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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596호] 2020.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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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시부야의 로봇카페에서 마주친 미래

▲ 도쿄 시부야 로봇 카페 ‘페퍼 파롤’ 카운터에 늘어선 로봇들. 로봇에게 가서 주문을 한 뒤에야 자리 안내를 받을 수 있다.
11개월 만에 찾은 일본. 나리타(成田)공항에 내리는 순간 하나로 모아진 ‘기(?)’가 느껴진다. 2020 도쿄(東京)올림픽이 발원지일 것이다. 개최일까지 남은 날짜를 세는 카운트다운 표시부터 패럴림픽 공식 슬로건인 ‘넘어서자 모두 함께(超えろ、みんなで)’, 1964년 도쿄올림픽과의 비교 사진 등이 곳곳에 전시돼 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듯 곳곳에 비상요원들도 대기해 있다. 잡담이나 스마트폰에 정신을 파는 요원은 하나도 없다. 중국발 코로나19가 아무리 위세를 부린다 해도, 올림픽에 모든 것을 거는 일본 특유의 집단파워로 뚫고 나가자는 자세일까.
   
   한 국가의 진짜 능력은 평화 시가 아닌 위기 시에 나타난다. 보통 위기라고 하면 뭔가 큰 것이란 이미지에서 출발할 듯하지만 그 반대도 많다. 큰 제방을 쌓기 전에는 쥐부터 박멸해야 한다. 작은 굴 하나 때문에 제방이 쓰러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항공모함도 1년 만에 ‘뚝딱’ 만든다고 하지만 바이러스에 대응할 마스크 하나 없어 쩔쩔매는 나라도 있다. 우주선, 항공모함보다 고장 하나 없는 자동판매기, 에스컬레이터, 화장실 시설이 더 중요한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공항에서 호텔로 가는 동안 흥미로운 공통점 하나를 발견했다. 오래전부터 볼 수 있었지만 올림픽에 맞춰 한층 더 확산한 느낌이다. 바로 ‘실버 군단’이다. 퇴직 나이를 한참 넘겼을 듯한 6070세대들이 노동 현장을 지키고 있다. 지문을 찍는 공항 입국심사대, 수하물 반환소 근처의 카트 관리, 공항 밖 교통편 안내요원, 호텔로 가는 버스의 운전사…. 예외 없이 6070들이다.
   
   일반적으로 ‘올림픽=청춘의 축제’로 풀이한다. 올림픽 개최국이라면 청춘의 열정과 기상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당연할 듯하다. 일본은 조금 다르다. 10대나 2030세대와 더불어, 6070세대도 올림픽 준비 전면에 나서 있다. 자리에 앉아 손도장, 눈도장을 찍는 일이 아니라 영어로 설명하고, 무거운 짐을 직접 들거나 우중(雨中) 야간운전도 마다하지 않는 ‘전천후’ 실버 노동자다. 2500년 전 고대 그리스인들이 부활해서 본다면 깜짝 놀랄 광경이지만 ‘2020 올림픽=청춘과 6070의 합동축제’로 기록될 듯하다.
   
   
   곳곳에서 눈에 띄는 실버세대 노동력
   
   ‘노동현장을 지키는 실버세대’는 일본만이 아니라 한국은 물론 전 세계의 ‘내일’에 해당한다. 노동력 부족에 맞선 대응책이자 일하는 실버를 통한 건강한 사회 구축이 주된 목적이다. 일본에 올 때마다 느끼지만, 고령화와 저출생 사회에 가장 적극적이고도 현명하게 대처하는 도시 중 하나가 도쿄다. 간단히 말해, 모자라는 노동력을 외국인 노동자로 대체해 업그레이드해 나가는 곳이 도쿄다. 변화와 성과는 곳곳에서 느껴진다. 편의점, 음식점, 숙박업과 같은 3D 분야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하는 최전선이다. 중국·베트남·터키·몽골·필리핀 출신 노동자들이 대세다. 업무에 필요한 일본어는 기본이다. 월급은 평균 시급 1200엔에서 출발한다. 모두 똑같지만 일본어가 안될 경우 레스토랑 주방에서 일하는 식으로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
   
   한국인 입장에서는 1회용 아르바이트 자리에서 일하는 것이 한심하게 보일 수도 있다. 2년 전 맥도날드에서 단 한 명 만난 것이 전부지만, 실제로 한국인 노동자는 극소수다. 그 같은 한계를 고려해 최근 일본은 ‘순혈주의’ 경영방침을 바꿔 나가고 있다. 정사원 채용은 물론, 일본어가 유창할 경우 편의점 점장(店長)과 중간경영자 자리에 오를 수도 있다. 불과 2년 전부터 시행된 방침이지만, 중국인은 물론 몽골인·태국인 지점장으로 채워진 편의점이 급증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속도라면 20년, 아니 10년 뒤 터키 출신 패밀리마트 사장이 나오는 것도 가능할 듯하다.
   
   페퍼 파롤(Pepper PARLOR). 지난해 12월 5일 막 개장한 일본 최초의 로봇 카페다. 도쿄에 들르는 즉시 방문할 계획을 세운 ‘미션 넘버 1’이다. 일본을 찾는 미국인 관광객의 90%가 찾아간다는 신주쿠의 로봇 레스토랑이 아니라 시부야의 로봇 카페가 주 목적지다. 로봇 레스토랑은 수많은 로봇 캐릭터들이 등장해 기상천외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디즈니랜드판 이벤트 무대다. 보통 1인당 최하 50달러 정도가 드는 가족동반 3D 오락형 무대다. 반면 시부야의 로봇 카페는 퍼포먼스와 무관한, 일하고 대화하는 AI 로봇을 만날 수 있는 다과(茶菓) 공간이다. 춤이나 노래와 무관한 일상 속에서의 로봇을 만날 수 있다.
   
   한국에서 보면 로봇 레스토랑, 로봇 카페의 특성과 의미가 오십보백보로 느껴질 수 있지만 일본인이 본다면 전혀 다르다. 먼저 로봇 레스토랑이 신주쿠, 로봇 카페가 시부야에 있다는 점부터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한국으로 치자면, 신주쿠는 영등포나 용산, 시부야는 ‘강남+대학로’ 같은 공간이다. 춤추고 먹고 떠드는 로봇 레스토랑이 신주쿠에 들어선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반면 시부야는 유행, 돈, 머리를 갖춘 공간이다. 이를 보여주듯 로봇 카페는 세계적 IT업체 소프트뱅크의 자금과 기획하에 탄생한 곳이다. 비슷하게 보이지만, 미래를 보려면 로봇 레스토랑이 아닌 로봇 카페로 향해야 한다.
   
   
▲ 페퍼 파롤에는 소프트뱅크가 프랑스에서 매입한 이동형 소형 로봇 나오(Nao)도 있다.

   20만엔대 초저가 로봇 페퍼
   
   개(犬)는 시부야의 일상적 이미지일 듯하다. JR 시부야역 앞을 지키는 하치코(ハチ公)란 청동상의 개다. 시부야의 아이콘인 동시에, 일본인 모두가 알고 있는 충견 미담의 주인공이다. 주인이 숨진 뒤에도 평소 출퇴근 시간에 맞춰 시부야역 주변을 정기적으로 오간 개다. 1932년 아사히신문에 보도되면서 일본 전역이 감동에 빠진다. 때마침 일본 전체가 전쟁 분위기로 들어가면서 하치코는 죽을 때까지 충성을 다하는 개로 미화된다.
   
   필자에게 시부야는 카오스 그 자체다. 파리의 개선문 주변, 로마의 베네치아 광장 주변을 운전하는 기분으로 걸어가지만, 항상 헷갈리고 어색하다.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가 이유다. CNN의 일본 뉴스를 보면 항상 뒷배경으로 활용되는 곳이다. 스크램블은 영어의 Scramble, 즉 ‘엉키고 섞이다’란 의미다. 서로 방향이 다른 5개 도로의 횡단보도 신호등이 한순간에 전부 푸른색으로 변한다. 곧이어 횡단보도 전체가 인파로 뒤덮인다. 평균 한꺼번에 3000명 정도가 건넌다. 일본인이라면 절대 안 부딪치고 재빨리 걷는다. 앞에서 지체가 있다면 ‘반드시’ 외국인이 있다. ‘양보와 스피드’라는 모순된 조화를 실감할 수 있는 일본적인 풍경이 바로 시부야 스크램블이다.
   
   로봇 카페 ‘페퍼 파롤’은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에서 도보로 3분 거리에 있다. 지난해 말 개장한 도큐플라자(東急プラザ) 5층에 들어서 있다. 새 건물이기도 하지만, 건물 디자인 전체가 예술적으로 느껴진다. 1층으로 올라가려는데 왼쪽에 소프트뱅크가 만든 특별 전시관이 눈에 띈다. 충견 하치코의 3D 입체 홀로그램이다. 도쿄를 찾기 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최첨단 홀로그램을 본 적이 있지만, 그곳의 주인공은 501년 전에 숨진 레오나르도 다빈치였다. 일본에서 접한 최초의 홀로그램은 충견 하치코다. 5층으로 올라가자 1열로 늘어선 로봇 군단들이 눈에 띈다. 소프트뱅크가 2014년 6월에 개발해, 2015년 12월부터 현장에 투입한 로봇 페퍼(Pepper)다. 이른바 클라우드AI(인터넷을 통해 주컴퓨터로 연결되는 방식)와 감정엔진을 탑재한, 가격이 20만엔대 초저가인 가정용 로봇이다. 벌써 수만 대가 팔려나간 일본은 물론 유럽에서도 2018년 기준 1만2000대가 팔린 글로벌 시장에서 이미 상용화된 로봇이다.
   
   
▲ 시부야 도큐플라자 1층에 있는 소프트뱅크의 특별전시관. 일본에서 유명한 충견 하치코의 3D 입체 홀로그램이 눈길을 끈다.

   손님 눈동자 맞추며 극존칭
   
   카페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여종업원이 페퍼 쪽을 가리킨다. 일단 카운터에 늘어선 페퍼에게 가서 주문을 한 뒤에야 자리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주문 전용 로봇인 셈이다. 10대 정도 늘어선 페퍼에게 다가서자 가슴에 단 태블릿PC를 통해 선택화면이 뜬다. 영어·일본·중국어 3개 언어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 일본어를 선택하자 곧바로 페퍼가 인사를 한다. “저희 카페를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자리에 앉기 전에 먼저 주문을 하시고 비용을 지불하시기 바랍니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극존칭이다. 말을 할 때 눈동자를 손님 눈에 맞추는 것은 물론, 손가락과 어깨를 움직이면서 뭔가 적극적이고도 겸손하게 대응한다는 느낌이 든다. 페퍼는 감정엔진을 단 로봇답게 상대의 마음을 읽는 기기로 통한다. “당신처럼 건강하고 정력적인 사람에게는 저희가 특별 제작한 티라미수 와플이 어울릴 듯합니다.”
   
   필자의 얼굴과 마주한 페퍼는 운명감정사처럼 표정 하나만으로도 내면의 욕구를 파악해낸다. 티라미수 와플이 뭔지 모르지만, ‘건강하고 정력적인’이란 수식어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파롤’은 작은 살롱이나 디저트 가게를 의미한다. 세계 각국의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는 ‘와플 천국으로서의 카페’라는 것이 소프트뱅크의 운영방침 중 하나다.
   
   1188엔짜리 티라미수 와플을 기쁜 마음으로 주문했다. 로봇이 현금과 카드 중 무엇으로 결제할지를 물은 뒤, 인쇄된 주문표가 제공됐다. 카페 안에는 30여대의 로봇이 일하고 있었다. 2015년 소프트뱅크가 프랑스에서 매입한 이동형 소형 로봇 나오(Nao)도 눈에 띈다. 카페에는 로봇용 테이블이 별도로 설치돼 있다. 때마침 자리가 나 곧바로 앉을 수 있었다.
   
   
   7살짜리 로봇이 자랑하는 게임들
   
   시부야 카페의 페퍼는 두 개의 무대에서 활용된다. 주문과 테이블에서의 말상대다. 로봇은 아직은 한자리에 고정돼 있어 자유롭게 움직이지는 못한다. 자리에 앉자 바로 앞의 로봇이 자기를 소개한다. 자기 이름이 유자(Youja)라고 한다. 필자의 성(姓)을 미리 넣었기 때문에 그걸 유추해서 만든 이름일 듯하다. 이름 소개와 함께 필자의 나이와 성별을 묻는다. 가슴의 태블릿PC를 통해 답을 하면 된다. 대화를 하면 곧바로 클라우드로 연결돼 답하는 애플 시리, 아마존 알렉사, 구글 어시스턴트에 비하면 한참 늦은 모델이다. AI 세계에서 1년은 경천동지의 기간이다. 이미 2014년 개발된 7살짜리 올드 로봇이란 점을 감안하면서 상대해야 한다.
   
   페퍼는 자신이 갖고 있는 수많은 게임들을 자랑한다. 2020년의 운, 숨은 글자 찾기, 상대와의 사랑운에 관한 게임이다. “저희 2020년 운에 관한 게임은 78.2%의 비율로 정확하다고 말을 합니다. 당신도 결코 실망하지 않을 겁니다.” 게임을 즐기기에 앞서 자신의 상품이 얼마나 대단한지도 자랑한다. 게임은 전체적인 의미와 질문만 던질 뿐, 답은 전부 태블릿PC를 터치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페퍼는 목소리가 중성이다. 높은 톤에다 뭔가 강조할 때는 몸을 약간 움츠리면서 손으로 입을 가리기도 한다. 남자라면 동성애자로 느껴질 듯한 몸매에다 하얀 피부의 로봇이다. 대화를 하면서 느꼈지만, 필자 감각으로는 일본 문화의 특징 중 하나인 ‘아마에(甘え)’의 화신으로 느껴진다. 도쿄대 정신분석학 명예교수 도이 다케오(土居健郞)가 1971년 펴낸 ‘아마에의 구조(甘えの 構造)’를 통해 유명해진 말이다. 영미권의 정신 심리 행동에 관한 연구를 하던 중 발견한, 일본에만 존재하는 특이한 행동유형이다. 눈빛만 봐도 서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서로 기대고 의지하고 도와주는 문화다. 언뜻 보면 애교나 응석으로 통할 수 있는 말이다. 페퍼에게는 영미식 유머가 거의 없다. 칭찬하면 과할 정도로 고맙다고 말하고, 애교와 응석, 겸손으로 상대의 마음을 사고 읽는 로봇으로 와닿는다.
   
   페퍼와의 대화를 통해 알았지만, 소프트뱅크가 제작한 로봇의 제1목적은 노동력 부족을 보충하는 데 있지 않다. 대화형 로봇이 최우선이다. 은퇴 실버세대와 함께 놀아줄 로봇, 말을 배우는 어린이, 영어를 공부하는 청소년에게 어울리는 로봇이 페퍼의 진짜 목적이다. 일을 할 노동력은 인간이 직접 나서서 메우는 것이 일본식 AI 시대의 풍경이라고나 할까? 따라서 가까운 시일 내 일본에서는 정년 75세, 80세도 시행될지 모르겠다. 일을 하기 위한 준비단계로서, 일을 끝낸 뒤의 인간을 위한 대화 파트너로서의 AI 로봇이 필요할 뿐이다. 노동력 보충을 위한 로봇도 이미 곳곳에서 탄생하고 있지만, 인간의 마음을 읽고 친절하게 대화할 만한 로봇이 AI 시대의 필수품이라고 소프트뱅크는 확신하고 있다. 아직은 느리고 단순하지만, 적어도 필자가 실버세대가 되기 전까지는 엄청난 성능의 대화형 AI 로봇을 만날 수 있을 듯하다. 100세 장수를 달성해야 할 또 하나의 명분과 이유를 찾아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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