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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587호] 2019.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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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산타클로스의 진짜 고향 독일 뮌스터의 크리스마스

▲ 동화 같은 뮌스터의 크리스마스 마켓. photo 뮌스터시
12월의 어느 날 독일 북서부의 작은 마을 쉐핑헨(Schppingen)에서 첫눈을 맞았다. 독일인 친구 부부에게 저녁 초대를 받은 날이었다. 웬걸, 독일인이라고 모두가 정리정돈하고 살진 않는구나. 가지런히 단정하게 가꾼 이웃집 정원과는 아주 딴판이었던 부부의 잡초밭처럼 와일드한 정원을 보고 웃음이 좀처럼 그치지 않았다.
   
   저녁 먹고 와인을 마시는데 누군가 밖에서 문을 두드린다. 뜻밖에도 산타클로스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도, 크리스마스도 아닌데 산타가 웬일이람? 가만 보니 내가 아는 산타클로스가 아니다. 빨간색 망토를 두른 건 비슷한데 십자가가 새겨진 길쭉한 오각형 모자를 쓰고 기다란 지팡이를 들고 있다. 알고 보니 ‘성 니콜라스(Saint Nicholas)’ 대주교다. 우리가 산타클로스로 알고 있는 그를 독일에선 성 니콜라스라고 부른다. 매년 12월 6일 선물을 들고 아이들을 찾아오는 성 니콜라스의 축일이 네덜란드를 거쳐 미국으로 전파되면서 산타클로스로 변했다. 내가 친구 부부네 간 날이 바로 12월 6일이었다. 450년 전쯤에 처음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고 크리스마스 마켓이란 유럽의 전통을 만든 이들이 독일인이다.
   
   
▲ 뮌스터 중심가에는 벽을 맞댄 48개의 박공지붕 건물이 늘어섰다.

   얼굴이 검은 산타클로스 하인들
   
   내가 만난 성 니콜라스는 미국 산타클로스와 달리 루돌프 사슴이 아니라 두 하인과 함께 왔다. 하인은 커다란 선물 바구니를 팔꿈치에 꼈다. 독일 산타는 선물뿐만 아니라 나쁜 아이에게 벌도 주는데 벌을 주는 건 하인 루프레히트(Knecht Ruprecht)의 역할이다. 다행히 성 니콜라스는 착하지 않은 어른인 나를 벌 주는 대신 산타 모양의 진저 브레드 ‘레프 쿠헨(Lebkuchen)’과 사탕을 한 주먹 주고 사라졌지만 이들이 처음 들어왔을 때 난 소스라치게 놀랐다. 맙소사, 하인들 피부색이 검다. 하인들이 걸친 망토마저 검은색이다. 어쩌면 이리 센스가 없을까. 영국이나 미국이라면 속으로야 어떻게 생각하건 산타클로스 하인들 얼굴을 시커멓게 칠하는 일이 가능할까. 독일인의 이중성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산타클로스 하인의 검은 피부색 때문에 깜짝 놀라긴 했지만 한편 독일의 크리스마스는 아주 순수하다. 소박하고 단순하다고 할까. 독일에서 오래 유학생활을 한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독일 크리스마스는 말 그대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죠. 추운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떨면서 마시던 글루바인(Glhwein)이 그립네요. 글루바인은 떨면서 마셔야 제맛이거든요.”
   
   
▲ 뮌스터는 흔히 자전거의 도시라 불린다.

   예쁜 비스킷 같은 도시
   
   쉐핑헨에서 인근 도시인 뮌스터(Mnster)로 가는 버스를 타니 운전기사가 다짜고짜 쿠키를 건넨다. 크리스마스 쿠키다. 무슨 차비가 10유로나 하냐고 투덜대던 참이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자전거를 타다 농가의 자동판매기에서 구입한 열 개짜리 달걀 꾸러미 안에도 산타클로스 모양의 손톱만 한 초콜릿이 들어있었다. 오래전 태국 방콕의 카오산로드에서 만난 독일 친구가 뮌스터에 산다고 했다. 월급 많이 주는 회사를 다녔지만 의미를 찾지 못해 회사를 그만두고 아시아에서 1년7개월째 여행 중인 친구였다. 그녀 때문에 알게 된 뮌스터는 ‘학생들의 도시’라는 수식 때문인지 막연히 젊고 희망찬 도시로 기억에 남았다.
   
   뮌스터의 첫인상을 한마디로 하면 예쁘다. 한자동맹의 도시로 1200년의 역사를 가졌으며 2차 세계대전 때 크게 파괴되기도 했지만 종종 ‘독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꼽힌다. 단지 예쁜 도시일 뿐만 아니라 어느 조사에서 ‘세상에서 삶의 질이 가장 높은 도시’로 뽑힌 적도 있다. 크리스마스 마켓 또한 예쁜 도시의 풍경과 어우러지며 독일에서도 특히나 유명하다. 처음 뮌스터 도심을 걸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여긴 예쁜 비스킷 같은 도시잖아.’ 과자로 지은 예쁜 건물 같은 모양의 ‘동화 같은 도심’ 프린치팔 마르크트(Prinzipal markt)에는 48개의 박공지붕 건물이 늘어섰다. 정면을 삼각형 모양으로 만든 페디먼트 건물들은 대성당보다 더 눈길을 끄는 뮌스터의 심벌이다. 최근 뮌스터는 ‘코스모폴리탄시티’란 별명을 가졌다. 여러 나라에서 온 유학생이 많거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때문에 붙여진 별명 같은데 겨울인 탓인지 정작 거리에선 아시안 관광객을 좀체 볼 수 없었다.
   
   
▲ 뮌스터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인근의 네덜란드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명소다. photo 뮌스터시

   독일 최대의 자전거 도시
   
   뮌스터에서 비스킷 다음으로 인상적인 건 자전거다. 어딜 가나 자전거가 많다. 많아도 엄청나게 많다. 뮌스터 중앙역에는 3500대의 자전거를 주차할 수 있는 거치대가 있다. 독일 최대 규모다. 매일 10만명이 자전거를 타고 뮌스터의 모든 곳을 달린다. 뮌스터가 흔히 자전거의 도시, 학생들의 도시라 불리는 이유다. 나는 뮌스터에 가면 그 유명한 크리스마스 마켓 구경뿐만 아니라 자전거도 꼭 타고 싶었다. 뮌스터에서 자전거는 차와 같다. 차와 똑같이 신호를 받고 멈춘다. 보행자 전용도로에 들어갔다 경찰에게 잡히면 15유로의 벌금을 낸다. 도망이라도 가면 경찰도 자전거를 타고 쫓아온다. 뮌스터에서 친구와 약속을 하며 “20분 거리야” 하고 말하면, 자전거로 20분 거리라는 말이다. 나를 잠시 안내해준 가이드 아네트는 이렇게 말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뮌스터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요.”
   
   오늘도 마찬가지다. 비가 내리건 말건 도로를 달리는 자전거는 많다. 어제, 그제에 이어 오늘도 아침부터 부슬비와 싸라기눈이 휘날리고 날은 차갑다. 오늘도 자전거는 다 탔구나, 포기하고 나서야 비가 멈췄다. 드디어 자전거를 타고 뮌스터를 달린다. 금방 다시 내리기 시작한 가랑비를 고스란히 맞고, 공기는 차가워도 기분은 좋다. 뮌스터에선 자전거를 타며 비를 맞는 게 자연스럽다. 뜬금없이 이런 생각이 들었다. 20대에 이럴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니, 30대에라도 이럴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뮌스터에서 자전거 타며 공부하고 살아 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니 근데 이 사람들은 춥지도 않나. 영하 같은 날씨에 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장갑도 끼지 않은 채 자전거를 탄다. 털모자나 머플러가 없지 않을 텐데 새빨개진 볼을 다 드러내고 금발을 날리며 달리는 여자도 눈에 띈다. 나도 한국에선 자전거 좀 타는데 여기선 나만 추운가. 뮌스터 구시가지를 감싸듯 나무 사이로 펼쳐진 4.5㎞ 거리의 자전거 도로를 달리다 보면 종종 그 유명한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작품과 만난다. 도시의 풍경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예술이다. 단번에 눈에 띄기도 하고, 알아채지 못하고 그 앞을 지나기도 한다. 아네트는 “이렇게 자전거를 타며 보는 뮌스터가 진짜 뮌스터”라고 했다. 12월에 뮌스터를 여행하는 법은 간단하다. 낮에는 자전거를 타고 밤에는 크리스마스 마켓에 간다.
   
   놀랍게도 뮌스터 크리스마스 또한 좀 심심하고 싱겁다. 오히려 이렇게 싱거운 게 어이없어 웃음이 나왔다.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다른 이들과 어깨를 부딪치고 깜짝 놀랐다. 독일에서 다른 사람과 어깨를 부딪치다니! 이 또한 독일 사람들에겐 크리스마스에나 즐길 수 있는 특별한 이벤트인지도 모르겠다. 뮌스터에서 열린 다섯 곳의 크리스마스 마켓을 전부 가봐도 비슷하다. 그런데 뮌스터의 이 심심하고 싱거운 크리스마스 마켓을 보러 네덜란드 관광객들도 찾아온다. 네덜란드라고 크리스마스 마켓이 없을까. 하지만 독일 크리스마스 마켓이 오리지널은 오리지널인가 보다.
   
   독일 사람이나 네덜란드 사람이나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하는 일은 똑같다. 별거 아닌 물건을 파는, 별거 없는 크리스마스 마켓을 거닐고, ‘브러스트’라 불리는 소시지와 감자튀김을 먹고 글루바인을 마신다. 날이 차갑건 말건 큰 모자를 뒤집어쓰고, 눈이나 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길거리에 서서 손을 비비며 군것질을 한다. 이게 1년 내내 기다려온 크리스마스의 가장 큰 이벤트다. 그런데도 뭐가 그리 신나는지 다들 시끌벅적하다.
   
   크리스마스 마켓만 벗어나면 뮌스터는 조용하다. 아파트 발코니 테이블에 크리스마스 화관을 올려놓고 창가에 산타 인형을 매달아놓거나, 미술관에 갔더니 입구에서 성 니콜라스가 나를 맞는 정도가 크리스마스 이벤트다. 역시나 소박하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마켓을 구경하는 걸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2016년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베를린의 크리스마스 마켓에 트럭 한 대가 돌진해 수십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던 탓이다. 그 후 유사한 테러를 우려한 경찰은 뮌스터의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통하는 모든 길 입구를 트럭과 경찰차로 막았고, 중무장한 경찰과 들뜬 인파는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교차했다. 예쁘지만 한편 무서운 풍경이다.
   
   2017년 12월 뮌스터 크리스마스 마켓에 있을 때는 몰랐다. 그로부터 4개월 후 내가 글루바인을 마시며 발을 동동 떨었던 키펜케얼 광장에서 트럭 테러가 있을 거라는 걸. 범인이 누구이건 트럭 한 대만 있으면 되니 테러가 너무 쉬워졌다. 테러와는 아무 상관없을 것 같았던 작고 예쁜 이 도시에 테러의 상처가 새겨졌다.
   
   
▲ 한밤중에 성 니콜라스가 흑인 하인들과 크리스마스 선물을 들고 찾아왔다.

   홀로코스트 기념물 길바닥의 황동판
   
   크리스마스 마켓을 빼곤 한적한 뮌스터 거리를 걷다 길바닥에서 발견한 게 있다. 납작돌만 한 황동판이다. 나치에 의해 희생된 유대인, 집시, 동성애자의 추모 기념물이다. 희생자의 이름, 출생연도 등이 새겨진 황동판이 그가 살았던 집 앞에 납작돌처럼 놓였다. 아티스트 군터 뎀니히(Gunter Demnig)의 ‘걸림돌(Stolpersteine)’이란 프로젝트다. 여기 살던 누군가는 비극적으로 뮌스터를 떠나야 했고 한참 세월이 흐른 후 찾아온 이방인은 그의 이름을 한번 읊조릴 뿐이다. 독일을 여행하다 보면 곳곳에서 다양한 홀로코스트 기념물을 본다. 하지만 과거를 반성하는 독일인들 모습에 흑인을 성 니콜라스의 하인으로 여기는 무지한 독일인들, 내가 만났던 소박하고 친절한 독일인들 모습이 뒤엉킨다. 독일인이 어떤 사람인지 난 여전히 잘 모르겠다.
   
   뮌스터에 머무는 동안 LWL(The LWL-Museum fr Kunst und Kultur) 미술관을 3일 연이어 찾았다. LWL은 베를린이나 프랑크푸르트의 그 어느 미술관보다도 근사하다. 그 안을 거닐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황홀하다. 때로 인적 없는 LWL은 새하얀 신전 같다. 숭고하고 순결한 미술관의 정신, 나를 위로하는 미술관의 마음이 느껴진다.
   
   LWL에서 또 다른 독일인 오토 딕스(Otto Dix)를 만났다. 화가다. 언젠가 베를린에서 아무리 찾아도 그의 그림을 볼 수 없었는데 생각지도 않은 뮌스터에서 그의 그림을 만났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아름답고 우아한 고전주의의 전통을 근간에서 흔들었다. 그는 팔다리가 잘린 상이군인, 매춘부, 히틀러, 해골 등을 그렸다. 종종 잔인하고 적나라했다. 자신의 부모마저 불쌍하고 가련하게 그렸다. 늘 허둥대고 집착하고 가련하게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 같다. LWL에서 본 오토 딕스의 그림에선 친구 크리겔이 아내를 그리고 있다. 그런데 남편 모습이 기이하다. 남편은 캔버스를 움켜쥐고 눈을 부릅뜬 채 그림을 그린다. 반면 아내는 무표정한 모습으로 왼손을 내밀어 남편 얼굴을 밀어내는 것 같다. 내 눈에 크리겔이 오토 딕스 자신처럼 보인다.
   
   오토 딕스는 실체를 그리고 싶은 화가다. 미화 같은 건 없이 언제나 적나라한 감정을 드러낸다. 좋은 그림은 감정을 건드린다. 설명할 순 없지만 뭉클 와닿는 그 순간 우리는 어느 그림을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도 예술이다. 나는 오토 딕스의 그림에서 터져나오는 적나라한, 하지만 인간 실체에 가까운 감정에 끌린다. 오토 딕스를 보면 독일인을 보고 소박하다느니 귀엽다느니 운운했던 게 무색하다.
   
   무슨 영문인지 미술관에서도 거리에서도 여전히 아시안 관광객은 전혀 볼 수 없다. 뮌스터에 아시안 관광객은 나 혼자뿐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크리스마스 마켓이 문을 닫자 거리는 적요하다. 명색이 밤문화 중심지라는 크레티바카이(Kreativkai waterfront) 거리도 얼핏 봐선 차분하다. 어느 새 뮌스터는 익숙한 듯 낯설다. 뮌스터 강변의 하펜베그(Hafenweg) 17번지 아파트로 돌아갈 시간이다. 한겨울, 독일의 밤은 길다. 독일의 12월은 크리스마스와 함께 흐르고, 이방인의 시간은 글루바인 한 잔과 흘러간다. 이불 펴고 잠자리에 들 때 같은데 아직 시간이 이르다. 자꾸 창밖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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