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라의 색은 빛에 따라 끊임없이 변한다.
사하라의 색은 빛에 따라 끊임없이 변한다.

“난 사하라에서 왔어요.”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만난 남자가 말했다. 사하라라고? 무슨 말인가? 사하라에서 왔다면 그는 사하라에 산다는 말인가? 사하라에서 왔다는 말이 귓가에서 맴돌았다. 그렇구나. 그는 사하라에서 왔구나….

남자 이름은 알리, 베르베르(Berber)족이다. 그 이름만으로 전 세계 여행자의 꿈을 간직한 곳이 사하라다. 아프리카 대륙의 3분의 1을 차지할 만큼 거대하니 대단한 탐험가나 여행가쯤 돼야 갈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그렇지는 않았다. 나는 무작정 사하라로 가서 사하라 여기저기를 넘나들었다. 베르베르인인 양 온몸을 가리는 젤라바(djellaba)를 입고 사하라를 홀로 누볐다. 사하라는 아랍어로 ‘불모의 땅’이란 말이다. 애줄 사하라(Azul Sahara). 불모의 땅 사하라에 건네는 베르베르 인사말이다.

사하라에 접한 모로코 하실라비드 마을.
사하라에 접한 모로코 하실라비드 마을.

인샬라, 여기에 계속 머물고 싶다

아틀라스산맥을 넘어 사하라의 작은 마을, 하실라비드(Hassilabied)에 왔다. 마라케시에서 600㎞ 떨어진 이곳까지 오는 데 13시간이 걸렸다. 베르베르인의 마을인 하실라비드 바로 앞이 사하라사막이다. 숙소도 사하라 앞이다. 하룻밤 사이 큰 도시에서 사하라로 와버렸다. 아침 8시, 숙소 2층 테라스에서 맞는 햇볕이 따사롭다. 사하라에 왔는데 극한의 오지가 아닌 한가한 휴양지에 온 것 같다.

“살라 무 알리 쿰.”

햇살을 받으며 숙소 직원과 “당신에게 평화가 함께하기를” 하고 인사를 나눈다. 널찍한 테라스에 태양을 등지고 앉으면 귀 끝부터 후끈후끈해진다. 사막이라고 늘 더운 건 아니다. 낮에는 더워도 밤에는 춥다. 지난밤 맹렬한 사막의 추위에 시달린 몸의 한기는 태양을 받자 눈 녹듯 사르르 사라진다. 몸을 녹인 다음엔 광합성이라도 하듯 작열하기 시작하는 태양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아직은 태양을 받아도 괜찮다. 사하라 하늘에서 빛나는 건 해가 아니라 태양이다. 사하라의 태양은 진흙과 짚을 섞어 지은 집을 녹아버리게 하고 바삭바삭 부서지게 만든다. 동화책에나 나올 법한 방긋 웃는 ‘해님’이라 하기엔 너무 사납다. 태양을 맞은 다음엔 치즈와 버터를 바른 전통 빵, 코부스와 바게트, 얇게 자른 토마토, 고소한 우유를 넣은 커피와 함께 아침을 먹는다. 단순하지만 건강한 식사다. 부족하지 않은 아침을 먹고 뜨끈한 태양을 받는 것만으로 더 이상 바랄 게 없으니 이내 심신이 충만하다. 소망할 수밖에 없다. 사하라에 계속 머물고 싶다고, 인샬라.

서울에서 주말이면 아침 먹고 동네 카페에 가듯 사하라에서도 아침 먹고 동네 카페에 간다. 카페 옥상에 올라가 동네 저편 사하라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신다. 마른 먼지 풀풀 날리는 길가의 또 다른 동네 카페에선 뜨거운 우유에 민트 찻잎을 넣은 ‘위자’차를 마시고, 양의 곱창으로 만든 점심을 먹는다. 재료는 낯설지만 맛은 불고기 같다. 차는 850원, 점심은 2400원. 느리긴 해도 숙소에서도, 카페에서도 와이파이가 된다. 놀랍지 않나? 사하라에서도 3G는 터진다. 동네 산책을 하다 보니 마을의 집은 모두 짚을 섞어 만든 진흙집이다. 형태도 단순하다. 그런데 창문과 문에만 아기자기한 장식을 하고 색을 칠했다.

동네 한편에 있는 묘지에도 갔다. 사막의 묘지는 낯설다. 흙이나 납작하게 깨진 돌을 슬쩍 덮은 게 전부인데 어느 무덤은 짧고 어느 무덤은 길다. 아이 무덤과 어른 무덤이다. 사막이란 척박한 환경 때문일까. 아이 무덤이 유독 많다. 무덤 위에 놓인 지팡이와 물그릇이 애처롭다. 동네 공동 빵 화덕에도 갔다. 베르베르 여인들이 할 수 있는 영어는 한두 마디가 전부다. “어디서 왔나요?” “몇 살이에요?” 20~30대 여인들이 여고생인 양 까르르 웃으며 갓 구운 빵을 건넨다. 빵을 받으며 베르베르어 두 마디를 배워 여인들과 주고받았다.

“슈크란.(고마워요.)”

“슈크란 알라와집.(고맙다 하지 마세요. 내가 할 일을 했을 뿐이에요.)”

베르베르족은 ‘이마지겐(Imazighen)’으로 불렸다. 사막의 ‘고귀한 민족’이란 뜻이다.

카페나 동네에서 한낮의 태양을 피했으면 그 다음 할 일은 사하라 산책이다. 하실라비드에선 동네 마을 가듯 사하라 산책을 나간다. 가만 보니 나 같은 여행자뿐만 아니라 평생 여기 사는 이들조차 그렇다.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사하라 주위를 서성인다. 어른들은 해 질 녘에 사구 정상으로 향하고, 남자아이들은 사하라 사구 아래서 공을 차고, 여자아이들은 나지막한 사구에서 미끄럼을 탄다. 마을 중심가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금세 주위는 적막해진다. 간혹 관광객을 실어나르는 차를 제외하면 한가롭고 고요하다.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기묘한 시간이 흘러간다.

한번은 차를 타고 마을을 벗어났다 오아시스에 정차했다. “저기 뭐가 보여요?” 운전사가 물었다. 그가 가리킨 방향을 돌아보고 나는 대답했다. “오아시스가 있네요.”

“아녜요. 다시 한번 잘 보세요. 거기엔 아무것도 없어요.”

허리를 숙이고 눈동자를 굴리며 신중하게 살폈다. 분명히 물줄기다. “오아시스 맞잖아요.”

운전사가 웃음을 터뜨린다. 그게 신기루였다. 말 그대로 헛것을 보았다. 돌에 반사된 빛의 장난이니, 빛의 굴절로 인한 현상이니 설명을 들어도 믿을 수가 없다. 신기루라는 걸 알아도 내 눈엔 여전히 오아시스다. 사막에서 헛것을 보는 건 길을 잃고 기력이 다한 후의 일이 아니다.

하실라비드 마을 사람들
하실라비드 마을 사람들

사하라 사구는 하실라비드 마을 사람들의 놀이터다.
사하라 사구는 하실라비드 마을 사람들의 놀이터다.

사하라에 내리는 비

너무 좋구나. 믿을 수 없을 만큼 너무 예쁘구나. 빛에 따라 붉은 물결인 양 사하라가 출렁인다. 하실라비드에서 맞는 4일째 아침, 사하라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숙소에서 낙타 타고 가는 사막 투어 대신 젤라바를 입고 무작정 동네 앞 사하라 사구 정상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숙소 직원 말로는 30분 정도 걸릴 거라 했는데 신발조차 벗고 사구에 오르기 시작한 지 한 시간 만에 정상에 올랐다. 정상 저편은 놀랍게도 알제리다. 겨우 30㎞ 너머가 알제리다. 국경만 넘으면 더 광대한 사하라가 본격적으로 펼쳐질 텐데 더 이상 갈 수 없다. 그게 아쉬워 절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알제리 사하라에 비하면 모로코 사하라는 시시하다. 얼핏 사막 면적만 살펴봐도 동서 길이는 고작 7.5㎞, 남북 길이는 25㎞ 정도에 불과하다. 알제리의 사하라사막은 대충 1000㎞가 넘게 펼쳐진다.

하지만 모로코 사하라가 작다고 해도 사하라는 사하라다. 장엄하고 아름다운 사막은 매일 나를 흔들어댔다. 몇 시간 동안 붉은 사막을 보고 또 보아도 질리지 않았다. 보고 또 보아도 도대체 여기가 어디인지 의아했다. 사막딱정벌레도 여러 마리 봤다. 사막딱정벌레는 이른 새벽 극심한 일교차로 생긴 안개의 수분을 등의 돌기 사이로 흘려보내 마시고 생명을 이어간다. 거친 사막에서도 생명은 이리 경이롭고 치열하다. 사막에서 4륜구동이나 쿼드바이크를 타고 내달리면 안 될 이유다.

하실라비드에 머무는 동안 나는 매일 사하라에 올랐다. 태양이 강렬하거나 해가 질 때뿐만 아니라 구름이 끼거나 비가 내리고 모래가 비처럼 날리는 돌풍을 맞으면서도 무턱대고 사막에 올라갔다. 오르지 않고선 견딜 수 없었다. 사구에 올라 사하라 능선을 이리저리 걸으면 인생의 시간이라고 꼽을 만한 순간이 펼쳐졌다. 능선에 서서 사하라를 바라보고 있으면 이내 거리감이 사라진다. 너무 넓어 도무지 스케일을 알 수 없다. 처음 높은 사구에 올랐을 때 저 멀리 희미하게 붉은 사막의 끝이 보인다고 모로코 사하라를 시시하다 여겼다. 하지만 딱 한 번 사구에서 호되게 돌풍을 맞고서 탐욕은 금세 꼬리를 내렸다. 사막 위를 흐르는 모래바람을 내 두 눈으로 보았다. 숱한 모래알갱이가 얼굴을 때려대니 덜컥 겁이 났다. 마을에서 채 1㎞도 떨어지지 않았는데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까 두려웠다. 처음 여기에 와 휴양지를 운운했었다. 어리석다. 그건 사하라가 가진 여러 모습 중 한 가지일 뿐이었다.

사하라에는 1년에 서너 번 비가 내린다.
사하라에는 1년에 서너 번 비가 내린다.

아틀라스산맥의 연분홍색 눈발

어느 새 일주일이 지났다. 이쯤되면 떠날 때가 됐을 법도 한데 막상 떠나려 하면 아쉽다. 다시 오면 된다고 타이르면서, 내일 떠난다 말하려고 숙소 주인을 찾았다. 나를 보자마자 그가 말했다. “내일 비가 내릴 거 같아요.” “정말요? 비가 내린다고요?” 이 말 또한 믿기 어려웠지만 하루 더 지내기로 했다. 사막에, 그것도 사하라에 내리는 비를 또 언제 본단 말인가! 사하라에서 지낸 지 8일째, 진짜로 사막이 젖었다. 사하라에 비가 내린다. 1년에 겨우 서너 번 내린다는 비다. 하실라비드 마을에 건네는 신의 축복이라 생각했다. 비를 맞으며 골목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떠올리면서 서둘러 동네 산책에 나섰다.

하지만 완전한 착각이었다. 좁은 골목은 물구덩이 투성이 진흙길로 변했다. 홍수라도 난 것 같다. 짚과 진흙을 섞어 만든 집 벽에선 납작한 파편이 떨어져 바닥에 뒹굴었다. 비가 더 내리면 한 겹 두 겹 벽이 더 조각날지도 모르겠다. 사막에서도 홍수가 난다. 얼핏 봐선 마을 사람 누구도 간만에 내린 비를 반기는 것 같지 않다. 날씨마저 순식간에 변하기 시작했다. 바람은 거칠어지고, 기온은 곤두박질쳤다. 손이 시려오고, 눈부시게 파랗던 하늘은 잿빛으로 변했다. 숙소 와이파이는 사라지고, 전기마저 깜박거린다. 처음 하실라비드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친구에게 전화가 오면 “여보세요? 여기 사하라 앞인데…” 하며 장난을 쳤는데 오늘은 좀 무서워졌다. 이젠 더 이상 사막에 오르지 못할 것 같다. 드디어 떠날 때가 됐다.

그런데 떠나지 못했다. 저녁 7시에 페스로 가는 버스를 탈 예정이었는데 버스가 끊겼다. 전날 저녁 페스를 출발해 오늘 새벽 하실라비드로 와야 할 버스가 오지 않았다. 하루에 한 번밖에 없는 버스다. 버스는 출발한 지 3시간 만에 아틀라스산맥의 눈 속에 갇혔다. 적설량은 50㎝ 정도밖에 안 된다는데 어이없게 길이 끊겼다. 반대로 전날 오후 하실라비드를 떠난 버스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람. 결국 이런저런 궁리 끝에 하루를 더 묵고 차를 빌려 페스로 출발했다. 좀 비약하자면 ‘사하라 대탈출’ 같은 기분이다. 그래도 뭐 높은 산 하나 넘으면 그만이겠지 하고 마음을 다잡았다. 몇 시간 후 도로 끝에 거대한 장벽 같은 아틀라스산맥이 나타났다. 차는 산맥을 오르고 또 올라 마침내 높은 고개를 넘었다. 이게 끝이 아니다. 아틀라스는 끝없이 장대하게 펼쳐진다. 거대한 트럭이 새끼손톱 같다. 그리스 신화의 아틀라스신(Atlas)이 지구를 짊어졌듯 아틀라스산맥은 아프리카를 짊어진 걸까? 가파른 고개를 넘어 몇 시간을 달려도 여전히 아틀라스, 여전히 끝을 알 수 없는 세상이다. ‘북아프리카 대륙의 척추’란 말이 괜한 말이 아니다. 불현듯이 눈발마저 휘날리기 시작한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눈, 북아프리카에서 맞는 눈이다. 지난밤 내린 눈은 붉은 땅을 희끗하게 때로는 누렇게 덮었다. 북아프리카의 눈은 때로 황갈색, 때로는 연분홍색으로 밤색 대지를 감싼다. 광대하게 자리한 북아프리카의 심장 같은 뭔가를 느끼는 순간이다. 몸은 피곤한데 잠시도 눈을 감고 싶지 않다. 연분홍색 눈 쌓인 벼랑길을 달리는데 아슬아슬한 쾌감이 엄습한다. 내 몸에 각인되는 아틀라스산맥의 기운이자 잊지 못할 북아프리카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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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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