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마켓 사무실 입구에 설치된 모형.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당근마켓 사무실 입구에 설치된 모형.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중고물품 중개 아이디어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벤처기업이 있다. 당근마켓이다. 지난 1월 서울 강남역 근처 당근마켓 사무실을 찾았다. 당근마켓에 들어서면 직원과 방문자들을 위해 카페처럼 꾸며진 넓은 휴게 공간을 먼저 만나게 된다. 이 공간 좌우로 돌아가면 직원들의 실제 업무 공간인 사무실이 눈에 들어온다. 널찍한 개인 업무 공간과 입식 데스크 등 IT 벤처기업 특유의 자유로운 분위기가 드러난다.

당근마켓은 ‘당신의 근처에서 만나는 마켓’의 줄임말이다. 같은 동네에 사는 사람들, 또 일터 등 생활권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직접 만나 중고물품을 빠르게 사고팔 수 있도록 모바일을 통해 중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대표적인 동네 장사로 불리는 부동산 중개업소와 식당, 학원 등 지역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상대로 광고 영업을 해 수익을 올리고 있다.

창업자 김용현 대표와 김재현 대표 모두 ‘IT공룡’ 카카오 출신이다. 직장 동료로 만난 두 사람이 일을 하며 접한 카카오 사내 중고품 거래 온라인 게시판이 당근마켓의 사업 아이디어가 됐다. 두 사람은 2015년 7월 이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IT기업과 벤처기업들이 모인 판교에서 ‘판교장터’라는 모바일용 중고물품 중개 애플리케이션을 내놨다. 당근마켓의 시작이었다.

카카오 사내 중고 게시판 본떠 만들어

판교장터 초기, 판교 지역 기업들을 대상으로 이메일 인증을 거친 직장인들 사이에 가능했던 중고물품 중개와 거래가 입소문을 타고 주변으로 퍼졌다. 가성비 입소문에 판교 주변 아파트 주민들의 중고품 거래 사용 요청도 늘었다. 이렇게 판교 지역 직장인에서 주변 아파트 거주자들로 사업이 확장됐다. 초기 직장인 기반의 사업 모델이 지역 중고품 중개 사업으로 변신한 것이다. 판교장터는 2015년 10월 지금의 이름인 당근마켓으로 바뀌었다.

당근마켓이 운영하는 모바일 중고품 중개 애플리케이션은 2017년 10월 누적 다운로드 숫자가 100만건을 넘었다. 이후 2019년 2월 500만건, 같은 해 5월 600만건으로 급증했다. 당근마켓 최정윤 마케팅 팀장은 “현재는 1000만건을 넘었다”고 밝혔다. 방문자 증가 폭도 크다. 2016년 1월 10만명 정도이던 월간 방문자가 2018년 8월 100만명, 같은 해 12월 160만명에 도달했다. 2019년 2월에는 200만명을 돌파했고 7월에는 300만명을 넘어섰다. 당근마켓 최 팀장은 “최근 월 방문자는 450만명 정도”라고 했다.

당근마켓의 중고물품 거래액도 급증하고 있다. 최 팀장은 기자에게 “2017년 500억원에서 2018년 2000억원, 2019년 7000억원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매출액은 밝힐 수 없다고 했다. 2015년 7월 창업자 포함 3명이던 직원이 현재는 52명으로 늘었다. 신생 벤처기업의 이런 성장세에 업계는 물론 언론들의 관심도 함께 커지고 있다.

당근마켓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삼성물산과 네이버, 카카오를 거쳐 한국 IT시장의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인맥을 쌓아 온 김용현 대표와, 쇼핑정보 앱 서비스사 씽크리얼스를 창업해 카카오에 팔았던 김재현 대표가 만들었다. 두 사람의 전 직장과 업계 경험 등 이들의 배경이 대규모 외부 자본유치에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평도 있다.

실제 당근마켓은 2016년 12월 김용현·김재현 대표의 전 직장인 카카오가 운영하는 카카오벤처스(당시 케이큐브벤처스) 등 몇몇 벤처투자자들로부터 13억원을 유치했고, 2018년 5월 역시 카카오벤처스와 소프트뱅크벤처스 등에서 68억원을 지원받았다. 2019년 9월에는 알토스벤처스와 카카오벤처스, 소프트뱅크벤처스 등으로부터 또 400억원을 지원받았다. 현재 당근마켓의 외부 유치 자금규모는 480억원 정도다.

‘중고품·동네·인증’으로 소비자 공략

당근마켓이 시장에 안착한 핵심 비결은 중고품과 동네라는 두 개념이 절묘하게 소비자를 파고들었다는 점이다. 최근 몇 년간 소득증가율은 낮아지고 체감물가는 빠르게 올라가고 있다. 이런 시대에 중고품이지만 여전히 쓸 만한 물품을 저렴하게 살 수 있다는 ‘경제성’, 슬리퍼와 트레이닝복 차림만으로 상대방을 만나 거래할 수 있는 ‘지리적 근접성’이 사용자들의 ‘편의성’을 키웠다. 또 직거래를 통해 소포·택배·퀵서비스 같은 배송 수단을 생략하며 중고품 거래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가비용 부담을 낮춘 것도 주효했다.

같은 지역 사용자 간 거래라는 특성은 타 지역 사용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부촌이 형성된 동네에서 종종 저렴한 가격에 등장하는 중고 명품이 입소문을 타고 타 지역 사람들의 호기심과 구매욕을 자극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를 구매하기 위해 강남이나 서초 지역 당근마켓 사용자로 인증받은 지인에게 구매를 부탁하는 사례도 다수 발생하고 있다. 유아동 부모가 상대적으로 많이 거주하는 노원과 송파 잠실, 신도시 지역 등에서는 사용 기간이 짧아 사용 흔적이 적고 깨끗한 중고가의 다양한 유아동 용품들이 소개되고 있다.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유아동 부모들이 노원과 송파 잠실 사용자들에게 중고품 대리 구매를 부탁하는 사례도 많다. 이런 중고품 거래 품앗이 현상과 대리 구매, 입소문 마케팅이 당근마켓에 대한 관심을 키우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동네 인증을 통한 중고품 중개 구조가 사용자들의 호기심을 키우고, 이 호기심이 모바일 앱 다운로드 증가와 애플리케이션 내 중고품 검색 시간 확대, 검색 품목 증가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 효과는 당근마켓 애플리케이션 체류 시간을 늘리는 중요한 요인이다. 무엇보다 현재 당근마켓의 유일한 수익창구인 지역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을 상대로 한 ‘광고’ 영업과 사실상의 돈줄인 투자금 유치와 홍보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요인들이 상승 효과를 나타내며 창업 5년 만에 중고물품 시장의 강자로 부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빠르고 가파른 성장성에 가려 있을 뿐 리스크 요인도 상당하다.

당근마켓 사무실 모습.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당근마켓 사무실 모습.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사업 모델 독창성 떨어져

일단 당근마켓의 중고물품 중개와 지역·동네 기반 서비스가 독특하거나 독창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또 독보적인 기술 보유나 탁월한 개발 능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도 아니다. 지역·동네 단위 중고물품 거래, 판매자·구매자 간 직거래, 사용자 간 개인 메신저가 아닌 공개 게시판 사용 원칙, 사용자 인증 시스템 등은 사실 당근마켓 이전부터 국내외에서 제공돼 온 모델이자 온라인 서비스다.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이 제공하는 상당수 맘카페들과 중고 전문 카페, 지역 기반 카페 등 인터넷 카페들, 또 많은 기업들이 운영하고 있는 온라인 사내 장터와 중고 거래 게시판 등 당근마켓 등장 이전부터 사실상 동일한 형태의 중고품 거래 서비스가 존재해왔다. 김용현·김재현 두 대표조차 인터뷰 등을 통해 “카카오 사내장터를 보고 이 사업을 시작했다”고 밝힐 정도다. 당근마켓과 유사한 형태의 온라인 기반 중고물품 중개 기업들도 2000년대 초·중반부터 이미 국내외에 등장해온 게 사실이다.

당근마켓의 특징으로 알려진 지역·동네 기반 중개 거래와 인증 시스템 역시 사실 국내외에서 이미 다양한 형태로 접할 수 있다. 포털들은 물론 영국과 미국, 일본 등 해외에서는 2000년대 초·중반부터 지역·동네 기반 온라인 네트워크 서비스 기업들이 많이 등장했다. 특히 지역·동네 기반 생활 서비스에 중고품 중개·거래 기능이 있는 곳들도 상당수다. 중고품 중개 수준을 넘어 구인구직·부동산 중개·중고차 직거래 등 지역·동네 생활 플랫폼으로 이미 진화한 스타트업들 역시 상당히 많다. 2000년대 초 등장한 영국의 검트리(Gumtree), 2000년대 중반 선보인 미국의 넥스트도어(Nextdoor)가 대표적이다. 당근마켓의 중고품 중개 서비스 방식과 구성 등 사업 모델과 운영이 영국과 호주에서 성장 중인 검트리 등 다수의 해외 동네 생활 기반 플랫폼들과 상당히 유사한 것이 사실이다.

당근마켓이 수익모델로 구상 중인 당근마켓 내 ‘(지역 기반) 구인구직 서비스’와 ‘부동산 중개 서비스’ 역시 검트리 등 해외 지역·동네 기반 인터넷·모바일 네트워크 기업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사용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는 사업 모델이다. 당근마켓 관계자는 “향후 당근마켓을 ‘지역 생활 플랫폼’으로 확대할 것”이라고 했다. 사용자 간 지역 커뮤니티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을 구상 중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중고품 거래와 구인구직·부동산 중개를 넘어, 독서 등 취미모임을 함께 하거나 심지어 애완동물을 돌봐줄 이웃 찾기, 운동 파트너 구하기 등 이미 온라인을 활용한 지역·동네 기반 생활정보 플랫폼들 역시 넥스트도어 등 다양하게 등장한 상태다.

특히 이런 지역·동네 기반 생활정보 플랫폼을 통해 주로 동네 장사를 하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의 광고를 유치하고 수익을 올리는 사업 모델도 사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아니다. 냉정히 말해 이미 시장에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는 서비스들을 서로가 본떠 차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당근마켓 역시 그런 범주에 있는 벤처 중 하나다. 이 말은 진입장벽이 그만큼 낮은 시장이라는 의미다.

기존 모델 서로가 차용, 진입장벽 낮아

지난해 네이버의 일본 사업 기반인 라인이 당근마켓과 비슷한 콘셉트로 지역·동네 기반 중고물품 중개 서비스 애플리케이션을 베트남에서 내놓은 사례가 있다. 여기다가 사용자들 사이에서 고가 브랜드 위조품을 거래, 당근마켓에 등록한 중고품과 전혀 다른 중고품이 직거래 현장에서 판매되는 문제가 비일비재하게 불거지고 있다. 사용 불가능한 중고품을 교묘히 포장 판매하는 불량 중개와 거래 문제들도 최근 확산되고 있다. 당근마켓의 커지는 덩치만큼 사용자들의 불편과 불만 등 각종 문제들이 함께 증가하는 상황이다.

이런 요인들에도 불구하고 경제 침체와 체감물가 상승, 재활용 강조 등 중고·재생 아이디어 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중고나라, 번개장터 등과 함께 당근마켓은 온라인 중고물품 중개 시장을 선점한 상태다. 특히 대규모 외부 자금 유치 능력은 다른 스타트업들과 비교해 분명 강점이다. 2018년 2000억원이던 거래액이 외부 자금이 대거 유입된 2019년 7000억원까지 급증하는 등 외부 자금 유입이 빠른 성장과 연결되는 모습이다. 당근마켓의 목표는 지역·동네 생활 플랫폼으로의 변신이라고 한다. 이들이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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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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