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브래드 피트는 지난 9월 한국에서 개봉한 SF영화 ‘애드 애스트라’에서 아버지를 찾아 우주여행을 떠나는 우주인으로 나온다. 영화 속 그의 아버지(토미 리 존스 분)는 오래전 외계 생명체를 찾아 해왕성으로 간 뒤 실종됐다. 최근 브래드 피트와의 인터뷰가 LA 비벌리힐스의 포시즌스호텔에서 있었다. 그는 평소 ‘뻣뻣해’ 거리감을 느껴왔는데 이날은 아주 싹싹하게 굴었다. “하이” 하면서 만면에 미소를 띠고 친구 대하듯 정다웠다. 대답도 진지함과 농담을 섞어가면서 성실하게 했다. 55세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젊은 모습에 생기와 활력이 넘쳐흐르는 호남(好男)이었다.

- 어렸을 때 우주인에 대해 매력을 느꼈는가. “그들이 모험가요 탐험가라는 점이 어린 내겐 아주 로맨틱하게 들렸다. 에베레스트를 처음 정복한 힐러리 경이나 달에 첫발을 내디딘 암스트롱이 다 그런 사람들이다. 그들이 업적을 이루기 위해 겪는 어려움에 대해선 알지 못하면서도 막연히 동경했다. 그런데 난 암스트롱이 달을 걷는 모습은 못 봤다.”

- ‘애드 애스트라’는 일종의 공상과학영화이기도 한데 역을 맡으면서 어떻게 임했는지. “한번도 공상과학영화에 나온 적이 없었다. 우주여행을 그린 공상과학영화는 내가 사랑하는 장르다. ‘에일리언’은 내가 좋아하는 공상과학영화 중 하나로 아주 어렸을 때 아버지 허락을 받고 극장에서 봤다. 영화를 보고 반했는데 배우가 된 뒤로 내게 맞는 공상과학영화를 찾을 수가 없었다. 이번 영화가 그런 내겐 독특한 경력이 될 작품이다. 제임스 그레이 감독과 3년 반 전부터 이 영화에 관해 얘기하다 이제야 완성했다.”

- 영화에서 당신은 독백을 많이 하는데 보통 때도 그런가. “속으로 너무 많은 말을 한다. 마음의 주절거림인데 거의 하루 종일 지속된다. 꿈속에서 중얼대다가 깨어났는데 계속하는 경우도 있다. 그것을 끊는 것이 매우 힘든 도전이다.”

- 스스로에 대한 비판의 소리를 중얼거리나. “그렇다. 날 걱정하는 말이기도 하고 때론 쓸데없는 소리이기도 하지만 자아비판의 소리임에 분명하다. 이게 때로 함정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하루에 벌어지는 일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지혜를 배웠다. 좋은 예가 교통혼잡마저 순순히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교통혼잡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것은 하루 평화를 재는 중요한 척도라고 본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수동적인 게 아니다. 그러자면 항상 경계심을 갖춰야 한다. 하지만 마음이 큰 도움이 되진 못한다. 난 마음을 철저히 믿는 편은 아니다.”

- 우주복을 입고 무중력 상태에서 촬영했을 때의 소감은. “고통스러웠다. 어렸을 때 눈이 쌓인 날 두꺼운 방한복을 입은 것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온몸이 케이블과 고리들에 연결돼 이리저리 잡아당겨졌다가 풀렸다가 했는데 참 힘들었다. 영화 촬영 전에 우주복을 입고 토하기 직전까지 뱅뱅 도는 연습부터 해야 했다. 그걸 한두 번 한 게 아니다. 절대적인 불편을 느꼈다. 크리스천 베일이 부통령 딕 체이니로 분장하는 데 6시간이 걸렸다고 하는데 나의 고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괜찮다는 표정을 지어야 했으니 신난다고, 멋지다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 당신이 우주에서 한동안 오도 가도 못 하는 상황에 빠졌다가 지구로 귀환하게 된다면 어디에 착륙하고 싶은가. “내 집 마당에 내린다면 정말 행복하겠다. 집의 침대보다 더 좋은 곳이 어디 있겠는가. 집을 오래 떠났다가 돌아가고 싶은 곳은 역시 집이다. 난 모터사이클을 타고 여러 곳을 다녔는데 마지막 가고 싶은 목적지는 언제나 집이었다. 가본 곳 중 멋졌던 곳은 스코틀랜드의 하일랜드와 모로코, 남아프리카 등지였다. 앞으로 여행하고픈 곳은 뉴질랜드 남섬과 칠레다.”

- 가장 살고 싶은 곳은 어디인가. “난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 때문에 생의 마지막을 어디서 보낼 것인가 하는 생각도 한다. 우린 일단 한번 살 곳을 정하면 가족이나 직업 등의 이유로 정착하기 마련이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다 크고 나면 삶의 마지막을 보낼 곳을 찾아야 하는데 나는 산속 어딘가에 살고 싶다.”

- 젊었을 때는 자신의 감정과 연결되기가 힘들었다고 언젠가 말했는데 지금은 어떤가. “우린 느낌과 그에 대한 대응에 대해서 공부하듯 배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매일같이 감정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에 대해 연습한다. 내가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를 따져보고, 또 좌절에 빠질 땐 무엇이 나를 처음에 좌절케 했는지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원인을 알게 되고 거기서 빠져나올 수가 있다.”

- 당신은 우주를 신이 창조했다고 생각하는가. 우주의 신비를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먼저 신의 정의부터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주가 놀라운 점은 대기권 밖으로 나가면 세상을 절대적으로 알 수도 없고 또 신비하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시간을 변화시키고 물질을 분쇄하는 것이 있고 모든 것이 무한하다. 또 춥고 황량하며 살기 불가능한 곳이다. 모든 것이 신비에 싸여 있는 곳이다. 우리의 생각을 넘어선, 우리 세상과는 다른 절대적인 것, 우리보다 큰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난 그런 신비와 함께 살 수 있다. 이 신비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탐험해야 한다. 우리에 대해, 또 이 세상이 돌아가는 것에 대해 보다 많은 것을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무한한 우주를 포함해 자연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애드 애스트라’의 한 장면.
영화 ‘애드 애스트라’의 한 장면.

- 이 영화를 만들면서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얼마나 깨달았는지. “새로 태어나려면 죽어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우주는 고독과 암흑의 심연과 같은 관이라고 볼 수 있다. 우주인이 되어 태양을 멀리하고 여행을 하면서 내가 겪었던 어두운 때를 생각했다. 고독하고 모든 사람들로부터 절연됐던 때를 생각했다. 그런 생각과 꿈들은 당신을 죽일 수도 있고 또 계몽시킬 수도 있다. 우리의 태양계로부터 가장 멀리 떠나면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 이 영화가 하고자 하는 말이다.”

- 영화 속에서 당신은 남자다우려면 감정을 나타내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인지 무표정한 표정인데 자랄 때도 그랬는가. “그렇다. 난 감정 표현을 잘 할 줄 모른다. 감정을 아름답게 탐구하기 위해 영화에 이끌렸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예전보다 훨씬 나아졌다.”

-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는가. “내 아버지는 몹시 가난한 집에서 자라 아이들에겐 보다 나은 삶을 살도록 해주겠다는 말을 되뇌시곤 했다. 결국 그 뜻을 이루셨다. 나도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보다 나은 삶을 살게 해줄 것인가를 생각하곤 한다. 아이들과 대화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다.”

- 영화에서 당신은 깊은 고독 속에 사는데 실제로 고독한가. “고독한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투쟁의 한 경험이다. 절망과 무의미와 무가치 같은 감정은 다 인생의 투쟁 과정이다. 양로원에서 일하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 말에 따르면 노인들이 죽기 전에 하는 말은 경력이나 성공이나 소유했던 차가 아니라 사랑과 그것에 대한 후회라고 한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매일 신경을 써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 남프랑스 포도밭에서 적포도주를 만들고 있다고 들었다. “아이들에게 국제적 분위기를 익혀주고 또 외국어도 배우게 하려고 남프랑스에 머문 적이 있다. 그때 머문 곳이 포도원이었다. 거기서 우리가 포도주를 위해 돈을 낭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농부가 되어보기로 했다. 수세기 동안 포도원을 경영해온 집안 사람과 동업자가 되어 포도주를 만들어본 것이다. 아주 재미있고 보람 있는 일이었다. 예술 작업과도 같았다.”

- 내면에 갈등이 생기면 어떻게 벗어나는가. “혼자 화랑에서 시간을 보낸다. 영화는 공동작업이지만 화랑에 혼자 있으면 모든 것을 내가 떠맡게 된다. 의식 안에 잠겨 있는 것과 탐구해야 할 것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곤 한다. 그 밖에는 활력을 주는 아이들을 데리고 친구들과 함께 자연을 찾아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그 두 가지가 갈등을 풀어준다.”

- 질문을 갖게 되면 답을 어디서 찾는가. “책이다. 때때로 영적인 책을 읽곤 하는데 모든 종류의 책을 다 읽는다. 그리고 명상을 한다. 심리상담자를 만나기도 하고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친구들과의 대화가 가장 도움이 된다.”

- 죽음이 닥치면 후회할 일이 무엇일 것 같은가. “그것이 없기를 바란다. 죽기 훨씬 전에 후회할 일들을 다 정리하고 싶다. 후회란 누구나 하기 마련인데 남에게 후회할 일을 했으면 죽기 전에 해결하고, 자신에 대해 후회할 일이 있다면 스스로를 용서하면 될 것이다.”

- 외계에 생명체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저 어딘가에 그 무엇인가가 있다고 생각은 하나 한편으론 꼭 그렇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잘 모르겠다.”

박흥진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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