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3일 스타트업계의 빅이슈가 터졌다. 국내 배달앱 1위인 배달의민족(배민)이 ‘요기요’를 운영하는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H)에 인수됐다는 뉴스였다. DH는 배민의 기업가치를 40억달러(4조7500억원)로 평가했다. 2010년 자본금 3000만원에 시작해 불과 9년 만에 15만배 이상의 성장을 이뤄낸 것이다. 배민 이외에도 1조원 가치가 넘는 국내 유니콘기업은 올해만 5개가 늘어 11개에 이른다. 올해 스타트업계는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유니크에서 유니콘으로!’ 지난 11월 22일 열린 에스피오오엔지(SPOONG·소풍)의 데모데이(demoday·초기 스타트업의 사업설명회)가 내건 주제이다. 소풍은 2008년 이재웅 쏘카 대표가 국내 최초로 설립한 소셜벤처 전문 엑셀러레이터이다. 다양한 사회문제에 대해 솔루션을 만들어내는 초기 벤처기업의 성장을 돕고 있다. 이날 데모데이에는 ‘미래의 유니콘’으로 기대되는 소셜벤처 9곳이 발표에 나섰고 600여명이 참석해 이들을 지켜봤다.

10여년 전 소풍이 만들어졌을 때만 해도 소셜벤처라는 단어는 물론 ‘소셜’을 ‘벤처’로 해결할 수 있다는 상상을 하는 사람도 드물었다. 이날 무대에 선 이재웅 쏘카 대표는 “지금 있는 시스템을 깨는 것이 혁신이고, 혁신이 일어나야 지속가능한 사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9월 체인지메이커들의 성지로 불리는 서울 성수동 헤이그라운드에서는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렸다. 소셜벤처, 사회적기업, 비영리단체, 임팩트투자사 등 체인지메이커 생태계의 대표주자들이 모여 국내 최초의 소셜 임팩트 생태계 연대인 임팩트 얼라이언스(Impact Alliance)의 공식출범을 알렸다. 임팩트 얼라이언스는 정책 제안 등 소셜 임팩트 업계를 대표하는 공식 채널 역할로 96곳이 참여했다. 초대 이사장에 선임된 허재형 루트임팩트 대표는 “사회적 담론을 가져가는 하나의 그릇이 되겠다”고 밝혔다. 임팩트 얼라이언스의 출현은 지금까지 체인지메이커 생태계가 만들어지는 단계였다면, 이제 그 다음 단계를 고민하는 지점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지난 9월 성수동에는 체인지메이커들을 위한 또 다른 거점이 생겼다. 체인지메이커 발굴, 육성을 내건 사단법인 루트임팩트가 헤이그라운드 2호점(서울숲점)을 열었다. 2017년 문을 연 1호점은 우리 사회에 ‘체인지메이커’라는 화두를 던지고 생태계를 만드는 데 구심점 역할을 했다. 입주가 진행 중인 2호점에서 만난 허재형 루트임팩트 대표는 “2호점은 사회적기업, 벤처 등의 언어에 갇히지 않고 생태계의 외연을 확장하고 질적으로도 성장시키기 위한 역할을 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특히 지역사회와 연계한 혁신센터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공유오피스에 입주한 기업들의 시너지를 만들어낼 커뮤니티 공간과 함께 2호점에서 가장 주목할 공간은 3층에 위치한 교육 플랫폼이다. 그동안 ‘임팩트 베이스캠프’를 통해 대학생을 대상으로 체인지메이커 교육을 해오던 것을 중·고등학생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곳에서는 중·고등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교육 실험이 기다리고 있다. 허 대표는 “생태계의 연령대도 확장되고 확산의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다양한 포럼이나 세미나 등에서 ‘사회적 가치’를 대화의 키워드로 삼고 하나의 섹터로 넣기 시작했다. 의미있는 시그널인 것 같다”고 말했다. 체인지메이커들을 불러 모으고, 커뮤니티를 만들고, 시너지를 만들어낸 헤이그라운드 모델은 글로벌로도 확장된다. 내년 9월 미국 뉴욕의 낙후지역인 브롱스에 미국판 헤이그라운드를 오픈하는 데 이어 태국 방콕에도 들어설 계획이다.

체인지메이커 생태계는 확장되고 있다

체인지메이커 생태계에서 최근 몇 달 새 일어난 일들이다. 주간조선은 올해 연중기획으로 ‘나는 체인지메이커다’라는 연재를 격주로 진행했다. 체인지메이커(changemaker)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세상에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내고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변화의 크기는 문제가 아니다. 영리든 비영리든, 각자의 방식으로 불편하고 불합리한 문제들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소셜벤처, 사회적기업가, 임팩트투자자는 물론 인플루언서, 가치소비자, 자원봉사자도 체인지메이커가 될 수 있다.

변호사를 그만두고 기업가정신을 가르치는 스타트업을 창업한 장영화 OEC(Open Entship Center) 대표는 “정보가 공유되고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툴이 다양해지면서 조직이 아니라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다. 그런 스몰 자이언트들을 주목하고 그들이 기 안 죽고 일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우리 사회의 책무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체인지메이커다’가 1년 동안 소개한 이들은 21명이다. 일하는 여성의 성장을 지원하는 멤버십 커뮤니티 헤이조이스 이나리 대표(2546호)를 시작으로 스타트업들의 키다리 아저씨 송은강 캡스톤파트너스 대표(2586호)까지, 이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변화의 씨앗을 뿌리고 건강한 가치를 확산시키고 있었다.

사단법인 ‘세상을 품은 아이들’의 명성진 목사는 세상이 버린 비행청소년들을 거두어 우리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든든한 언덕이 돼주고 있었다. 그는 “재범률을 낮추고 아이들을 건강한 일꾼으로 만들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올해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한 김종기 푸른나무재단 이사장은 학교 울타리 안에 숨어 있던 ‘학교폭력’이라는 단어를 우리 사회 전면으로 끄집어낸 주인공이다. 이경림 세움 대표는 수감자 자녀들에게 씌워진 편견의 굴레를 벗기고 당당하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수인 에누마 대표는 아프리카 오지서도 아이들이 혼자 공부할 수 있는 교육앱으로 인류 문맹퇴치 해결사가 됐다. 엄정순 작가는 매년 시각장애 아이들을 데리고 태국으로 코끼리 탐험을 떠난다. 코끼리를 만지고 그들이 마음으로 본 코끼리를 미술작품으로 만들어내는 ‘코끼리 만지기’ 프로젝트를 10년째 진행하고 있다.

변화의 씨앗을 뿌리다

이들이 뿌린 씨앗은 곳곳에서 싹이 트고 꽃을 피우고 있다. 명성진 목사에게는 체인지메이커에 소개가 된 이후 기적 같은 일이 생겼다. 한 독지가가 경기도 포천에 있는 학교 부지를 ‘세상을 품은 아이들’에 기부했다. 1만7000여㎡(5000여평)의 부지에 두 동의 학교 건물과 부속건물이 있는 땅을 내놓은 것이다. 위기의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꿈꾸던 독지가는 “이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는 곳에 기증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면서 아무 조건 없이 명의를 넘겨줬다고 한다.

지역청소년들이 도시로 떠나지 않고 지역에서 먹고살 수 있는 길을 찾아나선 권기효 멘토리 대표는 정선군과 내년부터 5년 동안 본격적인 판을 벌이기로 했다. 청소년주식회사를 만들어 다양한 실험을 할 계획이다. 권기효 대표는 “지역에서 가능성을 경험한 아이들이 은퇴 후 찾아오는 고향이 아니라 20~30대에 도전하기 위해 오는 곳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스타트업계의 고민해결사에서 덴마크식 자유학교 실험에 나선 양석원씨는 인생의 쉼표 찍기 ‘갭이어(gap year)’를 우리 사회에 이식시키고 있다. ‘갭이어’는 피로한 한국 사회의 중요한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폐교에서 책농사 짓는 고창의 해리포터 이대건 ‘책마을해리’ 촌장은 올해 부쩍 바빠졌다. 전국 곳곳 콘퍼런스, 세미나 등에 불려다니며 누구나 작가가 되는 ‘책마을해리’의 DNA를 전파하고 있다.

체인지메이커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한 축에는 혁신가들을 찾아내고 지원하는 글로벌 비영리조직 아쇼카한국이 있다. 아쇼카한국의 큰 자산은 서명숙, 정혜신, 김종기 등 13명의 아쇼카한국펠로들이다. 체인지메이커를 찾는 체인지메이커 이혜영 아쇼카한국 대표는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흐름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다. 대기업 등 비즈니스 섹터에서 가장 먼저 움직이고 있다. 지금 체인지메이커 생태계를 경험한 대학생들이 3~5년 후에 어떤 세상을 만들어낼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1~2월에는 2명의 펠로가 또 탄생할 예정이다. 그는 “혁신적인 솔루션이나 아이디어들이 확산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단축하고 장애물에 부딪혔을 때 대응하는 방법을 찾는 것은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펠로들의 공동 전선을 구축해 그 모델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체인지메이커다’ 연재를 시작한 것은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사람들을 통해 우리 사회의 변화를 들여다보고, 그 변화의 DNA를 확산시키기 위해서였다. 연재를 통해 누군가의 생각이 바뀌고, 삶이 바뀌고, 우리 사회가 조금이나마 좋은 방향으로 움직였다면 지면의 용도는 다했다. 문제를 만드는 것도 사람이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사람이다. 21명의 체인지메이커들은 ‘사람이 희망이다’란 평범한 진실을 다시 확인시켜주었다.

황은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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