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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행]  화산과 난파선의 섬에서 황홀과 죽음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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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593호] 2020.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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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화산과 난파선의 섬에서 황홀과 죽음을 보다

▲ 발리 북동부 아메드 마을은 손꼽히는 다이빙·스노클링 포인트다.
자바섬이야 익숙해도 ‘자바커피’는 낯설다. 인도네시아 커피 중 가장 유명한 건 ‘루왁(Luwak)’일 텐데 ‘버킷리스트’ 같은 영화 덕분에 유명세가 생겼을 뿐이란 생각에 꼭 마셔봐야지 하는 마음은 그닥 안 들었다. 커피를 제법 좋아하지만 뭐 사향고양이 배설물 속 커피까지 마셔야 하나 싶었다. 그런데 서울 중구의 어느 호텔에서 루왁커피 한 잔에 5만5000원을 받는다는 얘길 듣고 마음이 홀라당 바뀌었다.
   
   발리의 쿠타(Kuta) 변두리를 걸을 때다. “커어피~! 베스트 커어피~!” 담배파이프를 손에 든 남자가 소리쳤다. “커피~!” 연이어 노랗게 머리를 염색한 여자도 이리 오라고 손짓한다. 여러 나라에서 온갖 호객을 당해봤지만 나 참, 커피 호객은 처음이다. 베스트 커피라고? 호기심이 동해 두 사람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남자에게 추천 메뉴를 물으니 루왁 아닌 자바커피를 꼽는다. 카페를 둘러보는데 남자가 커피통을 내민다. 향을 맡아 보았다. 아, 믿을 수가 없다. 와인처럼 향긋하다. 나도 모르게 커피콩 하나를 입안에 넣고 씹었다.
   
   “오! 당신, 커피를 아는군요!”
   
   내 표정을 본 남자가 의기양양하다. 잠시 후 그는 작은 병에 담긴 커피와 엄지손가락보다 조금 큰 유리잔을 내왔다. ‘쑨도로 하니(Sinduro Sumbing honey)’란 커피다. 유리잔에 커피를 따라 홀짝거리니 코냑이라도 마시는 것 같다. 남자가 말했다.
   
   “클럽에서 술을 마시면 대화란 없죠. 커피를 마시면 대화를 하죠.”
   
   남자는 동부 자바에서, 노란머리 여자는 서부 자바에서 왔다.
   
   “발리와 달리 자바에선 여자가 담배를 핀다는 건 상상조차 못 해요!” 여자가 말했다. 결혼에는 관심이 없고 여권에 스탬프를 가득 찍고 싶다고 했다. 자바커피를 “와인 같다”고 자랑하는 남자 말을 듣다 보니 자바의 커피 플랜테이션에 가보고 싶어졌다. 남자와 여자를 만난 곳은 쿠타의 커피하우스 ‘코피 진(KOPI ZEEN)’. 정작 여기서 마신 루왁은 특별하지 않았다.
   
   
   코냑 같은 커피를 만나다
   
   다음 날 쿠타 옆 사누르(Sanur)의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는데 여자가 묻는다.
   
   “전부 아라비카로 드릴까요? 아니면 로부스타를 조금 섞어 드릴까요?”
   
   커피를 주문하면서 이런 질문을 받기는 처음이다. 간단히 말하면 커피종의 양대 산맥이 아라비카와 로부스타다. 한국에서 흔히 마시는 아메리카노는 아라비카로 만들고, 믹스커피는 값싼 로부스타로 만든다. 아라비카로 달라고 하면서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로부스타를 섞는다고요?
   
   “이상하죠? 로부스타는 대개 텁텁한 흙맛이니까요. 하지만 어떤 로부스타는 아라비카보다 비싸고, 산미를 잡아주기도 해요.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신맛을 안 좋아하거든요.”
   
   이렇게 시작된 수다는, 그녀가 아예 내 앞으로 자리를 옮겨 앉으며 이어졌다. 그녀는 대학 졸업 후 커피업계에서 14년간 일하다 그만두었다. 그녀 말대로라면 은퇴했지만 1년 쉬고 다시 카페를 열었다. ‘스페셜티 커피’ 운운하며 자기들 커피만이 최고라고 하거나 커피에 설탕이라도 넣으면 혀부터 차는 이들이 발리에도 많은가 보다. 그녀가 명랑하게 말했다.
   
   “나는 설탕을 두 가지나 주잖아요! 흰 설탕과 코코넛 설탕. 코코넛 설탕은 단맛이 덜해요. 참, 나는 로부스타가 좀 들어간 게 좋아요. 그냥 드릴 테니 한번 마셔보세요.”
   
   ‘커피 월드’에 대한 농담이 통한 걸까. 그녀에게 ‘큐그레이더(커피감별사)’가 아니냐는 소리를 다 들었다. 그녀의 외모, 스타일만 보면 영락없이 한국 사람이나 일본 사람 같고, 우리가 주고받은 얘기만 보면 ‘신들의 섬’ 발리가 아닌 홍대 상수동쯤에 있는 카페에 온 것 같다. 자바의 수라바야 출신인 그녀는 힌두도, 무슬림도 아닌 가톨릭 신자다. 손등에 새긴 작은 십자가 문신이 인상적이다. 공항 면세점에 가면 나비가 그려진 커피를 판다는데, 그녀 가족이 운영하는 회사라고 한다. 여자를 만난 곳은 사누르의 심플리 브루 로스터스(Simply Brew Coffee Roasters).
   
   
▲ (위) 이른 아침 활화산 아궁이 온전히 제 모습을 드러냈다. (아래) 뚤람벤의 미국 난파선 리버티호 포인트.

   활화산과 쓰나미 사이
   
   “귀중품은 따로 챙겨놓고 자요.”
   
   쿠타를 떠나 발리 북부의 작은 마을 아메드(Amed)에 도착한 첫날, 숙소 주인이 말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한밤중에 급히 대피라도 해야 할지 모른다는 얘기다. 숙소가 정면으로 아궁산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 많고 탈 많은 아궁(Agung)화산 말이다. 게다가 내가 여기 오기 6개월 전 롬복(Lombok)에서 강진이 있었던 탓에 쓰나미마저 우려되는 상황이다. 어쩌다 보니 화산 분화에다 쓰나미까지 염두에 두어야 하는 상황이 돼버렸다. 무모한 일을 벌인 게 아니다. 단지 다른 곳에선 아궁을 볼 수 없어 아메드까지 왔을 뿐이다. “아궁을 보고 싶으면 아메드로 가세요.” 사누르 숙소 주인의 말을 따른 탓이다.
   
   남들이 뭐라건 나로선 꿈속에서도 보고 싶었던 게 활화산이다. 내게 화산은, 지구가 살아 있다는 증거 같다. 내 눈으로 화산의 시뻘건 용암을 보고 싶었다. 지구의 껍질 속을 들여다보려는 무모한 욕망이다. 그 속을 들여다보지 못하면 먼발치에서라도 보고 싶다. 이리 단순한 이유로 아메드까지 왔지만 2017년 11월 아궁산 분화 때 아궁산에 살던 주민들이 아메드로 피난 왔고, 롬복 지진 때는 아메드에도 쓰나미 경보가 발령됐다는 사실은 여기 와서야 알았다. 난감해하는 내게 주인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날 저희 숙소 손님들도 한밤중에 산 위로 피신했다가 새벽 5시쯤 돌아왔어요.”
   
   오늘밤 내가 묵을 숙소가 바다에서 600m밖에 안 떨어진 탓이다. 나 참, 앞으론 화산 분화, 뒤로는 쓰나미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문제는 쓰나미다. 10㎞ 이상 떨어진 아궁 분화는 어떻게든 피할 것 같지만 쓰나미는 아무 방책이 없다. 아메드의 첫날 밤, 몸은 피곤한데 단잠에 빠져들 순 없었다. 둘째 날도 마찬가지다. 첫날은 새벽 6시 반, 둘째 날은 5시 반에 잠에서 깼다. 이틀 연이어 가위 눌린 밤이었다. 둘째 날은 눈을 뜨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바깥에서 기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바람 소리인가? 아궁이 내는 소리인가? 나지막하게 우는 소리 같다. 오싹했지만 커튼을 걷고 테라스로 나왔다. 무거웠던 눈꺼풀에 파르르 힘이 갔다. 이른 새벽의 태양빛을 머금은 아궁이 눈앞에 온몸을 드러냈다. 아궁과의 첫 만남이다. 60년 전 일이라 해도 수천의 목숨을 앗아갔다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아름답고 평화롭다.
   
   어제 저녁 어스름하지만 구름 속에서라도 아궁을 봤으니 내일 바로 이곳을 떠나야지 했던 마음이 순식간에 사그라든다. 첫 만남은 길지 않았다. 겨우 20여분 후 아궁은 두꺼운 구름 속으로 홀연히 사라지고 ‘꼬끼오 꼬오~ 꼬끼오 꼬오~’ 닭들이 울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아메드를 떠나지 못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어느새 아궁과 가까이서 지내는 게 익숙해졌다. 쓰나미도 잊었다. 며칠간 바라본 아궁은 평온한 절대자의 모습 같다. 며칠 지내보니 알겠다. 아궁이 온전히 제 모습을 보여주는 건 이른 새벽 잠깐뿐이다. 한낮에 제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하는 건 아무 소용없다. 하루는 새벽 6시에 아궁을 보러 숙소를 나섰다. 20분쯤 달려 전날 우연히 찾은 언덕에 도착했다. 아메드 인근에서 아궁산 전체를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구릉이다. 산정에선 희미하지만 허연 연기가 피어오른다. 역시나 아궁은 살아 있는 게다. 무섭고 신비롭다. 아궁산 아래 푸른 나무들이 낯설다. 용암의 잿더미 속에서 다시 태어난 생명들이다. 좀 더 아궁에 다가가고 싶어 산길이 막힐 때까지 달렸다. 가장 가까이 아궁에 다가간 순간이다.
   
   “산에 올라가면 안 돼요.” 어디선가 나타난 남자가 손짓으로 말을 잇는다. “어디서 왔나요?” “이거 맛볼래요?” 남자가 발밑에 커다란 잭프루트(jackfruit)를 가리킨다. 그는 잭프루트를 반으로 쪼개, 속을 끄집어내고, 껍질을 깨끗이 걷어낸 후 내게 내민다. 한 개, 두 개, 세 개, 네 개를 연거푸 받아먹었다. 아궁산 주변을 둘러보면서 가장 놀란 건 아궁산 언저리에 많은 사람들이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화산이 분화하면 집을 떠났다 다시 돌아온다. 활화산과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다. 이들은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웃는다. 나를 보면 싱긋 웃어주자고 약속이라도 한 듯.
   
   
▲ (좌) 발리의 석문, 찬디 분따르(Candi Bentar)는 삶과 죽음의 공존을 상징한다. (우) 발리의 신상은 인간 세상과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다.

   바다의 신전
   
   아메드에서 지낸 지 6일째다. 그동안 찍은 사진을 살펴보다 피식 웃었다. 그제 찍은 사진은 세 장뿐이다. 어제도 세 장, 오늘은 좀 많아 일곱 장. 사진에 관심이 없는 게 아니다. 지난 며칠 사진은 안중에도 없었던 탓이다. 바다 때문이다. 아궁 다음으로 아메드 바다에 홀려 있었다. 밤에 침대에 누우면 현기증이라도 난 듯 어지러웠다. 낮에 한 스노클링 때문이다. 여기까지 온 건 오로지 아궁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4일간 나는 매일 새벽에는 아궁을 보고 낮에는 바다로 들어갔다. 여기 와서야 알았다. 아메드와 인근의 뚤람벤(Tulamben)은 발리에서도 손꼽히는 다이빙·스노클링 포인트라는 것을. 아메드의 스노클링은 편안했다. 숙소에서 걸어서 3분이면 들어갔던 바닷속은 예쁘고 화려하고 다채로웠다. 스노클링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보고 싶은 걸 다 보여준다. 뚤람벤은 완전히 다르다. 뚤람벤에 들어가지 않았으면 나는 발리 북부를 그저 예쁜 바다로 기억했을 것이다. 뚤람벤 스노클링은 겨우 물 위에 떠 있으면서도 다른 세상으로 잠수하는 것 같다. 심해 다이빙도 아니고 구명조끼 입고 둥둥 떠서 고작 스노클링을 하면서 말이다.
   
   뚤람벤 바닷속에서 본 걸 어떻게 말로 할까.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뚤람벤 바닷속에는 2차 세계대전 때 일본군 어뢰를 맞고 침몰한 미국의 ‘리버티호’가 있다. 처음에는 난파선을 본다는 사실에 흥분했다. 하지만 해변에서 고작 100m 정도 거리의 리버티호에 다가갔을 때 내가 본 건 다른 세상이다. 끝을 알 수 없는 어스레한 물속에서 원색으로 빛나는 수많은 존재들로 가득한 세상, 단 한순간도 상상해 보지 못한 기이한 세상, 무거운 교향곡 같은 세상, 장엄하고 정숙한 세상, 수많은 물고기가 바다 신전의 제사장으로 강림한 세상, 사람이 한낱 미물로 여겨지는 세상, 한번 빠져들면 다시 헤어나오지 못할 듯 내 몸을 빨아들이는 세상, 무서워도 뒷걸음질조차 칠 수 없는 세상, 뭔가를 견디지 못해 나도 모르게 소리치게 하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 빠져 두어 시간을 리버티호 부근에서 맴돌았다. 보고 또 봐도 털끝만큼도 질리지 않았다. 뚤람벤은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오기 힘든 구렁이다. 뚤람벤 해변에는 자갈이 많았다. 전혀 아름답지 않은 해변 저편에 이런 기이한 세상이 있다.
   
   
   나는 어디에 있었던 걸까
   
   아메드 인근 바다에는 2차 세계대전 때 격침된 일본 난파선 포인트도 있다. 날은 흐렸지만 전날 미국 난파선 포인트에서 황홀경에 빠졌던 터라 이번에는 또 어떤 광경을 보게 될까 한껏 들떴다. 막상 바다로 들어가니 물살이 거세다. 내 몸이 내 맘대로 안 움직인다. 몸이 해변에서 자꾸 멀어지는 것 같다. 무섭다. 스노클링 기어를 빌려주는 남자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물살이 세니 조심해요.” 바다에는 나뿐이다. 어디론가 휩쓸려 가버려도 누구도 알지 못하고 누구도 찾지 못할 거란 공포가 스멀스멀 밀려든다. 거센 물결보다 더 무서운 건 바다의 음산한 기운이다. 이제껏 발리 바다에서 춥다고 느낀 적은 없는데 여긴 좀 한기가 든다. 처음에는 해가 구름에 가렸기 때문이라 생각했는데, 아니다. 물이 갑자기 차갑고 갑자기 미지근하다. 괴상하고 불쾌한 기운이다. 나를 꼼짝 못하게 할 거대한 기운이 내 몸을 찐득한 타액으로 날름거리는 것 같다. 나는 육지를 향해 허둥대며 필사적으로 헤엄치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 어디에 있었던 걸까. 숙소로 돌아오는 길, 오랫동안 오슬오슬 떨었다.
   
   얼마 후 롬복 옆 길리섬에서 스노클링 중 실종됐다는 열아홉 살, 스물두 살의 한국 아이들 기사를 보았다. 스노클링은 한가로운 물놀이가 아닐 수 있다. 바다라는 전혀 다른 세계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아메드 거리에 붙어 있던 젊은 백인 남자 사진이 생각난다. 그가 실종자라는 건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뿌므뜨란에서 바다에 들어갔다가 돌아오지 못했다는 또 다른 백인 남자도 떠오른다. 그는 스쿠버다이빙 강사였다. 몇 개월 전 발리에 왔을 때 일주일 정도 어디 가면 좋을까 하는 물음에 두말없이 롬복을 권한 이는 인도네시아에 오십 번도 더 와봤다는 네덜란드 여행사 사장 피터였다. 뜻하지 않은 사정이 생겨 롬복에 가지 못했을 뿐이다. 그 후 두 달도 안 돼 롬복에서 지진이 발생했다. 발리 북부의 바다에서 나는 황홀경과 죽음을 동시에 실감했다. 그 음산한 기운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고 싶지만 내가 다시 일본 난파선 포인트에 들어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멀리서 보면 그 바다는 늘 평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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