나지만 흔쾌히 함께 나아갈 용의도 있다. 그 점이 마음에 든다.”

- 실제 사랑이란 로맨틱코미디와는 달리 분홍빛 일색이 아닌데 당신도 삶에서 그런 것을 느끼나. “물론이다. 모든 관계는 잘 지켜나가려고 노력할 때만 지속될 수 있다. 나도 내 아내와의 관계에서 우여곡절을 여러 차례 겪었다. 우린 결혼생활을 잘 지켜나가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부부관계란 아주 작은 것만으로도 서로가 맞는 짝이라고 느끼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때론 자라온 배경으로 인해 서로가 충돌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비단 부부 사이뿐 아니라 모든 관계에 적용된다고 본다.”

- 영화에서 사샤는 성공한 부자가 되고 마커스는 간신히 생계를 유지하는데 당신의 실제 삶은 어땠는가. “난 그런 마커스와 여러 면에서 일체감을 느낀다. 30대가 되어서도 부모 집에서 살았다. 따로 살다가 일이 제대로 안 풀리면 부모에게 돌아갔다. 배우가 되려고 무척 애를 썼지만 처음에는 고생을 많이 했다. 또래 친구들은 다 결혼하고 직장에서도 승진을 하는데 난 한동안 백수로 지냈다. 그때 자기 회의에 시달리면서 피나는 노력을 해야 했다.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이 직업을 선택한 것에 대해 만족한다. 이 일이 잘 안돼도 대비할 준비가 돼 있다. 배우란 직업은 실패할 경우가 많은 직업이기 때문이다.”

- 아시안 배우로서 겪은 고통스러운 경험은 무엇인지. “언젠가 TV쇼에 단 하루만 나오는 역에 오디션을 했을 때 내 친구인 에디 신과 겨루게 됐다. 집에서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전화로 ‘에디에게 역이 주어졌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 말을 듣고 침실에서 울었다. 그때 그 역은 내게 정말로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와서 보니 왜 그런 작은 일로 그렇게 감정적이 됐어야 하는가 자문을 하게 된다. 그 후 ‘난 이제 끝났어’라며 배우란 직업을 포기할 생각마저 했다. 그러나 결국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것이 기쁠 뿐이다.”

- 김정은을 연기했을 때 팻 수트(뚱뚱하게 보이려고 입는 옷)를 입었는가. “그렇다. 처음에 분장사들이 내 얼굴보다 크게 만들려고 했다가 중단했는데 좌우간 나는 뚱보가 되기 위해 촬영 전에 엄청나게 많은 분량의 음식을 먹었다.”

- 그 역을 맡은 것에 대해 한국계 미국인 사회로부터 어떤 반응을 받았는가. “많은 반발을 받으리라 생각했는데 직접적으로 강력한 반발을 받진 않았다. 오히려 응원을 받았다. 한국계 미국인 사회의 여러 지도자들과 만나 그 역에 관해 논의했다. 그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역을 맡아도 되겠다고 확신했다.”

- 북한 측의 보복에 대해 걱정하진 않았나. “북한이 소니사에 대해 공갈을 치긴 했지만 생명에 대해 위협을 느끼진 않았다.”

박흥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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