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4일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의 대형마트에서 한 시민이 마스크를 쓴 채 장을 보고 있다. ⓒphoto 신화·뉴시스
지난 2월 4일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의 대형마트에서 한 시민이 마스크를 쓴 채 장을 보고 있다. ⓒphoto 신화·뉴시스

한반도와 이어진 중국 동북 3성도 코로나19의 확산세가 예사롭지 않다. 코로나19가 최초 창궐한 후베이성(湖北省)을 비롯해 확진자 수가 각각 1000명을 돌파한 광둥성(1241명), 허난성(1169명), 저장성(1145명) 등 화중·화남 지방에 비해 동북 3성(랴오닝성·지린성·헤이룽장성)으로의 확산세는 그동안 비교적 주춤한 편이었다. 베이징(366명)과 베이징을 둘러싼 허베이성(265명) 등 화북 지역만 영향권에 들었을 뿐, 옛 만주(滿洲) 땅인 동북 3성에 속하는 랴오닝성과 지린성은 확진자가 각각 116명, 84명에 그친다.(지난 2월 13일 12시 기준) 중국 내 다른 지역에 비하면 상당히 양호한 수준이다.

반면 동북 3성 가운데 유독 헤이룽장성(黑龍江省)의 확진자가 다른 지역에 비해 많이 나오고 있어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지난 2월 13일 12시 기준) 헤이룽장성의 확진자 수는 395명, 사망자는 9명이다. 사망자 수만 놓고 보면 최초 발원지인 후베이성(1310명)을 제외한 중국 내 다른 성시 가운데 허난성(10명) 다음으로 많다. 중국 당국에서는 매일 코로나19의 지역별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를 공개하는데, 동북 3성 중에는 헤이룽장성만 유독 붉게 물들어 있는 형편이다.

동북 3성 가운데 가장 북쪽에 자리 잡은 헤이룽장성에서 유독 코로나19 확산세가 강한 데 대해서는 중국 내에서도 의아해하는 분위기다. 동북 3성에 속한 랴오닝성, 지린성에 비해 후베이성에서 훨씬 먼데도 불구하고 확산세가 가팔라서다. 실제로 헤이룽장성의 확진자는 후베이성에서 비슷한 직선거리에 놓여 있는 네이멍구자치구(61명), 신장자치구(63명), 닝샤자치구(64명) 등에 비해서도 월등히 많다. 헤이룽장성의 성도 하얼빈에서 후베이성 우한까지 거리는 비행기로 3시간, 고속철로도 13시간에 달한다. 우한에서 거리는 하얼빈보다 서울이 훨씬 더 가깝다.

헤이룽장 조선족, 대부분 경상도

헤이룽장성의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비상이 걸린 곳은 다름 아닌 한국이다. 헤이룽장성에 조선족 동포들이 대거 거주하고, 이들의 일가친척들이 한국에 많이 건너와 있어서다. 외교부와 재외동포재단에 따르면, 동북 3성에는 지난해 기준으로 모두 160만명의 중국 국적 동포(조선족 동포)들이 거주하는데, 이 중 헤이룽장성에 거주하는 중국 국적의 조선족 동포는 32만여명에 달한다. 옌볜조선족자치주가 속해 있는 지린성(104만명) 다음으로 많은 숫자다.

헤이룽장성에 사는 조선족 동포 수가 지린성의 3분의 1 정도에 불과하지만, 한국에 더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요인은 따로 있다. 바로 헤이룽장성 조선족 동포 사회가 경상도 등 한반도 남부 지방에서 건너간 사람들을 주축으로 형성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함경도와 마주하고 있는 지린성에 건너간 조선족 동포들의 뿌리가 주로 함경도 출신이라면, 동북 3성 중 가장 거리가 먼 헤이룽장성에 건너간 조선족 동포들의 뿌리는 경상도 일대인 경우가 대다수다.

일제가 1932년 괴뢰국가인 만주국을 세운 직후, 만주 개척을 위해 한반도 남부 지역에서 대거 농업이민을 모집해 만주로 보냈을 때도 경상도 출신들은 헤이룽장성에 대거 정착했다. 전남대 글로벌 디아스포라연구소에 따르면, 전라도 출신자들이 지리적으로 가까운 랴오닝성에서 지린성에 걸친 지역에 넓게 자리 잡은 것과 대조적으로 경상도 출신자들은 헤이룽장성의 성도인 하얼빈, 우창(五常), 상즈(尚志) 등지에 자리 잡았다. “헤이룽장성 우창시 거주 조선족 동포들의 경우 70%가 남한 출신이며 대부분이 경상도 출신”이란 이민정책연구원의 조사결과도 있었다.

이는 1992년 한·중수교 이후 헤이룽장성 출신 조선족 동포들이 본국으로 대거 귀국하는 계기가 됐다. 헤이룽장성 출신들은 일가친척이 한국에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아서 비자발급에 필요한 초청장 등 각종 서류를 발급받기가 비교적 수월했다고 한다. 실제로 연고를 찾기 쉬운 헤이룽장성 출신 조선족 동포들은 ‘친척방문비자’ 등을 통해 들어와 국내에 눌러앉은 경우가 상당수다. 마땅한 국내 연고가 없어 ‘결혼이민비자’ 등을 통해 대거 입국한 지린성(옌볜) 출신들과 다른 점이다.

경상도 억양이 남아 있는 헤이룽장성 출신 조선족 동포들의 경우, 함경도 출신이 많아 북한식 억양을 구사하는 지린성 출신들에 비해 모국 적응도 비교적 수월했다는 평가다. 이민정책연구원은 “국내 체류 중국 동포의 3분의 1 정도가 헤이룽장성 출신으로 추정된다”며 “헤이룽장성 출신들은 국내 중국 동포 밀집지역(영등포구 대림동 등)에 체류하지 않고 일반 한국인 사이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지린 출신과 달리 내국인과 혼거

자연히 한국에 정착한 조선족 동포들 가운데는 헤이룽장성에 일가친척들이 남아 있는 경우가 많은데, 헤이룽장성이 코로나19에 뚫리면 한국으로 우회 유입 가능성도 높아진다. 실제로 조선족 동포들이 많이 거주하는 헤이룽장성에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제주항공 등 국적항공사 3곳이 하얼빈, 무단장, 자무스(佳木斯) 등지에 직항편을 띄우고 있다. 항공자유화(오픈스카이)가 체결돼 있지 않음에도 중소도시까지 항로가 개설된 것도 특징이다. 항로만 놓고 보면 창춘, 옌지(옌볜조선족자치주) 두 곳에만 직항로가 열린 지린성에 비해 더 다양하다.

헤이룽장성 각 도시에 취항하는 우리 국적항공사들은 막대한 조선족 동포들의 여객과 화물수요를 감안해서 운항중단 조치는 선뜻 취하지 못하고 있다. 대한항공이 오는 2월 20일부터 인천~무단장 노선을 주 5회에서 주 3회로, 아시아나항공이 2월 14일부터 인천~하얼빈 노선을 주 7회에서 주 3회로 줄이기로 했을 뿐이다. 인천~하얼빈(주 3회), 인천~자무스(주 2회) 노선에 취항하는 제주항공 역시 별다른 변화 없이 노선을 유지하고 있다.

헤이룽장성이 후베이성과 더 가까운 동북 3성 내 다른 지역과 달리 코로나19에 상대적으로 쉽게 뚫린 이유는 아직까지 미스터리다. 헤이룽장성에 거주하는 후베이 출신자도 1만7000명 정도로 중국의 31개 성시 가운데 가장 적은 수준이다. 다만 후베이성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 비해 사망자가 많은 까닭은 헤이룽장성의 겨울철 혹한 기후에서 찾는 사람이 많다. 헤이룽장성의 2월 현재 일 최저기온은 영하 20도로, 중국에서 가장 추운 지역에 속한다.

혹한에 노출된 고령자들로서는 바이러스에 호흡기가 더 약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헤이룽장성에서 나온 첫 번째 사망자인 73세 여성 장(姜)모씨(1월 23일)를 비롯한 사망자 대부분은 60~70대 고령자들이었다. 반면 중국에서 가장 더운 광둥성과 가장 추운 헤이룽장성 모두에서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는 것은 중국 당국에 또 다른 골칫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계절 변화에 상관없이 바이러스가 지속될 수 있다는 직접적 증거이기 때문이다. 헤이룽장성의 코로나19 확산세가 어느 정도까지 지속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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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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