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녀린 몸매의 르네 젤위거(50)는 엷은 미소에 눈웃음을 쳐가면서 사근사근하게 굴었다. 인터뷰 때도 노래 부르듯 고운 목소리로 자상하고 상세하게 물음에 대답했다. 이러니 정이 안 갈 수가 없다. 르네 젤위거는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로 나와 ‘섬웨어 오버 더 레인보우’를 열창한 소녀배우 출신의 할리우드 황금기 스타 주디 갈런드의 마지막 삶을 다룬 영화 ‘주디’에서 갈런드 역을 맡았다.

가수이기도 했던 갈런드는 생애 모두 다섯 번 결혼했는데 두 번째 남편이 명감독 빈센트 미넬리로, 둘 사이에서 낳은 딸 라이자 미넬리도 배우요 가수이다. 갈런드는 40대에 접어들자 인기가 시들면서 술과 약물을 상용하다가 47세로 사망했다.

르네 젤위거는 영화에서 갈런드의 노래들을 직접 부르는데 노래와 함께 영육을 불사르는 연기를 한다. 영화 ‘콜드 마운틴’으로 골든글로브와 오스카 조연상을 탄 바 있는 젤위거는 지난 12월 9일 발표된 골든글로브상 후보에서 여우주연상(드라마 부문) 후보로 선정됐고, 11일 발표된 배우조합상(SAG) 여우주연상 후보에도 올랐다. 내년 1월에 발표될 오스카상 후보에서도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

- 영화에서 주디 갈런드는 영화사 사장과 담당 직원으로부터 이미지 유지를 위해 몸매도 가꾸고 먹는 것도 자제하라고 시달림을 받는데 당신도 배우로서 그런 경험이 있나. “할리우드는 배우의 모습이 대중의 토론 대상이 되는 곳이니만큼 어느 정도 그런 주문을 받는 것이 사실이다. 주디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모두들 그가 ‘오즈의 마법사’에 나왔던 1939년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그것을 생애 마지막까지 가지고 가기를 바랐다. 마릴린 먼로를 비롯해 과거 영화사들은 배우를 자기들 마음에 맞게 만들어 하나의 상품처럼 팔아먹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때에 비해 많이 나아진 편이다. 난 생각 외로 그런 주문을 심각하게 받진 않았다.”

- 음악은 당신의 삶에 있어 어떤 역할을 하는가. “난 음악을 많이 들으면서 무언가를 대변하는 곡들을 여럿 수집하기도 했다. 영화를 찍을 때 보통 내가 고른 레코드를 갖고 간다. 그래서 후에 그 노래를 들으면서 내 과거의 작품을 회상하기도 한다. 또 그것이 나의 앞으로의 영화를 위한 분위기 조성을 돕기도 한다.”

- 특별히 무언가를 돌이켜보게 하는 곡이라도 있나. “비틀스가 내겐 매우 중요하다. 또 톰 페티를 사랑한다. 애벗 브라더스의 시와 음악은 무언가를 내게 얘기해준다. 그리고 브루스 웨인라이트의 곡과 가사는 나를 깊이 감동시키는데 사람들이 주디 갈런드의 노래를 들을 때 느끼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난 지금 말한 이들보다 훨씬 더 많은 가수들의 노래들을 갖고 있다.”

- 당신도 주디와 같이 연기에 대해 강한 정열을 가지고 있나. “난 대중 앞에서 공연을 한 주디와 달리 배우로서 소규모의 사람들과 접촉하면서 작업하기 때문에 그와는 경우가 조금 다르다. 내가 타고난 연기자인지는 모르겠지만 연기가 내게 매우 중요하다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그것은 축복받은 내 삶의 큰 부분임에 틀림없다. 연기는 감독과 촬영감독 등과 공동으로 하는 작업으로 삶에 무언가를 가져다주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 주디로 변신하기가 얼마나 힘들었는가. “분장사와 의상 담당자들의 공로가 지대하다. 내가 과거에 나온 영화들과는 확연히 다른 색다른 경험이었다. 모든 것은 공동 작업에 의해 잘 성사됐다고 말하고 싶다. 노래 리허설을 할 때 피아노 반주자와 작곡가가 늘 함께하면서 항상 역동적인 분위기에서 활동했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분위기여서 생기 있게 역을 준비할 수 있었다. 온 얼굴을 뜯어고친 분장을 다 마치고 주디가 되어 거울을 보면 아주 행복했다. 실제의 나 자신과 거리가 멀어질수록 역에 충실할 수 있기 때문에 달라진 얼굴을 보고 크게 만족했다. 그러나 촬영이 끝나고 분장을 지울 땐 정말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루퍼트 굴드 감독은 내게 중요한 것은 분장보다 감정이라면서 분장이 그것을 표현하는 데 지장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분장이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주디를 이해하는 탐구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 분장하는 데 얼마나 걸렸는가. “때론 더 걸릴 때도 있었지만 보통 2시간 정도였다. 내가 할 수 있는데도 콘택트렌즈까지 담당자가 와서 끼워줬다. 렌즈를 끼워주는 사람의 손이 마치 운동선수의 그것처럼 커 겁이 나기도 했다.”

- 관객으로 나온 엑스트라 앞에서 노래 부른 경험은 어땠나. “일주일간 200여명의 엑스트라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힘든 작업이었다. 생각할 여유라곤 없었다. 그냥 해야 한다라는 각오로 달려들었다. 그 장면을 찍으면서 나와 엑스트라들은 친구가 되어 서로가 주디를 기억하면서 대화를 나눴다. 우린 협조자로서 그 장면에 기여했다. 많은 사람들이 주디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어 그 장면 촬영은 마치 주디에 대한 애정의 표시와도 같은 것이었다.”

영화 ‘주디’의 한 장면.
영화 ‘주디’의 한 장면.

- 주디가 부른 ‘섬웨어 오버 더 레인보우’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것은 우리의 어린 시절과 관계가 있어 향수를 느끼게 만든다. 다 큰 사람들은 그 노래를 들으면 모두 자신들의 꿈이 어찌 되었나 하고 궁금해 할 것이다. 소녀 도로시가 부른 그 노래는 아직 개척하지 못한 당신의 미래에 관한 것이요, 동경과 기대의 아름다움에 관한 얘기다. 역경을 거친 주디 갈런드의 희망과 행복에 대한 기대를 잘 나타내주는 노래라고 본다.”

- 당신은 키나 체구가 작았던 주디보다는 큰 사람인데 그런 주디를 연기하기에 어떤 기술을 발휘했나. “난 주디가 내적으로 강력한 사람이어서 한번도 작은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난 그저 주디만이 가진 독특한 연기 언어에 적응하려고 했을 뿐이다. 개인으로서의 주디와 대중이 보는 주디와의 간극에서 고뇌한 그에게 가깝게 다가가려고 노력했다.”

- 주디의 음성 묘사는 어떻게 했는가. “정말로 어려웠다. 그의 노래를 통해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 하지 않아야 할 것을 배운 셈이다. 추운 사운드 스테이지에서 그의 노래 ‘맨 후 갓 어웨이’를 28번이나 부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맹렬한 연습 후 다음 날 그 곡을 녹음했다.”

- 보통 때도 노래를 즐기는가. “내 개들에게 물어야 할 질문이다. 그들은 매일 내 피아노 곁으로 와 나와 함께 하루에 두 곡씩 노래 공부를 한다. 그들은 각기 자기들이 좋아하는 곡들이 있다. 어떤 곡을 치면 싫다는 반응을 보낸다. 그러나 즐거운 일이다. 우린 가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노래를 부르면서 기쁨에 젖는다.”

- 어떤 노래를 부르는가. “요즘 노래와 옛날 노래들을 함께 배우려고 한다. 내가 즐겨 부르는 곡은 페티와 루퍼스의 노래이다. 또 어렸을 때 좋아하던 몇 곡이 있다. 어렸을 때 들은 그 노래들의 가수들은 내게 큰 영감을 준 사람들이다.”

- 얼마 전 50세가 된 소감은. “그저 좋을 뿐이다. 아직 난 아이처럼 느낀다. 이제부터 모든 것이 다 새것일 뿐이다. 아주 흥분된다.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다. 새로 태어나 삶의 새 장으로 들어가 거기에 무엇이 있는지를 찾아볼 생각을 하면 스릴이 느껴진다.”

- 주디는 47세 때 영화계에 의해 삶이 파괴됐는데 50세인 당신은 그런 경우를 어떻게 피해 나갈 수 있었는가. “그때와 지금과는 경우가 다르다. 우리 세대는 과거보다 자주권을 강하게 행사하면서 우리의 생애를 뜻대로 진행해 나갈 수가 있다. 불편한 점이 있으면 당당히 얘기할 수도 있고 하기 싫으면 거절할 수도 있다. 주디 땐 그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특히 여배우들의 경우는 더 했을 것이다. 그리고 난 주디와 달리 약물을 가까이해 본 적이 없다. 난 감정적으로 위험한 지경에 처하면 약물이 아니라 친구와 가족들에게 의지한다.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위기를 벗어나는데 주디는 그러기가 어려웠던 것으로 안다.”

- 주디 갈런드의 노래를 직접 부르기로 결정된 뒤 어떤 각오를 했나.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를 전연 몰랐다. 할 각오는 했으나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알 수가 없었다. 도대체 우리가 어떤 업적을 이루어낼지 알 길이 없었다. 너무 지나치게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면서 주디의 노래 스타일을 공부하는 학생이 되어 나를 열고 그의 소리와 몸동작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했을 뿐이다. 나쁜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몸을 지나치게 비틀어대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의 노래하는 모습을 연구하기 위해 유튜브를 샅샅이 뒤졌다. 주디의 전기와 자서전과 그의 공연을 기록한 영상뿐 아니라 그의 목소리가 담긴 테이프도 무수히 들었다. 내 노래의 녹음이 모두 끝나고 나니 주디가 몹시 그리웠다.”

박흥진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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