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5일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영화 ‘기생충’으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 ⓒphoto 뉴시스
지난 1월 5일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영화 ‘기생충’으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 ⓒphoto 뉴시스

봉준호가 마침내 해냈다. 봉준호가 감독한 ‘기생충(Parasite)’이 지난 1월 5일 열린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탔다. 한국영화가 골든글로브상을 타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기생충’은 지난해 칸영화제 대상 수상에 이어 골든글로브상을 받은 여세를 몰아 2월 9일에 열리는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최우수 국제극영화상(종전 외국어영화상)을 탈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독설가’ 코미디언 리키 제르베스의 사회로 LA 비벌리힐스의 비벌리힐튼호텔에서 열린 이날 시상식에서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수상작으로 ‘기생충’이 거명되자 필자가 자리를 함께한 봉준호 감독 테이블에서는 일제히 환성이 터져 나왔다. 필자는 이날 골든글로브 시상식을 주관하는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 회원으로 봉 감독과 자리를 함께했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던 ‘기생충’의 출연진 송강호, 조여정, 이정은을 비롯해 봉 감독과 함께 영화 각본을 쓴 한진원 및 투자배급사인 CJ그룹 이미경 부회장, 그리고 영화제작사인 바른손이앤에이의 곽신애 대표가 전부 기립해 무대로 나가는 봉 감독을 박수갈채로 축하했다. 봉 감독은 통역을 대동, 무대에 올라 “1인치 정도 되는 자막의 장벽을 뛰어넘으면 여러분은 더 많은 훌륭한 영화들을 만날 수 있다”면서 “저명한 국제적 영화인들과 함께 후보에 오른 것만 해도 영광이다. 우리는 단 하나의 언어인 영화를 쓴다”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봉 감독의 소감을 듣는 송강호와 이정은 그리고 한진원 등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필자의 콧등도 시큰해졌다. 소감이 다소 짧다고 생각했는데, 봉 감독도 트로피를 들고 테이블로 돌아와 “소감이 너무 짧았나. 막상 무대에 올라가니 너무 떨려서”라며 미소를 지었다. 그가 들고 온 트로피를 송강호와 조여정 그리고 이정은 등이 돌아가면서 들고 감격에 찬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다 함께 샴페인 잔을 들고 수상을 축하했다.

이날 한국인으로서 또 하나 경사스러운 일은 한국인 어머니(사망)와 중국인 아버지를 둔 코미디언 아콰피나가 ‘더 페어웰’로 여우주연상(코미디·뮤지컬 부문)을 탄 것이다. 아시안계가 영화 부문에서 여우주연상을 탄 것은 골든글로브 사상 이번이 처음이다.

봉준호의 인기는 할리우드에서도 대단했다. 식이 시작되기 전부터 봉 감독 테이블로 여러 영화인들이 찾아와 악수를 나누며 ‘기생충’을 칭찬했다. 봉 감독 바로 옆 테이블에는 ‘기생충’과 함께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른 스페인의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작품 ‘페인 앤 글로리’)이 앉아 있었는데 둘은 라이벌이면서도 악수와 포옹을 나누었다. 봉 감독은 연신 손에 든 손선풍기로 얼굴에 바람을 쐬고 있었는데 필자가 궁금한 눈으로 지켜보자 “어려서부터 몸에서 열이 많이 나 그렇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체열 때문인지, 아니면 외국어영화상뿐 아니라 감독과 각본상 후보에도 오른 것에 대한 기대와 긴장 때문인지 궁금해졌다.

시상식이 있기 전만 해도 전문가들은 ‘기생충’이 외국어영화상은 물론이요 감독상도 탈 가능성이 크다고 예견했었다. 그래서 필자가 봉 감독에게 “오늘 상 두 개 탄다고 하던데”라고 말했더니 봉 감독은 “선생님이 미리 누설하는 거죠”라면서 “선생님도 우리에게 표를 찍었어요?”라고 물었다. 투표로 골든글로브상을 결정하는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 회원으로서 물론 필자는 ‘기생충’과 봉 감독에게 표를 던졌다.

그러나 감독상은 1차 대전 서사극 ‘1917’의 샘 멘데스가 탔다. 이 영화는 최우수작품상(드라마 부문)도 탔다. 이 영화와 감독이 상을 탄 것은 이날 있은 다소 놀랄 일 중 하나였다. 각본상은 옛 할리우드에 바치는 헌사인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의 각본을 쓰고 감독도 한 쿠엔틴 타란티노가 받았다. 이 영화는 최우수작품상(코미디·뮤지컬 부문)과 남우조연상(브래드 피트)도 타 이날 최다인 3개 부문 수상작이 됐다. 골든글로브는 작품과 남녀 주연상 부문에 한해 ‘드라마’와 ‘코미디·뮤지컬’ 두 부문으로 나누어 시상한다.

남우주연상은 ‘조커’의 호아킨 피닉스(드라마 부문)와 ‘로켓맨’의 태런 에저턴(코미디·뮤지컬 부문)이 탔고, 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은 ‘주디’의 르네 젤위거가 탔다. 골든글로브는 TV 부문에 대해서도 시상한다.

‘기생충’은 비평가들의 격찬을 받으며 LA 영화비평가협회에 의해서도 최우수작품과 감독 및 남우조연상(송강호) 수상작으로 뽑혔고 전미비평가협회에 의해서도 최우수작품과 각본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기생충’은 호평뿐 아니라 흥행에서도 크게 성공,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1억2000만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이런 기록은 외국어영화로선 매우 드문 일이다.

봉 감독과 필자는 그의 영화 ‘마더’로부터 시작해 그 후 여러 차례 만나 이젠 꽤 낯이 익은 사이가 됐다. 필자는 어느덧 그를 ‘봉 형’으로 부르고, 봉 감독은 필자를 ‘박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레드카펫에 도착한 그는 필자를 보자 “여기서 마침내 만나네요”라며 반갑게 포옹을 했다.

봉 감독도 할리우드 파워는 어쩌지 못하겠다는 듯이 앞 테이블에 앉은 영국 여배우 올리비아 콜먼을 보더니 “나 올리비아 콜먼 너무 좋아하는데”라며 한마디 했다. 그리고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와 브래드 피트가 함께 있는 것을 발견하자 “그림 좋네. 죽여 주네”라고 감탄을 하는가 하면 배우인 아내 아네트 베닝을 동반한 워런 비티를 보자 “워런 비티도 왔네”라며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지난 1월 5일 골든글로브 시상식장에서 포토 타임을 갖고 있는 ‘기생충’ 출연진. 왼쪽부터 이정은, 조여정, 송강호. ⓒphoto 뉴시스
지난 1월 5일 골든글로브 시상식장에서 포토 타임을 갖고 있는 ‘기생충’ 출연진. 왼쪽부터 이정은, 조여정, 송강호. ⓒphoto 뉴시스

오는 4월 다음 작품 결정

봉 감독이 감독과 각본상을 타지 못하자 우리 테이블에는 다소 아쉽다는 표정들이 감돌았다. 필자가 한진원에게 “물론 상을 못 타 아쉽긴 하나 한국 작품이 처음으로 외국어영화상을 탄 것만 해도 큰 경사”라며 “앞으로 오스카상이 남았으니 오늘은 이로써 만족하자”고 말하자 고개를 끄덕였다. 각본과 감독상 발표가 있기 전만 해도 다소 긴장했던 봉 감독과 일행은 발표가 끝나자 “야, 이젠 긴장을 풀어도 되겠네”라며 샴페인 잔을 들었다.

식 간간이 있는 휴게시간에 우리 테이블로 배우 웨슬리 스나입스가 찾아와 한국어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축하합니다”라며 큰 미소를 지었다. 그의 부인이 한국인이어서 한국어 발음이 꽤 정확했다. 이날 작품, 감독 및 남우조연상 등 여러 부문에서 후보에 오른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갱영화 ‘아이리시맨’이 단 한 개의 상도 못 받은 것이 큰 화젯거리였다. 봉 감독은 “내가 2019년에 본 영화들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이 ‘아이리시맨’인데 나는 스콜세지가 감독상을 탈 줄 알았다”며 자기가 상을 못 탄 것보다 더 아쉬워하는 듯했다. ‘아이리시맨’은 넷플릭스 작품으로 넷플릭스는 이날 ‘아이리시맨’과 함께 ‘두 교황’과 ‘결혼 이야기’ 등으로 모두 17개 부문에서 수상 후보에 올랐으나 ‘결혼 이야기’에서 이혼전문 여자 변호사로 나온 로라 던이 조연상을 받는 것에 그쳤다.

봉 감독에게 다음 영화에 관해 물어보자 그는 “지금 영어 영화와 한국 영화 2편을 쓰고 있는데 4월 중 어느 것을 먼저 만들지 결정이 날 것 같다”고 대답했다. 마지막 순서인 작품상(드라마 부문) 발표가 있기 전 봉 감독과 일행은 기자회견을 위해 자리를 떴다. 봉 감독과는 재회를 다짐하며 헤어졌다.

박흥진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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