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주간조선 로고

상단주메뉴

  • [여행]  태초의 바다, 사그레스
  • kakao 플러스친구facebooktwiteryoutube
  • 검색
  1. 문화/생활
[2589호] 2019.12.30
관련 연재물

[여행]태초의 바다, 사그레스

▲ 600년 전 엔히크 왕자는 유럽 땅끝에 자리한 사그레스 해변의 벼랑에 서서 수평선 너머 다른 세상을 꿈꿨다.
당신이 아는 바다는 어떤 모습일까? 당신에게 바다를 그려 보라 하면 어떻게 그릴까? 하늘과 바다 사이 수평선을 긋고, 바다는 파랗게 칠하고, 구름은 하얗게 그리려나? 지난 겨울 내가 본 바다는 완전히 달랐다. 바다를 바라보면서 장엄하다느니 엄숙하다느니 하면 거짓말처럼 들리려나? 포르투갈 남서부 알가르브(Algarve) 지방에서 본 바다는 그랬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 나는 매일 바다만 바라봤다.
   
   리스본에서 알가르브의 작은 도시, 라구스(Lagos)로 오게 된 건 우연이었다. 포르투갈 북부의 포르토로 가려던 참이었다. 일기예보를 보니 일주일 내내 비가 온다 해서 무작정 남쪽으로 방향을 바꿨을 때 눈에 띈 곳이 파루(Faro)였다. 어차피 리스본에서 스페인으로 돌아가려면 버스를 10시간 넘게 타야 하는데 국경도시에서 하룻밤 쉬다 가면 좋겠거니 싶었다. 그런데 지도를 보니 파루에서 바다가 좀 떨어졌다. 결국 파루에서 서쪽으로 90㎞ 떨어진 라구스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이때만 해도 포르투갈을 떠나면 스페인과 터키를 경유해 조지아로 가려던 참이었는데 뜻하지 않게 여정은 알가르브에서 멈춰버렸다. 라구스행 버스를 탈 때만 해도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다.
   
   엉뚱하게 들리겠지만, 장엄하고 엄숙한 바다 때문이다. 결국 나는 알가르브에서 바다만 바라보며 17일을 지냈다. 대개 탁 트인 벼랑 위에서 바다를 바라봤다. 그 바다는 예쁘지 않다. 오히려 격렬하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린다. 그 바다를 더 보겠다고 그라나다도, 트빌리시도 다 포기하고 이틀에서 닷새, 다시 일주일, 또 일주일 하는 식으로 라구스 체류를 연장하고 또 연장했다. 때로 여행이 나를 이끈다.
   
   알가르브 지방의 라구스는 대서양을 면전에 둔 작은 타운이다. 포르투갈로 넘어오기 전 스페인 세비야에서는 한국 관광객과 끊임없이 마주쳤는데 라구스에선 한국 사람을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타운을 벗어나 주변을 둘러보고 싶어 400㏄ 스쿠터를 빌렸다. 그때부터 매일 무작정 대서양 서쪽 끝을 향해 달렸다. 때로는 다짜고짜 길에서 벗어나 구글맵에도 나오지 않는 길을 따라 달렸다. 한번은 스쿠터에서 내려 일몰 직전 바다를 향해 무작정 걸었다. 멀리서 보면 평온하지만 다가갈수록 바다의 모습은 뒤바뀐다. 파도의 하얀 포말이 쓰나미처럼 보일 만큼 거대하다. 물거품 너머 붉은 해가 서서히 지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이게 끝이 아니다. 이 바다는 해가 진 후에도 매순간 형색을 달리한다. 처음에는 어안이 막혔고 그 다음에는 뭔가 세상 끝의 풍광을 보는 것 같았다. 알가르브에 오기 전에는 바다가, 파도가 이렇게 여러 감정을 전하는지 몰랐다. 대개는 미동도 하지 않을 거라 여긴 바다가 내 심장을 방망이질한다.
   
   
01 알가르브 지방은 한겨울에도 따뜻한 휴양지다.
02 유럽 대륙은 사그레스에 이르러 대서양 바닷속으로 사라진다.
03 모터홈으로 장기간 여행 중인 그레이 노매드들이 한겨울의 따뜻한 햇볕을 즐기고 있다.
04 사그레스는 유럽 대륙 서남단 지점의 이름이자 포르투갈 국민맥주의 이름이다.

   이건 바다가 아니다
   
   라구스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사그레스(Sagres)가 있다. 유럽 대륙의 끄트머리 같은 곳이다. 유럽이란 땅은 여기서 서서히 바닷속으로 가라앉듯 사라진다. 사그레스 벼랑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더 장엄하다. 창공에서 구름을 뚫고 떨어지는 빛으로 바다는 찬란하다. 때로는 기나긴 벼랑의 실루엣이 바다를 신비롭게 만든다. 라구스에서 사그레스까지 40~50㎞가 아니라 4000~5000㎞를 달려온 것 같다. 그때 사그레스 바다는 세상 끝에 있는 바다다. 세상 끝의 바다를 마주하고 벼랑 위에 선 것 같다. 발밑은 낭떠러지다. 숨이 탁 막힌다. 파도 아닌 바다 전체가 벼랑 아래서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무섭다. 나도 모르는 새 뒷걸음질 치고 만다. 어느새 기이한 세상에 와버렸다. 그런데 누군가는 저 바다로 서핑보드를 들고 들어간다. 밀려오는 파도를 향해 뛰어들어 헤엄쳐 나아간다. 파도에 휩싸이고 밀려나면서도 바다로 나아가는 그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봤다.
   
   사그레스에서 다시 북쪽의 세인트 빈센트 곶(Cape Saint-Vincent)으로 달리면 또 다른 바다를 만난다. 그 바다는 눈부시게 빛나는 은빛 평원이다. 바다를 보고 싶은데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빛난다. 이 바다는 살아 움직이는 거대한 생물체다. 때로 사납고 때로 부드러우며, 때로 완만하고 때로 격하다. 밀려오는 동시에 밀려간다. 이 바다의 파도 소리는 포르투갈의 소리다. 포르투갈 민요 ‘파두(fado)’보다 더 깊숙이 별안간에 나를 후벼 판다. 끝을 가늠할 수 없는 파도가 가지런히 밀려올 때마다 지구가 넘실거리고, 지구가 빛난다. 바다는 차가운 남극 같고 거대한 설원 같다. 나는 바다를 보고 싶어 여기까지 왔는데 바다는 나를 뒷걸음치게 한다. 나를 울컥하게 하고 나를 탄식하게 한다. 이건 바다가 아니다. 수평선을 가득 채울 만큼 장중하게 밀려드는 건 파도가 아니다. 태초의 세상, 태초의 바다라는 지구다. 단순한 바다가 아니라 내가 사는 별, 지구의 모습이다. 이 바다는 지구가 보여주는 거대하고 장엄한 쇼다. 한번 보기만 한다면 누구라도 그리워하고 위로받을 바다, 알가르브의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그저 바다가 아니라 지구가 아름답게 느껴진다.
   
   
▲ 알제주르(Aljezur) 인근 아모레이라(Praia da Amoreira) 해변은 유럽에서 손꼽히는 휴양지다.

   모험 또는 항해의 중심지
   
   겨울이라고 해도 한낮에는 18도. 포르투갈에는 영하라는 게 없다. 사계절의 구분이란 게 별 의미 없을 만큼 대체로 쾌청하고 온화하다. 한낮의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맥주를 한 병 시켰다. 대개 따뜻하고 건조한 날씨 때문인지 맑고 가벼운 맛의 맥주 이름은 ‘사그레스’. 어제 내가 지도를 보고 서남단으로 무작정 달려 다다른 곳의 이름이다. 포르투갈 비행기를 타면 나온다는 사그레스 맥주는 ‘수퍼 복(Super Bock)’과 함께 포르투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라거(lager)다. 사그레스를 얘기할 때 빼먹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엔히크(Henrique) 왕자다. 포르투갈의 대항해 시대를 열었다는 엔히크 왕자의 전진기지가 바로 사그레스에 있었다. 1415년 엔히크 왕자는 아프리카 세우타를 정복하고 1419년 알가르브 총독 자리에 올랐다. 첫째가 아니었기에 왕위에 오르진 못했지만 그는 ‘왕보다 더 위대한 왕자’로 역사에 남았다. 리스본 테주 강변에 세워진 거대한 ‘발견기념비’의 가장 선두에 서 있는 이가 엔히크 왕자다.
   
   사그레스는 유럽의 끄트머리에 자리한 포르투갈에서도 가장 서남단 지점이다. 엔히크 왕자가 살아 있을 때 사그레스 바다는 ‘암흑의 세상’으로 여겨졌다. “저 선을 넘으면 돌아오지 못해.” 모두가 이렇게 말했지만 어떤 이들은 암흑의 세상으로 나아갔다. 고작 범선에 몸을 싣고 바람에 의지해 바다로 나아갔다. 장장 600년 전의 일이다. 아무리 나아가도 몇 달간 육지를 보지 못할 수 있다. 길이라도 잃어버리면 물과 빵은 금세 동이 나버렸다. 항해 때마다 빈번히 괴혈병이 도져 선원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뼈까지 썩게 하고 온몸에 곰팡이를 피게 하는 질병이 괴혈병이었으니 출항한 자의 절반만 살아 돌아와도 성공이었다. 1519년에서 1522년까지 최초의 세계 일주에 성공했다는 포르투갈 출신의 마젤란은 아메리카를 지나 아시아를 가로지르다 필리핀 막탄에서 전사했다. 살아 돌아오지 못한 이가 그뿐이랴. 마젤란과 함께 출항한 240명 중 살아 돌아온 이는 겨우 18명에 불과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이해가 안 된다. 수백 년 전 고작 30m도 안되는 범선을 타고 어떻게 대서양을 가로질러 희망봉에 이르고 더 나아가 인도에, 일본 나가사키에 다다랐단 말인가? 그들은 도대체 바다에 무슨 꿈을 그렸을까?
   
   유럽의 변방, 포르투갈 사람들에게 바다란 숙명적으로 넘어서야 할 거대한 장벽이었다. 내가 사그레스에서 만난 바다는 직선으로 된 수평선이 아닌 경계를 알 수 없는 ‘수평면’을 가졌다. 알가르브의 바다를 보고 또 보다 보니 ‘수평선’이란 말이 틀렸다는 걸 알겠다. 바다는 수평선이란 말처럼 간단히 분리되지 않는다. 600년 전 기약 없는 항해를 단행한 이들이 본 것은 수평선이 아니라 수평면이었는지도 모른다. 바다로 나아간 이들은 수평선 너머가 절벽이 아니란 걸, 지구가 평평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항해자들은 수평선 너머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지 않고 수평면 너머로 나아갔다. 1414년 북아프리카의 세우타(Ceuta), 1488년에는 희망봉, 1500년에는 브라질, 1510년에는 인도, 1543년에는 심지어 일본 나가사키에 도착했다. 항해가 성공적으로 이어지자 지중해 중심의 중세라는 세상은 대서양 중심의 근대 세상으로 급변했다. 8세기 이래 이슬람의 지배를 받으며 숨죽이고 살았던 이베리아반도의 포르투갈이 지중해를 넘어 세계의 패권국으로 혜성처럼 등장했다. 15~16세기 엔히크 왕자로 인해 탄생한 ‘해가 지지 않는 해양제국, 포르투갈’은 인류사에 손꼽힐 도전과 모험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역사는 모순투성이다. 포르투갈 역사에서 가장 찬란한 시대를 개척해간 세기의 모험가들은 위대했지만 잔인했다. 모험뿐만 아니라 숱한 악행을 저질렀다. 황금처럼 여겨진 후추 한 움큼은 흑인 노예 몇 명과 교환됐다. 모험가들의 부와 영광은 원주민을 약탈하면서 얻어졌다. 엔히크 왕자가 그렸던 인도 항로 개척이란 꿈을 후대에 이룬 ‘바스코 다 가마’는 포르투갈인들의 영웅이지만 인도인들에겐 ‘악마’였다. 포르투갈인들의 ‘동방 무역’은 인도 사람들에게 ‘동방 착취’였다. 위대한 역사는 동시에 잔인하고 비정했다.
   
   
▲ 리스본 테주강변에 있는 ‘발견기념비’ 맨앞에 선 이는 대항해 시대를 선도한 엔히크 왕자다.

   ‘그레이 노매드’란 꿈
   
   한번은 사그레스 일대를 둘러보다 자전거 여행자를 만났다. 여자다. 스쿠터로 그녀 옆을 빠르게 지나치며 손을 흔들었다. 자전거에 모든 짐을 싣고 하는 자전거 여행은 그야말로 극한의 여행이다. 어쩌면 그녀는 한 달 또는 그 이상 이런 여정을 이어오는지도 모른다. 손이라도 흔들어 그녀를 응원하고 싶다. 나를 본 그녀도 웃으며 손을 흔든다.
   
   사그레스 일대를 둘러보다 보면 자전거보다 훨씬 자주 ‘모터홈(motor home)’과 마주친다. 침대뿐만 아니라 주방과 화장실까지 다 갖춘 캠핑카다. 다들 기막힌 풍광 속에 그림처럼 머문다. 거의 모두 나이 지긋한 이들이다. 이렇게 노년을 보낼 수도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멀찍이서 바라보기만 해도 이들의 한가로움이 전해진다. 다들 자기 모터홈 앞에 캠핑의자를 펼쳐놓고 앉아 있다. 누군가는 홀로, 어떤 이들은 함께 앉아 햇볕을 즐긴다. 검은색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여자도 있다. 지금은 겨울인데도 말이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테이블 위에는 와인 한 병 없다. 다들 그저 몸을 가볍게 드러내고 2월의 햇볕을 즐길 뿐이다. 거의 자전거가 실려 있는데 한결같이 두 대다. 희한하다. 왜 싱글 모터홈 여행자는 없지? 간혹 스쿠터까지 실은 모터홈도 있다. 차량은 들어올 수 없는 외진 벼랑 위까지 스쿠터를 타고 온 노인 커플을 보고 어디서 왔을까 싶었는데 그들도 모터홈 여행자들이다. 은퇴하고 오랜 시간 여행하는 ‘그레이 노매드(Grey nomad)’들이다. 모터홈이건 카라반이건 텐트에서 하는 캠핑이건 일상을 벗어나 모험 중인 노년들이다. 나도 저들처럼 살면 좋겠다. 10년쯤 후면 나도 완연한 ‘그레이 노매드’가 되겠구나. 그러고 보면 이번 여정은 그레이 노매드처럼 흘러왔다. 스쿠터가 아니라 모터홈이라면 지금 내 여행이 그레이 노매드와 다를 바 없겠다. 그저 달렸고 그저 바다를 보러 갔다. 머리가 완전히 그레이 컬러는 아니고 지긋한 나이가 되었어도 계획도 없이, 일정도 없이, 목적지도 확실치 않은 여정을 이어왔다. 그레이 노매드 예행연습이라도 하는 것처럼 불확실성으로 내 여행을 끌어왔다.
   
   나는 사람들에게 언젠가 알가르브의 바다에 꼭 가보라고 하고 싶다. 이곳 바다는 겨울에도 따스하니 북적대는 여름보다는 겨울이 좋겠다. 파루공항에 내려 기차를 타도 되고, 리스본에서 4시간 반 동안 버스를 타도 된다. 여기 오기만 하면 당신 가슴은 탁 트이는 정도가 아니라 먹먹해지고 뻐근하면서도 평안해질 것이다.
   
   라구스를 떠나기 전날, 대구 요리인 바칼라우로 포르투갈에서의 마지막 저녁식사를 마치고, 토트백에 물통 하나 넣고, 집에서 좀 떨어진 해변의 낭떠러지 폰타 다 피에다드 등대(Farol da Ponta da Piedade)로 산책을 갔다. 라구스에선 낭떠러지 산책이 일상이다. 문득 바람이 몰아치고 비까지 떨어지기 시작한다. 하늘과 바다를 분간하지 못할 만큼 날은 어두워지고, 교향곡 같은 파도 소리가 지축을 흔들며 밀려온다. 알가르브를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못 말릴 바다다. 사는 게 힘들 때 그곳을 떠올려 위로받을 곳을 고향이라 한다면 이 바다가 내 고향이다. 유럽 대륙의 서쪽 끝에 고향이 생겼다. 새해가 되니 더 그리운 북대서양의 고향이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