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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영준의 인생극장]  25년 전 한 일본인의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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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피니언
[2583호] 2019.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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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영준의 인생극장]25년 전 한 일본인의 예언

함영준  마음건강 길 대표 jmedia21@naver.com

▲ 아사히신문 기자 출신의 다나카 메이는 자신의 책 ‘한국 정치를 투시한다’에서 한국의 야당이 민주주의를 할 자격이 있느냐고 물었다. 사진은 평생 정치적 라이벌 관계였던 김영삼·김대중(왼쪽) 전 대통령.
25년 전 국민들은 김영삼의 ‘개혁’에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지금 그 결과는 어떠한가.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는 그때보다 나아졌는가.
   
   1993년 2월 ‘민주화의 기수’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文民)정부’가 출범했다. 김 대통령은 취임 직후 ‘군사문화 및 권위주의 청산’ 작업에 돌입했다. △군부 핵심세력 ‘하나회’ 척결 △고위 공직자 재산공개 및 사정(司正) △금융실명제 도입 △중앙청(구 조선총독부) 철거 등 한국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고강도 개혁이 잇따랐다.
   
   비록 거칠고 정치적 쇼 같은 점도 있었지만, 1961년 박정희 군부 정권 이래 32년간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유보된 사회 민주화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적극 반영한 조치였다. 야당도 박수를 보냈다. 그의 지지율은 한때 90%를 넘기도 했다.
   
   그때는 상식과 염치가 지배하는 사회였다. 서운하고 억울한 점도 있었겠지만 그 누구도 반발하지 않았다. 서슬이 시퍼렇던 하나회 출신 군 장성들은 순순히 군복을 벗었다. 김재순·박준규 전·현직 국회의장, 박희태 법무장관, 김상철 서울시장, 최형우 여당 사무총장도 스스로 물러났다.
   
   당시 경제는 호황이었다. 전 국민의 75%가 스스로 중산층으로 여겼고, 대졸자가 취직 걱정 안 하던 시절이었다. 외교·안보 상황도 좋았다. 1989년 동구권 붕괴 이후 경제난에 빠진 러시아(구소련)와 중국은 앞다퉈 우리나라에 ‘러브콜’을 보냈고 미·일 등 기존 우방과의 관계도 밀월이었다.
   
   북한은 완전히 죽을 쑤고 있었다. 반세기 동안 계속된 김일성 우상화 정책의 여파로 사회는 거덜 나 초근목피로 연명하고 있었다. 그런 북한에 대해 김영삼 대통령은 오히려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를 북한에 돌려보냈고, 미국의 영변 핵시설 폭격 시도를 막았다.
   
   TV 인기드라마 ‘응답하라 1988’과 ‘응답하라 1994’ 시리즈에 잘 그려졌듯 당시에는 정(情)이 있었고, 이웃과 사회, 나라에 대한 신뢰가 있었으며, 앞날에 대한 희망이 있었다. 아마도 단군 이래 가장 좋은 시절이 아니었을까.
   
   그런 시절에 일본 아사히(朝日)신문 기자 출신인 다나카 메이(田中明)가 ‘한국 정치를 투시한다’는 책을 펴냈다. 그는 광복 전 한국에서 자라 서울 용산중학교를 졸업한 대표적 지한(知韓) 언론인.
   
   그는 이 책에서 “한국이 드디어 박정희 군부정권의 ‘예외의 시대’를 마감하고 ‘통상의 시대’로 돌아가고 있다”고 했는데 이는 장밋빛 메시지가 아니었다. 요약하면 이렇다.
   
   한국 통상 시대는 조선 왕조 이래 700년간 지배층 양반 가문들 간의 권력 다툼의 역사였다. 이 맥은 광복 후 한국민주당(한민당)으로 이어졌다. 1945년 광복 후 이승만 시대를 거쳐 4·19혁명과 장면 시대 혼란기가 계속됐다. 1961년 이런 구 풍토에 이단아 격인 군인들이 도전, 경제부흥에 진력한 ‘예외적’ 시대가 있어 비약적인 경제발전이 이뤄졌다. 그러나 이제 권력은 민주당의 적자 격인 김영삼(구파)과 김대중(신파)에게로 넘어와 다시 서로 갈라서고 치고받는 옛날(통상) 시대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가 보는 조선 사회는 유교적 관념론과 혈통·집안으로 철저하게 무장된 양반계급 사회였다. 사농공상(士農工商)에서 나타나듯 사회 지배층은 유교를 공부하는 선비(文人)였고, 실제 생산·기술·경제를 담당하는 이들은 하층민이었다.
   
   정치는 애오라지 자기네 집안과 파벌 쟁탈전의 역사였다. 백성들의 먹고사는 문제는 도외시됐다. 나라보다 자기네 문중 권력을 지키기 위한 대의명분, 공리공담, 관념론이 성행했으며 유교 이데올로기가 그 도구로 사용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군사쿠데타로 등장한 박정희 세력은 대부분 농촌 출신으로 전통적 양반 지배계급과는 별 관계없는, 요즘 말로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놈)’ 같은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당시 한국 사회에서 가장 선진화된 교육과 훈련을 받은 테크노크라트 집단이었다.
   
   이들은 총 대신 삽, 머리 대신 몸을 움직이는 실천가들로 오로지 △먹고사는 일(경제건설)과 △나라 지키는 일(국가안보)에 전념했다. “내가 정의다”라고 외치지 않았고 국가 근대화를 위해선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달려가는 실용주의자들이었다. 그 과정에서, 당시 냉전체제하의 북한 김일성 정권과 대결하는 상황에서 국민의 자유권을 얼마간 제한한 것은 불가피했다는 것이 다나카 메이의 해석이다.
   
   그러나 한국의 야당은 이를 비민주적 독재정치라고 규탄하고 강하게 저항했다. 박정희의 경제성장 과실은 향수하면서도 한국의 민주화야말로 절대명제의 과제인 양 몰고 갔는데 이는 의(義)와 이상정치에 목숨을 거는 조선시대의 선비론과 유사하다고 했다.
   
   국민들은 그런 야당에 동조했다. 때문에 집권여당은 국가운영을 잘하면서도 늘 민주화 문제로 쫓기고 비판받는 입장이었다.
   
   다나카 메이는 한국의 야당이 스스로 민주화 자격이 있냐고 질문했다. 4·19, 1980년 서울의 봄, 1987년 대선 때 혼란을 예로 들면서 YS나 DJ나 그들 스스로 약속한 룰을 깨기 십상이고, 나라 생각보다 자신들의 권력 잡기에 급급했다고 비판했다. 한국의 정당은 파벌과 보스를 따라 이러저리 이합집산을 되풀이해왔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이 앞으로 과거와 같은 경제성장 대신, 서로 편 가르고 싸우는 권력투쟁과 허황한 명분론·이념이 성행하는 ‘조선시대식’ 사회로 되돌아갈 것이라고 예언했다. 더 흥미로운 점은 향후 한국 사회는 북한에 대해 저자세로 일관하고, 일본에 대해선 “왜 더 보상하지 않느냐, 너희들은 악이다”라는 소리를 되풀이할 것이라고 예측했다는 점이다.(바로 지금 우리 현실 그대로다.)
   
   책이 출간된 바로 그해(1995년), 김영삼 대통령은 자신과 손잡았던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역사 바로 세우기’란 명분을 내세워 감옥으로 보냈다. 1997년에는 ‘IMF 금융위기’를 맞았다. 그때 꺾인 성장동력은 아직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뒤를 이어 문재인 정권으로 이어졌지만 서로 박 터지게 싸우고, 정치·경제·사회·외교·안보 전 분야에서 상황은 더욱 나빠져 드디어 백척간두의 위기로 빠져들고 있다. 25년 전 한 일본인의 예언이 들어맞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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