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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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인 화덕피자 브랜드 ‘고피자’는 2018년 4월 가맹사업을 시작해 전국 가맹점이 60개를 넘어섰다. 인도에도 진출한 데 이어 내년 홍콩 진출을 앞두고 있다. 피자 혁명을 일으키며 글로벌 브랜드를 꿈꾸고 있는 ‘고피자’는 하마터면 세상에 나오지 못할 뻔했다. 카이스트 출신인 임재원 대표는 200만원을 들고 푸드트럭부터 시작했다. 햄버거처럼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글로벌 피자 브랜드를 목표로 시스템을 갖추고 투자자를 찾아다녔지만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사업을 포기해야 하는 순간, 한 사람의 투자 덕분에 살아날 수 있었다.

# 독서실에 인강(인터넷 강의) 프로그램을 깔고 고급 인테리어로 디자인한 ‘작심독서실’. 설립 3년여 만에 300여개 지점을 돌파하며 급성장을 하고 있다. 독서실에서 시작해 ‘작심스터디카페’ ‘작심스페이스’ ‘작심하우스’ 등 공간 브랜드로 확장하고 있는 이 회사도 빚에 허덕이며 벼랑 끝에 서 있을 때, 손을 내밀어준 한 사람이 있었다.

# 쇼핑몰의 물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동주문 시스템’을 만든 이스트엔드는 구매부터 주문, 배송까지 혼자서 처리해야 하는 쇼핑몰들의 손발을 자처하고 나섰다. 소규모 브랜드 등을 지원하는 패션 플랫폼을 구축한 이스트엔드는 위기의 동대문 생태계를 살리기 위한 구원투수로 급성장하고 있다.

이들 업체는 모두 오프라인에 기반한 스타트업들이다. 트렌드에 민감한 IT 기반의 스타트업들이 각광받는 창업 생태계에서 이들을 주목하는 투자자는 없었다. 투자자를 구하지 못해 망해가던 이 회사들을 일으켜세운 사람은 벤처캐피털 회사인 캡스톤파트너스의 송은강(55) 대표이다. 송 대표의 투자 덕분에 세 업체는 현재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이들은 혁신의 사각지대에 있는 전통적인 산업에서 변화를 끌어내고 시장을 업그레이드시켰다. ‘작심독서실’의 경우는 골목골목 낡은 건물들의 가치를 끌어올리고, 이스트엔드는 전통 상권에 IT를 접목해 동대문의 경쟁력을 높여주고 있다. 왜 피자는 느리고 커야 할까? 혼자서도 먹을 수는 없을까? 이런 질문에서 시작한 ‘고피자’는 제2의 맥도날드를 꿈꾸며 피자 시장을 흔들고 있다.

‘제2벤처붐’이 왔다

이들처럼 스타트업들이 세상의 변화를 이끌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떠오르면서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키우는 벤처캐피털(Venture Capital·VC) 시장도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 벤처캐피털은 스타트업의 현재 가치에 더불어 성장 가능성에 투자하는 회사이다. 트렌드에 한 발 앞서 산업을 예측하고 투자하는 만큼 ‘산업의 예언자’들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들이 투자하는 회사를 보면 미래가 보인다.

스타트업의 성장을 돕지만 벤처캐피털의 목적은 결국 수익이다. 냉정한 ‘쩐의 세계’에서 송은강 대표는 스타트업들에는 키다리 아저씨 같은 존재이다. 유망한 벤처기업을 키운다는 벤처캐피털의 기본에 가장 충실하다. 캡스톤파트너스는 설립 3년 미만의 창업 초기 기업에 투자하는 비율이 70%에 달한다. 일반적인 벤처캐피털의 경우 30%인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이다. 리스크가 큰 탓에 남들은 투자를 꺼리는 초기 스타트업들에 그는 든든한 서포터스이다.

혁신의 생태계에서 혁신의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는 송은강 대표를 만났다. 송 대표는 대표적인 벤처캐피털리스트로 벤처캐피털 생태계를 건강하게 키우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최근 몇 년 새 스타트업 생태계는 급팽창하고 있다. 정부도 ‘제2벤처 붐’을 외치며 벤처펀드에 돈을 쏟아붓고 있다. 송 대표는 “올해 벤처캐피털 업계에 유입된 신규 투자금액은 4조여원에 달한다”고 했다. 단군 이래 최대치로, 최고 기록인 지난해의 3조4249억원을 훌쩍 넘어선 수치이다. “벤처캐피털에 들어오는 돈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쓰이는 돈이다”라는 것이 송 대표의 생각이다.

벤처캐피털의 투자를 받으려는 스타트업들은 매일 쏟아져나온다. 현재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벤처 인증을 받은 스타트업 기업은 2017년 3만5000곳을 넘어섰다. 수많은 스타트업들 중에 송 대표는 어떻게 옥석을 가려낼까. 벤처캐피털들이 투자 기업을 선택하는 방법이나 기준은 제각각 다르다. 투자금을 높은 수익으로 돌려줄 알짜회사를 찾아내는 것이 벤처캐피털의 능력이다. 송 대표는 “몇 년 전 언론 인터뷰에서 청소 잘하는 기업이 투자 대상 1호라고 답했더니 그 후 기업을 방문하면 다들 청소를 깨끗이 해놨더라”면서 웃었다.

“벤처캐피털은 원래 돈 구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오는 곳입니다. 매출과 이익이 있으면 그 증가율을 보지만 없으면 다른 숫자들을 봅니다. 가입자 증가율, 충성도, 서비스 재방문율 등을 보고 그것도 없으면 돈을 효율적으로 쓰는지, 팀워크가 좋은지, 회사 정리정돈은 잘돼 있는지를 봅니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방법을 가져오는 사람입니다. 과거와 같은 방법으로는 안 됩니다.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이 새로운 고객을 만들어냅니다. 벤처회사는 세상의 변화를 남보다 반 걸음 먼저 아는 사람입니다. 예를 들어 아이폰이 세상을 바꿀 것을 예견하고 앱, 게임을 먼저 만든 사람들입니다.”

한 개의 기업에 투자를 결정하기까지 그는 수많은 기업을 만난다. 여러 차례 만나기도 하고, 한 번에 투자를 결정하기도 한다. 힘들게 버티는 스타트업들에 그는 “무조건 끝까지 가는 것이 답은 아니다”라고 조언한다.

송 대표가 가장 안타까운 투자 경험이라면서 들려줬다. 부산 출신 대표가 하는 게임개발 회사였다. 송 대표가 45억원을 투자했는데 성공을 못 했다. 투자받은 돈이 다 떨어지자 업체 대표는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가 7억원을 만들어왔다. 돈을 마련하느라 가족, 친척, 친구까지 동원했을 것이 뻔했다. 그 돈까지 바닥을 내고 결국 망했다. 업체 대표는 잠적했고 그 뒤로 얼굴을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송 대표는 “살아있기만 바란다”고 했다. “끝까지 승부를 보는 사람보다는 얄미운 창업자가 필요합니다. 60억원을 가지고 시작해 2억원을 쓰고 안 된다 싶으니 회사에 취업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필요합니다. 미국의 성공한 창업가의 창업 횟수는 평균 2.8회입니다. 세 번, 네 번 했다는 사람이 수두룩합니다. 안 된다 싶으면 빨리 결단을 내려야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송은강 대표가 9년째 진행하고 있는 투자토크쇼 ‘쫄지 말고 투자하라!’. 오른쪽부터 송은강 캡스톤파트너스 대표, 김재현·김용현 당근마켓 공동대표, 이희우 언블락 대표. ⓒphoto 캡스톤파트너스
송은강 대표가 9년째 진행하고 있는 투자토크쇼 ‘쫄지 말고 투자하라!’. 오른쪽부터 송은강 캡스톤파트너스 대표, 김재현·김용현 당근마켓 공동대표, 이희우 언블락 대표. ⓒphoto 캡스톤파트너스

쫄지 말고 투자하라!

송 대표가 스타트업들을 돕기 위해 9년 동안 재능기부로 꾸준히 하고 있는 일이 있다. ‘쫄지 말고 투자하라!’, 일명 ‘쫄투’라는 유튜브 방송이다. 유망 스타트업들을 초대해 기업 소개할 기회를 주고 투자자와 연결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것이다. 토크쇼 형식으로 송 대표와 이희우 언블락 대표가 함께 진행을 맡고 있다. 2011년 팟캐스트로 시작, 매년 한 시즌씩 진행해 ‘시즌 8’까지 오면서 진화를 거듭했다. ‘쫄투’는 거의 매주 방송을 한다. 송 대표는 아무리 바빠도 ‘쫄투’ 녹화가 있는 수요일 저녁 시간은 비워놓는다. ‘쫄투’를 통해 지금까지 250개가 넘는 스타트업이 소개됐다. 마켓컬리, 직방, 우아한형제들 등 성공한 스타트업들은 대부분 ‘쫄투’를 거쳐갔다. ‘쫄투’에 출연한 것만 해도 스타트업들로서는 유망 기업으로 인정을 받은 셈이다.

‘쫄투’ 출연을 계기로 수천억원대 투자유치도 이뤄졌다. 창업가뿐만 아니라 벤처캐피털리스트, 엑셀러레이터도 출연해 창업 생태계에서 살아남는 법을 전해주면서 스타트업 창업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꼭 봐야 하는 방송으로 꼽히고 있다. 돈 버는 일도 아닌데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9년을 뚝심 있게 밀고 온 것은 스타트업들에 대한 애정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송 대표는 “남다른 기업들을 소개하고, 이런 회사의 경험을 배우고, 방송을 본 창업가들이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시작했는데 오히려 내가 많이 배웠다”면서 겸손해했다. “젊은 창업가들을 만나는 덕분에 젊은 감각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큰 혜택이다”라고 말했다.

송 대표는 서울대 계산통계학과와 카이스트 전산학 석사 출신으로 삼성종합기술원, 삼성그룹 회장 비서실 인터넷 태스크포스팀을 거쳤다. 기술 트렌드를 둘러보기 위해 미국 케임브리지삼성파트너스에 파견됐다가 벤처캐피털의 세계를 알게 됐다. 한국으로 돌아와 MVP창업투자를 설립해 메디포스트와 통신계측장비업체 이노와이어리스에 투자한 것이 대박이 났다. 메디포스트에 5억원 투자해서 100억원을 벌었고, 이노와이어리스에 13억원을 투자해 160여억원을 벌면서 화제가 됐다. 그리고 2008년 캡스톤파트너스를 설립했다. 캡스톤파트너스는 중국의 게임업체 1위인 텐센트로부터 수백억원을 유치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이 투자금으로 한국의 게임업체를 키운 후 텐센트를 통해 중국 시장에도 진출시켰다.

벤처캐피털이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구조는 대부분 비슷하다. 먼저 펀드를 만들고 출자자를 모집한다. 출자자는 정부, 연기금, 금융권 자금, 민간 자금 등이다. 투자수익률이 높은 벤처캐피털의 경우 펀딩이 유리하다. 펀드의 규모는 30억원부터 3000억원까지로 다양하고 운용 기간도 5~8년까지 제각각이다.

그 다음 좋은 투자처를 찾아나선다. 한 개의 펀드는 여러 기업에 나눠 투자한다. 일반적으로 10개 기업에 투자해서 1~2곳만 대박이 나면 나머지 기업의 손실까지 메울 수 있다. 이때 벤처캐피털의 수입은 돈을 맡긴 투자자들로부터 매년 1~2% 정도의 관리비용을 받고, 펀드가 잘되면 별도로 성공보수를 받는다. 송 대표는 “만기된 펀드의 회수 수익률이 연복리로 15%에 달하는 펀드가 많이 나오면서 민간 자본이 밀려들고 있다”고 말했다.

벤처캐피털이 기업에 투자할 때 계약조건은 각각 다르다. 기업들은 단계별로 ‘시리즈 투자’를 계속 받을 수 있다. 초기 투자 자금이 A 시리즈이고 그 후 단계가 올라가면서 B, C, D 시리즈 투자로 이어지는 식이다. 문제는 부익부 빈익빈이다. 이미 성공 궤도에 오른 몸집 커진 일부 기업들에는 투자자들이 몰리는 반면, 신생 스타트업들은 문턱이 닳도록 쫓아다녀도 투자받기가 쉽지 않다.

밴처캐피털 회사 홈페이지 메일에는 매일 열어보지도 못한 투자요청서가 쌓인다. 상황이 악화된 기업들의 경우 급하게 투자를 받다 보면 ‘약’이 아니라 ‘독’이 되는 경우도 경계해야 한다. “벤처캐피털의 역사는 30~40년이 됐지만 본격적으로 시장이 활성화된 것은 불과 10~20년의 일입니다. 규제 완화 등 아직 할 일이 많지만 요즘은 워낙 투명해서 나쁜 자본도 나쁜 기업도 금방 알려집니다. 이제 자리를 잡아가는 단계입니다.” 송 대표의 말이다.

‘뉴칼라’ 창업자에게 투자합니다!

투자기업의 포트폴리오를 보면 벤처캐피털의 성격과 실력을 가늠할 수 있다. 벤처캐피털마다 전문 분야도 다르다. 캡스톤파트너스는 현재 IT 중심으로 10개의 펀드를 운용 중이고 2709억원 규모이다. 지금까지 투자한 기업은 150여개에 달한다. 포트폴리오를 보면 직방, 집닥, 마켓컬리, 마이리얼트립, 위즈스쿨 등 시장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기업들이 즐비하다. 카카오 이후 가장 단시간 내에 이용객 400만에 도달할 만큼 성장속도가 빠른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도 초기에 투자한 기업이다.

송 대표는 이들 기업들을 발굴하는 노하우로 “중요한 기업이 창업을 하면 꼭 거치는 길목을 노린다”고 말했다. 요즘 그가 노리고 있는 길목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이다. 송 대표는 “모바일에 인공지능이 더해지면서 어떤 것이 올지 예측하기 어렵다. 산업이 완전히 바뀌게 될 것이다. 남들이 가보지 않은 길, 어려운 길을 가야 할 수도 있다.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빨라 1년이 다르다”고 말했다.

‘혁신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비전과 능력을 갖춘 국내 ‘뉴칼라’ 창업가에게 투자합니다.’

캡스톤파트너스 홈페이지에 적힌 문구이다. ‘뉴칼라’는 블루칼라, 화이트칼라와는 다른 새로운 엘리트층을 말한다. IBM의 CEO 기니 로메티(Ginny Rometty)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 인재로 내세운 말이지만, 송 대표가 정의한 ‘뉴칼라’는 ‘기술을 이해하고 기술의 변화를 이해하는 사람. 디지털리터러시(디지털 활용능력),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사람, 세상을 정복하고 싶은 사람, 다른 사람과 협업할 수 있는 사람’이다. 송 대표는 “이런 사람이면 언제든지 투자하겠다. 요즘에는 정복에 도전하기보다 안정을 원하는 청년들이 많아서 아쉽다”고 말했다. “미국, 중국에 비하면 우리나라 대학생 창업률은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서울대, 카이스트의 경우 1%가 안 됩니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때가 올 겁니다. 지금 대학을 졸업하는 아이들은 아마 다를 겁니다.”

최근 우리나라 10번째 유니콘 기업이 등장했다. 패션 쇼핑몰 ‘무신사’이다. 유니콘 기업은 기업가치 10억달러(1조원)를 넘는 비상장 스타트업을 말한다. 전설 속 동물인 유니콘처럼 현실에서는 이루기 힘들다는 의미로 붙은 이름이다. 우리나라 유니콘 기업은 쿠팡,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토스, 야놀자, 위메프 등으로 불과 1년 만에 3배 이상이 늘었다. 캡스톤이 투자했던 마켓컬리, 직방 등도 유니콘 후보군에 들어 있다. 미래의 유니콘을 키우는 벤처캐피털이 건강해지면 우리나라 미래도 건강해진다.

황은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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